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여기도 찍으시고... 다 됐습니다."
"정말 된 거구나."
-"그럼요. 잘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벅찰 줄 알았다. 눈물이라도 왈칵 날 줄 알았다.
이 도장은 두 번째.
내 생에 소설가로 찍은 도장은 두 번째였다.
이번만은 제발... 부디 일상의 그대들의 발목을 잡을 책이 되기를 바라면서 쓴 글이었다.
처절한 내 글이 일단은 출판사의 눈에 띄었다.
아싸뵹!!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로."
-"그럼요. 작가님 소중한 글인데,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마케팅해볼게요."
"믿습니다!"
-"예! 저희도 작가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후속작 시놉시스는 언제...?"
아직 계약금 얘기도 덜했는데, 빚쟁이 모드로 오는 것 보소?
하여간 이놈이나 저놈이나 데스크 앉은 것들이란.
"거의 완성됐는데, 약간 수정이 필요해 보여서요. 이틀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급한가요?"
-"아니요! 저희야 빨리 집필 시작하셔서 준비하는 게 좋으니까."
"아하하하 그렇구나!"
그것 아나? 세상에는 이상한 사고방식이 있다.
작가가 돈 얘기를 하고 돈을 따지면 욕먹는다.
저거, 저거, 돈독이 올라서. 혹은, 작가가 돈 밝히고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러면서 업계에 소문이 난다.
그러면 그 작가는 글 파는 소위 글 공장 취급을 당하기 시작한단다.
"저기... 에디터님"
-"네?"
"아직 계약금 얘기를 안 해주셔서요."
돈 이야기에 그 밝던 얼굴이 한 톤은 어두워진 것 같다.
그래도 대다수 작가 선배님들이 한 말이 있다.
돈 이야기는 꼭 해야 한다.
아니면 작가 우습게 알고 꽁으로 먹으려 든다.
계약서 잘 봐라. 사람이 착해보이니 뭐니 그 따위 것 보지 말고.
-"아, 그 조항이 여기 없구나! 잠시만요. 가지고 올게요."
그러더니 에디터가 훅 나가버렸다.
나랑 비슷한 연령대인 에디터는 아마도 나보다 어릴 것 같다.
하... 나 왜 씁쓸하지?
***
-아이돌의 마지막-
꿈을 꿨다.
이 묘한 꿈은 뭐지?
바닷가에서 나는 목소리만 들었다.
또렷하게. 마치 내가 자고 있는 침대 맡에서 이야기하듯 또렷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여성스럽지도 하이톤도 아닌 차분한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하지만 독특한 그 목소리만 뇌리에 남았다.
-"왜?"
갸웃거리며 차에 오르는 나를 본 소진이 형이 나를 보자마자 물었다.
"아니에요"
-"뭐야."
"뭐요?"
-"넌 나이를 어디로 먹냐?"
"그러는 형은요?"
-"나는 나이를 안 먹지. 그러니까 이렇게 동안이잖아."
"에휴~"
이런 형이랑 사는 것도 썩 나쁘지만은 않은데, 가끔 아주 가끔 이렇게 철없는 짓을 할 때는 내가 참을성이 많아졌구나를 느끼곤 한다.
-"너 얘기 들었지?"
"네. 들었어요."
소진이 형이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형. 제가 벌써 스물여섯이에요."
-"이야~ 많이 컸네!"
"형도 많이 컸네요."
-"난 늙었지..."
"형이 뭐가 늙어요! 아까는 동안이라면서?"
-"그치이~?"
"그럼! 우리 형 하나도 안 늙었어. 주름도... 조금밖에 없고."
-"그게 위로냐?"
"안 돼요?"
-"돼! 위로. 아~ 위로가 된다아~"
"풋!"
우린 10년을 채워가고 있었다.
하나가 된 지 10년.
그리고 우린 곧 서로의 길을 걸어간다.
그 날이...
와버렸다.
***
-과거의 약속-
같이 숙소 거실 바닥에 술이며 안주를 깔아놓고 거하게 술을 마시고는 널브러졌다.
"우리 5주년인데 10주년도 이럴 수 있을까?"
언제나 걱정이 많은 지운이 형이 말했다.
"당연하지!"
소진이 형은 언제나 긍정적이다.
"기분이 어떨까? 우리 10주년."
대장인 현준이 형의 말에 다들 아무 말 없이 천장만 쳐다봤다.
그러다 혁이 형은 웃음이 터졌다.
"이야~ 천장 진짜 높네! 예전에 우리 이렇게 누워서 천장 보면 누렇고 곰팡이 껴있고 그랬잖아!"
혁의 형의 말에 지운이 형이 그때가 떠오르는 지 바닥에서 뒹굴했다.
"맞어. 크크크크"
"비 많이 오면 더 누레지고, 막."
정이 형이 몸서치리며 말했다.
그러자 은기 형이 정이 형의 엉덩이를 툭 치며 말했다.
"벌레 들어온다고 난리, 난리를~"
-"형이 문을 똑바로 안 닫아서 그래요."
"야, 난 억울해!"
그러자 소진이 형이 은기 형에게 말했다.
"그것도 너니까 그냥 몇 번은 넘어간 거야."
-"나 아니라니까?!"
다들 첫 숙소의 천장을 떠올리며 깔깔거렸다.
우리가 함께 한 이야기만 시작하면 술이 다 깰 정도로 수다 삼매경이었다.
그만큼 우린 행복했다.
지운이 형이 말했다.
"만약에 10주년이 돼서도 우리가 계속 같이 있으면 그땐 뭐 하고 있을까?"
그때 조용하던 은기 형이 말했다.
"추락이 아니라 착륙을 하고 있겠지."
"오~올~~!"
모두들 은기 형의 멋진 말에 환호했다.
"이 순간에도 멋있는 척."
나는 그런 은기 형이 좀 오그라들지만 좋았다.
그래서인지 내 정신적인 상담은 언제나 은기 형을 통했다.
"뭐, 어때서요. 진짜 멋있구만. 형, 멋있었어요."
은기 형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약속은 혁이 형이 꺼냈다.
"우리 10주년에도 같이 있으면, 20주년 때도 같이 있자."
혁이 형의 말엔 언제나 현준이 형이 동의해줬다.
"좋지. 전에도 얘기했었잖아."
모두가 동의했다.
소진이 형이 자신의 무릎을 어루만졌다.
"내 무릎이 그때까지 성할까...?"
"혀엉!!!"
다른 형들이 분위기 깨는 소진이 형을 나무랐다.
나는 형들의 말에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우리가 헤어진다는 것.
내 가족보다 더 오래 있었던 것 같은데, 내 청춘의 전부를 함께한 사람들과 헤어지는 건 내가 증발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무섭기도 하고 슬펐다.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그걸 애써 숨기려 노력했다.
언제나 내 표정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건 지운이 형이었다.
"울어?"
형들이 놀리기 시작했다.
사내들의 세계에서 눈물이란 그런 존재다.
"왜 울어~"
다들 내 눈물에 또 한바탕 깔깔거렸다.
***
-안녕, 아이돌-
"다들 그렇게 결정한 거야?"
우린 소속사 회의실에 모였다.
함께 시작한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뜻을 전했다.
우린 언제나 하나의 의견으로 정해왔고, 이제 아이돌의 마침표를 찍을 날이 온 것이다.
"알겠다. 각자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 해. 약속은 약속이니까, 때 되면 계약 해지할 사람은 하고, 남을 사람은 남고."
세상은 자극적인 단어로 우릴 찌를 터였다.
해체.
그렇지만 우린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당장의 앞이 아니라 먼 미래를 생각한 우리만의 계획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조건이 있다."
"조건이요?"
-"10주년 마무리는 하자."
"그건 당연하죠."
우린 정해진 이별을 세상 가장 화려하게,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방법으로 끝낼 계획을 세웠다.
***
-조작가의 화려한 외출-
"작가님, 여기도 봐주세요."
"작가님! 손 흔들어주세요."
"이쪽도 봐주세요."
정신이 없네.
눈부셔.
렌즈 빠지겠어.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시피 포토월을 빠져나왔다.
"하... 다음번엔 그냥 개인적으로 영화 본다고 해주심 안 될까요? 이런 거 체질에 안 맞아요."
무슨 놈의 영화 시사회에 플래시 세례인가.
에디터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내 얼굴에 열을 식히며 말했다.
-"다들 작가님 보고 싶어서 안달인데, 팬서비스를 해주셔야 책 판매부수도 쭉쭉 올라가요."
"내 모습이 판매부수랑 뭔 상관이..."
-"알면서~"
인터넷도 안 하는 내가 뭘 안다는 거냐...?
"작가님! 작가님!"
나에게 마구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사람들.
나는 어색한 미소로 그들에게 화답했다.
"고맙습니다."
팬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를 보며 환호했다.
"작가님 사랑해요!"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날더러 사랑한단다.
저 눈빛 언제고 봤다 싶다.
그리고 과거의 내 모습과 겹쳐진다.
한때 나도 저런 적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가수를 보며 오빠와 대박을 연신 외치며 눈에서 레이저 발사하던 그 시절.
어째 익숙하다 했다.
민망하기도 하면서 기분이 묘하다.
영화는 드럽게 재미가 없었다. VIP시사회라더니 주위에 유명한 연예인이 없었다.
죄다 기자에 뭐냐 이거 싶었다.
겨우 보곤 차에 오르자마자 에고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아이고... "
그래도 좋지 않은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힘드셨죠?"
"날 초대한 이유가 뭐예요?"
-"네?"
에디터는 당황한 듯 보였다.
"대리님은 재미있었어요?"
-"네."
"아..."
나만 재미가 없었....
대중의 취향과 동 떨어진다는 건 작가에겐 곧 죽음!
사망선고인가!...
난 끝났어...ㅠㅠ
"저 휴대폰 주세요."
-"네?"
"안 되겠어요."
그러자 에디터의 눈이 두 배는 커졌다.
그리고는 매우 심각하고 비장하게 내 양팔을 붙잡았다.
-"작가님! 금단현상을 견디셔야 합니다!"
"금단현상이 아니고요. 지금 대중이-"
-"그 핑계라면 더더욱 드릴 수가 읍써요!"
"핑계가 아니고, 그 영화가 재미있다 하시니까."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뭘....?"
-"대중의 평가요. 작가님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일게요!"
"아니, 뭐 증명까지..."
-"휴대폰은 안 됩니다!"
예. 예. 그러시든지요.
내 책은 생각보다 잘 팔렸다.
세상에 햄릿이라 불리는 그에겐 미안하지만, 당시의 만남을 바탕으로 로맨스 소설을 썼고, 판타지나 다름없는 글에 사람들이 좋아했다.
연예인과 다름없이 스케줄이 생겼고, 사인회에 독자와의 만남은 물론이고, 외적으로도 병원이니 관리니 할 일이 많았다.
이러다가 후속작을 쓸 수나 있으려나 싶었다.
뭐, 에디터의 닦달과 감시 덕에 그건 충분할 것 같다.
-"아, 참! 저희한테 기획사에서 제안이 왔는데요."
"기획사요?"
매니지먼트 관리 그런 건가?
그런 거라면 출판사에서 잘해주고 있는데?
-"미팅을 하자는데요?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고."
"누구랑 하는 프로젝트인데요?"
나의 우상.
글을 쓰느라 잠시 멀리해야 했던 나의 아이돌.
내가 그 사람들이랑 뭘 해?!
"어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