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여나 공범일지도 모를 신고자가 또 사라져버릴까 재빠르게 운전을 한 의는 멀쩡한 길거리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자 서현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의의 팔을 툭툭 치고 한 곳을 가리켰다. 서현이 가리킨 곳은 테라스가 예쁘게 장식된 카페였다. 그 테라스에는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이어폰을 끼우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이어폰에 연결된 휴대폰을, 다른 한 손엔 또 다른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조작 하고 있었다. 그 상황을 경찰의 감으로 수상하게 여긴 두 사람이 카페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리고 카운터를 보고 있는 젊은 직원에게 간단히 수사 협조를 할 것을 부탁했고, 인생의 신조가 ‘한 번 사는 인생 재미있게 살자.’로 살아가고 있던 직원은 흔쾌히 수락했다. 커피 두 잔을 들고 그 수상한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는 자연스럽게 날씨나 디베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곧 아직까지도 전화를 하고 있는 그 사람을 주시했다. 저 새끼 수상한데? 식스센스 발휘 한거야? 몰라. 뭐야; 눈빛으로 모든 것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것저것 누르는 사람을 바라봤다.
“백 퍼다.”
“인정. 근데 언제 덮칠까?”
“자리에서 일어나면 바로.”
“OK.”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는 척하며 대화를 나눴다.
얼마나 예의 주시하고 있었을까, 전화하던 사람은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이어폰을 빼고 옆에 있던 홍차를 들이켰다. 그때, 서현과 의의 시선을 느꼈는지 급하게 그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경찰 짬이 있던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오늘 저녁 메뉴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계란말이는 네가 해. 우리 같이 안 살잖아? 그러네…. 착각인가,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정리 한 사람은 컵을 들고 일어났다. 그때, 의가 재빠르게 일어나 그 남자를 뒤에서 덮치며 한쪽 팔을 꺾고 테이블 위로 몸을 숙이게 했다.
“당신을 경찰 테러범의 주요 용의자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변명할 기회 또한 있습니다.”
의가 능숙하게 한 손으로 수갑을 채우려던 순간 의의 밑에 깔렸던 그 남자가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당황하기도 했고, 힘을 이기지 못한 의가 남자에게 작은 틈을 허용했다. 그 틈을 포착한 남자는 기회는 이때다, 하고 테라스를 넘어 한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서현은 그 남자에게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곧바로 테라스를 넘어 뒤쫓아 가기 시작했다. 의도 몸을 일으켜 바로 뛰었다.
“야! 그냥 쏘면 안 돼?!”
“미쳤냐, 무기도 없는 사람한테 어떻게 총을 쏴!”
“발 쪽에 공포 사격해!”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던 남자는 뒤에서 들리는 ‘사격’ 소리에 더 힘을 주어 뛰기 시작했다. 그의 간절함이 먹혔는지 아까보다는 조금 더 간격이 벌어졌다. 하지만 서현과 의가 누구인가. 이런 뜀박질은 범인 검거를 하면서 밥 먹듯이 해 왔던 것이었다. 게다가 의는 오스티 A 구역 경찰서 내에서 지구력이 제일 좋은 사람이었다. 반면, 뜀박질은 평균을 유지하던 남자가 괴물 같은 체력을 가진 두 사람에게 질렸고, 그때 타이밍 좋게도 남자의 뒤로 검은 승합차가 멈춰섰다. 차가 갑자기 나타나 놀란 서현과 의가 차 겉으로 돌았지만, 그 사람은 이미 사라져버렸다.
“아- 개빡쳐! 너는 왜 거기에서 놓치고 난리야!!”
“공포 사격만 했어도 바로 잡았어!!”
두 사람은 유력 용의자를 놓쳤다는 생각에 서로의 탓이라며 잘못을 미뤘다. 힘이 다 빠진 채로 카페로 돌아온 두 사람은 직원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을 부탁했다. 테라스로 다시 향하는데, 두 사람이 마셨던 컵이 테이블 위에 그대로 올려져 있었다.
“초범인가?”
“모르겠어. 근데 뜀박질 수준 보면 완전 초범은 아닌 것 같아.”
“그럼 지문이나 홍채 데이터, 서에 있을 것 같은데.”
“있으면 뭐하냐. 찾을 수가 없는데.”
머리를 쥐어 싼 의가 좋은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그때 종업원이 테라스까지 나와 시원한 물 두 잔을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아, 고맙습니다. 말씀해 주셨으면 저희가 갔을 텐데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뭘. 그나저나 커피 다 드셨으면 잔 치워드릴게요.”
“네.”
종업원은 사람 좋게 웃으며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두 사람의 컵을 트레이에 받쳤고, 옆 테이블에 덩그러니 올려져 있는 컵을 가리켰다.
“이 컵도 형사님들이 드신 컵인가요?”
“아- 그거 다른 사람…!”
“헐, 사장님. 저 컵 저희가 잠시 가져가도 될까요? 범인을 잡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아요.”
“와, 유전자 검사라도 하나요?”
“뭐, 비슷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 같다면서 결정적인 증거를 찾은 두 경찰보다 더 신난 직원은 장갑과 지퍼 백까지 가져다주었다. 직원의 호의에 어색하게 웃으며 받아든 의는 장갑을 착용하고 지퍼 백에 홍차 잔을 담았다. 일단 증거 확보. 두 사람은 하이파이브를 했다. 신고가 들어왔지만 역으로 가지 않았다. 아마 서현과 의에게 들켰기 때문에 오늘 테러는 강행하지 못할 것이었다. 서현과 의는 유력 용의자 검거엔 실패했지만 증거는 수집했기 때문에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서로 돌아왔다. 감식반에 있는, 다른 사건 증거물을 감식하느라 바쁜 빙고(은찬, 남, 27세)에게 컵 하나를 던져주고 팀 방으로 돌아왔다. 저 새끼들은 꼭 바쁠 때 부탁하더라. 빙고의 말을 철저히 무시한 두 사람은 한 숨 놓았다는 듯 소파에 몸을 뉘였다.
“아까 그 새끼 잡았어야 했는데, 아쉽다.”
“지문이나 침 돌려보면 바로 뜰 거야. 그럼 바로 도로 통제하고 공항이나 역에도 경계 강화 시켜야지.”
“벌써 도망갔으면 어떡해?”
서현은 누워 있는 의의 배를 때렸다. 너는 꼭 재수 없는 소리만 골라서 하더라? 재수 없는 소리 하는 학원이라도 다니냐? 이죽거리는 서현의 목소리에 의는 따가운 배를 문지르며 웅얼거렸다. 그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서현의 마음 한구석에 불안함이 떠올랐지만 그럴 가능성이 낮을 것 같다는 직감이 서현의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혀주었다.
“도망 절대 안 갔을 거야.”
“확실해?”
“응. 내가 범인이었으면 도망 안 갔을 것 같아.”
“근거는?”
물어오는 의에게 대답하지 않은 서현은 여태 범인이 했던 행동들을 쭉 생각 해 봤다. 처음 테러는 밀가루였다. 별 관심을 그렇게 끌지 못 했지만 테러의 강도는 조금씩 거세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제 목소리가 아닌 녹음 된 목소리로 신고까지 했다. 단독 범행인지, 공범이 있는지는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원한으로 인한 테러가 분명했다. 그곳까지 생각이 미치자 서현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원한 때문인 것 같지 않냐?”
“경찰한테 원한? 무슨 이유로?”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 봤어.”
“근데 원한 맞는 것 같긴 해. 그렇지 않고서야 굳이 경찰한테만 지랄 할 이유가 없잖아.”
의는 서현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별 문제가 없다면 오늘 내일 내로 감식팀에서 연락이 올 것이 분명했다. 그 사람의 신상 정보를 알게 되면 실마리를 확실히 잡을 수 있을 것이리라.
서현과 의는 감식팀 앞에 죽치고 있었다. 감식팀원들이 왔다 갔다 거리면서 발에 거슬린다며 그들을 툭툭 치고 다녔지만 둘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은찬이 최대한 빨리 감식을 마쳐주길 바라는 마음에 창문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그들의 시선과 무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은찬이 먼저 해야 할 감식을 살짝 미루고 컵 감식에 먼저 들어갔다. 결과지를 패드에 옮겨 담은 은찬은 패드를 둘에게 던져주고 지겹다는 듯이 한숨을 쉬고 자리로 돌아가 제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제발 바쁠 때 찾아오지 좀 마.”
“사랑한다.”
“사랑타령 지겹다, 티스.”
서현과 의는 사이좋게 은찬이 애정 하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패드 안에 담긴 내용을 천천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의는 경악에 가득 차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서현은 온갖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이 새끼 완전 또라이 새끼 아냐!??”
니엘라 콜 키먼드. 32세의 젊은 나이지만 돈 많은 집을 둔 덕분에 수많은 범죄가 무죄, 무죄, 무죄. 모두 무죄로 사건 종결이 났다. 강력팀과는 상관없는 성 범죄 쪽이라 그런지, 서현과 의가 키먼드의 얼굴을 살짝 봤음에도 불구하고 누구인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서현은 키먼드의 죄 몫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이런 새끼들은 거시기를 똑 잘라 버려야 돼. 옆에서 서현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의는 오금이 져렸다. 저렇게 순둥한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 하는 것을 보아하니, 정말 마주하게 된다면 손으로 직접 소중한 것을 뜯어 버릴 것 같았다.
“퀸, 일단 진정하고 이 사람 소재지 파악 좀 하자.”
“소재지 파악 하면 뭐 해! 어차피 또 풀려날 건데.”
서현은 돈으로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더러운 세상을 욕했다. 그 누구도 돈 없이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런데 조금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갔다.
“그래도 일단 찾고 가 보자.”
의의 달램에 서현은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키먼드의 소재지는 오스티 C 구역이었다. 그곳에서 굳이 A 구역까지 찾아와서 똥을 싸지른 것을 보아하니 어지간한 변태가 아니고서야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구역을 넘을 때마다 서현의 인상을 더 찡그려졌다. 왜 이렇게 멀리 살아서 사람을 귀찮게 만드냐는 뜻 같았다. 실제로 운전은 의가 다 하고 있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키먼드가 살고 있는 집 앞에 도착하자 차가 천천히 속도를 늦추고 완전히 멈췄다.
“잠복?”
“정면 돌파.”
“집에 없으면 어떡해.”
“뭔가 집에 있을 것 같아.”
서현은 의의 단호한 말에 고개를 갸우뚱 했다. 의가 비장한 얼굴로 차의 시동을 모두 껐고, 두 사람은 벨트를 풀러놓고 차 밖으로 나왔다. 해가 부드럽게 내려 쬐고 있었다.
“아- 범인 잡기 딱 좋은 날씨네.”
의가 의 하늘을 보고 미소 지었다. 그러자 서현이 의의 옆구리를 툭 치고 웃었다.
“개뿔. 이런 날엔 데이트 가야지.”
“아, 인정. ……일이나 하자.”
서현의 말에 십분 공감한 의는 웃음을 지었다가 곧 둘에게 애인은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정색하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근데 퀸은 애인이 있다고 해야 하는 건가. 의의 속마음을 서현이 알면 길길이 날뛸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단을 묵묵히 올라갔다. 실로 그 선택은 매우 잘한 선택이었다. 2층에 살고 있는 키먼드가 과연 집에 있을지 매우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의가 초인종에 손을 가져다 대는 순간, 서현이 그의 손목을 잡아 초인종을 누르지 못하게 만들었다.
“왜?”
“근데, 저 새끼 우리 얼굴 알지 않아?”
“아…….”
얼굴이 보이는 인터폰에 불쑥 둘의 얼굴을 들이밀면, 키먼드는 없는 척을 하거나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도주 할 염려가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두 사람은 결국 아파트 밖으로 일단 나왔다. 배달원이라도 있으면 앞세워서 의심 없게 해 볼 텐데,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 때, 아파트 단지 주변 순찰을 돌던 우락부락한 경비원이 눈에 띄었다.
“퀸, 저 분한테 부탁 해 볼까?”
의의 의견에 서현은 뭐라고 말 하게, 라며 질문했다. 경비원이 세입자의 집에 들어갈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에 그 뒤에 생각은 하지 못한 의가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좋은 소식 전하러 왔다며 변장을 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키먼드 그 새끼 말이야. 어-”
그 때, 의가 가리켰던 경비원이 키먼드의 이름을 언급하며 누군가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두 사람은 눈과 귀가 번쩍 뜨였다. 그리고 서로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동시에 일어나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달려온 자신보다 한참 작은 두 사람에게 놀란 경비원은 흠칫 하더니 전화에 대고 양해를 구한 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안녕하세요, 오스티 A구역 강력부 강력팀 소속 티스입니다. 이 친구는 제 파트너 퀸이고요.”
의는 품에서 경찰임을 증명하는 경찰 뱃지를 꺼내 경비원에게 보여줬다. 그는 뱃지를 들여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경찰 나리께선 여기까지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이 아파트 단지에서 살고 있는 니엘라 콜 키먼드가 최근 일어난 경찰 테러 사건에 연루 되어 있어서 체포 하려고 하는데 저희를 보면 도주 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혹시 당신의 도움을 구할 수 있을까요?”
“키먼드요? 어휴, 당연하죠. 그 놈, 평소에도 영 이상하더니 결국 일을 저질러버렸군요.”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은 경비원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의는 감사의 뜻으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건넸다. 경비원은 사람 좋게 웃으며 큰 손으로 의의 손을 감싸 위 아래로 흔들었다. 그는 자신을 마이클이라고 소개했다. 왕년에 럭비선수였다는 그는 엄청난 덩치를 자랑했다. 의도 결코 작은 편은 아닌데 마이클 옆에 있으니 꼬꼬마나 다름 없었다. 다행히 최근 키먼드가 마이클에게 현관의 전등을 갈아달라는 부탁을 한 터라 그의 집에 방문하려고 했다는 말도 덧 붙였다.
“원래 세입자의 집에 그런 작은 일로도 방문 하나요?”
“아니죠. 키먼드 그 새끼, 아 죄송합니다. 그 사람이 워낙 진상이라 작은 일도 들어주지 않으면 저희들이 피곤해서요. 똥이 더러워서 피하잖아요.”
키먼드는 아파트 내에서도 알아주는 또라이였다. 서현은 하여튼 살인 저지르는 놈이나 이 놈이나 이상한 건 똑같다고 생각했다. 키먼드의 집 앞에 도착 하자 마이콜이 맨 앞에 섰고, 그의 뒤에 의와 서현이 숨었다. 마이콜의 덩치는 의와 서현을 숨겨주기에 충분했다. 마이콜은 두 사람이 모두 숨은 것을 확인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키먼드, 현관 등 교체하러 왔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