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테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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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 말대로 집 안에 있던 키먼드는 인터폰에 비치는 마이콜을 확인하고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 “현관 등 바꿔 달라고 한 지가 언젠데 이제야 오는 거야?” “하하, 일이 바빠서.” 너스레를 떨며 마이콜이 집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뒤에 숨어 있던 서현과 의가 그의 뒤에서 빠르게 튀어나와 키먼드를 제압했다. “너, 이 새끼 잘 걸렸어!” “아악!!!” “키먼드 당신을 경찰 테러범의 주요 용의자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 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 또한 있지만 어디 한 번 해보시지, 또라이 새끼야.” 서현은 키먼드의 뒷통수를 세게 후려갈기며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검거율 98.99% 퀸과 티스의 기록이 또 갱신되는 순간이었다. * 키먼드는 서현과 의의 빠른 검거와 화려한 말빨로 인해 본인이 했음을 자백해야 했고(충격적인 건 단독 범행이었다는 것이다!), 범행 이유는 별 거 없었다. 그냥 경찰이 재수가 없어서 그랬단다. 이 대목에서 서현과 의는 그의 면전에 대고 쌍욕을 박을 뻔 했지만 그의 상사인 세진이 그들의 뒷목을 잡고 말리는 덕분에 키먼드는 오래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게다가 그는 마침 검사들이 벼르고 있던 터라 단단히 준비를 한 검사 덕분에 제대로 징역형을 먹었다. 이번에도 돈으로 빠져나오려 애썼지만 집안에선 키먼드의 말로(**)를 기다리고 있어서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결국 매 범행마다 그를 변호하던 변호사도 더 이상 변호를 하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남겼다. 그 변호사의 소신 있는 발언은 각종 뉴스와 토픽에 올랐고 그 변호사의 이름은 널리 퍼져 나갔다. 물론, 키먼드를 잡은 서현과 의의 이름은 한 톨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이름이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에 속상해 할 틈이 없었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려고 하면 세진이 일거리를 가져다주었고, 잠시 숨 좀 돌릴라 치면 경위서를 작성하라는 세진의 닦달이 계속 됐다. 최근 일어난 여러 사건들을 모두 처리하고, 사랑하는 파트너에게 꼭 미뤄주고 싶은 경위서까지도 작성을 완료한 서현과 의는 오랜만에 오스티 A구역 경찰서의 명물, 경찰들의 안식처인 옥상에서 햇빛을 쐬며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들이 자리 잡은 테이블 위엔 달콤한 오렌지 주스 한 잔과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이 놓여 있었다. 키먼드 검거 후 그 사이 살인자도 두 명이나 잡았고, 테러범 한 명, 마약 불법 거래도 한 건 적발 했다. 이번 마약 거래엔 불행인지 다행인지 지용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에 적발되면 반드시 잡아넣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던 서현이 매우 아쉬워했다. “이게 얼마만의 여유냐.” “그러니까. 너 이번 휴가 어디로 갈 거야?” “글쎄. 생각 안 해 봤는데. 너는?” “나는 디베라랑 아멜이나 데우스 가기로 했어.” 아빠 다 됐네. 이죽거리는 서현의 말투에 부끄럽다는 듯이 볼을 살짝 붉힌 의이었다. 그 모습에 신물이 난 서현은 결국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서 내에 의를 사모하는 몇 여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의의 이 모습을 보게 된다면 과연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심히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의의 표정 때문에 그의 말이 나중에 입력된 탓에 한참 지난 후, 서현이 그의 말에 반응했다. “야! 너 아멜이나 데우스 가면 며칠 휴가 받을 건데?” “못해도 일주일..?” “미친 거 아냐? 나 혼자 일주일 동안 일 하라고!?” 아, 그럼 너도 그 때 휴가 받아! 소리치는 의에 서현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는 듯이 쏘아보자 의가 지금 본인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다시 곱씹어보았다. 자신들의 직속 상사인 세진은 파트너여도 둘 중 한 명은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로테이션으로 휴가를 승인 해 주었다. 그런 세진의 의중을 도저히 이해 할 수 없던 두 사람은 결국 세진 잡아놓고 이유를 물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둘 다 없으면 심심하잖아.” 그 때 의가 말리지 않았다면 서현은 들고 있던 총으로 세진을 쏘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세진은 소리를 내며 하하하하 웃었다. 서현은 자신이 먼저 휴가를 사용해서 일주일 동안 녹초를 만든 뒤 휴가를 보낼 까, 아니면 자신이 먼저 녹초가 된 뒤 휴가 때 푹 쉴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너 아직 계획 없다면서. 내가 먼저 다녀올게.” 의는 서현의 표정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읽었는지 먼저 운을 띄웠다. 그의 말을 들은 서현은 굳이 싫다고 할 이유가 없었다. 고개를 순순히 끄덕인 서현을 본 의가 표정이 환하게 피기 시작했다. 그럼 나 먼저 내려간다. 서현은 그런 의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는 여유를 조금 더 즐긴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강력팀으로 향한 서현은 오늘따라 한산한 내부에 놀라며 세진에게 다가갔다. 저 강인한 표정과 우락부락한 몸으로 어울리지도 않던 핑크 하트모양 쿠션위에 박아 넣은 프랑스 자루를 놓고 있던 세진을 한심하게 바라본 서현은 세진 옆에 조용히 앉았다. “윈드.” “응?” “혹시 이 서 안에 CMA 있어요?” 세진은 노련한 바느질을 멈추지 않고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의 고갯짓을 보니 서현의 걱정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럼 그 때 들었던 내용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맞았다. 한숨이 나왔다. 옆에서 땅이 갈라져라, 세상이 무너져라 한숨을 쉬고 있으려니 세진은 더 이상 자신의 걸작 : 프랑스 자수에 온전히 집중 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그는 프랑스 자수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서현에게 물어봤다. “뭔가 또 발견 했어?” “별 건 아니고요. 음성 파일 하나를 발견 했는데, 제 활동명을 언급해서요.” “흐음…….” 세진은 이제 몸까지 돌려 서현을 바라봤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었지만, 서현은 그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말 해달라는 듯이 몸을 그에게 기울였다. 세진은 불안한 마음을 꽁꽁 감추고 바라보는 자신의 부하이자 이제는 딸이 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퀸.” “네.” “서현아.” “…….” “이번엔 정말 위험해. 그래서 킹도 이곳으로 온 거야.” 윈드, 그러니까 세진은 웬만하면 본명을 말 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범죄자들의 보복의 위험성도 있었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경찰들은 본명을 쓰지 않게 된지 오래였다. 정말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면 파트너끼리도 서로 본명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세진의 익숙해지기 어려운 무표정에 서현의 심장이 쿵쾅대며 뛰기 시작했다. 언젠간 목숨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모든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그리고 조직이 조직을 위해 끄나풀 하나 정도는 쉽게 버릴 수 있다는 것마저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서현 자신이었다. 서현은 자신의 직감이 맞았음을 다시 한 번 깨닫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아래로 힘없이 떨어졌다. 그 덕분에 윈드는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서현은 입술을 꽉 깨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용이 나타난 것이었다. 저울질 하는 것을 알고 있었을 때, 서현은 지용에게 알 수 없는 분노감과 적대감, 그리고 결정적으로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지용에게 이별을 선언했지만, 어디에서 나온 뻔뻔함인지 지용은 이별에 대한 거절을 표명했다. 그리고 정확히 3년 후, 그들은 다시 재회 했다. 그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리라 짐작은 되었지만 어떤 이유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여기에 오게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 한 것이 이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서현은 아직 그를 완벽하게 믿지 못했다. “킹이 저한테 그랬어요. 자신이 필요 할 것이라고.” 고개를 숙였던 서현이 세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의외로 담담한 그녀의 표정과 발언에 세진은 놀라워했다. “그렇게 까지 말했나? 엄청난 발전인걸.” “그럼 뭐 해요! 제대로 말을 하지 않는데!” “자네가 그것에 대해 정확히 물어봤으면 그는 대답 해 줬을 거야.” 서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세진의 말이 맞았다. 지용은 비밀이 많은 것 같아도 어떤 것에 대해 정확하게 물어보면 곧 잘 대답 해 주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짚지 않고 물어본다면 제대로 대답 해 주지 않는 것 또한 지용이었다. 그런 지용과 서현의 관계에서 서현은 항상 불만이었다. 눈빛만 봐도 안다고 하는데, 그는 왜 항상 비밀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럴 때 마다 지용은 항상 정확히 물어보라고 말 했었다. 세진은 평소와 같이 얼굴의 근육을 움직여 웃는 낯으로 만들고 다시 프랑스 자수를 시작했다. 서현은 그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서현에게 향했다. 자리로 돌아가려나, 싶은 서현이 그대로 소지품을 챙겼다.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세진의 얼굴에는 물음표가 잔뜩 피어났다. “퇴근합니다.” “퇴근하려면 아직 세 시간 남았는데?” “잠복했으니 퉁 치세요.” 저런 막무가내식의 퇴근은 분명 지용에게 배웠을 것으로 생각한 세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붙잡아놔도 별 소용없을 것이라는 그녀의 결론이었다. 물론, 그의 파트너는 그가 먼저 퇴근한 것을 용납하지 못하겠지. 열어둔 창문으로 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왔다. 평소와 같이 매캐한 공기가 아닌 산뜻한 바람이었다. 나눈 대화에 비해 공기는 너무나도 가벼웠다. * 복잡한 심경을 가진 서현은 구석기 시대의 노래를 부르며 걸어갔다. 눈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하게 또 활짝 웃어……. 멜로디는 신나지만, 안에 담긴 가사는 구슬픈 것이 딱 서현의 상황과 일맥상통했다. 이어폰으로 흐르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던 서현은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흠칫했다. 상황상 백 퍼센트 성추행범이 분명했다. 가끔 서현의 정체를 모르고 다가오는 변태 취향 다분한 성추행범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럴 것이리라 생각했다. 기분도 꿀꿀 했는데 마침 잘 걸렸다 싶은 서현은 노랫소리를 줄이고 기척을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그가 천천히 걸으면 뒤에서 느껴지는 걸음도 천천히 걸었고, 그가 조금 빨리 걸으면 뒤따라오는 발걸음도 빨라졌다. 한참을 그러고 걷다가 뒤따라오던 사람이 갑자기 달려드는 것이 느껴졌고, 뒤에선 서현을 껴안았다. 서현은 팔꿈치를 세워 뒤에서 덮치는 괴한의 명치를 아주 세게, 매우 세게 후려갈겼다. “크헉!” “너 이 새끼, 잘 걸렸어. 내가 경찰이야, 인…… 엥?” 상대방의 안위를 전혀 살피지 않고 덤비던 서현이 낯익은 얼굴에 깜짝 놀라며 꺾었던 팔을 놓아주었다. 어떡해……. 서현을 뒤에서 감싸 안았던 사람은 모두 예상 했다시피 지용이었다. 서현을 놀래켜주고 싶은 마음에 뒤에서 몰래 다가가 영화처럼 껴안았지만, 역시 영화는 영화였다. 경찰 8년 짬에 식스 센스를 가진 서현은 이어폰을 끼운 채로 노래까지 부르고 있었음에도 진작 그 인기척을 느끼고 있었고, 덮치자마자 냅다 명치를 후려갈긴 것이었다. 세게 맞은 명치 덕분에 한동안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 지용은 한참을 숨을 고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서현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다. “하, 자기. 나 정말 요단강 물 마실 뻔 했어.” “그러 길래 누가 뒤에서 달려들래요?” “와- 뻔뻔한 것 봐!” 지가 더 뻔뻔하면서 자신의 잘못을 서현에게로 돌리는 지용을 본 서현은 어이가 없어서 죽을 것 같았다. 가해자가 잘못이지, 피해자가 잘못이에요? 라고 물어오는 그에게 지용은 지금 누가 봐도 피해자는 명치를 세게 맞은 자신이 아니냐며 반박했다. 뒤에서 따라온 것부터가 잘못이다, 딱 잘라 말하는 서현에게 상처라는 듯이 울상을 지은 지용을 본 서현은 이제 괜찮아 진 것 같아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지용은 아무 말도 없이 뒤 돌아가는 서현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어디가? 나도 가도 돼?” “…….” “집에 가는 거지?” “제발 조용히 좀 해요! 남이사 집에 가던, 클럽에 가던 뭔 상관이래요?" 지용은 충격을 먹었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크게 뜨고 손으로 입을 가렸다. 서현은 지용의 표정을 보고 또 장난을 칠 것이 분명해 허리춤에 손을 올렸다. “집에 가는구나? 나도 갈래.” “댁이 우리 집에 왜 와요. 우리 엄마 아빠가 알면 까무러치겠네.” “남자친구니까 가지! 오랜만에 부모님한테 인사 좀 드릴까?” “하- 됐어요.” 서현은 미련도 갖지 않고 뒤돌아서 걸었다. 지용은 서현의 말에 더 이상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한참 걷던 서현이 문득 생각난 것에 몸을 돌려 다시 지용에게 돌아갔다. 꽤 많은 길을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지용은 서현이 다시 돌아 올 줄 알았는지 여전히 그 자리, 그 곳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오도카니 서 있었다. 뭔가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모습에 웃음이 삐쭉 튀어나온 서현은 지용의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선배, 엄청 개 같아요.” “……뭐?”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서현의 말에 지용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선배라는 말이 오랜만이라 듣기는 좋았으나 개 같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지용의 표정이 웃겼는지 서현은 웃음을 살짝 터뜨렸다. “물어볼 거 있는데요.” “잡지에서 물어 볼만 한 뻔한 질문이면 안 받을래. 예를 들어 이상형이라던 지, 신체 사이즈 같은 거.” 서현은 웃음기를 지우고 싸늘한 표정으로 지용을 바라봤다. 하여튼 저 사람은 초를 잘 쳐. “오스티로 온 거, 정말 나 때문이에요?” “응.” “내가…….” 서현은 어느 순간 장난스러운 눈빛을 지운 지용의 눈을 바라봤다. 이걸 물어봐도 될까? 세진도 저 사람을 믿는 것 같은데, 나도 믿어도 되는 걸까? 혼란스러운 서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걱정돼서 왔어요, 아니면 나 지켜주려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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