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거짓

1965
하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죄책감이 가득했기에 당연히 그녀의 말을 따르리라 생각했다. 약혼식에 들어서니 SU 그룹 사람들은 모두 웃는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집안의 천재현과 SL 그룹의 박정민이 약혼할 것이기 때문이다. 두 집안의 혼인은 두 그룹에게 좋은 점이 많아 집안 어른들이 만족스러워했다. 설상가상으로 SL 그룹의 배후에는 LR 그룹이 있기 때문에 어른들은 완벽한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고 있을 때 수아가 하준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들은 못마땅한 눈빛으로, 남자들은 유혹하는 눈빛으로 수아를 쳐다봤다. 이런 시선에 익숙해진 수아는 하준을 할아버지 앞으로 데려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제 남편 도하준 씨예요." 이름을 듣자,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모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고 다음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듯 눈을 찌푸렸다. 아니나 다를까 수아의 할아버지 영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할아버지…." 수아는 이 결과를 예상했지만 마음이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7년 전,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이 되셨다. 수아의 가족을 자택에서 내쫓고 권력도 빼앗았으며 이제는 완전히 남처럼 대할 정도였다. 이때, 재현이 입을 열었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 자리에 저 사람을 데려오면 어떡해?!" 그때, 재현의 약혼자 정민은 수아를 쳐다보고 있었다. 수아의 아름다운 몸매와 얼굴을 훑어보면서 말이다. 정민은 이내 아랫입술을 핥고 시선을 거두었다. 정민은 LR 그룹의 주원이 수아에게 구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 아쉬워했다. 여기까지 생각한 정민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재현 씨, 그래도 매부인데 너무 나쁘게 말하지 말아요." "매부요?" "감옥에서 나온 범죄자가 무슨 매부예요?" "하준 씨는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온 거야." 수아가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제대요? 차림새를 보아하니 계급이 높아 보이진 않는데…." 정민이 하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정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모두가 하준을 비웃는 얼굴로 쳐다봤다. 지금 하준은 간단한 훈련복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친척들의 비아냥거리는 눈빛을 보며 수아는 고개조차 들지 못했다. 그녀는 하준을 통해 할아버지의 태도를 보려고 한 것인데 스스로 모욕을 차조하고 말았다. 하지만 하준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남들이 쳐다보는 게 싫어서 이렇게 입고 온 거예요." 하준의 말에 정민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망신을 줘야겠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민은 주머니에서 상자를 꺼냈다. "재현 씨, 이건 제가 특별히 친구한테 부탁해서 아프리카 프레어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직접 채굴한 거예요. 제 마음이에요. 받아주세요." 정민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정민이 상자를 열자 안에는 눈부시게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었다. "어머나!" 사람들이 입을 틀어막고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너무 예뻐요! 고마워요, 정민 씨! 정말 마음에 들어요!" 다이아몬드 반지라니.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고 설레지 않는 여자는 없을 것이다. 재현은 기뻐하며 정민의 품에 안겼다. "고마워요!" 말을 마치고 나자 그녀는 반지를 손에 끼우고 수아의 눈앞으로 갔다. "어때? 예쁘지?" "…예쁘네." 수아가 마지못해 웃었다. "네가 정말 좋은 짝을 만났구나." 정색하고 있던 영길도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을 들은 수아는 자신의 결혼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과찬이세요. 앞으로 SL 그룹과 SU 그룹은 최고의 파트너가 될 겁니다." 정민이 겸손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매부는 처제한테 어떤 선물을 줬었는지 궁금하네요." 이 말은 하준을 겨냥한 것이었다. 하준과 수아의 결혼은 SU 그룹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위장 결혼일 뿐이라는 건 아무도 몰랐다. 예물은커녕 결혼식도 집에서 밥 한 끼 먹었을 뿐이었다. 하준은 정민의 비아냥거림을 무시하고 침착하게 수아를 바라보았다. "수아 씨도 다이아몬드 좋아해요?" "당연하죠. 어떤 여자가 다이아몬드를 싫어하겠어요?" "그럼 저도 드릴게요." 하준의 말이 연회장에 퍼졌다. 재현이 시큰둥하게 입을 삐죽거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평생 벌어도 못 살 거면서." 연회장에 있는 사람들이 하준을 비웃기 시작했다. 마치 하준이 바보가 된 거 같았다. 그때, 하준이 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말했다. "수아 씨, 제가 준비한 선물이에요." 상자 안에는 아주 크고 빛나는 다이아몬드 더미가 있었다. 상자 안의 다이아몬드 중 가장 작은 것도 정민이 선물한 다이아몬드보다 컸다. "말도 안 돼!" 재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가장 충격을 받은 건 수아였다. 작은 상자 안에서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를 보며 수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다 주는 거예요?" 하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재현이 상자를 뺏어갔다. "말도 안 돼!" 그녀는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였다. "정민 씨, 봐봐요. 이거 진짜 다이아몬드 맞아요? 정민 씨 집이 주얼리 사업하니까 잘 알 거 아니에요!" 정민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고는 하준 정도의 사람이면 진짜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이 다이아몬드는 다 가짜예요!" 정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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