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미스터 피치의 추억과 수면 항해 다시 밤이 찾아왔다. 수십만 마리 정어리 떼는 수중 계곡 위를 지나고 있었다. 계곡은 끝 간 데 없는 바닥까지 틈이 벌어져 있었다. 무섭고 아찔한 깊이였다. 바다 속 암흑이 도사린 곳이었다. “심연이야. 끝도 없는 바다 속이지. 한번 빠지면 되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이지. 우리 같은 정어리들이 내려가면 물의 압력 때문에 숨통이 터지고 말아.” 미스터 피치가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루미는 피치의 등 위에서 심연을 내려다보았다. 계곡의 갈라진 틈에서 푸른 불빛이 흔들렸다. “저런 곳에서도 생명이 존재하나 봐요?” “심해어들이야. 빛이 전혀 닿지 않는 깜깜한 암흑 속에서 살아가지. 위에서 내려오는 물고기 사체의 찌꺼기나 부패한 플랑크톤을 가만히 받아먹고 사는 게으른 족속들이지. 하지만 유성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생명체도 있어. 극한의 조건 속에서 살아가는 얼음벌레처럼 기다랗지. 그들은 인간들에게는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대. 하지만 인간이 지어 준 이름이 없다 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 그들은 스스로를 ‘발광고리화살벌레’라고 부르더군. 그들이 떼를 지어 깜깜한 바다 속을 헤엄치면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비를 만난 것처럼 아름답지.” “하늘에서 유성비가 떨어지는 것도 본 적 있나요?” “노총각 미스터 피치의 인생에서도 그런 멋진 기회가 딱 한 번 있었지.” 피치는 추억에 잠긴 듯 기름눈꺼풀을 끔벅였다. “북극이 가까운 바다였어. 그때 난 젊고 건강했지. 등도 청동처럼 푸르렀지. 그래서 난 정어리 떼의 맨 앞 쪽에서 움직였어.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