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 남자 고등학교 신입교사, 한이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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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봄. 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이름과 외모를 가진 이솜은 이름과 외모와는 반대로 매우, 정말, 최고로. 인생 최고의 우울한 얼굴이었다. “후…….” 이솜은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봄답게 하늘은 참 맑았지만 애석하게도 이솜의 마음엔 봄과 어울리지 않게 우중충한 구름이 잔뜩 끼었다. 3월 2일. 모든 초, 중, 고등학교가 개학하는 시기라 그녀도 학교로 향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지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여자고등학교에 넣은 줄 알았던 서류는 남자고등학교에 넣어진 것을 확인하자 1차 절망. 이솜을 담당하던 교수님은 절망 속에 있는 제자를 거둬 주시지 않고 안식년을 즐기러 그녀가 서류를 넣고 난 다음 날 외국으로 사라지신 것을 확인하자 2차 절망. 그 외국에 당장이라도 쫓아가 교수님의 멱살을 잡고 짤짤 흔들고 싶었지만, 돈이 없는 취업 준비생은 그저 주먹을 입에 넣고 울음을 삼킬 수밖에 없음에 3차 절망. 그런한 이유로, 그녀는 남고에 발령을 받았다. 그 것까지는 괜찮았다. 정말. 그런데. 왜. 왜? 액땜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큰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첫 직장에서. 교무실에서 선생님들과 인사를 하고 출석부를 챙겨 그녀가 맡게 된 교실로 걸어갔다. 그렇다. 이솜은 첫 번째로 발령 받은 첫 직장에서, 첫 교사직으로 일을 하는데, 첫 담임까지 맡게 됐다. 게다가 고 3. 말인지 방군지 모르겠지만 실화다. 3학년 8반 앞에 도착한 그녀는 심호흡하며 숨을 골랐다. 방음이 잘되지 않는 나무문은 교실 안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를 여과 없이 내뱉고 있었다. 남고 애들이 괴팍하긴 해도 담임한테는 잘 하리라 믿으며 문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었다. 드르륵- 하는 소리는 아이들의 잡담 소리에 처참하게 묻혀버렸다. 젠장……. 앞쪽에 앉은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각각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기 바빴다. 이솜은 교탁을 향해 당당하게 걸었고, 그런 당당한 그녀를 주목하는 아이들은 몇 없었다. 교탁 앞에 서서 교실을 바라보니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답이 나오지 않는 현장에 한숨을 푹 쉬고 일부러 교탁에 출석부를 크게 내려놨다. 어그로가 제대로 끌렸는지 아이들이 돌연 조용해지고 앞을 바라봤다. 수많은 눈동자가 그녀를 바라본 순간 당황했지만,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안녕?” 미소 유지. 미소 유지! 첫 번째 교직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 ‘미소를 유지해라’ 이것 하나만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행히 교수님이 침을 튀기며 말 했던 내용이 잘 먹였는지 아무런 표정을 보이지 않던 아이들은 그녀의 웃음 가득한 인사에 화답하며 제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래, 그래도 선생 대우는 해 주는구나. 세게 보여야 할까 온화한 모습을 보일까 고민을 많이 했지만, 굳이 세게 보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이번 연도 8반 담임을 맡게 된 한이솜 이라고 해. 1년 동안 잘 지내보자.” “오~ 쌤! 몇 살이에요? 완전히 어려 보이세요!” “푸학- 야! 어리면 네가 쌤 꼬실 거야?” “지-랄!” 선생님이 앞에 있는데 욕을 내뱉다니, 윤리 선생으로서 엄격, 근엄, 진지하게 아이들에게 인성 교육을 하고 싶었으나 그녀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이 자리에 없었으면 더 심한 욕이 나오겠거니 싶어 말을 아꼈다. “몇 살 같아?” 소개팅 단골 질문이 나오자 아이들은 신나서 각자 생각 한 숫자를 마구잡이로 내뱉었다. 한 살부터 시작해서 쉰까지 아주 가지각색이었다. 참 고등학생답다 싶어 어색하게 웃음을 흘려주고 칠판에 이름과 나이, 휴대폰 번호를 적었다. “자. 나는 스물두 살이야.” “헐. 우리랑 세 살 차이네?” “한 명 빼고는 세 살 차이지. 정확히 하자.” “아, 또 시작이야.” 아이들이 칠판에 적힌 이솜의 나이를 보고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돌연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 손을 들었다. “쌤! 질문이요!” “뭔데?” “그럼 누나라고 해도 돼요?” 아이의 파격적인 질문에 순간 조용해진 교실 안이 휘파람 소리, 숨 넘어가라 웃는 소리, 박수 치는 소리로 아수라장이 됐다. 누나라니……. 충격적인 단어에 대답할 타이밍을 놓친 그녀는 아무말도 못하고 어버버 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 아이들의 야유 소리는 더 커져가고 있었다. 그녀는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싶었는데, 구석에서 엎드려 있던 한 아이가 고개를 들곤 교탁에서 어쩔 줄 모른다는 듯이 서 있는 이솜과 눈을 마주쳤다. 졸음 가득한 눈을 가진 아이는 창가에 앉아서 빛을 받고 있었다. "야. 조용히 해." 아이의 한 마디에 그 자리부터 시작해, 파도타기처럼 아이들이 입이 다물어졌다. 저 아이는 천사인가? 등에 날개가 달린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솜은 감사의 의미로 그 아이를 향해 살짝 웃었다. 다시 조용해진 교실 안을 휙 둘러보며 교탁을 짚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아무튼, 누나라고 부르는 건 안 돼. 졸업해도 안 돼! 번호는 잘 저장 해 놓고 필요 할 때만 연락해. 그럼 출석 부를게." 아이들의 질문을 원천 봉쇄 시킨 다음 빠르게 출석을 불렀다. 28명으로 이뤄진 학급은 튼실하고 다리털 숭숭인 아이들로 이뤄졌다. 여고였으면 좋은 향기가 흘렀겠지만(무조건적으로 그런 건 아니다.) 남고라 그런지 봄인데도 불구하고 시큼한 땀 냄새가 간간히 나기도 했다. 출석을 다 부른 뒤 아이들을 쭉 둘러 봤다. "이름하고 얼굴은 최대한 빨리 외울게. 쌤 번호 저장 했으면 문자로 이름 보내주고. 아, 그리고 일단 반장이랑 부반장 뽑을까?" 개학 후, 그녀가 반에서 벌인 첫 번째 이벤트는 식상하게도 반장과 부반장 선출이 됐다. 3학년이라 딱히 하지 않아도 되지만 반을 대표하는 아이 하나 정도는 있어줘야 할 것 같아 소스를 흘렸더니 아이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부 빼고 모든 것이 재미 있을 아이들은 다시 흥분상태가 되었다. 이솜은 손을 뻗어가며 아이들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앞에 앉아 있는 한 명을 뽑아서 임시 서기로 임명했다. "그럼 후보 추천 딱 세 명만 하자." "아- 왜요!" "너희는 서로서로 다 추천 할 것 같아. 28명이 후보로 나오면 어떡해?" "아- 노잼!" "조용! 시간 없으니까 빨리 진행하자~"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내 뱉은 말에 아이들은 그래도 좋다는 듯이 너도나도 신이 나서 손을 들었다. 총 10명의 이름이 나왔지만 그 중 7명이 당당하게 자진사퇴를 했다. 그리고 눈치를 보던 한 명도 사퇴를 했다. 결국 남은 후보는 두 명이었다. 칠판에 적힌 두 명의 이름을 본 이솜은 공약이라도 세우라고 할까 하다가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냥 심부름 정도 할 아이를 뽑는 것이라 바로 투표를 하게끔 했다. "투표는 종이-" "쌤! 그냥 손들면 안돼요?" "맞아요. 그냥 손들어요." "음, 그럴까?" 시간도 없었는데 잘 됐다 싶어 의견을 바로 반영 했다. "한기찬이 반장을 했으면 좋겠다, 손들어." 이솜의 말에 아이들은 키득거리면서 그 중에 몇 명만 손을 들었다. 임시 서기는 재빠르게 수를 세고 이름 옆에 숫자를 적었다. [한기찬 5명] 누가 봐도 다음 애가 당선인 것 같은데……? 투표를 계속 진행해야 할까 싶어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김도준이 반장을 했으면 좋겠다, 손들어." 아이들이 폭소를 터뜨리고는 이미 투표를 한 5명을 제외하고 모두 손을 들었다. 이름 옆에 적힌 숫자를 본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우리 반 반장은 도준이가 됐네. 도준이는 앞으로 나와서 당선 소감 말 하자. 자, 다들 박수-"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웃긴지 숨이 넘어가라 웃으며 박수를 치는데, 막상 당선자는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계속되는 박수소리에 아까 그녀를 도와줬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교탁으로 향했다. 멀리서 봤을 땐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이솜의 옆에 선 도준이는 생각보다 많이, 엄청 많이 컸다. 게다가 너무 잘 생겼다. 외모와 피지컬 때문에 위압감이 느껴 질 정도라 당황스러웠지만 도준이를 빤히 바라보니 도준이는 고개를 들어 웃음을 가득 담은,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을 바라봤다. "형 말을." "잘 듣자!" 도준이의 선창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후창을 했다. 뭐지? 형이라니? 이솜의 당황스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는지 도준이는 제 담임 선생님에게 인사를 꾸벅 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멋있다, 남자답다 라는 등 책상을 두드리며 소리를 왁왁 질렀다. 도준이가 자리에 앉고나서 이솜은 다시 교탁을 두드렸다. "그럼 지각비도 걷자. 지각비 많이 모으면 그거로 맛있는 거 사 먹고." "에엑-" "너희 지각 자주 하는구나? 그럼 꼭 해야겠네. 반장!" 이럴 때 쓰라고 반장을 만들어 놓은 거지. 속으로는 킬킬 웃은 이솜은 대답도 하지 않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도준이에게 말했다. "지각비 기준은 반장이 이끌어서 정하고, 부반장이랑 서기까지 뽑아줘. 10분 뒤에 수업 시작이니까 빠르게 정한 다음에 나한테 알려주고. 그럼 조례 끝!" 이솜은 깔끔히 정리를 한 뒤 소지품을 챙겨 교탁에서 내려왔다. 도준이는 귀찮은 걸 떠 맡았다고 생각 했는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헝클이고 교탁으로 척척 걸어갔다. 교실 문을 닫기 전에 힐끔 봤을 땐 아이들이 도준이의 말을 참 잘 듣는 것 같아 보였다. 교무실에 도착한 이솜은 첫날부터 진이 쭉 빠지는 것 같아서 일단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러자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체육 담당인 한진우 선생님이 엎드려 있는 이솜에게 음료 하나를 건넸다. 이솜은 옆자리에서 갑자기 건네진 음료에 화들짝 놀라며 급히 일어났다. 그러자 그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소탈하게 웃었다. "하하- 하필 첫 학교가 남고라서 고생 많겠어요!" 호감상을 가진 진우는 큰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건네기엔 너무 큰 목소리 아닌가 싶어 당황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적응을 했는지 각자 일을 하기 바빠 보였다. 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음료를 책상 위에 올려놨다. "아, 네- 하하. 그렇죠 뭐." "금방 적응 하실 겁니다! 하하!" "감사해요, 쌤." "뭘요. 하하하!" 간단히 대화를 마친 진우는 첫 교시부터 신나는 체육이라며 체육관으로 휙 가버렸다. 시간표를 확인 한 이솜은 1학년 수업이 있는 것을 보고 교과서를 챙겨 교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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