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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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병사라는 네 글자에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수민이 예상했다는 듯이 말했다. 하준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생각했다. 설사 사실을 말한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거라고. 하준은 곧장 본론으로 들어섰다. "앞으로 수아 씨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모든 힘을 다해서 수아 씨한테 속죄하면서 살게요." 이건 하준의 진심이었다. "모든 힘을 다해서 속죄한다고요? 도대체 뭐로 어떻게 속죄할 건데요? LR 그룹 알죠? 거기 큰 도련님은 언니랑 밥 한번 먹으려고 선물을 얼마나 보내는지 아세요?" "쟤가 뭘 알겠어." 수아의 어머니가 비아냥거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준이 한마디도 하지 않자 수아는 실망한 듯 고개를 저었다. 수아에게 남자의 돈과 권력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존심도 없어 보이는 남편의 모습에 수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제가 그 사람한테 갈까 봐 무서우세요?" 수아가 하준을 차갑게 쳐다봤다. "당연히 무섭겠지. 군대에서도 잡역부 노릇이나 했을걸." 수민이 입을 삐죽거렸다. 평온하던 하준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는 모든 질책을 감수하리라 생각했다. 명호에게 나가라고 한 것도 비아냥거리는 얘기를 들을 명호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 피를 흘리는 형제들을 모욕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하준의 분노 어린 눈빛을 보고 수아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었다. "왜? 한 대 치게?! 여기 내 집이야. 당장 꺼져!" 그때 어린아이의 소리가 수아의 방에서 흘러나왔다. "엄마! 아빠가 드디어 돌아온 거야?" 인형 같은 소녀는 하준을 보자마자 하준 곁으로 달려갔다. 품에 안은 어린 소녀는 동그란 얼굴과 큰 눈망울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놀라운 건 하준이 이 소녀를 처음 봤음에도 불구하고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황한 수아는 하준으로부터 딸을 빼앗아 품에 꼭 껴안았다. "그런 거 아니야. 저 사람 지우 아빠 아니야. 얼른 들어가서 자!" "거짓말쟁이. 지우 아빠 맞잖아! 나 아빠랑 같이 있을래!" 수아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결국 그녀는 사실을 말했다. "…그래. 지우 아빠 맞아. 이제 아빠 어디 안 갈 거야." 수아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야, 엄마?" 눈앞의 광경에 하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벼락을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이었다. "수아 씨. 정말이에요? 우리한테 딸이 있었어요?" 수아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하준은 머리가 새하얘졌다. 나한테 아이가 있었다니! 하준은 감격에 몸을 떨며 아내와 딸을 품에 안았다. "지우야, 아빠가 미안해… 이제 아빠 어디 안 가." 하준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군 생활 동안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하준은 눈물을 흘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수아의 어머니는 이 광경을 보고 혀를 쯧쯧 찼다. "오늘 사촌 언니 약혼식에 제가 하준 씨 데리고 갈게요." 수아는 말을 마치고는 하준을 데리고 황급히 집을 나섰다. 아래층으로 내려왔지만 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수아는 하준의 표정을 보고 그가 방금 일어난 일 때문에 아직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 일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 수아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근데 군대에서 돌아와 일자리도 없고 능력도 없고 돈도 없는데 어떻게 저한테 속죄한다는 거죠? 어떻게 저한테 잘한다는 거예요?" 수아는 일부러 말을 세게 뱉었다. 하준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하준은 그저 침착한 얼굴로 수아를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소 귀에 경 읽기네요." 수아가 힐을 삐걱거리며 차갑게 말했다. "우리 거래해요. 하준 씨가 김포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울게요. 하준 씨는 저를 따라다니는 그 사람들을 막아주세요." "그 LR 그룹 쪽 사람이 마음에 안 들어요?" 하준은 그제야 표정 변화를 보였다. "그 사람만 말하는 게 아니라 모든 부잣집 도련님을 말하는 거예요. 전 다 싫어요. 어차피 하준 씨한테 말해도 모를 거예요." "알겠어요. 제가 다 제거해드릴게요." "제거요?" "여긴 군대가 아니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 힘도 만만치 않으니 절대로 만만히 보면 안 돼요." 하준은 반드시 수아 씨를 지키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하준이 다시 침묵하자 수아는 씁쓸하게 웃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약혼식에 들어가기 전 수아는 하준의 행동을 떠올리며 신신당부를 했다. "사촌 언니와 결혼할 분은 SL 그룹 사람이에요. 우리 SU 그룹보다 강하고 배후에는 LR 그룹도 있으니 들어가서 절대로 말실수하면 안 돼요.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도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조심 또 조심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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