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그녀가 그를 어떻게 가지고 놀지는, 전적으로 그녀 마음이었다

2724 Words
강유영의 의도가 너무 빤히 보였는지, 서훈은 차가운 얼굴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칠흑 같은 눈동자는 심연처럼 깊었고, 그 안에는 서늘함이 감돌았다. 경고의 의미가 다분했다. 하지만 유영은 이틀 전처럼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학생이 무릎에 앉기만 해도 화들짝 놀라는 바보를 무서워할 이유가 또 뭐람? 유영은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나른하게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가늘고 하얀 손가락 사이에는 펜이 끼워져 있었고, 그녀는 펜을 손가락 사이사이로 현란하게 굴렸다. 탁! 그녀는 일부러 손가락에 힘을 풀었고, 손에 들린 펜이 책상 위로 떨어지도록 내버려 두었다. 떨어진 건 서훈의 심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마치 강경수 손에 들린 펜과 같다고 느꼈다. 그녀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가지고 놀지, 그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기분에 달려 있었다. 이런 감정은 굉장히 묘했지만, 그는 그녀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유영 연습장에 한 줄을 쓴 후, 그것을 서훈 앞으로 밀었다. - 짝꿍, 수업 시간에는 칠판 봐. 나 보지 말고. 그녀의 글씨는 매우 또박또박한 정자체였고, 필압은 날카로웠다.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느낌이었고, 어릴 적부터 글씨 연습을 열심히 한 티가 역력했다. 글씨는 그 사람을 닮는다고 했던가. 서훈은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투는 마치 자신이 억지로 그녀를 쳐다본다는 듯했다. 분명히 먼저 그를 도발한 것은 그녀였는데. 그는 펜을 집어 들고 그 아래에 답장을 적었다. - 칠판이 너보다 예쁘겠냐. 유영은 조금 당황했다. 이 바보가 벌써 레벨업을 한 건가? 입술을 꾹 다물고 무표정하게 연습장을 구겨 서훈에게 던졌다. 서훈은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내고는, 도발하듯 그녀를 향해 눈썹을 슬쩍 치켜올렸다. 유영은 실소를 머금고 그를 바라보더니, 방금 전 손에 들고 놀던 펜을 한 손으로 꺾어 버렸다. 서훈은 그 모습을 보고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유영은 분명 자신이 한 손으로 펜을 꺾는 행동에 서훈이 겁을 먹었으리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지는 몇 시간 동안 서훈은 얌전히 있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둘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영은 이미 배가 고팠다. 수업 종이 울리기 전부터, 종이 울리는 순간 바로 식당으로 달려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옆에 있던 서훈이 그녀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창가 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가 먼저 지나가야만 자리에서 나갈 수 있었다. 기다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영은 서훈을 밀치고 앞으로 나아가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서훈은 그녀에게 밀려 비틀거렸고, 어이없다는 듯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강유영!" 저 여자는 소냐! 어떻게 힘이 저렇게 세지! 하지만 유영은 이미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 뒷문으로 사라진 후였다. 뒷자리에 있던 많은 학생들이 유영이 서훈을 밀치고 가장 먼저 교실을 뛰쳐나가는 장면을 목격했고, 그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쑥덕거렸다. 그리고는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창민은 옆에 있던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는 허리를 잡고 웃었다. "서훈아, 너 어떻게 하하하... 너 변했어. 하하하하하..." 임서훈은 무표정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 번만 더 웃으면 너 죽여버린다." 지창민은 즉시 웃음을 거두었지만, 1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안 돼. 너무 웃겨. 하하하하하... 아!" 서훈은 창민의 다리를 한 번 걷어찬 후, 발을 떼어 교실을 나섰다. 창민은 차인 다리를 부여잡고, 한 발로 깡충깡충 뛰며 그를 따라갔다. "임서훈, 잠깐만! 나 두고 가지 마!" 하지만 서훈은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오히려 뛰기 시작했다. 창민은 고개를 저으며 감탄했다. 년이 저건 분명히 창피해서 저러는 거다. … 서훈의 일행이 식당에 도착했을 때, 유영은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이미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밥을 먹으면서, 가끔 민서의 메시지에 답장을 했다. 그가 밥을 받아서 왔을 때는, 유영의 주변의 테이블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를 보기 위해 모여든 게 분명했다. "쟤가 1반에 새로 온 전학생이래." "서훈이 자리 안 비켜 주니까 그냥 무릎에 앉아버렸다는 그 전학생?" "맞아, 쟤야!" "대박, 저 여학생 완전 터프하다! 근데 얼굴 진짜 예쁘다..." "아, 나도 임서훈이었으면 좋겠다." "듣자 하니 오늘 쟤가 1등으로 식당에 도착했대!" "저렇게 예쁜데 성격도 소탈하다니. 역시 서훈이 부럽다..." 서훈은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굳은 얼굴로 쟁반을 든 채 그녀에게서 가장 먼 테이블로 걸어갔다. 창민은 유영의 옆에 가서 참견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서훈아, 우리 저기 강경수랑 같이 앉자." "싫어." "선생님이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셨잖아. 봐봐, 새 친구 혼자 밥 먹는 거 안쓰럽잖아." 서훈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아랑곳 하지 않고 창민을 계속해서 말했다. "게다가 다들 쟤 쳐다보면서 수군거리는데,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겠냐..." 불편하다고? 글씨 하나를 써도 당당하고 자유분방한 애가,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이나 쓸까? 서훈은 걸음을 멈추고 유영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유영의 주변 다른 테이블은 모두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있었지만, 그녀만 혼자였다. 확실히 좀 외로워 보이긴 했다. 창민은 상황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결정타를 날렸다. "서훈아, 설마 네가 강경수 무서워서 저기 못 가는 건 아니지?" 서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내가 쟤를 왜 무서워해?"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성큼성큼 강경수에게로 걸어갔다. 쾅! 임서훈은 유영의 맞은편에 쟁반을 세게 내려놓았다. 유영이 고개를 들었을 때, 서훈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고,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서훈은 누군가를 빤히 쳐다볼 때면 표정이 매우 살벌했다. 마치 시비를 걸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유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잠시 쏘아보더니,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뭐 하려고?" 지창민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는 서훈의 팔을 툭 치며 작게 말했다. "서훈아, 너 무슨 싸움하려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웃어 봐. 우리 새 친구 겁먹잖아." 서훈은 "쟤 안 겁먹어." 맨손으로 펜을 꺾어 버리는 강유영을 그 누가 겁먹게 할 수 있을까? 창욱은 서훈과의 대화를 포기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유영에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서훈이가 원래 좀 그래. 무뚝뚝하고 표정 관리도 잘 못 하거든..." "응." 그래, 싸움하려는 게 아니었구나. 유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지창민은 말이 많은 편이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의 입은 쉬지 않고 움직였고, 계속해서 유영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다행히 그는 선을 넘는 질문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듣기 거북하지는 않았다. 유영은 그의 질문에 모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근데 고3인데 전학을 오다니? 계속 여기서 살 거야?" "아니, 여기는 일종의 유학같은 느낌으로 온 거야. 나중에 다시 돌아가서 수능 볼 거야." "아, 그럼 부모님께서 이쪽으로 직장을 옮기셔서 따라온 거야?" 서훈은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둘의 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듣고 있었다. 그러다 창민의 입에서 "부모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서훈은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들어 유영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태연했던 그녀의 얼굴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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