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요?"
정웅의 눈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남자는 손을 내저었다.
"아직 말 안 끝났어. 그래도 기한은 있어야지, 무작정 기다릴 순 없잖아."
정웅은 허리를 굽혀 마치 개처럼 굽실거렸다.
남자의 눈에 음흉한 빛이 스쳤다.
"우리가 네 딸을 데려갈 테니까 네가 돈을 갚으면 네 딸을 돌려줄게. 어때?"
"네?!"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아주머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미소를 품에 꼭 감쌌다. 미소를 남자에게 보내는 건 그녀를 불구덩이로 밀어 넣는 거나 다름없었다.
정웅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상의해볼게요. 미소가 어려서요."
"나이가 어리다니. 안 어려!"
남자는 미소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시선이 그녀의 가슴에 멈추었다.
"나 안 가!"
미소가 서둘러 하준의 뒤에 숨었다.
남자 뒤에 있던 부하는 앞으로 나와 미소에게 말했다.
"형님을 따라가는 게 좋을 거야."
그러고는 미소 앞에 있는 하준을 보고 욕설을 퍼부었다.
"넌 뭐야? 나와!"
하준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지금 꺼지면 살려는 줄게."
"하하. 뭐? 살려줘?"
하준이 움직이지 않는 걸 보고 부하가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죽어라!"
팔찌를 찬 주먹이 하준의 얼굴을 향했다.
미소는 놀라 눈을 감고 하준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퍽!
아릿한 소리가 났다.
미동도 하지 않는 하준을 보고 남자는 피식 웃었다.
남자는 하준의 팔이 부러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으악!"
비명소리와 함께 주먹을 날렸던 부하가 주먹을 쥐고 주저앉았다.
하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 당신 뭐야?!"
"…지금 꺼지면 살려는 줄게."
남자의 안색이 순식간에 안 좋아졌다. 그는 하준이 이렇게 무자비하고 날뛰는 사람인 줄 몰랐다.
이 말에 정웅은 노발대발했다.
"빨리 형님한테 사과해!"
정웅이 남자보다 몇십 살은 위였지만, 형님이라는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아빠, 뭐 하는 거야? 지금 오빠가 우릴 도와주고 있잖아!"
정웅이 눈을 부릅떴다.
그러고는 얼굴을 돌려 아첨을 늘어놓았다.
"형님, 얘가 철이 없어서 그래요. 한 번만 봐주세요."
그러나 남자는 손을 크게 휘두르며 말했다.
"오늘 이 사람 교육 좀 시켜야겠어."
그렇게 말하자 뒤에 있던 십여 명의 부하들이 하준을 둘러쌌다.
"미소야, 이리로 와!"
정웅은 놀라서 두 다리에 힘이 빠졌다.
흉악한 십여 명의 남자를 보며 미소는 하준을 힐끗 보고는 아버지 곁으로 돌아갔다.
남자는 하준을 독살스럽게 노려보았다.
"처리해!"
명령을 내리자 십여 명의 남자가 하준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퍽!
십여 명의 부하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 허리!"
"난 팔이 부러진 거 같아!"
순간 집안에 비명이 울려 퍼졌다.
하준이 그 자리에 서서 말했다.
"꺼져!"
남자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비틀거리며 밖으로 뛰쳐나가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땅바닥에 누워있던 십여 명의 부하들도 이러나 서로 부축하며 떠나려 했다.
"거기 서."
하준이 차분하게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원래대로 돌려놓고 나가."
"형님들, 어서 가십시오. 여기는 상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웅은 청소하려던 부하들을 막고는 하준에게 쏘아붙였다.
"너 미쳤어? 네가 방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아주머니는 화가 나서 하준 앞을 가로막았다.
"방금 하준이 우릴 구해준 거야. 저 사람들이 미소를 데려가려고 했다고!"
"지금 그게 중요해? 빨리 형님한테 사과해!"
그러고는 하준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네가 벌인 일이니 네가 수습해."
아주머니는 실망한 표정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하준아, 어서 가 봐. 여긴 신경 안 써도 돼."
하준은 단호한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바라보았다.
"걱정 마세요. 이제 아무도 아주머니를 해치지 못할 거예요."
"네가 뭔데? 너 형님 뒤에 누가 있는지 알기나 해? 사실 미소가 형님을 따라가도 나쁜 일은 아니었어!"
"아빠!"
미소는 이게 자신의 친아버지가 한 말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정웅은 갑자기 구세주라도 찾은 듯 헐레벌떡 미소의 손을 잡았다.
"딸. 아빠 좀 구해줘. 저분이랑 며칠 지내봐. 응? 아빠가 돈 마련하면 바로 찾으러 갈게."
찰싹
"당신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아주머니가 정웅의 뺨을 때렸다.
"그럼 어떡해? 지금 돈도 없는데!"
그때 남자가 다시 들어왔다.
남자 뒤에는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부쩍 거만한 모습이었다.
"유정웅. 나와!"
남자가 소리를 지르자 정웅은 놀라서 남자에게 뛰어갔다. 그때 딸 미소를 끌고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형님,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빚도 안 갚고 난동까지 부렸습니다."
"저 사람은 저랑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
정웅이 울먹이며 무릎을 꿇었다.
말이 끝나자 미소를 남자에게 끌어당기며 말했다.
"미소를 데려가세요. 이틀 후에 돈을 들고 찾아뵐게요."
미소는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지금 후회해봤자 소용없어! 다 부숴버려!"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며 집안으로 뛰어들려고 할 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집안에 울렸다.
"그만해!"
하준은 당황하지 않고 방에서 나왔다.
남자가 씨익 웃었다.
"임마. 어디서 명령질이야. 우리 형님한테 혼 좀 나볼래? 너 이리로 와봐."
하준은 남자 배후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문득 궁금해졌다.
남자의 뒤를 따라가는 걸 지켜보던 미소는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엄마. 오빠 괜찮겠지?"
"…어떡하지? 남자가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면 대단한 사람 같은데…"
남자가 하준을 데리고 차 한 대로 데려갔다.
"형님, 데려왔습니다!"
남자가 외치자 승합차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차 안의 남자는 하준을 보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