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한밤의 불청객

2876 Words
20.한밤의 불청객 아내와 처남이 괴물로 변한 뒤부터 신진우 씨에게는 좋지 않은 잠버릇이 생겼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한밤중에 자주 깨고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날은 몹시 목이 말라 잠에서 깨었다. 그는 하품을 하며 거실로 나왔다. 주방으로 가려다 거실이 난장판인 것을 발견했다. “아니!? 밤사이 또 무슨 일이지?” 소파가 뒤집혀져 있었고 텔레비전을 올려 두는 서랍장도 모조리 열려 있었다. 벽난로 위도 엉망진창이었다. 계절마다 피는 작은 풀꽃과 들꽃을 꽃아 두는 꽃병들이 죄다 쓰러져 있었다. 꽃병에 꽂혀 있던 보라색 꽃들은 거실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밤사이 좀도둑이 든 것처럼 누군가 집안을 마구 헤쳐 놓은 것이다. “설마―” 신진우 씨에게는 불안감이 퍼뜩 스쳤다. 혹시 시원이마저 괴물로 변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게 아닐까? 그는 이층 시원의 방을 올려다보았다. 불이 꺼진 방은 조용했다. “그럴 리 없어.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는 마구 머리를 흔들었다. 딸마저 괴물로 변했을 리는 없다고 철썩 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는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불안한 마음으로 계단을 한걸음 한걸음 올랐다. 계단 중간쯤 오르다 빠끔히 열린 일층 시진이 방에서 불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그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띠- 띠- 뜨르르- 띠-” “커- 컥- 커컥-” 이상한 전자음과 기도가 막힌 짐승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할 때 내는 소리였다. “설마 시진이가? 갓 돌이 지난 애가 괴물로 변했을 리는 없어. 아기 괴물은 여태 못 봤는데?” 하지만, 하지만― 이 집에서는 상상도 못할 별의 별 일이 이미 일어났지 않았는가? 신진우 씨는 계단을 올라 시원의 방으로 가려던 것을 단념하고 불빛이 흘러나오는 시진이의 방으로 다가갔다. 문 앞에 물이 묻은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인간의 발자국이 아니었다. 그는 숨을 죽이고 문틈으로 방을 들여다보았다. 물에 젖은 검은 복장을 한 작은 생명체가 잠든 시진이 옆에 서 있었다. 등을 돌리고 있어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었다. 생명체의 두 손에는 휴대용 텔레비전 같은 기계가 들려 있었다. 기계에서 뻗어 나온 아주 가느다랗고 기다란 관은 잠든 시진이의 콧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 뇌 속까지 닿아 있었다. 커- 컥- 커컥- 하던 소리는 코 안으로 찔러 넣어진 관 때문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시진이가 내는 소리였다. 의사가 위내시경을 찍듯, 생명체가 시진이의 기억을 검색하고 있었다. 생명체의 손에 들린 것은 뇌 스캐너였다. 삼촌의 무릎에 누워 분유 병을 빨던 시진이의 손이 시원이 매고 있는 유리병을 향해 뻗치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유리병 안에는 루미가 들어 있었다. 시진이가 루미를 맨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이 시진이의 시선으로 잡히고 있었다. “루미 소 리톤 메모라테 쿠르 북셈룩 슬루르 꽥(루미에 대한 기억 하나가 검색되었군).” 생명체는 중얼거리며 두 번째 기억을 검색했다. 욕조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인 루미의 모습과 루미를 콕콕 찔러대는 시진이 손이 화면에 나타났다. “루미 소 리톤 오테르 메모라테 쿠르 북셈룩 슬루르 꽥(루미에 대한 또 다른 기억 하나가 검색되었군).” 하지만 생명체는 쓸 만한 다른 기억을 찾고 있었다. “카프리콘 품부 소 리톤 메모라테 쏭 느엑스트(카프리콘 모듈에 대한 기억은 왜 없지)?” 생명체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다. “넌 뭐냐?!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문을 확 열어젖힌 신진우 씨가 1미터 남짓한 생명체를 향해 소리 질렀다. 생명체가 뒤돌아보았다. 신진우 씨는 넋을 잃은 채 생명체를 내려다보았다. 해안에 떠밀려온 괴물고기를 닮아 있었지만 그들보다 키가 좀 크고 훨씬 인간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넌 외, 외계인?” 신진우 씨가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생명체가 발바닥으로 문을 차서 쾅 닫아 버렸다. 띠- 띠- 띠르르- 안에서 시진이의 뇌를 검색하는 기계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신진우 씨는 문을 열어보려 했다. 하지만 굳게 잠겨 있었다. “열어라!” 그는 문을 쿵쿵 쳤다. 하지만 열어 주지 않았다. 그는 문을 부술 것을 찾기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 옆, 거실 벽에 시커먼 네 개의 형체가 나타났다. 말벌을 닮은 탈것이 세워져 있었다. 탈것들의 한가운데는 단추가 풀린 코트처럼 쩍 벌어져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이것들은 뭐지?” 그가 낯선 탈것들 앞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문이 닫힌 주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방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조금 전 시진이 방에 있던 녀석처럼, 알아먹지 못할 말로 누군가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는 주방문을 확 열어 젖혔다. 식탁에 앉아 있던 검은 복장을 한 세 명의 작은 생명체가 신진우 씨를 빤히 쳐다보았다. 식탁 한가운데는 복숭아씨가 그득 쌓여 있었다. 일주일에 단 한 번 마을에 들르는 부식차에서 사놓은 복숭아였다. 신진우 씨의 화를 머리끝까지 치밀게 한 것은 그들이 복숭아를 모두 바닥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바다 사나이 신진우 씨가 가장 아껴 먹는 진(노간주나무 열매를 향료로 넣은 독한 술)이 바닥을 드러냈다는 사실. 그것이 그를 미치고 달뜨게 했다. “나의 진을 바닥내다니! 용서할 수 없다!” 그는 식탁 한가운데 놓인, 이제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진 병을 향해 달려갔다. 손에 위스키 잔을 각각 들고 있던 세 명의 생명체 중 하나가 신진우 씨를 향해 복숭아씨를 내뱉었다. 무지무지한 속도로 날아오는 복숭아씨에 이마를 맞고 신진우 씨가 주춤거렸다. 머리 위에서 별이 뱅뱅 돌았다. 쓰러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자신의 허리에도 못 미치는 펭귄만한 생명체들, 그들이 복숭아씨 하나로 바다 사나이의 자존심을 구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셋을 향해 내뱉었다. “한꺼번에 덤벼다오!” 하지만 셋은 자기들끼리 뭐라 중얼거리며 관심도 없다는 듯 신진우 씨를 싹 무시해 버렸다. 이런 반응에 더욱 화가 난 그는 소리를 지르며 셋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나타난 생명체가 팔짝 뛰어올라 그의 어깨에 올라타 두 손으로 턱을 감고 젖혔다. 시진이 방에 있던 녀석이었다. “비겁한 놈. 이거 안 놔?!” 그는 두 팔을 써서 턱에 감긴 손을 뿌리치려고 발악했다. 그러자 식탁에 앉아 있던 셋 중 한 녀석이 다가와 팔짝 뛰어오르더니 정확히 신진우 씨의 코 밑을 강타했다. 일행 중 대장인 듯한 녀석이었다. 신진우 씨는 급소를 맞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이 털보 인간의 뇌를 검색해 봐. 카프리콘 모듈에 대한 기억이 있는지.” 드까오르 공작이 보낸 꿈꿈족 수색대의 대장 마리우스가 꿈꾸니 언어로 명령했다. 신진우 씨의 어깨에 올라탔던 부하가 뇌 스캐너의 가느다란 관을 그의 콧구멍에 찔러 넣었다. 전혀 흔적이나 상처를 내지 않는 관의 끝이 뇌 속까지 다다랐다. 뇌 세포의 곳곳이 검색되고 있었다.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카프리콘 모듈은커녕 루미에 대한 기억마저 존재하지 않습니다.” “루미는 이미 이 집을 떠난 게 분명해. 그리고 루미가 이 집에 카프리콘 모듈을 숨겨 놓았을 리는 없지. 이 인간의 뇌에서 오늘 밤의 기억을 전부 지워라. 그리고 떠나자.” 마리우스가 명령했다. 부하가 뇌 스캐너로 자신들에 대한 기억을 찾아내고 신진우 씨의 뇌세포 몇 개를 태워 버렸다. 콧구멍에서 한줄기 가느다란 연기가 빠져 나왔다. 뇌 스캐너의 버튼을 누르자 신진우 씨의 코에서 가느다란 관이 빠져 나와 기계 속으로 쏙 들어갔다. 넷은 거실에 세워둔 베스파수트 속으로 각각 들어갔다. 탈것을 끼워 입은 다음 열린 부분을 채워 잠그고 엔진을 발진시켰다. 접힌 날개가 벌의 날개처럼 붕붕거렸다. 그들은 차례차례 벽난로 속으로 기어들어가 굴뚝 위로 치솟았다. 일렬로 지붕 위 굴뚝으로 빠져 나온 베스파수트 네 대가 날개를 펼치고 루미가 사라진 밤바다를 향해 날아갔다.
Free reading for new users
Scan code to download app
Facebookexpand_more
  • author-avatar
    Writer
  • chap_listContents
  • likeAD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