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아까 두 사람의 대화를 본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매섭게 그녀를 노려본 후에야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소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눈을 돌리자 검은색 세단 한 대가 길가에 서 있었고, 운전사가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서준이 다리를 뻗어 차에 올라탔다.
소희는 그 차를 슬쩍 쳐다보았다. 애스턴 마틴이었다. 단종된 지 오래된, 30억 정도 되는 차였다.
그런 차는 TV에서나 본 적 있었다.
운전사 기택은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백미러로 서준을 힐끗 보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도련님, 사장님께서 오랫동안 못 봤다고 이번에는 꼭 집에 한번 들렀다 오라고 하셨습니다."
서준은 거의 그가 어릴 때부터 지켜봐 온 아이였다.
그는 어린 도련님의 성격이 온화하고 누구에게나 예의 바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 중 서준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그가 회사에 들어갔을 때, 작년에 회사를 막 맡았을 때, 그 늙은 여우 같은 사람들은 눈은 높았지만 서준에게는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평소 그 늙은 여우들의 모습과는 천지 차이였다.
그래서 재영은 이 아들이 볼수록 마음에 들었고, 금요일이 되자 직접 그를 보내 데려오게 했다.
서준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차창 밖으로 사라지는 한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소녀는 너무 얌전했다.
날씨가 조금 더워서인지 심플한 연분홍색 원피스에 하얀색 구두를 신고 있었는데, 꽃 한 송이를 보는 듯 했다.
옆에 있던 여학생이 짐이 좀 많은지, 그녀는 다가가서 도움을 청했다.
그 여학생이 그녀에게 고맙다고 인사하자,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 맞다, 도련님..."
기택은 무언가 생각난 듯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
오늘 사오십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쓰 가 저택 앞에서 도련님이 사람을 때렸다며 배상금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말을 마치고는 고개를 저었다.
"요즘 세상에 자해공갈단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
서준은 천천히 뒷좌석에 기대앉았다. 차 안이 조금 더워서 검은 셔츠의 단추 두 개를 풀었다.
하얗고 선명한 쇄골이 드러났다.
알 수 없는 매력이 느껴졌다.
"아저씨, 경찰에 신고하셨어요?" 서준이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빛나고 있었다.
"원래는 경찰에 신고하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저에게 자신이 집안의 경제적 기둥이고, 자신이 무슨 일이 생기면 집에 있는 두 아이가 공부를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불쌍해서 그냥 보내줬습니다."
기택은 한숨을 쉬었다.
"사람이 그렇게 불쌍한 처지에 있는데 왜 사기꾼 같은 짓을 하는 걸까요?"
한참 후, 서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불쌍한 사람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죠."
그의 목소리에는 조롱과 나른함이 섞여 있었다.
다시 눈을 들어보니 소녀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손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한참 후, 그는 가볍게 웃었다.
비록 고모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청명을 찾으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어디까지나 중간에 만난 남매일 뿐, 둘은 친하지 않았다.
청명은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라면서 자주 백부와 백모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잘난 척하는 성격으로 자랐고, 소희는 원래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청명은 차가 있었지만 소희는 여전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오니 고모 태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청명은 닭 둥지 같은 머리를 한 채 방에서 나오더니 온통 기진맥진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 야근이셔서 안 들어오셔! 배달 음식 시켰으니까 이따가 와!" 말을 마치고는 소성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슬리퍼를 끌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그때 마침 둘째 백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소희는 머리를 긁적이며 전화를 받았다.
예상대로, 둘째 백모는 전화를 받자마자 지붕이라도 날려 버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소희! 너 왜 이제 전화받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잖아!"
그 말투는 걱정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도망갈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소희는 미간을 찌푸렸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저는 휴대폰 가지고 다니는 거 안 좋아해요. 무슨 일이세요?" 그녀의 말투는 다소 차가웠다. 둘째 백모는 그녀가 만만치 않는다는 것을 아는 듯, 그제야 목소리를 낮추었다.
"너희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잖니. 너도 알다시피, 그때 암 때문에 돈이 얼마나 들었니. 그때 네가 우리한테 2000만원 넘게 빚졌잖아. 차용증도 있는데!"
당시 할머니께서 암에 걸리셨을 때, 큰아버지와 둘째 백부는 모르는 척했고, 그녀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에게서 2600만원을 받아 할머니 치료비를 댔다.
단, 그 2600만원을 1년 안에 갚는다는 조건이었다.
만약 갚지 못하면, 대학 입학 시험 후 정혼할 때 금액만큼의 예물을 두 집안에 직접 준다는 조건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