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값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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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솜이 그들에게 말 했다. "야, 너희가 왜 여기 있어?" "아하하- 안녕하세요, 쌤. 혹시 데이트 중?" "오오! 교내 커플을 우리가 목격 하다니!" "그런 거 아니거든!" 도준과 그의 친구들이었다. 하필 그 많고 많은 식당 중에 얘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오다니……. 아이들은 이왕 이렇게 된 거 합석하자면서 두 선생님이 앉은 테이블 옆으로 우루루 몰려와 앉았다. 아직 주문을 하지 않았는지, 전에 앉아 있던 테이블은 참 깔끔했다. 한숨을 푹 쉬고 아이들을 바라봤지만 무해하고 순진무구하게 웃는 애들을 보아하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 쌤 웃었다!" "이 놈들이, 너희 고 3이야, 고3!" 들킨 표정에 괜히 윽박질렀더니, 그녀의 팩트는 데미지를 하나도 주지 않았는지 뭘 시켜 먹을까 저들끼리 신나서 막 떠들었다. 앞에 앉은 태범에게 괜히 미안했다. 태범은 얼떨결에 일어난 일들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이솜은 손을 뻗어 태범의 손등을 톡 쳤다. "미안." "응? 아- 미안해 할 거 없어. 우연하게 일어난 건데, 뭘." "왜 우리 쌤한테 반말해요?" 분명히 둘의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불청객 한명이 불쑥 끼어들었다. 끼어든 사람은 이솜의 옆 자리에 앉은 도준이었다. 도준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태범을 들여다봤다. 이놈은 또 왜 이러나……. 속으로 한숨을 쉰 이솜은 도준을 바라봤다. 그러자 도준이 태범에게 두었던 시선을 돌려 이솜을 바라봤다. "태범 쌤도 '우리 쌤'에 들어가는 거지?" "아닌데, 이솜 쌤만 '우리 쌤'인데." "말이 짧다?" "요." 이솜의 말에 말 좀 짧으면 어때서, 하며 툴툴 대길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으휴, 덩치는 산만한 게. 이솜의 행동을 본 태범은 그냥 웃음을 흘렸다. 태범의 웃음을 눈치 챈 이솜이 머쓱하게 손을 거뒀다. "얘들아, 쌤이 사 주실거야. 먹고 싶은거로 시켜." 태범은 아이들에게 폭탄 발언을 던졌다. 그가 말하는 '쌤'은 본인이 아니라 제 앞에 앉아 있는 이솜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의 밥 값을 내야겠다 하던 마음을 먹고 있긴 했지만, 막상 제 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게 되니 기분이 살짝 언짢아졌다. 하지만 직장 생활 1개월 차인 이솜은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마음껏 시켜." "와! 감사합니다, 쌤." "죄송해요, 얻어먹으려고 자리 옮긴 건 아니였어요."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을 이솜에게 차례차례 내 뱉은 아이들은 도준을 제외하고 메뉴를 골라 마구잡이로 시켰다. 이솜은 통장에 스쳐 지나갈 돈이 떠올라 속으로 엉엉 울었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긴 하지만, 본인을 위해 더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크긴 했다. 도준은 아이들의 망나니 짓을 잠자코 바라보다가 선을 넘게 시키는 모습에 제지를 했다. 그래도 아이들보다 형이라 그런지 나름 의젓한 모습을 보여줬다. "쌤, 저 성인이니까 술 마셔도 돼요?" 의젓하지 않았다. * 왠지 모르게 급식실 데쟈뷰를 느낀 이솜은 식사를 마치고 카운터로 향했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이라도 사겠다며 먼저 나가 있던 상태였다. 태범은 담배를 한 대 피운다고 먼저 자리를 뜬지 오래였다. 영수증을 가지고 카운터 앞에 서니, 종업원이 영수증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왜 그러세요?" "아-, 손님. 결제 이미 하셨어요." "네? 누가요?" "키 크신 남자분이요." 종업원은 계산을 마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는지 살짝 수줍게 웃었다. 이솜은 식당을 나서며 곰곰이 생각했다. 자신과 함께 밥을 먹은 6명의 남자들 중에 키가 작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눈대중으로 대충 봐도 평균 175cm는 가뿐히 넘는 신장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식당 앞에는 그 장신을 소유한 6명의 남자가 아이스크림을 까먹으며 노닥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들 중에 한 명이 오늘 식사 값을 냈다는 건데, 가장 유력한 후보는 대학생인 태범과 이사장의 외손자 도준 뿐이었다. 누가 범인인가, 아니 누가 식사를 대접했는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터가 그녀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쌤! 눈에 뭐 들어갔어요?" "……." 허를 찌르는 한터의 말에 이솜은 허탈하게 웃었다. 일단 한터는 범인(?)이 아니었다. 6개의 시선이 닿자, 이솜은 그들에게 다가갔다. 도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솜에게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초코맛 아이스크림이었다. 초코맛 보다는 딸기맛을 더 선호하는 이솜은 일단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었다. "땡큐." "표정은 별로 땡큐가 아닌데요?" "티나?" "조금?" 매력적으로 씩 웃은 도준은 다른 아이스크림과 바꿔주었다. 이솜의 손에 올라간 아이스크림은 이솜이 선호하는 딸기맛이었다. 아까 보다 확 밝아진 표정에 도준이 큭큭 대며 웃었다. 아- 선생님 딸기 맛 좋아하는구나. 알콩 달콩한 둘만의 분위기에 태범이 불쑥 끼어들었다. "잘 먹었어요, 솜 쌤." "아 맞다. 잘 먹었습니다!" "진짜 완전 배부르게 먹었어요. 저희 것 까지 내 주시느라 텅장 된 거 아니에요?" 태범의 말에 의아하게 그를 바라봤다. 태범이 식사값을 내지 않았다니? 그럼 도준이가 냈나? 아이들은 태범의 감사 인사를 따라 입에 넣었던 아이스크림을 꺼내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순간 입에 들어갔다 나온, 흉물스럽게 녹아 내린 아이스크림에 시선이 갈 뻔 했지만 눈가에 시선을 고정 시켰다. "내가 밥 산 거 아냐." 순간 싸해진 분위기에 모두가 서로의 눈치를 봤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온 갓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내지 않았는데 모두가 식당에서 나왔다. 먹튀를 한 걸까? 식사비는 도대체 누가 낸 거지? 설마 선생님이 먹튀를 하시겠어? 소리 없는 난리통에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제가 냈어요, 밥 값." 무심한 눈으로 이솜을 내려다보며 말 한 사람은 수혁이었다. "네가 밥 값을 왜 내?" "저는 돈이 썩어 나거든요." 수혁은 재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었다. 그 제스쳐에 도준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이 멋있나, 상남자다 라면서 수혁을 추켜세웠다. "그래도 쌤이 사려고 했는데…….." "됐어요. 이미 계산 다 했는데 뭐 어때요." 이솜은 수혁에게 미안했다. 수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저희랑 코노 가요!" 축 쳐져 있는 이솜에게 재하가 소리쳤다. 코노? 고개를 갸웃한 이솜을 보고 재하가 세대 차이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코인 노래방 말 하는거지?" "아, 역시 우리 대학생 성님. 솜 쌤은 이런거 너무 모른다니까." 재하의 줄임말을 알아 들은 태범이 대답하자 재하는 좋아 죽으면서 태범에게 매달렸다. 두 사람을 필두로 그들은 코인 노래방으로 향했다. 딱히 좋아하는 노래가 없는 이솜은 그 작은 방에서 미친듯이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체력이 쭉쭉 빨리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확실히 고등학생들이랑 놀기엔, 그녀의 체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_ [20XX년 4월 XX일 날씨 그닥 하교 후 태범이와 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우리 8반 아이들을 봤다. 여차저차 합석을 했고, 밥 값은 자연스럽게 내가 **하게 됐다. 그런데 키 큰 사람이 밥 값을 냈다고 한다. 우리 중에 키 작은 사람은 나 뿐인데, 도대체 누굴까? 싶었다. 그런데 수혁이가 모두 냈단다……. 흠…….] * "오늘 태범 쌤 수업 시연 있는 거 알죠?" "으으- 네. 준비는 했는데 떨려서 잘 못 하면 어떡하죠?"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망치는 거지." 이솜은 악담과도 같은 말을 마치고 호탕하게 웃었다. 그 말에 태범의 표정과 어깨는 점점 더 굳어갔다. 그렇지 않아도 이제 막 교생 실습을 시작했는데 수업의 흐름을 파악하기도 전에 덜컥 수업 실연을 하는 날이 다가왔다. 교수님들 앞에서 하는 시연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을 것이다. 교수님들은 틀린 내용이 있으면 바로바로 지적하지만, 아이들은 모르는 내용을 새로 배우는 입장이기 때문에 태범이 틀린 말을 해도 그것이 틀린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태범과 이솜은 수업이 있는 8반 앞에 멈춰섰다. 태범은 이솜의 다리를 붙잡고 엉엉 울고 싶었다. "솜 쌤, 잠시만요. 다시 생각 해 봅시다.“ "무슨 생각이요?“ "고 3이면 이제 곧 수능인데 제가 틀린 거 가르치면 어떡해요!!!" 태범의 악 지르는 말에 이솜은 어깨를 으쓱 한 뒤, 태범의 말을 개무시 하고 교실 문을 열었다. 태범은 먼저 교실로 들어가는 단호한 이솜의 뒷모습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런 모습에 왜 설레는 거야……." 이상한 취향을 가진 태범은 준비한 자료를 가지고 이솜을 따라 들어갔다. 교탁 앞에는 이솜이 오늘 자신 대신 태범이 수업을 한다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재미있겠다면서 기대하는 눈으로 태범을 바라봤다. 그 눈빛에 태범의 어깨에는 부담감이 차곡차곡 쌓아져 가고 있었다. 결국 준비한 수업을 시작한 태범은 시간이 지날 수록 자연스럽게 선생님의 역할에 녹아들고 있었다. 교실 뒤에서 전체적인 반 분위기를 살피면서 졸거나 딴 짓을 하는 아이들의 집중력을 돋궈주는 이솜의 지원 사격 덕분에 수업은 점점 더 탄력을 받아갔다. "쌤.“ "응? 왜? 모르는 거 있어?" 맨 뒤에 앉아 있던 도준이 돌연 이솜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솜은 도준의 손을 자연스럽게 뿌리치고 그에게 다가갔다. "아뇨, 그냥요.“ "……. 수업에 집중 해." 도준은 장난스럽게 이솜에게 메롱을 시전하고 다시 앞에서 열심히 수업을 진행하는 태범을 바라봤다. 도준의 장난에 이솜은 그의 머리카락을 아프지 않게 살짝 잡아 당겼다. 도준은 그런 이솜이 신경도 쓰이지 않는 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었다. 사실 도준이 이솜을 부른 이유는 태범이 이솜에게만 시선을 고정 시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업에 집중하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쫓는 시선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태범은 이솜을 눈으로 쫓다가 도준의 행동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 이솜과 단 둘이서만 한 식사는 아니었지만 나름 잘 먹은 식사자리에서 도준은 아이스크림을 핑계로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카운터로 다가갔다. "계산 해 드릴까요?"  카운터 앞에 서 있던 종업원이 잘 생긴 도준의 얼굴을 보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도준은 '네.' 하는 짧은 대답과 함께 카드를 내밀었다. 도준의 눈앞으로 머리카락이 내려왔다. 눈 앞을 살짝 가리는 머리카락이 거슬렸는지 한 손으로 자연스럽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도준의 앞에 있던 종업원은 카드를 받아 든 채로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머리를 쓸어넘기는 도준의 모습을 눈과 마음 깊이 새겨두었다. "계산, 안하세요?" 낮게 울리는 도준의 목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린 종업원이 허둥지둥 대면서 포스기에 있는 테이블을 확인하고 결제를 시도했다. "3번 4번 테이블 총 10만 3천원입니다." 그냥 닭갈비 뿐인데 뭘 그리 많이도 처먹었는지, 이걸 이솜이 냈을거라 생각하니 인상이 저절로 굳어졌다. 그 모습 마저도 종업원의 눈에는 멋있게만 보였는지 카드 결제기가 영수증을 전부 다 뽑아 낼 때까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종업원은 카드와 영수증을 건넸다. "영수증은 버려주세요." 도준은 깔끔하게 카드만 받아 들고 밖으로 나섰다. 어쩜, 세상에 저렇게 잘 생겼는데 왜 학생일까. 작게 중얼거린 종업원은 도준을 따라 나서는 다른 사람을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진작 저런 사람들을 보지 못했을까, 그녀는 카운터 앞에서 휴대폰만 하던 자신을 나무라며 다음부터는 손님들을 잘 봐야겠다, 다짐을 했다. 도준을 따라 나선 사람은 다름 아니라 수혁이었다. 도준은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까운 편의점으로 향했다. “형.” "?“ 낯 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수혁이 다가오고 있었다. 도준은 수혁을 잠잠히 기다려줬다. “형이 계산 했어?” “응. 근데 너희 왜 그렇게 많이 처먹었냐. 무슨 닭갈비가 10만원이 나와?” 도준이 마침 딱 걸렸다는 투로 수혁에게 우다다 쏘아 붙였다. 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잘 흘리는 수혁이 무심하게 대답했다. “형도 많이 먹었잖아.” “아무튼.” “흐흐, 쌤이 완전 부담스러워 하시겠는데?” 수혁의 말에 마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편의점으로 가던 발이 뚝 멈췄다. 수혁은 옆에서 걷던 도준이 느껴지지 않자 뒤를 돌아봤다. 그 곳에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서 있는 도준이 있었다. 수혁은 그 모습이 웃겨서 사진으로 찍어 둘까 하다가 그에게 키득거리며 다가갔다. "그것 까지는 생각 못 한 거야?“ "응……. 부담스러워 하면 어쩌지?“ "음. 그럼 이건 어때?" 수혁이 해결책으로 내 놓은 방안은 두가지였다. 첫째는 태범이 계산 한 것처럼 속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단 도준은 이솜이 태범에게 호감 자체를 보이는 것이 꼴 보기 싫다면서(사실 태범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기각 시켰다. 이들이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면, 이 방안을 이루기 위해서는 태범을 포섭해야만 했다. 둘째는 모든 상황을 알고 있고 금전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은 사람, 즉 수혁이 밥값을 냈다고 하자는 것이었다. 두개의 방안 모두 도준의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자신을 부담스러워 할 이솜보다는 훨씬 나았다. 도준은 수혁의 두번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결정하고 아이스크림 사서 가시 가게로 향하니 골목에서 옷을 털며 나오는 태범을 발견했다. 태범은 수혁과 도준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고, 도준은 그런 태범에게 작은 미소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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