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루리 배고픈뎅 밥밥! 밥주면 앙대?" 소파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진혁은 가까스로 눈을 떴다. 아침 기상 알람은 루리의 사랑스러운 목소리였다. 아차 싶었다. 와이프가 학교에 아이를 잘 바래다주라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루리야, 골고루 먹어. 그래야 쑥쑥 크니까." 루리는 입이 뾰루퉁해지다가 김치 한조각을 씹지도 않은 채로 꼴깍 삼켰다. 얼굴을 찌푸리다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 어른이 되면 좋아?" "글쎄... 어른이 되면 책임감 있게 인생을 살아야 하지." "책임이 모야?" "그건 나중에 크면 알게 된단다." 루리는 올해 8살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호기심이 많고 그림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서영은 기억을 점차 잃어버렸고, 친가에서 맏이인 언니가 데려가면서 했던 말이 생각났다. 진심이 담긴 응어리 맺힌 말이었음에 분명하다. "서영이, 책임질 수 있어요? 곧있음 서영이는 가족도 못 알아볼거에요. 그만 여기서 놔줘요." "그럼, 루리를 제가 키울게요." 자연스럽게 루리와 나는 한 가족이 되었다. 서영이 루리도 못 알아보는 상황은 기정 사실이었다. 아직 나는 책임감이 있다고 섣불리 말하지 못하겠다. 한편으로는 어른이 된다는건 참 어려운 것 같다. 미성숙한 사람이 한 아이를 키운다는건 힘들지만 나름 보람있고 소중하다. "아빠, 안녕!" 분홍색 캐릭터 가방을 매고 인사하는 루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동안 손바닥에 남아있는 아이의 촉감은 보드랍고, 너무나도 아프다. 솔직하게, 나는 내가 너무 아픈걸지도 모르겠다. * 2년 전 정태,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