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오, 그녀를 보러 왔군요.

2638 Words
차 선생도 어안이 벙벙했다. 자신이 본 강유영은 여리고 얌전해 보이는 소녀였는데, 이렇게 대담할 줄이야. 이런 일은 크게 보면 크고 작게 보면 작은 일이라, 담임인 차민정도 꽤 난감했다. 아무 말도 안 할 수도 없고, 뭐라고 하려니 말을 조심스럽게 골라야 했다. 임서훈은 직접 의자를 끌어 강경수 옆에 앉더니, 무표정으로 책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쾅! "수업 시작한다!" 임서훈의 목소리에는 별다른 감정이 실려 있지 않았다. 얼굴은 여전히 붉었지만, 알 수 없는 기세가 느껴졌다. 아까까지만 해도 목을 빼고 구경하던 지창민은 그 말을 듣고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가장 소란스러웠던 건 지창민 무리였는데, 그들이 조용해지자 교실은 이내 조용해졌다. 차 선생은 복잡한 심경으로 임서훈을 한 번 흘끗 보고는 교단으로 걸어갔다. "자, 그럼 중요한 이야기를 몇 가지 하겠습니다..." ***** 수업이 끝나자 유영은 휴대폰을 꺼냈다. 민서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민서: [영아, 오늘 개학했는데 적응 잘해?] 이민서: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 이민서: [나 며칠 뒤에 개학인데, 네가 없으니까 너무 허전해. 너 없이 나 어떻게 사냐구 ㅠㅠㅠㅠㅠ] 이민서는 똑같은 것 하나 없는 수십 개의 대성통곡 이모티콘을 연달아 보냈다. 강유영 이제 이런 것에 익숙했다. 강유영: [적응 잘하고, 잘 지내. 너도 개학 잘해. (토닥토닥.jpg)] 민서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이민서: [나 너한테 전학 가고 싶어. (대성통곡.jpg)] 강유영: [뭐하려고, 편안한 서울에 있지. 나 없는 동안 몸조심하고 있어] 이민서: [영아, 너도 몸조심해. 나도 힘낼게. (울음 참는.jpg)] 유영은 답장을 보며 소리 없이 입꼬리를 올렸다.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이나 알고 지낸 사이인 유영은 민서의 엄마보다도 민서를 잘 알았고, 그렇기에 당연히 민서를 쉽게 설득할 수 있었다. 강유영이 휴대폰을 집어넣고 고개를 드는 순간, 동그랗게 뜬 두 눈과 마주쳤다. 앞자리 여학생은 유영이 알아차린 것도 모르고 한참 동안이나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민망했는지 눈을 깜빡였다. 유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어?" "너 학교에 휴대폰 가져왔어?" "가져오면 안 돼?" "임서훈은 가져와도 돼. 그런데 다른 애들은 거의 안 되는데." "왜?" "왜냐면 걔는 전교 1등이니까." 유영은 놀라서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방금 전 수업종이 울리자마자 서훈은 마치 귀신이라도 뒤쫓아오는 것처럼 빠르게 뛰쳐나가서는 눈 깜짝할 새에 사라져 버렸다. 여학생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누군가에게 불려 나갔다. "수지야, 너 찾는 사람 있어." "응." 수지는 친구에게 대답하고는 유영을 향해 말했다.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지가 교실 뒷문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교실 뒷문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 남학생이었다. "와, 진짜 예쁘다!" "임서훈 부럽다!!!" "내가 들었는데 그때 서훈이 얼굴이 원숭이 엉덩이처럼 빨개졌다던데 ㅋㅋㅋㅋㅋ" 아, 다들 유영을 보러 온 거였다. 그녀는 시시하다고 생각하며 시선을 거두고 책상 서랍에서 비닐봉투를 꺼냈다. 스케치북을 꺼내 그림을 그리려는 참이었다. 그때 머리 위에서 조금 전에 들었던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가방 안 가져왔어?" 강유영은 고개를 들었다. 지창민이었다. 아까 유영이 임서훈의 무릎에 앉았을 때 가장 크게 웃었던 남학생이었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가방이 아직 안 왔어." 유영은 그날 작은 크로스백 하나만 들고 훌쩍 떠났기 때문에 모든 물건을 새로 사야 했다. 지창민은 유영이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때는 상대방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예의를 갖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하는 모습이 꽤 다가가기 쉬운 여학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색함이 느껴졌다. 유영에게서는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고, 그 앞에서는 함부로 까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창민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임서훈의 책상을 바라보다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서훈이 사실 엄청 좋은 애야. 성격이 영 별로긴 한데." "응." 강유영은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유영이 공감한 건 뒷부분이었다. 임서훈은 상당히 성격이 별로였다. 새로운 친구와 친목을 다졌다고 생각한 지창민은 만족스럽게 자리로 돌아갔다. 그의 자리는 교실 뒷문 근처였다. 교실 문을 지나가다가 난간에 기대어 휴대폰을 보고 있는 상묵년이 보였다. 창민은 문틀에 매달려 고개를 쑥 내밀고는 임서훈을 불렀다. "임서훈!" 서훈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하라는 듯 눈짓했다. "오늘 38도라는대, 복도에 서 있으면 안 더워?" 교실에는 에어컨은 없었지만 천장에 달린 선풍기는 제법 시원했다. 서훈은 아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람 쐬는 거야." 지창민은 서훈에게 달려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설마 강유영이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지?" 임서훈 아무 표정 없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만 보았다. 창민은 그의 시선에 자신이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아 두려운 나머지 슬그머니 두 팔로 자신을 감싸 안았다. "난 아무 말도 안 했어. 그냥 전학생이랑 인사정도 한거야." 서훈은 휴대폰을 교복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웃는 건지 마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내일 개학 시험 본다던데." "젠장!" 창민은 머리를 감싸 안고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느긋하게 서훈은 그의 뒤를 따라가 수업 시작 종이 울리는 순간 교실에 들어섰다. 그는 자신의 자석으로 걸어가 조심스럽게 의자를 복도 쪽으로 살짝 끌어당긴 후에야 안심하고 앉았다. 하지만 그의 안심은 3초 만에 끝났다. 강유영이 그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경계 태세를 취했다. "뭘 그렇게 쳐다봐?" 유영은 몸을 앞으로 숙여 서훈을 지나쳐 창민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창민이 보는 거야." "..." 할 말을 잃은 임서훈의 모습에 유영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전교 1등 모범생을 놀리는 건 퍽 재미있는 일이었다. 그도 유영이 자신을 일부러 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금 전 쉬는 시간 다른 반 학생들이 유영을 보러 우르르 몰려왔을 때, 서훈도 그 무리에 섞여 유영을 잠시나마 구경했었다. 유영은 수지나 창민이와 이야기할 때는 진지한 말투와 예의 바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만큼은 불친절한 걸까? 그래도 유영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자물쇠도 부숴 주고 문도 열어 줬는데! 아마도 그 우산 때문일 것이다. 그 생각에 서훈은 눈을 내리깔았다. 얼굴빛이 더욱 흐려졌다. 유영의 시선은 어느새 서훈의 길쭉한 다리에 가 있었다. 서훈은 의자를 거의 복도까지 끌어다 놓고 마치 유영을 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유영은 못된 마음에 자신의 의자를 서훈의 쪽으로 슬쩍 밀었다. 서훈은 그녀를 흘끗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유영은 서훈과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갑자기 등을 꼿꼿이 세우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유영은 자신이 조금만 더 다가가면 그가 아까 쉬는 시간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칠 거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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