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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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 집중! 오늘 교생 선생님이 오실 거야. 4월 말까지 계시니까 고생 선생님 말씀도 잘 들어, 알겠지?" "와! 여자에요?" "여자면 어떻고, 남자면 어때. 물론 이 8반에 여자는 나 혼자로 족하다. 더 필요해?" "아니요!!" 아이들의 흐뭇한 대답에 괜히 코를 비볐다. 이솜은 교실 문을 향해 들어오라고 했고 아이들은 담임의 말에 교실 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누가 들어올지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문이 열리면서 태범이 삐그덕 대며 들어왔다. 어지간히 긴장 했는지 같은 손, 같은 발이 앞으로 나왔다. 이솜은 아이들 앞에서 차마 웃을 수 없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이들도 웃기긴 마찬가지였는지 몇 명은 대놓고 키득거렸다.태범이 교탁에 섰고 이솜은 그를 위해 옆으로 살짝 비켜줬다. "아, 안녕. 나는 이태범 이고 22살이야. 두 달 동안…… 잘 부탁해." 꼭 전학 온 전학생 마냥 소개를 마친 태범이 수줍게 웃으며 말을 마무리하자 아이들이 동시에 책상을 두드리거나 박수를 치면서 새로 온 교생을 환영했다. 그제서 긴장이 풀린 태범은 옆에 있는 이솜을 슬쩍 바라보고 아이들을 향해 웃었다. 아이들은 새로 온 인물에게 궁금한 점을 이것저것 풀어 놓았다. "쌤, 여친 있어요?" "아직은 없어." "오- 그럼 연락 하는 사람 있나 봐. 예뻐요?" "아, 아니야-" 으휴, 또 시작이네. 중얼거린 이솜은 교탁으로 다가가 아이들이 집중 할 수 있게 교탁을 두어번 두드렸다. 아이들은 질문을 멈추고 이솜을 바라봤다. "선생님은 나중에 괴롭히고, 오늘 수업 잘 듣자. 반장은 휴대폰 걷어서 교무실로 가져와 줘." "네에-" 이솜의 말에 아이들은 아쉽다는 듯이 부루퉁하게 입술을 쭉 내밀었다. 그 모습을 모르는 척 넘긴 이솜은 태범과 교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교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교무실로 가는 내내 너무 긴장 돼서 쓰러 질 뻔 했다는 둥,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의 첫 인상에 대한 얘기를 계속해서 나눴다. 교무실에서는 탕비실과 가까운 자리만 남아 있어서 그 곳에 태범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진우가 자리를 만들어 줘야겠다고 했지만 교무실 사정이 마땅하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간 이솜은 태범에게 줄 파일을 정리했다. 일단 일주일에 한 번씩은 수업 실연을 하고 나머지는 수업에 같이 들어와 보조 교사처럼 활동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전달 내용이 정리 되자마자 태범의 자리로 향했다. 각 반의 진도 현황과 수업 시간표 등을 건네니 태범이 진중하게 그 것을 들여다본다. 이솜은 자연스럽게 허리를 숙여 종이에 손짓을 했다. "이건 각 반 진도 얼마나 나갔는지 보여 주는 거고, 이건 수업 시간표." "어? 어어- 아니, 네…….“ 갑작스럽게 들어온 이솜의 체취에 태범이 숨을 훅 들이켰다. 아득히 교무실에서 나던 소음이 모두 멀어지고 이 세상에 당신과 이솜 둘만 남은 듯이 이솜의 목소리만 귓가에서 왕왕 울렸다. 너무 빨라지는 맥박과 커지는 심장 고동에 이솜이 알아차리면 어떡할까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이건 태범 쌤이 했으면 하는 수업.“ 이솜의 체취에 혼자만의 우주에서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는 태범은 그 와중에 직접 수업을 하라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저도 수업 해요?" "그럼 수업 듣기만 하려고요? 교육 실습생 이시잖아요." 수업을 할 줄은 몰랐는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태범에게 어깨를 토닥여 준 이솜은 숙였던 허리를 들어 자신의 자리를 바라봤다. 그 곳에서는 태범과 이솜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8반 반장인 도준이 있었다. 태범에게 지시 사항을 모두 전달 한 이솜은 도준을 보고 웃으며 다가갔다. "휴대폰 다 걷었어?" "……네." "그래 고생 했어. 오늘 수업 잘 듣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나한테 와. 알겠지?" 뭔가를 참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도준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자리에 앉았다. 도준은 이솜에게 평소와 똑같이 꾸벅 인사를 하더니 쿵쾅거리는 발로 교무실을 나갔다. 뭐야, 왜 저래……. 딱히 이유를 모르겠어서 그냥 무시하고 자리에 앉아 수업을 준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자꾸 도준이의 표정과 발걸음이 마음에 걸렸다. 아침 조회 때만 해도 기분 좋아 보였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 오전에 한 시간 수업이 있어 태범과 함께 교실로 들어갔다. 2학년 아이들은 이솜을 따라 들어온 낯선 사람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결국 수업 시간의 반 이상은 태범에 대한 질문시간으로 이어졌다. 정말 다행인 것은 이 반의 진도가 제일 빠르다는 점이었다. 다른 반이었으면 국물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신난다는 표정으로 태범에게 질문을 쏟아 부었다. 남고가 맞는지, 다른 사람에게 지대한 관심을 표현했다. "쌤, 그럼 대학교는 어디 다녀요?" "청운대학교 다니고 있어." "헐, 대박. 솜 쌤이랑 같은 대학교 맞죠?" 이솜의 출신을 어디에서 주워들었는지 한 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 질문에 태범도 이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이들은 이때다 싶어 소리를 더 높였다. "그럼 솜 쌤이 학교 다녔을 때 얘기 해 주세요!" 이렇게 갑자기? 태범에 대해서 하도 궁금해 하길래 아무 말도 안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는 걸 허락 해줬더니만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았다. 한숨을 푹 쉬고 한 마디 하려는 순간 태범이 먼저 말을 꺼냈다. "너희가 생각 한 만큼 그렇게 친하진 않았어. 그냥 건너 건너 얘기만 많이 들었지." "아- 그럼 학교에선 안 마주쳤겠네요?" "안 마주친 게 아니라 못 마주 친 확률이 더 높지 않았을까? 대학은 고등학교보다 훨씬 크거든.” "근데 무슨 얘기를 들었어요? 알려 주세요~” 아이들의 집요한 질문에 나를 슬쩍 쳐다본 태범은 어떻게 해야 하냐는 듯이 이솜에게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학교에서 돌고 있던 소문이 궁금했던 이솜이 태범에게 말 해도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태범은 아이들에게 대학교 내에서 돌고 있는 이솜에 대한 소문을 말 하기 시작했다. "2년이나 빨리 들어온 학우가 4년 장학생 이라는 소문." "헐- 대박!!" "쌤 완전 똑똑 하네요?! 그럼 수능 만점 받았어요?" "그래, 그러니까 너네도 공부 열심히 해서 4년 장학생으로 학교 다녀라." "에이- 저흰 늦었어요!" 아이들은 '난 틀렸어, 먼저 가!' 하는 표정으로 손사레를 쳤다. 이 자식들이. 지금 해도 늦지 않았는데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걸 애써 다독였다. 아이들은 다시 태범을 향해 재잘재잘 떠들어댔고 태범은 그 많은 질문에 뻘뻘 거리면서도 꿋꿋하게 대답을 해줬다. "그리고 또 뭐 있어요?" "음……." 이 말을 해도 되는 건지 고민하던 태범은 어색하게 웃었다. 태범이 머뭇거리자 아이들은 빨리 알려달라며 아우성이었다. 겨우 아이들을 진정 시킨 태범이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인기가 엄청 많았다. 이 정도." "아- 인정." "지금도 인기 많잖아요." 처음 들어보는 두 개의 소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니 아이들은 몰랐던 척 하지 말라면서 왁왁 소리를 질렀다. 아니, 진심 몰랐어. 땀이라도 한 바가지를 흘려줘야 믿을 태세였다. "진짜 몰랐어, 난!" "에이-" 답답한 마음에 주먹으로 가슴을 콩콩 치니 애들은 그런 이솜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더 집요하게 놀리기 시작했다. 수업 종이 끝나기 전까지 놀림을 당할 것 같은 직감에 교탁으로 다가가 책을 폈다. "진도 나가자는 소리를 돌려 말 하는 거지?" - [20XX년 4월 XX일 날씨 좋음 날씨는 좋은데 오늘 일진은 왜 이럼. 소문이 궁금해서 듣고 싶었는데 놀림이나 당하고.. 역시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도준은 오늘도 어김없이 반장의 해야 할 일을 모두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무실로 향했다. 반장이라는 건 귀찮았지만(아마 그래서 반 아이들이 도준에게 떠 밀었을 확률이 높다.) 아침 조회 이후, 이솜을 또 볼 수 있는 건 반장인 도준만의 유일한 특권이었다. "빨리 휴대폰 내라." "네, 형님." 잔뜩 설렘을 가지고 또 칭찬 받을 생각에 교무실 문을 열고 이솜의 자리를 살펴보니 이솜은 온데 간데없었다.화장실이라도 갔나 싶어 이솜의 자리에 휴대폰을 놓으려는 순간, 도준의 눈에 무언가 들어왔다. 이번에 새로 온 교생인 태범의 자리에 이솜이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매우, 정말 가까이 밀착 된 상태로!! 휴대폰 바구니를 쾅 내려놓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친근한 사이처럼 보이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도준의 반응에 주변에 있는 선생님들은 괜히 불똥이 튈까 두려워 머리를 잔뜩 움츠리고 바쁜 척을 했다. 얼마나 가까운지 이솜의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흘러 태범의 어깨 위에 안착 되어 있었고, 평소처럼 흐드러지게 웃으며 무언가를 알려주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뜨거운 게 울컥 올라왔다. "저 새끼……." 낮고 조용히 교생에게 욕을 내뱉었다. 도준의 욕을 들었지만 분명 도준의 심기를 거스린 아이에게 하는 욕이리라 생각한 선생님들은 한 귀로 욕을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도준은 선생님들이 제가 내뱉은 욕을 듣건 말건 두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저건 백 퍼센트 중 이백 퍼센트 남자가 이솜에게 수작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솜이 허리를 펴고 자신과 눈을 마주쳤다. 깜짝 놀랐지만 이솜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도준에게 다가왔다. 도준은 좋은 의미로 심장이 쿵쾅거리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자신의 추한 감정을 들킨 건 아니겠지 싶어 조마조마 했다. "휴대폰 다 걷었어?" "……네." "그래 고생 했어. 오늘 수업 잘 듣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나한테 와. 알겠지?" 평소와 같이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좀처럼 감정을 정리 할 수 없었다. 게다가 태범 쪽을 힐끔 보니 목덜미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감히 누구한테 집적거리는 건지 짜증이 일었다. 결국 발을 쿵쿵 구르며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매우 유치했지만 이렇게라도 마음을 풀어야만 했다. 교실에 돌아간 도준은 제 옆에 앉아서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수혁을 쳐다보고는 자리에 팩 엎드렸다. "뭐야, 형 무슨 일 있어?" 수혁이의 관심에도 도준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 본 수혁은 도준의 뒤통수를 한대 갈겨주고 싶었지만 애써 수학 문제로 시선을 돌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참, 초딩 같아 보였다. * "으, 힘들어……." 이솜은 고단한 몸을 소파에 누이고 가방을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 던져 놨다. 천만 다행으로 오늘 야자 감독은 아니었다.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슬쩍 보니 6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뭐라도 먹을까 하다 귀찮아서 그냥 그대로 누워 있었다. 딱히 챙겨 보는 TV 프로그램도 없던 터라 시간만 하릴없이 보내고 있었다. 그 때 가방 안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이 벨소리를 울렸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차에 혹시 학생 전화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급히 꺼내서 화면을 확인하니 다름이 아니라 태범이었다. 아, 귀찮아. 받지 말까. 순간 스치고 지나간 생각에 고개를 가로저어서 털어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내 이름 보고 받을까, 말까 고민 했지?] "……." 완전 딱 걸렸다. 뜨끔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수화기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흐흐, 딱 맞았나 보네. 밥은 먹었어?] "아니- 귀찮아서 아직." 이솜은 태범에게 대답하며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한쪽 어깨와 고개로 휴대폰을 고정 시키고 다리를 주물렀다. [나와, 밥 먹자. 내가 살게.] "갑자기 웬 밥?" [그냥. 그래서 안 먹을 거야?] "음……." 귀찮아서 집에서도 아직 밥을 먹지 않은 이솜은 살짝 고민이 됐다. 나가서 밥을 먹는 것과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것과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귀찮은지 생각하고 있었다.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않는 이솜의 말을 기다리는 태범이 낮게 웃었다. [이것 저것 재지 말고 그냥 나와. 친구랑 밥 먹는다고 생각해.] "……, 어디에 있는데?" [지금은 역 앞에 있어.] "알겠어, 갈게." [천천히 나와. 학교 앞으로 갈게.] "응." 전화를 끊은 이솜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청바지에 카디건 차림이라 딱히 갈아입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머리를 다시 정리하고 거울로 얼굴을 살펴보니 딱히 더 고쳐야 할 점은 없어 보였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화장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좋은 피부를 물려주신,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 나지 않는 부모님께 감사했다. 아무튼 이솜은 테이블 위에 있는 가방 안 소지품도 확인한 뒤 단화를 신고 그대로 집 밖을 나섰다. 학교 정문 앞에는 이솜을 기다리는 태범이 멋있게 서 있었다. 학교에서 입는 것처럼 정장이 아닌 가벼운 니트와 청바지 차림이었다. 게다가 한 쪽 머리는 까서 넘겼다. 처음 보는 모습에 이솜이 어깨를 으쓱였다. "오- 이태범. 대학생 같은데?" "대학생 맞거든." "아, 맞다. 크크. 뭐 먹을래?" "뭐 먹고 싶어? 네가 먹고 싶은 거로 먹자."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거리로 나갔다. 하교시간은 한참 지났고, 야자 하는 아이들은 학교 안에 있었기 때문에 거리엔 이솜의 학교 학생들이 없었다. 아마 있었어도 이솜을 보면 잔소리를 들을 것이 뻔해서 멀리 도망 갔을 것이다. 메뉴를 한참 고른 두 사람은 결국 닭갈비집으로 들어갔다. "비싼 거 먹지." "그러게. 근데 오늘은 내가 살게." "내가 불렀는데?" "후배한테 밥 얻어먹는 선배가 어디 있냐?" "그런가-" 태범은 이솜의 말에 빠르게 수긍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을 다닐 땐 나이 때문에 아래 학번과 도통 친해 질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후배에게 밥을 사 주는 선배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됐다. 두 사람은 자리를 하나 차지하고 마주보고 앉았다. 주문을 하는 사이, 태범이 수저와 물을 모두 정리 해 놨다. 이솜은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왜 윤리교육으로 온 거야?" "음, 그냥. 외우기 편하잖아." 솔직한 대답에 할 말을 잃었다. 그래, 외우기 편해서 결정 한 것도 없지 않아 있긴 하지. 태범은 그런 걸 질문이라고 하냐는 표정으로 이솜을 바라봤다. 그러다 한 무리와 눈이 마주쳤다. 이솜의 눈도 커졌고, 이솜과 마주친 무리의 눈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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