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루앙으로 가는 길
달빛도 별빛도 닿지 않는 바다 속은 깜깜했다. 루미는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속을 헤엄쳐갔다. 바닷물은 어항 속보다 훨씬 차가웠다. 어항 속에 담긴 물처럼 가만있지도 않았다. 팔과 다리를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작고 빠른 해류에 이리저리 떠밀렸다.
비탈진 모래바닥이 나타났다. 루앙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지만 도무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몰랐다. 눈앞으로 천천히 지나가는 황색 물고기 한 마리가 보였다. 뾰족한 화살촉 모양을 한 히메치였다.
“혹시 루앙으로 가는 길을 아세요?”
루미가 히메치에게 물었다.
“루앙?”
“바다 속에 있는 잠꾸니들의 도시인데요.”
“미안하구나. 난 바다 속에 그런 도시가 있다는 말은 여태 들어 보지 못했다.”
히메치는 갈 길이 급한지 어디론가 곧 사라져 버렸다.
루미는 더욱 깊은 바다 속으로 나아갔다. 바다 속은 한치 앞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지고 있었다.
깊이 내려갈수록 모래바닥이 사라지고 암초 지대가 나타났다.
이젠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깊이 내려갈수록 바닷물이 더욱 세게 짓눌렀다. 바닷물은 차가웠지만 더 이상 온도는 내려가지 않았다. 물의 온도보다 수압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건포도처럼 찌그러진 공기주머니가 곧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푸하!”
루미는 점점 세게 짓누르는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공기를 모두 뱉어냈다.
‘너무 깊은 바다 속에서는 이게 소용없나 봐.’
루미는 공기주머니에서 공기를 모두 빼 버리기로 했다. 공기주머니를 움츠리며 입과 아가미로 숨을 내뱉었다. 입과 어깨 안쪽 아가미에서 물방울이 방울방울 솟아오르며 공기주머니가 등 속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이제 훨씬 홀가분했다.
루미는 경사진 바다 밑바닥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하지만 아직도 대륙붕(육지나 큰 섬 주위, 바다 깊이가 평균 200m까지 이르는 비탈이 심하지 않는 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다.
루앙은 멀고 깊은 바다 속 어딘가에 있다. 루앙으로 가려면 더욱 깊고 먼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루미는 팔과 다리를 저으며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앞에서 망상어 두 마리가 쏜살 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무언가에 쫓기고 있었다.
“저리 비켜! 꼬마야!”
획―
망상어 두 마리가 지나치며 급류를 일으켰다. 뒤이어 방금 지나친 망상어들을 따라 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물고기가 지나갔다.
루미는 망상어들이 일으킨 급류에 떠밀려 몸을 데굴데굴 굴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네 번 반……?”
루미는 자신이 몇 바퀴나 구르고 있는지 세다가 까먹고 말았다. 몸의 중심을 잡고 얼른 팔과 다리를 휘저었다. 다시 몸이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자신이 나아가고 있는 쪽이 해저 방향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방향을 알지 못하고 계속 나아갔다간 오히려 수면으로 올라가 버릴 수 있었다.
‘내가 몇 바퀴를 굴렀는지 알 수만 있다면, 방향을 짐작하겠지. 하지만 세다가 까먹고 말았어. 공기를 내뱉어 봐야겠어. 바다 속에서 물방울은 물보다 가벼워서 둥둥 떠오를 거야. 물방울이 올라가는 쪽이 수면일 거야. 나는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면 돼. 그러면 더 깊은 바다 속으로 나아갈 수 있어.’
루미는 허우적거리는 것을 멈추고 공기를 뱉어 보았다. 물방울이 자신이 나아가고 있던 방향과 같은 쪽으로 솟고 있었다.
‘어휴! 해저 쪽이 아니라 수면으로 올라가고 있었잖아.’
루미는 잘못 나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미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더욱 깊은 바다 속으로 헤엄쳐 내려갔다.
‘이곳은 칠흑처럼 어두운 바다 속이야. 엄마는 이렇게 어두운 바다 속에서 어떻게 방향을 짐작할 수 있었지?’
엄마와 같은 어른 꾸니들은 루앙의 밖, 깜깜한 해저에서도 전혀 방향을 잃지 않고 여행할 수 있었다.
루미에겐 바다 속 도시 루앙의 밤거리에 멜론 가로등들이 켜져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멜론 나무에는 빛을 발하는 멜론이 열렸다. 밤거리마다 희미하게 떠 있는 멜론 가로등 때문에 루앙의 밤은 아늑했다. 루앙의 밤은 꼭 연등 나라 같았다. 낮에는 도시의 천장 한가운데 움직이지 않는 태양이 떠 있었다.
그 태양은 새하얀 빛을 뿜는 수정 공처럼 도시의 천장 한가운데 못 박혀서 도시를 환하게 비추었다. 하지만 루앙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빠져 나오면 주위는 칠흑 같은 해저의 어둠이 감싸고 있었다.
획- 획- 획-
바다 속 저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리이지?”
루미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때 눈앞으로 커다란 망치처럼 생긴 머리에 피부가 시커먼 바다짐승이 지나가고 있었다. 루미의 몸보다 수백 배는 컸다.
“아저씨. 혹시 루앙으로 가는 길을 아, 아세요?”
루미는 겁에 질린 채 물었다. 검고 커다란 바다짐승이 뒤돌아보았다.
“왜 그렇게 겁에 질려 있니 꼬마야?”
“다, 당신 모습이 너무 낯설고 무서워서요.”
“난 망치상어 ‘빅해머’라고 하지. 넌 개펄에서 진흙 팩을 하며 사는 짱뚱어처럼 생겼구나. 난 너 같은 정체불명의 꼬마는 먹잇감으론 거들떠보지도 않지. 그런데 넌 이렇게 깊은 바다 속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루앙으로 가는 길을 찾는 중이었어요.”
“그곳은 지구의 북쪽에 위치한 아주 깊은 바다 속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 음. 너무 깊고 차가워 나처럼 우아한 바다짐승도 가기 힘든 곳 말이야. ‘하늘의차가운눈물섬’으로 가는 정어리 떼는 알지도 몰라. 이맘때 쯤 렝크가 이끄는 정어리 떼는 북쪽 한류를 찾아가거든.”
“하늘의차가운눈물섬이요?”
“‘라그리마 섬’ 또는 ‘눈물의 섬’이라고도 하지. 아주 멀고 먼 바다에 떠 있는 외딴 섬이라고 들었어. 이곳에서 정확한 방향은 북북쪽이지.”
빅해머 씨는 오른쪽 앞 지느러미로 북북쪽을 가리켰다.
“그 라그리마 섬 너머 바다 속 어딘가에 루앙이 있다고 했어. 지구가 탄생하고 인간이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생겼다는 전설 속의 바다 속 도시이지. 하지만 그런 곳이 실제 있는지는 나도 몰라.”
“그곳은 실제로 존재해요. 전 그곳에서 왔거든요. 그런데 당신이 조금 전 이상한 소리를 냈나요? 휘파람 소리 같았는데. 아주 가끔 루앙의 하늘 너머에서도 그런 소리가 났거든요.”
“가만. 저건 범고래가 내는 소리야. 범고래 떼가 먹잇감을 찾고 있는 중이군.”
“이렇게 깊은 바다 속에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먹이를 찾죠?”
“꼬마가 질문이 많구나. 그들은 초음파라고 하는 것을 내보내지. 그것이 다른 물체에 닿아 되돌아오면 그 물체의 위치를 느낄 수 있지.”
“초음파……?”
“아무튼 꼬마야, 고향을 찾아가는 네게 행운이 있길 빈다. 육지의 정글보다 험한 이 바다 속에서 그런 행운을 기대한다는 건, 날치가 바다갈매기가 되었다는 허풍보다 믿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하하하.”
이렇게 말하고 빅해머 씨는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져 갔다.
루미는 엄마가 공기주머니를 쥐어짜며 입속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던 때가 기억났다. 조금 전 범고래가 내는 소리와 비슷했다.
“초음파로 위치를 알아낸다고?”
루미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엄마가 초음파를 보낼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루미는 숨을 들어 마시며 등을 바르르 떨었다. 그러자 공기주머니가 낙하산처럼 부풀며 툭 튀어나왔다. 목구멍에서 공기주머니로 이어진 두 개의 구멍을 살짝 열고 공기주머니를 쥐어짜 보았다.
“끼리 끼르 끼이리 끄르으―”
목에서 낯선 소리가 새어나왔다. 곧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그러자 바다 속 모습이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환하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깊은 바다 속에서 움직이는 고기떼와 저 밑에 솟아 있는 바위 절벽들을 느낄 수 있었다.
“되돌아온 소리가 눈이 되었어. 이렇게 깜깜한 곳에서, 엄마는 눈이 아닌 소리로 볼 수 있었던 거야!”
루미는 어른 꾸니들이 깜깜한 바다 속을 맘대로 헤엄쳐 다닐 수 있는 비결을 스스로 알아내자 아주 아주 기뻤다.
바다 속으로 무조건 깊이 들어가지 않고 빅해머 씨가 가리켜 준 방향을 향해 거의 일직선으로 헤엄쳤다. 루미는 해안에서 멀어지며 더욱 깊고 큰 바다로 나아가고 있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키 큰 해초 군락을 넘자 우뚝 솟은 봉우리와 톱니처럼 울퉁불퉁한 바위산이 나타났다. 바위산을 가로지르자 갑자기 바닥이 치솟으며 수직으로 깎아지른 원형의 절벽이 나타났다. 루앙의 입구에도 저런 모양의 절벽이 있었다.
“저 너머가 루앙이야! 이미 라그리마 섬을 지나온 게 분명해.”
루미는 신이 났다. 바다 속을 날듯 절벽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하지만 앞을 가로막고 있는 절벽을 넘어야 했다.
루미는 공기주머니를 부풀리며 위로 솟구쳤다.
한참을 올라가자 가로막고 있던 절벽 사이에 깊이 갈라진 바위틈이 보였다. 바위틈에서 칼날 같은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저 너머가 루앙이야. 저 갈라진 틈으로 날아가야겠어.”
호흡을 가다듬고 빠른 속도로 절벽의 틈을 향해 헤엄쳤다. 절벽 틈을 통과해 앞으로 나아갈수록 빛은 점점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아졌다. 루미는 아래는 내려다보지 않고 앞만 보며 세차게 물을 움켜쥐었다.
절벽을 벗어나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밝은 빛이 물속으로 쏟아졌다.
눈앞에 거대한 은빛 커튼이 펄럭이고 있었다.
“저건 뭐지?”
루미는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마름모꼴의 거대한 은빛 커튼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공중을 펄럭이며 날아가는 듯한 저 은빛 커튼 같은 건 뭐지?”
그것은 수면을 통과해 들어온 햇빛을 반사하고 있는 수십만 마리 물고기 떼였다. 등은 암청색, 배와 옆구리는 은백색을 띤 물고기들…… 어마어마한 숫자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무리 너머, 수면으로 고루 퍼져 있는 밝은 빛의 띠가 보였다. 벌써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온 것이다.
동쪽에서 솟아오른 태양이 바다 속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