가영은 두께감이 있는 야구점퍼를 어색하게 걸쳤다. 옷장을 열어보니 눈에 바로 들어오는 옷이었다. 탁상 시계를 보니 오후 4시였다. 몇시간을 생각해도 나오는 답은 하나였다. 김정태를 다시 만나야 해. 따지고 보면 그에 대해 아는건 별로 없었다. 중국집 알바생, 바가지머리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동갑내기, 하룻밤을 같이 보낸 사이. 남자친구라 말하기엔 허탈함이 몰려오는 사람. 나는 무작정 뛰었다. 열심히 달리다보면 마주칠거야. 아니, 그래야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지만 인연이라면 만날 수 있어. 생각이 뒤얽히는 시간의 조각들 사이로 거울 속의 나를 보았다. 마음속의 거울이었다. 김가영이라는 인간의 거울. 나는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남자에게 의존하는가. 연연하는 이유는 호감보단 집착이지 않을까? 뼈저린 사실을 깨달은 순간 주저앉아 버렸다. 가영은 쏟아지는 눈물의 기로에 우뚝 섰다. 비행기 항로가 엉켜버려서 잘못 착륙한 것처럼, 나 또한 고장나 버렸다. "내 인생이 바로 서지 않는데, 누군가를 사랑할 자격이 있어? 김가영 똑바로 생각하라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낙비가 쏟아졌다. 매섭고 따가운 소낙비 사이로 목소리가 들렸다. 환청이라고 생각이 들만큼 비현실에 가까운 음성이었다. "춥잖아, 이렇게 추운날 감기 걸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너무 멀리 와버린걸까. 그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지만 귀를 막고 싶었다. 손목을 붙잡는 촉감이 느껴졌다. "김정태... 하고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은데... 뭐부터 해야할... 해야하는 거야, 나?" 그와 나는 뜨겁고 차가운 빗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