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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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마, 축구 하는 건 좋다 이거야. 그런데 이게 몇 번째냐. 엉?" "죄송합니다……." "누가 다쳤으면 어쩔 뻔 했어? 너 1학년 때 부터 그러더니 아직도 못 고쳤냐?" "……." "선생님. 저희 반 학생인데 제가 데리고 가도 될까요?" "한선생네 반이야? 그래, 데리고 가. 아휴 바쁜데 나야 고맙지. 아무튼 너, 이번엔 유리 값 내야 하는 거 알지?" 신물이 난다는 표정으로 이솜에게 학생을 인계한 학생 주임 선생님은 등을 돌렸고, 이솜은 반 학생인 지우를 데리고 상담실로 들어갔다. 굳이 그 곳으로 가지 않아도 되지만 상담실이 단 돌이서 대화하기엔 매우 적당했다. 상담실에 들어가 지우에게 비타 음료를 건네주었다. 지우는 음료수를 마시지 않고 앉아서 조용히 손가락만 꼼질 거리고 있었다. "지우야. 학생 주임 선생님이 네가 걱정 되서 그렇게 말씀 하신 거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 "……, 네. 잘 알아요." "표정은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인데?" "아니에요! 그냥, 하- 아녜요……." 무언가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하기 싫다는 듯이 머리를 마구 털어낸 지우는 앞에 놓인 비타 음료의 뚜껑을 따더니 벌컥벌컥 마셨다. 이솜은 지우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누군가가 말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면 당장이라도 쏟을 것 같았다. "무슨 일 있어?" "아니요…….“ 혹시 마음이 변할 까 싶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우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지우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 그럼 반성문 내일까지 한 장 써 와." "네. 유리 값은……." "후- 그건 쌤이 내줄게." 이솜의 대답에 지우는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캐치 한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지우를 바라봤다. 이솜의 시선의 뜻을 알아차린 건지, 지우는 마주쳤던 눈을 내리고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지우야. 무슨 일 있는 거 맞지? 알려줘야 쌤이 도울 수 있지." "……." 이솜의 말에도 불구하고 지우는 굳게 침묵을 지켰다. 한참 동안 지우를 기다리던 이솜은 지우가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음, 그럼 이렇게 하자. 오늘 쌤이 야자 감독 있으니까 말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유리 값은 걱정 말고." "네……." "그래, 어서 가. 일주일에 체육 두 번인데 가서 뛰어야지." 이솜의 배려에 지우는 허리를 깊이 숙이고 상담실을 나섰다. 지우가 나간 뒤에 혼자 상담실에 앉아 있는 이솜의 머리 속에는 머뭇거리던 지우의 표정이 계속 떠올라 이솜의 마음 한 구석을 아리게 만들었다. 소문에 빠삭한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소문에 의존하기 보다는 스스로 알아내는 게 좋을 것 같아 곧 그 마음을 저버렸다. 상담실에서 나와 교무실에 들어간 이솜은 학생 기록부를 열람했다. 이전 담임 선생님들이 지우에 대한 얘기를 적어 놓았을까 하는 기대감에 기록들을 들여다보는데, 할머니와 살고 있다는 것 빼고는 특별하다고 할 게 딱히 없었다. 상담실에서 지우가 왜 그렇게 머뭇거렸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냥 본인에게 듣는 게 생산적이다 싶어 학생 기록부 시스템을 종료하고, 이솜을 항상 미치게 만드는 공문이 잔뜩 쌓여 있는 학교 메일함으로 들어갔다. 식사도 선생님들과 함께 하고, 식후 커피도 맛있게 마셨고, 식후 수업 때문에 픽픽 쓰러지는 아이들을 세우며 진도도 잘 나갔고, 마지막으로 아이들 하교도 잘 시켰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종례 말고는 한 번도 마주 치치 않은 지우가 이솜에게 자꾸 생각이 났다. 야자도 하면서 왜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지. 그 때 주머니에 넣어 놓은 휴대폰이 징- 하고 진동을 울렸다. "뭐야. 웬 전화?" 지역 번호가 떠 있는 일반적인 전화였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모르는 전화는 잘 받지 않는 이솜이 받을까 말까 고민을 이어갔다. 본능적으로 꼭 받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어 끊어질 즘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한이솜 선생님 되십니까?] 수화기 너머로 '이솜'이 아닌 '선생님'을 찾는 낮은 목소리가 틀렸다. 이솜의 마음이 덜컥 가라 앉았다. * 전화를 받은 이솜은 다른 선생님에게 사정을 간단히 설명하고 야자 감독을 부탁했다. 그녀는 학교에서 조금 많이 떨어진 파출소로 급하게 향했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진정시켜도 가라앉지 않았다. 이솜이 조심스럽게 파출소 안으로 들어가니 지우와 술 취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솜의 눈에는 힘 없이 앉아 있는 지우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앞, 뒤 잴 것 없이 바로 지우의 이름을 불렀다. "지우야!" "……쌤?" 지우는 무릎 위에 헬멧을 놓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뒤에서 들리는 담임 선생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문가를 바라봤다. 여기에 올 줄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이솜은 지우의 어깨를 붙잡고 다친 곳은 없는지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녀가 살펴 본 결과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다. 그러자 건너편에 앉아 있던 경찰이 흠흠 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제야 파출소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이솜은 지우를 붙들고 있던 손을 내려 멋쩍게 웃으며 경찰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한이솜 선생님이세요?" "네, 제가 지우 담임이에요." "하- 다름이 아니라 이 학생이 오토바이로 치킨 배달을 하다가 이 옆에 계신 분이랑 시비가 붙었는데 미성년자라 보호자가 필요해서요." "아, 혹시 오토바이로 이 분을 치고 그런 건……." "아닙니다. 저희는 그냥 서로 합의하고 끝내면 되거든요. 어차피 아무도 다치지도 않으셨고.“ 경찰은 지우의 옆에 앉아 있던 남자를 힐끔 바라봤다. "아이고- 아이고, 머리야! 배도 아픈 것 같고." 여태 가만히 있던 사람이 경찰이 하는 말을 듣고는 이때다 싶어 바로 할리우드 액션을 펼쳐보였다. 하필 걸려도 이런 진상에게 걸리다니.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것 같았다. 지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땅만 바라봤다. 경찰은 그 남자를 보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들이켰고, 남자는 제 연기가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계속해서 오버를 떨었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이솜을 차분히 남자를 바라봤다. "병원 가서 진단서 끊어오세요. 그럼 배상 해 드릴게요. 그런데 아프지도 않는데 시간 벌고 계시면 사기죄로 고소합니다. 게다가 여기 계신 경찰 분들 공무집행 방해로도 조사 받을 수도 있는데 상관없으신 거죠?" "헛, 흐흠……. 괜찮아 진 것 같기도 하고……." 이솜의 똑 부러지는 말에 남자는 허둥지둥 아무 말이나 내 뱉고 파출서를 뛰쳐나갔다. 딱 봐도 사기꾼 얼굴이었다. 경찰은 자주 겪는 일이었는지 그 남자가 나가던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이솜과 지우를 바라봤다. 댁들도 나가쇼, 하는 표정이라 지우의 뒤통수를 잡고 꾸벅 인사를 시켰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단단히 주의 시키겠습니다." "예. 고생하십쇼." "네, 안녕히 계세요. 인사 해야지, 지우야." "……안녕히 계세요." 경찰은 이솜과 지우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생각보다 쉽게 상황이 정리 돼서 그런건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파출소를 나온 지우는 헬멧을 파출소 앞에 있는 오토바이 핸들에 끼웠다. 이솜은 그 옆에 서서 지우가 하는 행동을 바라봤다. 지우는 오토바이에 올라타지도 않고 그저 이솜에게 등 진 채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박지우, 너 지금 이게 무슨 일이야? 빨리 설명 해." "……. 다 보셔서 아시잖아요!" "알긴 뭘 알아. 네가 설명을 안 했는데!" "아- 진짜." 손에 담배라도 쥐어주면 얼씨구나 하고 피울 정도로 지우의 눈은 뭔가를 깊이 갈망하는 눈이었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는지 발로 바닥을 마구 차고, 머리를 쥐어뜯고 소리까지 지른다. 이솜은 어디까지 하나 쭉 지켜 볼 심산으로 팔짱을 끼고 아무 말 없이 지우를 계속 바라봤다. 한참 혼자서 분을 풀던 지우는 그 분이 다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 거리는 거친 숨을 내 뱉고 가만히 자신을 지켜보던 이솜을 바라본다. "저 알바 해요." "그래보이네." 담담한 담임의 목소리에 지우는 한숨을 푹 쉬고 오토바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아무 말 하지 않고 한참을 숨을 고르던 지우는 괴로운 표정으로 억지로 입을 열었다. "부모 없이 할머니 하고만 살아서 망할 유리 값 낼 돈도 없고, 급식비 내는 것도 힘들어서 알바 해요! 내가 오늘 쌤 안 찾아간 거, 이렇게 거지 같이 사는 모습 아무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안 갔어요. 선생님들은 남의 얘기를 쉽게 하니까 또 소문날까 봐 얘기 안 했다 고요!" "……." "근데 다 들켰네. 그것도 담임한테." 지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제 두 손을 사용해서 얼굴을 감췄다. 이솜은 지우의 말을 들으면서 한 편으로 도준이가 생각이 나서 조금씩 피하던 모습이 떠올라서 부끄러웠고,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물어볼까 하던 그 생각을 들킨 것 같아 숨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지우의 얘기를 그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자신의 마음 한 구석이 역겨워졌다. "누가 말 한대?" "……." "네 가정사 아무도 관심 없어. 급식비를 안 냈으면 안 낸 거지 그게 뭐가 대수야?" "……." "너 엄청 자기중심적으로 사는구나? 다들 저 살기 바빠서 남 사정에 관심 가져 줄 여유 없어." "그건 쌤이 어린 나이에 승승장구하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지, 나 같은 머저리 새끼들은 하나하나 다 신경 쓰거든요!" 이솜의 무심한 말에 발끈한 지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보다 작은 담임 선생님을 내려다봤다. 그 시선에도 이솜은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나도 부모님 없고, 혼자 자랐어. 이 악물고 공부해서 지금 선생 하고 있는 거고. 근데 넌? 당장 살기 급급해 보이네." "……." "이 정도면 쌤 말 잘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유리 값은 내가 낼 테니까 내일까지 반성문이나 써와. 지금 일까지, 모조리 전부." 이솜은 지우의 어깻죽지를 툭 치고 학교로 덤덤히 걸어갔다. 파출소에서 한참 떨어지자 그제서야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가 들렸다. - [20XX년 3월 XX일 날씨 맑음 지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외롭게 자랐을 지우를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 오늘 지우 덕분에 드라마에서나 보던 담임 선생님의 파출소 출입을 겪었다. 놀랐을 지우를 달래 주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욱 했다. 에휴.. 지우 얘기를 듣다 보니 도준이 생각도 났다. 나 정말 선생 자격이 있는 게 맞을까?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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