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솜의 급식 판에 있는 음식의 최소 두 배에서 세배를 담고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고 살짝 기함 했지만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이들의 음식 욕심이 으레 그럴 수도 있겠다는 듯이 체념하고 식사를 했다. 아니, 하고 싶었지만 내 앞엔 도준이 떡 하니 앉아 버려서, 그녀는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쌤, 이거 안 드세요?"
"응? 아- 응."
"그럼 저 먹어도 돼요?"
부식으로 함께 딸려 나온 요구르트를 노리는 하이에나 같은 눈길들이 참 많다. 이솜은 목에 남는 까끌 거리는 느낌 때문에 요구르트를 일절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식사가 끝날 때 까지 마시지 않고 그냥 둔 요구르트를 눈 여겨 본 수혁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솜에게 먼저 물어봤다. 이솜은 딱히 마시지 않을 음료를 주지 않을 이유가 없어 요구르트를 건네주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는 듯이 다른 아이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왁! 저도 주세요!"
"헐, 다른 건요?"
"어? 아니, 없어!"
"근데 왜 이렇게 늦게 먹어요, 쌤?"
이솜의 옆에 앉은 한터가 궁금하다는 눈으로 자신들의 식판과 이솜의 식판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그렇게 많은 빨리 먹는 너희가 나는 더 신기하다. 실제로 아이들은 이솜보다 늦게 먹기 시작한데다가 양도 훨씬 많았다. 그런데 그녀보다 빨리 먹었다.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너희가 너무 빨리 먹는 거 아냐?"
그녀의 단호한 말에 아이들은 서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빨리 먹는 건가? 밥 빨리 먹고 축구해야 되잖아, 작게 들리는 목소리가 이솜의 귓가를 강타했다. 그래서 빨리 먹었구나..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현장 속에서 그녀는 그냥 일어날까, 진지하게 고민 했다. 사실 배도 적당히 불러와서 그만 먹어도 되겠다 싶은 차였다. 이 어색한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거리는데 여태 한 마디도 않고 이솜을 바라보고 있던 도준이 나직이 말 했다.
"쌤, 식사 다 하셨으면 저 고기 먹어도 돼요?"
얼탱이가 없어도 너무 없다.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허탈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아이들도 먹고 싶었던 반찬이 있었는지 너도 나도 젓가락을 뻗어왔다. 순식간에 사라진 식판 위의 음식들을 만족스럽게 먹은 아이들은 해 맑게 웃었다.
"쌤, 맨날 저희랑 같이 밥 먹어요."
"맞아요. 완전 만족함."
"싫어, 이 것들아. 어디서 선생님하고 겸상을 하려고"
"아야야야- 말은 도재하가 꺼냈는데 왜 제 볼을 꼬집어요!"
"그럼 내 옆에 있지 말았어야지."
억울하다고 찡찡대고 있는 수혁에게 새초롬하게 대답을 해 주고 자리에서 일어나 잔반통으로 향했다. 그녀가 일어나자마자 아이들도 웅성거리며 함께 일어나 그녀의 뒤를 쫓아 잔반통으로 갔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귀여움에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식판을 정리하고 물을 마신 뒤 인사를 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해 주고 교무실로 향했다. 교무실에 입성하니 먼저 식사를 마친 은지가 치약을 묻힌 칫솔을 들고 이솜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이솜 쌤! 지금 도준이네랑 밥 먹은 거야?"
"네? 아- 네. 애들이 억지로……."
"와- 쌤처럼 애들이랑 가까운 쌤은 또 처음 보네. 좋은 거야. 그런데 그 친구들하고만 그렇게 가까우면 안 돼. 알지?"
갑자기 다가온 은지가 이솜을 위해 조심스럽게 충고를 했다. 물론 그 점은 이솜 본인도 매우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과 허물없는 관계도 좋았지만, 제일 중요한 선생과 제자로서 지켜야만 하는 선은 꼭 지켜지길 바랐다. 걱정스러운 은지의 말투에 걱정 말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음에 흡족했는지 칫솔을 들고 흥얼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종례 전까지 공문과 필요한 문서 작성을 하는데 시간을 모두 허비한 이솜은 도준이 데리러 와서야 시간을 깨닫고 허둥지둥 대며 교실로 향했다. 도준은 휴대폰을 담은 상자를 들고 아이들에게 각자 본인 휴대폰을 나눠주고 있었다.
"자, 그럼. 오늘 하루도 끝! 청소는 잘 했으리라 믿고 확인 하지 않겠어."
"와, 우리 담임을 팩트로 정리하자면 '퍼펙트'"
"이야- 쇼미더머니 나가라, 최종민!"
많이 보이던 주접 댓글 중에 하나를 종민이 말 하니 아이들은 와 하며 종민을 추켜세웠다. 그 덕분에 어깨가 잔뜩 올라간 종민이는 아예 책상 위까지 올라가려고 폼을 잡았다.
"됐고, 빨리 집에 가라. 나도 퇴근하게."
"오- 이렇게 대놓고?"
"오- 은근슬쩍 반말?"
"죄송함다."
이솜은 아이들과 잠깐의 티키타카를 나눴다. 이후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아이들은 우루루 교실을 나섰다. 몇 아이들만 교실에 남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 풍경을 바라본 이솜은 곧 교무실로 향했다.
복도 창문으로는 학교 운동장이 훤히 보였다. 아이들이 짝을 지으며 하교하는 모습을 보니 부럽다는 마음도 살짝 들었다.
어린 나이에 검정고시를 보고 수능으로 대학을 가 버려서 중, 고등학생 때의 추억이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쉬워 하던 차였다. 그래서 이솜은 솔직히 아까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었을 땐 고등학생이었다면 이런 느낌이었겠거니 싶으면서 기분이 좋았다.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해 아쉬움을 담은 한숨을 내 뱉고 교무실에 들어서니 많은 선생님들이 이미 퇴근을 한 상태였다.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부장 선생님은 이미 보이지도 않았다. 공무원이라서 출 퇴근 시간 보장은 확실해서 참 좋았다. 이솜도 눈치를 살짝 보다가 짐을 챙기고 나왔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고생 많았어, 솜 쌤."
"네, 좋은 주말 보내세요."
선생님들의 인사를 뒤로 하고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틀은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짜릿한 마음에 빨리 집에 가서 뒹굴 거려야 겠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
그런데 정문 앞에서 도준이 정말 비싸 보이는 차를 타는 것을 목격 했다. 와우, 은지 의 이야기가 사실이었다.
도준이가 청운고 이사장의 외손자라는 이야기가…….
-
[20XX년 3월 XX일 날씨 구름 조금
오늘 은지 쌤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도준이가 청운고 이사장의 외손자라는 소리를! 눈에 잘 못 나면 잘릴 수도 있다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도준이를 피해 다녔다… 이래도 되는 걸까? 나에게 교사 자격이 있는 게 맞을까? 걱정이다..]
*
정말 야속하게도 도준은 반장이었고, 그 반장이 있는 반의 담임은 바로 나야 나……. 이솜이 죽거나 저 아이가 죽거나, 전학을 가지 않는 이상 1년 동안은 좋든, 싫든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만 한다. 은지가 괜한 얘기를 꺼내서 자꾸 눈치가 보이는 이솜이었다.
아이들을 평등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그렇게 하고 있지만 도준에게는 차마 그럴 수가 없어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평온하면서도 복잡한 주말을 보내고 퀭한 얼굴로 출근을 하니 마주치는 학생, 선생님 할 것 없이 그녀의 후지는 안색을 걱정해줬다. 물론 아이들은 반 이상이 놀리는 거였다.
"좋은 아침 악!! 아니, 솜 쌤 무슨 일 있었어요?"
옆자리에 있는 진우가 해맑게 웃으며 들어오다가 퀭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이솜을 보고 깜짝 놀라 물어봤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지만 곧 진우는 부장 선생님에게 달려가 이솜의 퀭한 얼굴의 현 주소를 미주알고주알 알려주었다.
처음에 봤을 땐 참 호감 상이었는데, 지금 보니 그녀의 반 애들과 별 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냥 무시하고 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 작은 화문에 물을 주기 위해 탕비실로 향했다. 탕비실 안에는 여자 선생님들이 모여서 커피를 마시며 주말 동안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어, 솜 쌤. 이리 와 봐요."
"네? 왜요?"
"어후, 민겸 쌤이랑 남균 쌤이랑 만나고 있대!"
"헐, 진짜요?"
둘러앉은 동그란 테이블에는 국어 담당 지은, 수학 담당 정화, 영어 담당 은지와 한국사 담당 민겸이 있었다. 복잡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귀가 탁 트이는 소리에 화분을 싱크대 근처에 올려놓고 조용히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은지는 이솜에게 둥글레차 한 잔을 타주었고, 이솜은 은지에게 작게 감사의 표시를 한 뒤 자연스럽게 컵으로 입을 가져다 댔다.
"그래서 이번 주 주말에 어떻게 했는데?"
"그냥 근처 공원 산책하다가 남균 쌤이 먼저……."
"꺄악! 아, 우리 저녁에 한 잔 해야 할 것 같다?"
"너무 좋아요! 그나저나 우리 이솜 쌤은 누구 없나?"
"저, 저요? 전 없어요."
민겸으로부터 이솜을 향한 8개의 눈동자에 당황한 이솜은 손까지 저으며 부정했다. 그러자 이솜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지은이 코웃음을 치며 말 했다.
"아직 어린데 우리 학교 쌤들이 어떻게 눈독들이겠어요, 학생이면 모를까."
"……."
"하, 하하! 어우, 지은 쌤 아침부터 재미 있네~"
갑자기 싸해진 분위기를 띄우려고 은지가 옆에 있는 지은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그제야 이솜을 포함한 모두가 입가를 풀며 억지로 웃음을 흘렸다. 가만히 있다가 저격을 제대로 당한 이솜은 조회 준비를 핑계로 자리에서 일어나 화분을 챙긴 뒤 자리로 돌아왔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억울해 지는 마음은 저격을 당한 사람만 가질 게 뻔했기 때문에 그냥 흘려보내기로 하고 출석부를 챙겨서 교실로 향했다.
교무실에서 지금 당장 마주치기 껄끄러운 사람이 있다면 그건 지은이고, 교실에서 항상 마주치기 껄끄러운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쌤, 오랜만이에요."
"으응, 도준이 안녕?"
"주말 잘 보내셨어요?"
"그럼."
도준이다. 교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복도에서 마주친 도준은 입에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고 있었다. 서글서글하게 말을 걸어오는 도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하니 기분이 나빴는지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교실에 거의 다 도착 했을 무렵 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도준이 이솜을 불렀다.
"쌤."
"응"
그제야 도준이를 쳐다보니, 도준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게, 쌤을 불러 놓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냥 교실로 들어갈까 하다가 아직 조회 시간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기다려주기로 마음을 고친 이솜은 그대로 서 있었다.
"이, 이거요."
도준이 주머니에서 손을 빼곤 두 손으로 공손하게 이솜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건네받은 것은 결투장 따위가 아니라 포장지에 곱게 쌓인 사탕이었다.
"……?"
"그, 월요병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요……."
이게 뭔가 싶어 도준이를 올려다보니 도준은 그녀의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고 있었다. 그래, 사탕 좋지. 근데 내가 무슨 초딩도 아니고.. 그래도 담임 생각하면서 매점에서 사탕을 사 왔을 도준이를 생각하니 귀엽고 기특해서 고맙다고 하며 웃었다. 이솜은 주머니에 도준에게 받은 사탕을 넣고 교실 앞문으로 향했고, 도준은 뒷문으로 들어갔다.
"자- 집중!"
"아- 월요일 극혐!"
"나도 월요일은 싫다. 어쨌든 월요일은 왔으니까 정신 차리자! 휴대폰 제때 제출하고 무슨 일 있으면 쌤한테 와. 알겠지?"
"네에-"
씩씩한 아이들의 대답이 마음에 들어서 조회를 마무리하고 앞자리에 앉은 애들과 수다를 떨다가 교무실로 돌아갔다. 남고라고 해서 이것저것 다 깨부수고 마냥 시끄러울 줄 알았는데 막상 닥쳐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여태 겪은 학교는 남고를 향한 이솜의 편견을 완전히 부수고 있었다. 그냥 조금 과격 할 뿐이었고, 그냥 조금 오버스러울 뿐이었-
쨍그랑-
"미, 미쳤……."
바로 한 블록 앞 복도 창문이 갑작스럽게 깨졌다. 이솜은 방금 무슨 생각을 했는가? 편견? 편견이 아니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던 녀석들이 실수로 날린 것 같은데 그냥 이렇게 유리창이 깨져버렸다. 이솜이 서 있는 곳에서부터 교무실이 꽤 멀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주임 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뒤뚱거리며 뛰쳐나왔다. 그는 이미 엉망으로 깨진 창문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바라보다가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복도 창문으로 운동장을 내봤다. 그 사이 범인은 도망을 간 건지, 범인으로 보일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운동장엔 어쩔 줄 몰라 하는 아이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 자식드으으을!! 너네 몇 반이야!!!!"
오래 된 교직 생활은 복식 호흡과 두성을 충분히 사용 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학생주임 쌤은 꽤 나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온 스킬로 아이들을 향해 냅다 사자후를 내 뱉었다. 대답을 듣고 싶어서 한 질문은 아니었는지 바로 운동장으로 뛰쳐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정정하시구나. 창문이 깨진 복도 주변으로 아이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웅성 거리며 다가오는 걸 진정 시키고 복도 앞 교실에 있는 아이들에게 청소를 부탁하고 교무실로 향했다.
"어, 무슨 일인지 알아요?"
피곤한 기색으로 들어오는 이솜을 본 은지가 궁금했는지 바로 다가와 물어봤다.
"아, 어떤 애가 축구공으로 유리창 깼거든요."
"어머, 다치진 않았고?"
"네. 다행히 아무도 안 다쳤어요."
아마 제가 몇 걸음 더 갔으면 축구공에 머리를 맞고 기절 했을 거라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았다. 호들갑을 떨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그러고 보니 이솜의 반이 1교시가 체육이었던 것 같았다. 아. 망했다.
이솜의 슬픔 예감은 어쩜 정말 한 번도 틀리지 않는다.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귀를 잡혀 들어오는 아이는 분명히 이솜의 반 아이다. 솔직히 말 하자면 모르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한숨을 푹 쉰 이솜은 그 둘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