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하는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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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오늘도 수업 잘 듣자. 그리고 빨리 휴대폰 내, 이것들아!" "아- 쌤- 고 쓰리에게 유일한 낙인 휴대폰을 뺏다뇨-" "고 쓰리에게 유일하게 낙인찍히게 할 휴대폰을 빨리 내시지요, 학생님들?" 이솜의 대꾸에 할 말이 없어진 아이들은 투덜거리며 바구니에 휴대폰 전원을 끄고 제출했다. 사실 그녀는 휴대폰을 걷고 싶지 않았다. 마냥 어린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스스로 알아서 절제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몇몇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휴대폰을 가지고 게임을 하다 걸렸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꼼꼼하게 휴대폰을 걷었다. 쉬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에 언제든지 휴대폰 열람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걸었지만 아이들은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이 더 마음에 들었는지 몇몇은 공 기계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 자식들, 누굴 속이는 거야.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스스로 깨닫고 양심껏 제출 했으면 하는 마음에 아직은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 쌤 간다." "오늘 윤리 있어요?" "나는 항상 있다." "어우, 우리 쌤 철벽 어쩜 좋아잉" 입담이 좋은 현규 덕분에 휴대폰으로 인해 쳐졌던 반 분위기가 다시 살아났다. 그녀도 현규의 장난에 그냥 웃어주며 휴대폰을 담은 바구니를 챙기고 밖으로 향했다. 28대의 휴대폰은 은근한 무게를 자랑했다. 굳이 덤벨을 들고 설치지 않아도 주 5일은 이렇게 팔 운동을 하게 됐다면 좋은 점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솜은 그닥 반기진 않았다. "쌤, 제가 들게요." 어느새 다가온 도준이 이솜이 들고 있는 휴대폰 바구니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교무실까지 들고 가면 팔이 꽤 아팠는데 참 다행이었다. 이솜은 조금도 망설이는 기색을 비추지 않고 바로 도준이에게 바구니를 넘겼다. 바구니를 받아 든 도준이는 함께 걷는 이솜의 발걸음을 맞춰서 교무실로 향했다. "도준아." "네?" "복학생이라며? 동생들이 말 잘 들어?" "아-. 네." 도준의 짧은 대답에 더 할 말이 없나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교무실 앞에 다다랐다. 이솜은 도준에게 팔을 뻗어서 휴대폰 바구니를 가져가려고 했다. 정말이다. 하지만 이솜의 행동에 도준은 바구니를 뒤로 휙 빼 버렸다. 설마, 가지고 튀는 건 아니겠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느꼈는지 도준은 이솜을 향해 샐쭉 웃었다. 눈이 아래로 쳐지면서 한쪽에만 보조개가 생기는 것이, 여자들 여럿 울릴 것 같은 외모였다. "쌤 자리까지 제가 놓을 게요." "……, 그럴래?" 고개를 끄덕이는 도준을 보고 이솜은 교무실 문을 열었다. 조회 시간이 끝나면 항상 아이들이 교무실에 많이 왔다 갔다 하는 통에 교무실의 분위기가 좀 어수선했다. 이솜의 자리에 도착하자 도준은 그녀의 책상 위에 바구니를 올려놓았다. "아, 도준아. 부탁 하나만 들어 줄래?" 도준은 바구니를 올려놓고 굽혔던 허리를 세워서 이솜을 바라봤다. 그녀는 오늘 있을 수업에 필요한 유인물을 프린트 해 놨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무거워서 고민하던 차였다. 스테이플러가 찍혀서 잘 정리 되어 있는 유인물을 들어 올리고 도준에게 넘겨주었다. 생각보다 많이 무게가 나가서 별 생각 없이 받아 든 도준이 살짝 휘청거렸다. 그 모습이 부끄러웠는지 헛기침을 했다. 이솜은 도준의 모습엔 관심도 없다는 듯이 똑같은 말투로 도준에게 말 했다. "오늘 1교시 우리 반 수업인데 애들한테 나눠줘." "이걸 전부요?" "응. 인원 맞췄으니까 남는 거 없을 거야." "네……." 도준은 뭔가 못마땅한지 느릿느릿 교무실을 나섰다. 10분 뒤면 바로 수업이라 수업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은지가 조용히 다가와 또 낮게 말을 걸었다. 어후, 깜짝이야. 이솜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녀를 바라봤다. "이솜 쌤. 도준이한테 뭐 시키는 거야?" "네? 아- 반장이라 유인물 좀 부탁했어요." "어후, 왜 하필 반장이 도준이래? 자기가 뽑은 거야?" "아뇨……. 매우 민주적인 방법으로……." 라고 하긴 비밀 투표 조건이 지켜지지 않았으나 학교이니까 상관은 없겠지만 당당하지 않게 끝난 이솜의 말에 은지는 말소리를 더 죽이곤 그녀의 귀에 한참을 속닥거렸다. 은지의 말을 들은 이솜은 귀가 쫑끗 해 지고 눈이 커진 상태로 멍해졌다. 그녀가 귓가에서 떨어지자마자 그녀를 향해 작게 소리쳤다. "지, 진짜요?" "그러엄-! 내가 왜 자기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아- 어떡해요……." "어쩔 수 없지, 뭐. 그냥 똑같이 대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바로 눈치 챌 거야. 그럼 자기는……!" 은지는 눈을 희번덕 뜨더니 손날을 목에다 대고 그어버리는 시늉을 했다. 잘린다는 소리겠지. 미쳤다, 미쳤어.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길래 그냥 일반적인 복학생인줄 알았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다! 잔뜩 울상이 된 이솜을 본 은지는 힘내라며 어깨를 토닥여주고 자리로 돌아갔다. 진정 내가 힘내기를 원하면 차라리 말을 말았어야죠. 원망이 가득 담긴 이솜의 시선은 이미 뒤 돌아 있는 은지에게 닿지 않았다. 그런 얘기를 들었는데 하필 수업도 도준이 있는, 그녀의 반이었다.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져서 움직이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서 교실로 향했다.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학생은 학생이니까! 덜덜 떨리는 손으로 교실 문을 열었다. 교탁 앞에는 도준이 아이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제발, 열심히 하지 말아줘! 엉엉 울고 싶었지만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교탁으로 향했다. 그녀가 들어 온 것을 눈치 챈 도준은 나머지 유인물을 재빠르게 분배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제대로 착석한 도준은 반짝거리는 눈으로 이솜을 바라봤다. 요 근래 들어서 심부름을 마치면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자주 바라봤다. 꼭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 같아서 몇 번 머리를 쓰다듬어줬는데, 이번에는 그러면 안 되겠지. 그냥 잘 했다는 의미로 눈짓을 줬는데 돌연 고개를 푹 숙였다.헐, 행동 달라진 거 들켰나? 괜히 찔리는 마음에 바로 수업으로 들어갔다. "자, 모두 책 피자." "어우- 첫 시간부터 윤리라니." "나와." "아잉- 쌤." * 수업을 끝내고 재빠르게 교무실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질문이 있다는 몇몇 아이들에 의해서 발걸음을 붙잡혔다. 도준아 제발 화장실이라도 가라. 속으로 빌고, 빌고 또 빌었지만 도준은 이솜이 질문 가득한 아이들에게 풀려 날 때 까지 화장실로 가지 않았다. 이솜이 교실을 나서니 오히려 그녀를 따라 왔다. 훠이- 저리 가! 일부러 도준을 모른 척 했지만 어느 새 옆까지 다가와 양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그녀를 바라보면서 걷는다. 그 눈길을 무시 할 수 없어서 고개를 돌려 도준을 바라보니 도준은 생글생글 웃으며 이솜을 보고 있었다. 이솜도 그에게 애써 웃어주었다. "나한테 볼 일 있어?" "네. 아주 많이요." "뭐, 뭔데?" "저 칭찬 해 주셔야죠." "아- 아아- 그래. 그래, 수고 했어." 도준은 말로 끝내려는 그녀의 행동에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왜, 뭐! 그러고는 머리를 이솜에게 들이밀었다. 흐익! 저 머리로 나를 들이받으려나 봐! 놀라서 눈을 꾹 감았는데도 닿는 느낌이 없어서 눈을 슬쩍 뜨니 그녀 앞에 도준의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이 있었다. 그제야 그 행동의 뜻을 알아듣고 손을 들어서 앞에서 시선을 막고 있는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어줬다. "도와줘서 고, 고마워." 대단히 초등학생 같은 말투임에도 불구하고 제 몫을 충분히 받았는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유지 한 채로 이솜에게 인사 하고 교실로 휙 들어갔다. 어후, 심장 떨려. 이성적으로 떨리는 게 아니라 첫 직장을 한 달 만에 잃을 것 같은 두려움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복도가 참 길게 느껴졌다.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교무실로 들어가니 모든 일의 원흉인 은지가 이솜의 시선에 포착 되었다. 가서 막 따지고 싶지만 그럴 짬이 되지 않는 말단인 이솜은 울음을 삼키며 자리로 향했다. 쭈구리는 공문 처리나 해야겠다, 중얼거리며 교재를 정리하고 컴퓨터에 집중했다. 한참을 문서 작성에 열을 올리고 막 분위기를 타고 있었는데 은지가 다가와 집중으로 가득 찬 어깨를 톡 쳤다. "자기, 밥 먹으러 안 가?" "아, 벌써 점심시간이에요?" "응. 일 하는 것도 좋은데 식사는 해야지." "먼저 드세요, 저 곧 끝나서 마무리 하고 바로 갈게요." "그래? 알겠어. 빨리 하고 와." "네. 먼저 식사 하세요." 은지는 다른 선생님들과 무리를 지어서 교무실을 빠져나갔고 공문 처리에 바쁜 이솜만 교무실에 혼자 남게 되었다. 5분이면 끝날 줄 알았던 공문은 그녀가 예상한 시간을 넘어서야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넣어야 할 항목들이 많이 있었다. 결국 예상 시간보다 20분을 늦은 이솜은 눈물을 머금고 급식실로 향했다. 점심 시간이 한창인지라 아이들은 급식실 밖으로도 길게 줄이 늘여 서 있었다. 제대로 줄을 서 있자니 다음 수업 준비에 늦을 것 같고, 그렇다고 앞으로 가자니 아이들의 눈치가 보였다. 이솜은 급식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수업에 늦는 것 보다 눈치를 잠깐 보는게 낫겠다 생각한 이솜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맨 앞으로 향했다. “솜쌤!” 누군가가 이솜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누군가 싶어 그 쪽을 바라보니 우리 예쁜 8반 아이들이 서 있었다. "쌤, 이제 밥 먹어요?" "야, 쌤한테 식사하시냐고 해야 되는 거야." "그래? 쌤, 이제 식사 하세요?" "어? 어어-" "우리랑 같이 먹어요!!!" 신난다는 표정을 지은 재하가 이솜의 어깨를 잡고 제 앞에 세웠다. 수저까지 다 집었는데 얼떨결에 아이들 사이에 줄을 바로 서게 된 그녀는 차마 호의 가득한 손길을 뿌리 칠 수도 없어서 조용히 서 있었다. 그런데 돌연 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차마 뒤를 돌아서 아이들과 대화를 할 수 없었다. 저 시선은 100퍼센트 중에 200퍼센트의 확률로 도준이 일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까……. 그리고 그녀의 슬픔 예감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는 것을 여과 없이 증명 해 주는 듯이 그 시선은 도준이 맞았다. 선생님들과 함께 먹으려고 선생님들 사이에서 자리를 찾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의 이끌림 속에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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