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 남자 고등학교 신입교사, 한이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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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후-. 힘들다." 막연하게 생각 했던 것 보다 교사 생활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교육청에서 내려오는 공문들, 학교 내에서 처리해야 하는 서류들, 반 아이들 케어에다가 수업까지……. 할 일이 정말 많아서 정신이 없을 정도다. 이솜은 이것도 차차 적응 해 나가면 괜찮겠지 하며 애써 스스로에게 작은 위로를 보냈다. "쌤." 뒤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뭔가 싶어 눈을 크게 뜨고 뒤를 돌아보니 그녀의 반 반장인 도준이와 다섯 표를 받은 기찬이가 그녀의 뒤에 서 있었다. 둘이 함께 온 것을 보아하니 학급과 관련 된 일이리라. 이솜은 온화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다. "으응, 무슨 일이야?" "아까 말씀 하신 거 다 했어요. 부반장은 기찬이가 하기로 했고, 서기는 한터가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지각비는 등교시간부터 1분마다 지각하면 100원으로 정했어요." "음- 잘했어. 고생 많았어."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도준이와 기찬은 이솜에게 인사를 꾸벅 하고 교무실을 나섰다. 이거 전해주려고 지금 온 거야?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 했지만 책임감이 강한 아이라서 그런가 보다 싶어 다시 화면에 시선을 고정 했다. 한참을 공문과 싸움을 하는 이솜에게 돌연 영어를 담당하고 있는 허은지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은지가 가까이 올 때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한 이솜은 계속해서 공문과 싸우고 있었다. 이 놈의 공문은 지치지도 않는지 끝이 없었다. "이솜 쌤." "네? 무슨 일이세요?" "아니, 자기네 반 애들 중에 복학생 있는 거 알고 있어?" 복학생? 그러고보니 아침에 도준이 '형 말을' 선창을 하자 아이들이 '잘 듣자' 하며 후창을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냥 생일이 제일 빠른 게 아니라 정말 나이가 많은 것인가 생각한 이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 아, 아뇨……. 부장 쌤이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어휴,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아까 온 애들 중에 키 크고 잘 생긴 애 있잖아. 도준이." "아, 네. 도준이 왜요?" "걔가 복학생이야-, 20살!" 은지는 비밀이라도 말 하는 것 마냥 목소리를 확 죽였다. 몸까지 움츠리는 바람에 공문을 작성하던 이솜의 몸도 덩달아 몸을 움츠러졌다. 그러자 은지는 이솜과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여는 순간! [딩동댕동-] 눈치 없이 수업 종이 울렸고, 영어 수업이 있는 은지는 나중에 말 해주겠다면서 급히 자리를 떴다. 아, 찝찝하게 말 하다가 말아. 속으로 은지를 향해 툴툴 거린 이솜은 수업이 없는 틈에 재빠르게 업무를 마치기 위해 다시 공문에 집중하기로 했다. 하지만 세상만사 모든 것이 각 사람의 마음대로 되면 얼마나 편할까. 결코 사람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편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는 이솜은 종례 시간이 다 되도록 공문 정리를 마치지 못했다. 일단 담임으로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 이솜은 울며 겨자 먹기로 교무실에서 나가 교실로 향했다. 아이들은 청소를 하고 있었고 돌아다니며 청소를 확인 한 그녀는 모두 자리에 앉고 나서야 종례를 시작했다. "오늘 개학 하고 첫 날인데 어때? 고 쓰리라는 게 실감 나?" "전혀요!!" "그냥 작년이랑 똑같아요!" 교탁에 기대 서 있는 이솜은 아이들의 순수한 대답에 웃음이 터져서 투정 어린 몇 마디를 더 들어줬다. 이솜의 태도에 아이들은 불만을 몇 개 씩 토로했다. 한참 아이들의 불만을 받아주던 이솜은 이러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아 갈무리를 하고 종례를 마쳤다. "야자 하는 친구들은 석식 잘 챙겨 먹고, 야자 안 하는 친구들은 즉시 귀가 하도록! 내일 보자." "네-" "안녕히계세요." "쌤, 얘 PC방 간대요!" "아- 비밀이라고!!" 이솜은 간간히 들리는 욕설과 놀러가자는 말을 모르는 척 해 줬다. 어차피 개학 첫 날이라 공부하라고 백 날 떠들어 봤자 절대 듣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커튼을 걷은 창문으로는 노을이 들어오고 있었고,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도준은 그녀가 자리를 뜰 때까지 그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교실 문을 나서는 순간, 도준이 뒷문으로 나와서 교실 문을 닫고 교무실로 향하려는 이솜의 앞에 섰다. 이솜은 자신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고 고개를 들었다. 앞엔 도준이 서 있었다.  "왜? 할 말 있어?" "……." 도준은 큰 키를 사용해 이솜을 내려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 긴장을 한 것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할 말 없으면 비켜줄래, 라고 말하기도 전에 도준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어? 아아- 응. 나도 잘 부탁 해. 뭐, 악수라도 할까?" 이솜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인 도준이를 보고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도준이도 손을 내밀어 이미 마중 나온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 역시 남자애들은 손이 크구나, 새삼 또 깨닫았다. 도준이의 손은 이솜의 손을 다 덮을 정도로 정말 컸다. 위 아래로 몇 번 흔들곤 손을 빼자 도준이도 손을 빼고 뒷짐을 졌다. "쌤, 예뻐요." "어?" 교복 입은 학생이 선생님한테 예쁘다고 하는데, 기분이 뭔가 이상했다. 자신에게 고백을 한 사람이 초등학생이라면 고맙다고 하며 머리라도 얼른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마음을 전한 사람은 자신보다 몸집이 두 배는 큰 고등학생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당장이라도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 하면서 도준의 종아리를 회초리로 두들겨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예, 예쁘다고요." "아- 고마워. 너도 잘생겼어." 난데없는 고백에 얼떨떨했지만 그녀도 장단에 맞춰 맞장구를 쳐 줬다. 이솜의 대답에 도준은 볼부터 귀까지 빨갛게 물들였다. 아니 복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왜 이렇게 수줍어하는 거야. 이솜은 부끄러워 하고 있는 도준의 높은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교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생각 했다. 아싸, 드디어 퇴근! * 퇴근이라는 것이 그녀를 너무 신나게 했을까, 그녀는 뒤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도준이의 시선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도준은 이솜에게 마음을 전하고 교실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복도로 통한 창문에서 눈만 빼꼼 내밀고 쳐다보는 녀석들은 도준이 교실로 들어오자마자 대폭소를 하며 도준에게 다가갔다. "아, 진짜 형!!" "겁나 웃겨! 형. 진짜 제발 개그맨 해주라, 응?" "예, 예뻐요! 크하하학!" 도준과 수혁을 제외한 세 명의 아이들은 서로의 몸을 마구 때리며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형을 놀려먹기 바빴다. 놀리기엔 그리 적당한 주제는 아니었지만 도준은 스스로 생각을 수 백번 해도 충분히 머저리 같아 보였다. 게다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나오지도 않았고, 그렇게 멍청이 같이 이야기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자신을 놀리는 아이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대로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러자 기찬이 도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등을 두드려주곤 또 뭔가 생각이 났는지 빵 터져버렸다. "아 진짜, 너네가 교무실에서 형이 했던 걸 봤어야 했어!" "왜? 지금처럼 웃겼어?" "지금보다 더 했어! 쌤 앞에서 웃음 참느라 허벅지 꼬집었는데 아까 확인 하니까 멍들었더라. 으학!!" 도준은 교무실까지 가지 않아도 되는 걸 굳이 이솜의 얼굴을 보겠다고 교무실로 향했다. 하지만 차마 혼자 갈 수 없었는지, 반 강제적으로 부반장이 된 기찬과 함께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 앞에서 5분 정도 머뭇거린 도준을 보다 못한 기찬이 교무실 문을 대신 열어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준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그대로 굳어 있었다. 결국 기찬은 이솜의 뒤까지 도준의 등을 떠 밀었다. 그래서 기찬의 도움을 받아 이솜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 뒤에서 모든 상황을 보던 기찬은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땅을 마구 때리며 웃어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서 애꿎은 허벅지만 잔뜩 꼬집었다. 그 결과 기찬의 허벅지는 파랗게 멍이 들었다. 기찬이 교무실 썰을 신나게 풀고 있을 때, 도준의 앞자리에서 도준을 한심하게 바라 본 수혁은 아직도 엎드려 있는 도준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그러자 도준이 고개를 들어 수혁을 바라봤다. "형, 병신 같아." "후- 나도 알아……." 도준은 좌절했다. 이솜이 자신을 얼마나 얼간이처럼 봤을까. 도준은 후회했다. 내가 왜 이런 녀석들한테 이솜에게 첫 눈에 반했다는 소리나 지껄였을까……. 다섯 명의 아이들은 석식이 시작되기 전 자유 시간 동안 자신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도준의 머저리 같은 면모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다. 물론 도준은 당장이라도 울고 싶었다. - [20XX년 3월 XX일 날씨 맑음 정식 첫 출근이다.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내 걱정대로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울고 싶었는데 도준이라는 친구가 도와줘서 잘 해결 할 수 있었다. 내 로망이었던 반장, 부반장 선출까지 하고 지각비까지 걷기로 했다! 흐흐.. 1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과 지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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