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그리아 왕국 2

1883
목차 3.이사야 4.타흐마탄 5.아이라만 6.샤흐라자드 3. 이사야 _ 학문의 세계란 몹시 깊다.  자유 7과와 전문 3과로 아로새겨진 거대한 열주는 학문을 상징하는 기둥이다. 나의 청년기를 보낸 이 곳, 나의 청춘을 모두 바친 이 곳, 열정을 다해 배우던 이 곳. 지식의 상아탑보다 더 견고하고 드높은 마누셰흐르 대학교. _ 이사야 박사는 궁정학자가 된지 얼마 안된 신참이었다. 하그리아 왕국의 자치령 예니사라이 태수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때부터 머리가 비범했다. 어릴때부터 서기관들이 들고다니는 토판과 종이에 관심을 보였고, 부모님은 8살이던 이사야를 필경사 학교에 보냈다. 10살도 안된 동년배들 중 읽고 쓰기는 가장 먼저 끝냈고, 필사는 아주 빠르고 정확했다. 문법과 수사법 시험에선 항상 높은 성적을 받았으며 학교에 지각하거나 숙제를 안한적은 한번도 없었다. 14살이 되어 필경사 학교를 졸업하자 서기관이 되어 어머니인 예니사라이 태수의 보좌로 일했다. 이사야는 어머니의 서기관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간단하게 보고서를 작성했다. 농번기 때마다 측량을 할때면 예니사라이의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계산했다. 그즈음 이사야는 오래된 토판에 적힌 문자들에 매혹되었다. 그는 신을 찬미하는 글을 쓰거나 아름다운 시를 쓰는 일에 재능을 보였다. 이사야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마누셰흐르 대학교에 진학할 것을 권했다. 아버지는 마누셰흐르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시험에서 떨어져 입학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섯 아들 중 막내인 이사야는 충분히 재능이 있어보였다. 아버지는 이사야를 대학의 교수로 키우고 싶어했다. 이사야는 아버지의 의견을 따르기로했다. 아버지는 마누셰흐르 대학교를 가지 못했지만 대신 법률가 학교를 졸업해서 예니사라이 자치령의 행정관이 되셨다. 아버지가 못다한 꿈을 대신 이뤄드리는 것도 이사야에겐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이사야는 17살이 되자 마누셰흐르 대학교에 입학했다. 교수들이 출제하는 구술시험과 논술시험은 이전에 비해 특이한 유형이었을 뿐 이사야가 느끼기에 어렵지는 않았다. 마누셰흐르에 입학한 뒤론 하루하루가 재미있었다. 고향도 피부색도 신분도 종교도 다른 동기들과 함께 토론하고 배웠다. 대학교엔 여자 동기도 많이 있었고, 몸이 불편한 동기도 있었다. 대학교에 오기 전만 해도 그런 사람들과 함께 공부할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새로운 환경은 이사야에게 호기심과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교수님의 가르침은 버거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깊은 의미가 담겨있었다. 자유7과와 전문3학이라는 10개의 기둥이 높이 세워진 학술의 전당에서 새로운 학문을 마주할 때마다 이사야는 흥분했다. 특히 문예**와 마술**에서 이사야의 재능은 정순되어졌다. 아름다운 시와 문장을 다루는 문예와 근원을 알수 없는 신비하고 오묘한 마술은 파편처럼 어지러웠던 이사야의 내면세계를 흠집없는 구슬처럼 맞춰주었다. 일신교 성모님의 품속 처럼 여유롭고 행복한 청년기였다. 졸업이 가까워지자 이사야는 아버지가 바라시던 교수가 되는 것 보다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궁정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교수는 고작 10자리 밖에 없으며 언제 빈자리가 생길지 알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교수가 되고싶어하는 박사들은 마누셰흐르 대학교에 아주 많이 있었다. 그중에선 이사야 보다 훨씬 똑똑하고 재능있는 자들도 있었다. 차라리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왕가의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궁정학자가 훨씬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아버지는 약간 실망하셨지만 궁정학자도 교수 못지않게 존경받는 직업이기 때문에 크게 반대하시진 아니하셨다. 학위증명서와 대학장님의 추천서를 전서구 발에 묶어 하그리아 왕궁으로 날려보냈다. 한달 후 왕궁에 입성을 허가하는 서면장이 전서구로 배달되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사야는 왕궁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어린 왕자들을 가르치며 평온한 인생을 살게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도 사람의 운명을 모조리 꿰고 있지는 아니하시더라. 이사야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모습에 관심을 보이던 어느 귀부인의 말상대를 조금 해드렸을 뿐이었다. 그저 높은 사람을 모시는 궁녀님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뿔싸, 그분이 존귀 존엄하신 여왕 폐하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이었다. 선배들은 이사야가 정치에 기웃거리며 자기 본분도 잊은 학자의 수치라며 수군거렸다. 이른나이에 궁정학자가 된 것도 여왕폐하를 유혹한게 틀림없다고 속살거렸다. 역시 얼굴값한다는 뒷담은 덤이였다. 이사야는 이런 소문들이 억울했지만 여왕폐하가 뒤를 봐주고 있다며 앞에서 대놓고 공격하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예상치 못한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궁정의 관료들은 이사야에게 자주 같이 식사하길 권했고, 왕궁 도서관에서도 구하기 힘든 토판에 접근하기 쉬워졌다. 이사야의 연구실엔 이전보다 더 많은 조수와 하인이 배정되었고, 왕도의 일등지에 저택을 하사받았다. 게다가 어제는 지체높은 1왕자비마마께서 방문하셔서 귀한 상아 필기구를 선물해주셨다. 싱긋 웃으시며 내일 장기를 한번 둘 수 있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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