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수십만 마리의 정어리 루미는 아침이 온 줄도 모르고 지금껏 햇빛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 속을 헤엄치다 유광층(태양빛이 바다 속까지 닿는 깊이. 아주 맑은 바다에서는 약 200미터까지 햇빛이 닿는다)을 만난 것이다. 루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정어리 떼를 향해 물었다. “혹시 북쪽 한류를 찾아 떠나는 정어리 분들 아니세요?” 망치상어 빅해머 씨는 렝크가 이끄는 정어리 떼에게 루앙으로 가는 길을 물어보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무리는 루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가 버렸다. “왜 아무 대답도 않고 도망치듯 가 버리는 거지?” 루미는 이미 저만큼 사라져가는 무리의 뒤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정어리 무리가 나타났던 방향에서 구축함에서 발사된 어뢰들처럼 뭔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바다의 포악한 왕자, 범고래 떼였다! 범고래들의 입가에는 찢겨진 표범가오리의 날개 조각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굶주린 범고래 떼가 표범가오리 떼와 한판 싸움을 치르고도 만족을 못해 수십만 마리 정어리 떼를 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위험해! 빨리 도망쳐!’ 갑자기 루미의 귓가에 시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루미는 분명 시원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시원의 목소리야. 시원이 지금 내 꿈을 꾸고 있는 걸까?” 루미가 꾸물대는 사이, 맨 앞 범고래가 자기 몸의 3분의 1이나 되는 아가리를 이죽거리며 빠르게 다가왔다. 루미는 재빨리 몸을 돌려 정어리 떼가 달아난 쪽으로 걸음아 나살려라 헤엄쳤다. 하지만 루미가 쫓아갈수록 정어리 떼는 더 멀리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