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좋은 사람

2727 Words
문진은 담배를 피고 "퉤" 하고 가래를 뱉고는 서준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를 찾아온 용건이 뭐지?" 서준은 나지막이 물었다. "용건이 뭐냐고?! 아직 우리 사이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잖아! 너 때문에 이진이가 집에서 돈을 훔치고, 너를 만나러 가다가 교통사고까지 당한 거 몰라? 지금 병원에서 죽기 일보 직전이라고..." 문진은 서준의 얼굴에서 조금이라도 죄책감을, 아니면 안타까움이라도 읽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산산이 부서졌다. 서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나치게 태연한 얼굴이었다. 오히려 평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랑 무슨 상관인데?"라고 말하는 모습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길가의 벌레 이야기하는 듯했다. "너 진짜 나쁜 놈이구나! 두 사람은 친구였잖아! 그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한 번도 병문안을 안 갈 수가 있어? 전화도 안 받고!" 문진은 서준의 무심한 태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도대체 여동생이 서준의 어떤 점에 끌렸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잘생긴 얼굴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놈인데! 하루 종일 화 한 번 안 내는 얼음장같은 심장을 가진 사람같으니, 아무리 욕을 해도 화를 안 낼 것 같았다. 저런 예쁘장한 놈들은 여자들이나 좋아하지. "설마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전화를 다 받아줘야 하는 건 아니겠지?" 서준은 마치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것처럼 피식 웃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긋했지만, 눈동자에는 경멸이 서려 있었고, 눈매에는 오만함마저 감돌았다. "너..." 문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서준 같은 모범생이라면 이진이 자신 때문에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이라도 동요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서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태도였다. 심지어 이진이 두 사람이 친구라고 말했던 것조차 서준의 입장에서는 그저 그녀의 착각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친구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전화를 해도 한 번도 받지 않고, 얼굴 한 번 비치지 않는단 말인가? "좋아! 네가 아니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 그럼 나도 더 이상 예의 차릴 필요 없겠네!" 문진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형님..." 일행 중 노란 머리의 남자가 문진을 황급히 말렸다. 그는 다소 겁먹은 목소리로 "이만 돌아가시죠..."라고 말했다. 여기는 서울대학교였고, 그들이 몰래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경비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싸움까지 벌였다가는 경찰서에 끌려갈 수도 있었다! "저번에 당한 건 내가 준비가 안 돼서 그런 거야! 이번에는 절대로 저 자식 무릎 꿇게 만들 거라고!" 문진은 분노에 차 앞으로 돌진했다. 노란 머리는 겁에 질려 꼼짝도 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는 서준이 어떤 놈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 소희는 이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서준을 두고 칭찬하던 말들이 떠올랐다. 성격 좋고, 다정하고, 교양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좋은 사람일 것이다. 지금처럼 어두컴컴한 곳에서 여러 명에게 둘러싸였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소희는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다가가 외쳤다. "경찰 왔어요!" 맞아서 휘청거리던 문진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 허둥지둥 일어나 도망쳤다. 꼴사납게 도망치는 뒷모습이 한심해 보였다. 너무 아팠다! 도대체 그 새하얀 얼굴에 순진하고 착해 보이는 놈이 때릴 때는 어찌나 힘이 센지! 소희는 그들이 도망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조심스럽게 서준에게 다가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소문처럼 서준은 좋은 사람인 듯했다. 저렇게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여서도 화를 내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안심시키려는 듯했다. 소희는 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깨끗한 옷차림에 어디 다친 곳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눈앞의 여학생은 순진하고 귀여웠다. 흰 티셔츠에 카키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드러난 다리가 가늘고 하얬다. 꽤 놀랐는지 얼굴이 질려 있었다. 서준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부드럽게 말했다. "네가 와줘서 다행히 아직 손도 못 댔어." 소희가 돌아서려는 찰나, 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포비돈 용액 있어?" 그제야 소희는 서준의 손등에 상처가 난 것을 발견했다. 살갗이 찢어져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의 손은 잘생겼다. 하얗고 길었으며, 손가락 마디마디가 뚜렷했다. 그런데 지금은 핏자국 때문에 아름다움이 훼손된 것 같았다. 그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게는 저런 상처가 어울리지 않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소희는 그 말을 남기고 양호실로 달려갔다. 양호실은 그곳에서 멀지 않았다. 소희는 아까 그 불량배들이 다시 돌아올까 봐 서둘러 돌아왔다. 손에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솜과 반창고 몇 개, 그리고 포비돈 용액이 들어 있었다. "손..." 소희는 그의 손등을 가리켰다. "고마워." 서준은 환하게 웃었다. 그의 눈동자는 유난히 맑게 빛났다. "후배님." 그가 웃자, 소희는 자신이 한 모든 행동이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 순간, 소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소문은 사실이었다. 서준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저런 일을 당하고도 화 한 번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위로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 서준은 기숙사로 돌아왔을 때, 고청명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건들거리는 자세로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것을 보았다. "보복당했냐?" 서준은 매사에 냉정하고 적을 남기지 않는 성격이었다. 누군가에게 보복당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기숙사 문이 닫히자, 고청명은 아직 개봉하지 않은 포비돈 용액을 발견했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서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위선자"라는 말을 남기고 침대로 올라가 헤드셋을 끼고 게임을 시작했다. 서준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휴대폰을 켰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 있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아, 드디어 전화받았구나." "무슨 일이지?" 서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차갑게 물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한참 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그는 아무렇게나 옷을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밖은 이미 조용해져 있었다. 그는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머리카락에서는 아직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고, 어둠 속에서 그의 눈동자는 더욱 파랗게 빛났다. 손등의 상처는 물에 불어 하얗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름다움은 감출 수 없었다. 그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다. 모두 아까 그 번호였다. 그는 가볍게 손가락을 움직여 그 번호를 차단했다.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다른 번호였다. 그는 무심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서준! 오빠가 방금 응급실에 실려 갔어..." 분명히 집에 돌아왔을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저녁을 먹다가 갑자기 가슴이 아프다고 하더니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서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설마... 네가 그런 거 아니지?" 수화기 너머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했다. 전화가 끊겼고, 동시에 밖에서 들려오던 노크 소리도 멈췄다. 서준은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의 미소에는 경멸과 모든 것을 간파한 듯한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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