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천사나 동물 얘기는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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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나 동물 얘기는 맞아. 아주 드물지만 천사는 지나가다 보기도 했고, 그냥 동물인 사람은 그보다 흔하지.” 와아- 하마처럼 입을 떡 벌리는 친구들이 아름은 어이가 없었다. 막상 지들 중 하나는 진짜 새면서 이게 신기할 일이란 말인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보고 자란 아름은 타인에 대한 이해가 어려울 적이 있었고 현재도 종종 그랬다. “아무튼 그 수상한 사람 정체를 봐달라는 거지?” “맞아. 부탁 좀 할게.” 하영이 끼어들어 찬희에게 핀잔을 주었다. “야, 내 부탁을 왜 네가 해? 흠흠. 응 부탁할게. 내 마음이 많이 불안해.” 하영은 아름이 대답이 없자 불만 가득한 표정을 하고 조건을 걸었다. “씨앗호떡 사줄게.” “대체 그게 왜 그렇게 좋아?” “그럼 안 좋아?” 찬희가 대신 대답했다. “얜 씨앗, 곡물류 다 좋아해.” “풉!” 아름이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자 뒤이어 찬희가 깔깔 웃었다. 하영은 ‘그래 웃어라’ 라며 포기한 채 눈을 반쯤 감은 무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양쪽 주머니에 호떡이 하나씩 들어 있어서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아름이 나설 기회는 어렵지 않게 다시 돌아왔다. 스토커가 명성에 걸맞게 학교에도 나타난 덕분이었다. 교문 밖에 서 있는 이안에게 학생들의 관심이 쏠렸다. 이안은 확실히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외모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아이들의 들뜬 수다 소리로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세 아이에게는 민폐쟁이 스토커일 뿐인 그였다. “다른 데로 가자. 시선 모이니까. 어짜피 저 남자 나 따라와.” 하영의 말대로 이안은 한산한 공원까지 졸졸 따라왔다. 10미터에서 50미터까지의 거리 안에서 끈질기게도 따라다녔다. 하영이 질린다는 얼굴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학교 앞에서 어짜피 다 들킨 마당에 거리는 왜 저렇게 두는지 알 수 없었다. “아름. 보여? 어때?” “저 남자… 구미호야. 근데 가까이서 보니 역시 잘생겼다 히히.” 아름이 반 농담 섞어서 킬킬 웃었다. “좀 여우 같긴 해.” “진짜 구미호라고?” 하영은 턱을 괴고 이안을 회상했고, 찬희는 살짝 경악하며 되물었다. “구미호라면, 하영이가 새인 것처럼 그 남자는 여우라는 거야?” “아마도?” 아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였다. 가까운 인기척에 하영이 휙 고개를 돌렸다. 하영은 남들보다 감각이 예민했다. 이안은 하영의 재빠른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놀라지 않았다. “맞아. 난 여우에 속해. 하지만 꼬리가 아홉 개지.” 이안이 큰 구슬 아홉 개가 꿰인 목걸이를 살짝 흔들었다. “그게 그 쪽 꼬리에요? 만져봐도 돼요?” 주물주물- 속도 없이 구슬을 만지는 하영 대신 찬희가 질문을 했다. “그래서 여우 님… 은 왜 하영이 따라다니는데요? 얘한테서 뭘 캐면 나오긴 해요?” 이안이 어쩐지 우물거렸다. 땅을 한 번 보고 나무 옆 담장을 잠시 쳐다보다가 겨우 한다는 말이 가관이었다. “사실 나도 잘 몰라.” 이안은 냉정하게 돌아서는 세 아이들을 애써 잡아야 했다. “잠깐만 기다려, 어이 없는 거 아는데 나도 사연이 있어.” “시체도 다 사연은 있어요.” 찬희가 차갑게 대꾸했다. 그를 상대하려면 꽤나 골치가 아프겠다고 이안은 생각했다. “뭔 소리야. 아무튼 난 뭐든 알아내야 해. 너에게서.” 하영이 고개를 저었다. “나도 내가 새라는 것 말곤 아는 게 없는데 대체 그쪽이 어떻게요?” “저기 여우 오빠.” 지켜보고만 있던 아름이 소리없는 한숨을 쉬고는 끼어들었다. “얼굴이 잘나서 그런가 무작정 들이미시네요. 근데 요즘 남자는 얼굴 만으로는 턱도 없거든요? 그 사연인지 뭔지랑 왜 신하영을 따라다니는지,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셔야 상황이 진행이 되지 않겠어요?” 이안은 자신의 얼굴에 슬쩍 손을 댔다가 머쓱한 듯 목덜미를 긁었다.   - 이안의 말에 따르면 아무래도 여우끼리만 살다 보니 사람들과 함께 지낸 시간이 길지 않아서 의도를 전하는 것이 서투르다고 했다. 아름이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야기해보라고 유도했고 찬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관찰했고 하영은 불만을 내비치며 콜라만 쪽쪽거렸다. 이안은 눈이 일자가 되어 하영을 꼬나보다가 아름의 재촉에 겨우 입을 열었다. “말했다시피 난 갈색 여우야. 여우들은 리계에 모여 살고 있어.” 리계는 풀어 말해서 ‘세상의 틈’이었다. 이안은 세상을 나무라고 생각하고 무수한 나뭇결을 세상의 틈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오래 전에 여우가 한 마리 사라졌어. 파란 여우고 젊은 여자에 이름은 ‘리클’이야. 그리고 그가 사라진 원인이 나, 그리고 날개 달린 어떤 존재에게 있어.” 찬희와 아름이 동시에 하영을 바라보았다. 하영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힘껏 어필하는 동작을 했다. “정신 사나우니까 그만 휘적거려.” “아무튼… 간단히 말할게. 나는 어느 날 구슬 하나를 주웠어. 동료들이 기분이 나쁘다며 버리라는 걸 난 고집을 피워 가지고 있었지. 그리고 어느날 그것에게 공격당했어. 구슬을 깨고 날개 달린 사람 형체가 나왔거든.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동안 리클이 다가왔던 것 같아. 흐리지만 분명히 기억해… 저만치서 날개 달린 사람과 리클이 마주보고 있었어. 그리고 내가 깨어났을 땐, 깨진 구슬 조각만 남기고 두 사람 다 사라져 있었지.” “와아, 믿기 힘든 이야기네요.” 이안이 끄덕였다. “이해해. 내가 알아본 바로는 천사일 리는 없고, 그 구슬이 새의 알이었을 거라고 해. 계란처럼.” “계란…?” 하영이 중얼거리더니 콜라가 담긴 컵을 잘근잘근 씹었다. 계란 취급이 기분이 나쁜 모양이라고 거기 앉은 셋이 모두 짐작했다. “그 리클이란 분이 어딘가 가신 걸 수도 있잖아요?” “리클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아무 말도 없었어. 그들은 오랫동안 리클을 그리워하며 슬퍼했고. 그걸 알면서 자기 의지로 어딘가 가버리다니 말도 안 돼.” “하긴…” 찬희와 아름이 수긍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하영이 씹던 빨대를 콜라 컵에 꽂아놓고 물었다. “그럼 여우 님은 그 날개 달린 새가 나거나 나와 같은 새일 거라고 생각해요?” 이안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말 그대로 기절했을 때 흐리게 본 장면이 다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새들 중 네가 가장 그와 비슷한 건 사실이야. 그도 피부가 하얗고 머리 색도 연하고, 무엇보다 그 흰 날개가 그와 똑 닮았어.” “그래서 저한테 원하는 게 뭐예요?” 이안이 조금 말을 골랐다. “너에 대한… 아니지, 너의 종족에 대한 정보. 내가 찾는 그가 너와 연관이 있든 없든 나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어.” “그 언니 좋아했어요? 아님 죄책감으로 이렇게까지?” 하영은 친구들의 시선이 쿡쿡 찌르는 것도 무시하고 이안을 떠보았다. 이안은 잠시 말이 없다가 조용히 입을 열어 하영의 물음에 답했다. “네 말이 맞아. 리클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10년 째 이러고 있지도 않았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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