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기억이 날 때까지 도와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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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장터가 제일 시끄럽고 사람이 제일 많은 시각. 하지만 오늘의 장터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저 자식 진짜 어디가 잘못된 게 아니지! "하하하하!" 먼저 정적을 깨버린 건 진무 무리였다. "방금 뭐라고 했는지 다신 한번 말해봐." 진무는 일부러 조현 쪽으로 귀를 가까이 대면서 물었다. "조현!" 미연은 조현의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진무에게 그런 말을 하다니. 미연은 조연이 진무에게 해코지 당하지 않을까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정작 조현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한번 했던 말을 3번 이상 하지 않는다." "하하하하. 미치겠네. 얘가 지금 뭐라고 했니?" 진무는 배꼽을 잡으면 깔깔 웃어댔다.주위의 구경꾼들도 이번이야말로 조현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야, 잘 들어. 너의 머리 어찌 되었든 간에 내가 알봐는 아니고. 근데 내가 지금 방금 네가 한 말 때문에 몹시 화났거든. 그러니까 네가 오늘 내 손에 좀 맞자!" 진무는 갑자기 웃음으로 멈추더니 정색을 하면서 말했다. 짝! 갑자기 들려오는 따귀 소리에 사람들은 웃음을 멈췄다. 조... 조현 이 자식이 감히 진무의 따귀를 갈겨? "에이... 지금 한대 쳤어?이게 뒤지려고..." 진무가 한쪽 얼굴을 감싸면서 말했다. 퍽! 진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따귀가 날라왔다. 이번에는 조현도 더 이상 봐주지 않았다. 따귀를 맞은 진무는 순식간에 뒤로 날라갔다.따귀의 힘이 너무 센 탓에 진무의 몇 개의 이빨이 충격에 못 이겨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하지만 조현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쓰러진 진무에게로 다가가 그의 온몸을 가차 없이 두들겨 팼다. 조현은 정확히 제일 아픈 곳을 찾아 때렸다. 진무에게는 이곳이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좀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이 안 난다고 했지? 그럼 기억이 날 때까지 내가 도와주지." 조현은 한쪽 발을 진무의 얼굴에 갖다 대고 서서히 힘을 가했다. 조현이 발에 힘을 가할수록 진무의 얼굴은 점차 일그러져 갔다. "기억났어. 기억났다고." 진무는 순간 바짓가랑이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전형적인 절대적인 강자 앞에서의 약자의 모습이었다. 좀 전에 만약 조현이 조금만 힘을 더 줬더라면 자신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래? 그럼 지금 뭐를 해야 하는지 잘 알겠네? 조현이 덤덤한 말투로 진무에게 물었다. "핥을게. 핥으면 되잖아!" 죽다 살아난 진무는 얼른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드려서 강아지처럼 조현의 신발을 핥기 시작했다. 진무가 조현의 신발을? 구경꾼 들은 진무의 행동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남들은 이해 못 해도 방금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으로서 진무는 조현의 능력이 보통 이상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건 더 이상 자존심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자식이 마음만 먹으면 자신 따위는 가볍게 죽일 수 있는 미친놈이니까. "꺼져." 조현이 신발을 깨끗이 핥은 진무를 향해 말했다. 진무는 눈치를 살피며 헐레벌떡 일어나더니 부리나케 자신의 차로 달려가 눈 깜짝할 사이에 도망을 쳤다. "아니 내 벤츠!" 이미 자신의 것으로 여겼던 벤츠가 눈 깜짝할 사이에 떠나버렸으니. 화가 잔뜩 난 이미숙은 조현을 향해 소리쳤다. "내 벤츠 내놔! 이제 어떡할 거야. 내 벤츠!" "엄마. 제발 좀 그만하세요.지금 벤츠가 대수예요?" 미연은 돈 밖에 모르는 엄마가 너무 미웠다. "이제 어떻게요? 당신이 진무를 건드렸으니 그 사람이 꼭 다시 당신에게 찾아와서 복수를 할 거예요." 지금 벤츠의 문제가 아니었다. 진무는 무슨 수를 써서도 반드시 오늘 당한 수모를 조현에게 갚을 것이다. 미연에 말을 들은 이미숙은 그제야 사건의 위험성을 감지하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울먹이면서 말했다. "다 끝났어. 네 하나 때문에 우리 전부다 죽게 생겼다고." 이미숙은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한참을 안절부절 하다가 갑자기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는지 바로 미연을 붙잡고 말했다. "미연아. 이제부터 너랑 나랑은 더 이상 모녀 사이가 아니다. 앞으로 진무가 오늘 일로 너희들을 찾거든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엄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에요?" 미연은 이미숙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 말을 마저 듣거라!" 이미숙은 마른침을 삼키고선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든 우선 목숨부터 지켜야 하지 않겠니? 단 분간만 모녀 사이를 단절하고 나중에 네가 저 자식이랑 이혼하고 진무에게 찾아가서 잘 못했다고 빌면 진무가 너를 다시 받아줄 것이야. 그럼 나는 잠시 시골집에 내려가 지낼게!" 그리고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엄마라는 자가 자기 혼자 살자고 친자식을 버리고 떠나버렸다. 세상 어느 부모가 이처럼 친자식을 불구덩이에 던져놓고 나 몰라라 할 수 없을 것이다.적어도 인간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짓이다. "그러게 갑자기 당신답지 않게 왜 이런 짓을 저지르냐고요?" 미연은 아래입술 꼭 깨물며 앞으로 버리질 일에 대해 걱정을 하였다. "그럼 나 다운 게 뭡니까? 나는 그냥 약속한 대로 했을 뿐이에요." 조현은 놀라울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을 하였다. 미연은 그제야 조현이 확실히 예전과는 달리 완전히 변해버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의 조현이라면 절대로 진무와 맞서 싸우기는커녕 어딘가에 숨어있기 바빴다. 오늘 사고를 친 뒤 조현의 태도 역시 태연했다. 그의 행동과 말투에서는 일말의 두려움과 걱정이 섞여 있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은 무섭도록 평온하였고 마치 무엇이든 빨려 들어간다는 블랙홀 마냥 깊고 아득했다. 미연은 조용히 그의 두 눈을 바라본 후 묘한 감정이 들었다. 바로 그때, 조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함께 다정하게 미연을 잡으면서 말했다. "집에 가자. 맛있는거 해줄게." 미연과 조현은 부부지만 이전까지는 조금의 스킨십도 없었다. 미연은 지금 이 상황이 마치 꿈만 같았다. 꽉 잡은 손을 통해 느껴지는 상대의 온기가 그녀를 편아하게 해줬다. 달라진 그의 걸음걸이와 몸짓에 미연은 그가 자신의 남편으로서 또는 자신의 남자로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듬직함마저 느꼈다. 달라진 조현 떄문인건가. 미연은 순식간에 두려움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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