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늑대

2829
"사적으로 해결하지 않을 거야." 서준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는 눈꺼풀을 축 늘어뜨린 채 온몸에서 음울한 기운을 풍겼다. 학교에서의 모범생 이미지와는 천지 차이였다. 이진은 순간 얼음 구덩이에 빠진 듯 온몸이 얼어붙었다. 사실 이진은 서준이 일을 개인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집스럽게도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고, 서준이 예전의 친분을 생각해서라도 너그럽게 넘어가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모든 것은 그녀의 착각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진은 여전히 납득할 수 없었다. 분명 그때 서준이 점장에게 그녀를 위해 선처를 구했었다! 이진의 시울이 붉어졌다. 그녀는 어떻게든 그 이유를 알아내야만 했다. "그때... 점장님께 혼나고 있을 때, 너 나 대신 말씀드려 주셨잖아..." 서준은 그녀의 말에 마지못해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흘끗 쳐다보았다. 그는 차갑고 냉정한 기운을 풍겼다. 마치 이 모습이 그의 본모습인 것만 같았다. 그의 눈에는 감추기 힘든 짜증이 스쳐 지나갔다. "시끄러워서 쉬질 못하겠잖아." 단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위해 한마디 거들었을 뿐이었다. 그는 그녀가 불쌍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단지 시끄러워서 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지만, 이진은 그의 입으로 직접 확인하자 마음이 너무나도 아팠다! "박문진 씨 가족분, 이쪽으로 와주세요..." 저쪽에서 경찰이 이진을 찾았다. 문진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이진은 황급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 서준은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의 파란색 눈동자는 경멸로 가득 차 있었고, 그보다 더 짙게 깔려 있는 감정은 허탈함이었다. 가늘고 하얀 손가락이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색 불꽃이 솟아올랐다. 작은 불꽃은 그의 얼굴에 비춰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마치 그의 얼굴에 빛을 덧칠하는 듯했다. "도련님, 이제 돌아가시죠." 양 비서가 안에서 나왔다. "뒷일은 전부 변호사에게 맡기죠..." 양 비서의 얼굴에서는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살기가 누그러져 있었다. 방금 전 대화가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서준은 라이터를 집어넣고 한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의 얼굴은 이미 냉담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 밖에서는 운전기사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고, 양 비서는 감탄한 듯 말했다. "제가 오기 전에 회장님께서 도련님 성격에 그 불량배를 그냥 놔두실까 봐 걱정하셨습니다." 서준의 성격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양 비서는 서준과 함께 지내면서 그가 화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그는 늘 미소로 넘겼다. 서준은 가죽 시트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문득 문진을 막아서던 작은 소녀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뜨겁게 달궈진 시멘트 바닥에 그녀가 쓰러졌었다. 서준의 눈동자는 깊어졌지만, 반면 그의 입가에는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전에도 한번 시비를 걸었었어. 내가 만만하게 보였나 봐?" "전에도 시비를 걸었다고요?" 양 비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회장님께 보고해서 올해 서울대 투자 건은..." "양 비서, 정보력이 좀 부족하시군." 서준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온화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양 비서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기에 곧바로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서울대 보안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회장님께 자세히 보고드리겠습니다." 모두가 서준의 성격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 그는 이 가의 후계자였고, 앞으로 거대한 사업 왕국을 손에 쥐게 될 운명이었다. 만약 그가 이런 성격으로 사업을 물려받는다면, 분명 뼈도 못 추릴 것이다. 하지만 양 비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 서유는 밀크티 가게에서 나와 밀크티 두 병을 손에 들고는 무심하게 소희에게 건넸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제 그 불량배, 어떻게 될까?" 소희가 밀크티를 받아 들고 물었다. "아마 한동안 갇혀 있겠지." 서유가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이 가는 워낙 집안이 잘나가니까,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게다가 어제 그놈이 와서 행패를 부릴 때 이서준은 가만히만 있었잖아. 죄질이 더 나빠졌겠지." "이서준은 원래 성격이 그렇게 좋아?" 소희가 물었다. "응." 서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커뮤니티에서 본 건데, 고등학교 때도 성격 좋기로 유명했대. 게다가 성적은 항상 전교 1등, 집안도 좋고, 매너도 좋고. 역시 금수저들은 우리랑 다른가 봐." "맞아." 소희는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서준은 그녀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 가장 성격 좋고 교양 있는 사람이었다. "어제 너 그렇게 넘어지는 거 보니까 아파 보이더라." 서유는 여전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너처럼 여리고 약한 애가 그렇게 세게 부딪혔는데, 흉터 남는 거 아니야?" "괜찮아." 소희는 고개를 저었다. 어제 그 정도는 심하지 않았다. 며칠 반창고만 붙이면 나을 것이다. 오히려 서준이 어제 그 충격 때문에 더 아팠을 것이다. 이어서 소희는 고개를 저었다. 역시 이서준 같은 남자는 눈에 띄지 않으려야 띄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그저 아는 사이일 뿐이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소희는 시선을 내리깔고 마음속의 이상한 감정을 억눌렀다. 이진은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그녀는 서울에 의지할 곳이 없었고, 이 가에서도 물러서지 않아 문진은 결국 폭행죄로 유치장에 갇혀 15일 구류 처분을 받았다. 자신의 일을 겪고 나서야 이진은 이서준이라는 사람의 본성을 깨달았다. 그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었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냉정했다. 문득 어제의 상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서준이 신고를 하겠다고 말할 때, 그의 시선은 소희를 향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이유가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진은 일부러 소희가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를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이야?" 소희가 걸음을 멈추었다. "저번에 나랑 오빠랑 한 이야기, 다 들었지?" 이진은 팔짱을 낀 채 거만하게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소희가 되물었다. "이서준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 이진이 차갑게 말했다. "그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고, 양의 탈을 쓴 늑대일 뿐이야." 만약 전에 그녀가 서진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현실적인 환상을 품고 있었다면, 이번 일을 겪고 나서 그녀의 모든 환상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서진은 양의 탈을 쓴 늑대일 뿐이었다.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착각하지 마." 이진은 차갑게 몇 마디를 내뱉고는 돌아서서 걸어갔다. 소희는 얼마 전 병원에서 그가 아주머니와 어린 동생에게 다정하게 말하는 모습을 봤었다. 그가 그런 사람일 리 없었다. 이진은 소희의 요지부동한 태도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미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는데도, 소희는 여전히 서준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신입생 군사훈련 기간은 항상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새 주말이 다가왔고, 서준이 파티를 열기로 한 날이었다. 청명이 자신의 스포츠카에서 내릴 때, 이미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그의 손에 들린 차 키를 받아 들었다. 그는 평소 자유분방한 행동을 일삼았다. 그의 파란 머리카락은 지난번 태리에게 붙잡혀 혼쭐이 난 후, 이번에는 검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은 그의 머리에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전보다 훨씬 얌전해 보였다. 그가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방 안의 조명은 다소 어두웠고, 몇몇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주변을 몇 번이나 둘러보았지만, 찾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신규 회원 꿀혜택 드림
스캔하여 APP 다운로드하기
Facebookexpand_more
  • author-avatar
    작가
  • chap_list목록
  • like선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