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성 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
여자가 옷을 모두 벗고 현우의 앞에 섰다.
그녀는 제국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 자녀들 사이에서 유명한 사교계의 꽃이었고, 수많은 남자들이 꿈에 그리지만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애지중지하는 존재였다. 평소 그녀는 술만 마시는 접대만 할 뿐, 하룻밤을 함께 보내는 일은 없었다.
오늘 밤 윤빈이 그녀를 찾아와 그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겠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승낙했다. 유현우, 이 나라 재계 서열 최고층에 서 있는 남자였다. 평소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자자한 그가, 설마 자신에게 마음이 움직인 걸까?
그는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현우는 여자의 나체를 힐끗 보았지만 마음속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여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에게 다가가 무릎 위에 앉았다. 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잘생긴 얼굴은, 어떤 여자든 보면 마음이 설렐 것이다. 그녀는 현우의 목을 팔로 감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현우 씨."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끄고, 곧바로 여자의 손목을 꽉 움켜쥐고는 힘껏 내던져 바닥에 내팽개쳤다.
"꺼져."
그는 차갑게 한마디 했다.
"현우 씨?!"
여자는 영문도 모른 채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부른 사람도 그였고, 이제 가라고 하는 사람도 그였다.
"안 꺼져?"
그는 더 이상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현우 씨! 저는 안 가요!"
최고의 사교계의 꽃으로 이름을 날리던 자신이, 옷을 다 벗고 쫓겨나다니, 이런 수치를 어떻게 당할 수 있단 말인가.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의 팔을 잡아끌고는 방문까지 끌고 갔다. 그의 완력이 너무 세서 여자는 손목이 부러진 줄 알았다.
"옷 입고 나가, 아니면 이대로 널 밖으로 던져 버릴 거야."
그의 살기등등한 모습에 여자는 울면서 옷을 주워 입고는 황급히 방을 나섰다.
*****
그 여자가 떠난 후, 지윤택은 방 안에서 견딜 수 없는 짜증에 휩싸였다. 곧 폭발할 것만 같았다. 모든 여자에게 다 그런 반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유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무슨 일이십니까?"
전화기 너머로 그녀의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30분 안에, 아성 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으로 와."
말을 마친 현우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스위트룸 문 앞에 도착했을 때, 온몸에 힘이 다 빠진 것 같았다. 유정은 고통을 참으며 방문을 두드렸다. 현우가 문을 열었고, 그의 얼굴은 마치 먹물이 뚝뚝 떨어질 듯 어두웠다.
"최 비서, 3분 늦었어."
"죄송합니다, 유 대표님. 방금 전까지 좀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전화 받자마자 바로 차를 몰고 왔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능숙하게 조작했다.
띵-
유정의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알림을 확인했고 그 곳에는 자신의 은행 계좌에... 또다시 백만 달러가?!
"대표님, 이건..."
어젯밤의 일이 떠올라 두려움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어떻게, 부족해?"
"아닙니다, 대표님, 저는 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유정은 정말이지 미칠 지경이었다. 천하의 유현우가 어떤 여자인들 손에 넣지 못하겠는가, 왜 하필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건가? 그는 앞으로 다가와 그녀의 작은 얼굴을 움켜쥐었다.
"하기 싫어? 그런데 왜 날 유혹했지?"
그의 손아귀 힘이 너무 세서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애원하듯 현우의 팔을 붙잡았다.
"대표님, 아파요, 너무 아파요. 제발 이틀 후에 하면 안 될까요?"
그녀의 눈가에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고,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모습은 마치 비에 젖은 작은 고양이처럼 연약해 보였다. 그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흔들려 손을 놓았다. 유정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쳤다. 그와 더 이상 가까이 있다가는 정말 목숨을 잃을 것 같았다.
그때, 현우는 열려 있는 서동우의 가방에서 제국 병원 로고가 찍힌 비닐봉투를 발견했다.
"씻어."
그가 입을 열었다.
"네? 씻으라고요?"
놓아준 거 아니었나? 왜 씻으라고 하는 거지?
"싫어?"
"아닙니다, 지금 바로 씻겠습니다."
그녀는 황급히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 그는 사람이 아니라 무서운 악마다.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죽어서 시체도 찾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냥 죽자. 아파 죽겠으면 아파 죽는 거고, 기껏해야 병원에서 준 진통제를 먹고 죽으면 될 일이다.
*****
유정이 샤워를 마치고 호텔 가운을 입은 채 침대 옆으로 걸어갔다. 그는 이미 다른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화장을 지운 유정의 얼굴은 백옥같이 희고 부드러웠으며, 탄력 있는 피부는 생기가 넘쳤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생머리를 한쪽으로 쓸어 넘기자 가느다란 목에는 아직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고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방금 전에 쫓겨난 여자는 옷을 다 벗고 있어도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못했고, 오히려 혐오감만 들게 했다. 현우는 나른하게 옆자리를 툭툭 쳤다.
"이리 와, 가운 벗어."
설마 또 진짜로 하려는 건가? 그녀는 온몸이 둘로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 가운을 벗었다. 그 순간, 아래쪽에서 시원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녀가 몸을 반쯤 일으키자, 그 유현우가, 어젯밤과 전혀 다른 사람인냥 그녀의 다리 사이에 엎드려 면봉으로 조심스럽게 연고를 바르고 있었다! 유정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대표님! 제가 할게요!"
"너 안이 보여?"
"저, 저... 해볼게요..."
"최 비서, 그런 재주가 있으면 관두고 서커스단에 가지 그래?"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고, 그의 입가에 걸려 있던 희미한 미소는 점점 사라졌다. 현우와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그녀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이것은 명령이며,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유정은 얼굴이 빨개진 채 다시 누워 그가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차라리 매트리스에 머리를 박고 숨이 막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5분쯤 지났을까, 현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 작은 연고를 들고 그녀 앞에서 흔들었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을게."
그의 의도는 분명했다. 연고를 바르려면 나에게 오라는 뜻이었다. 유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가운을 입고 다시 침대 옆에 섰다.
"그럼... 대표님, 별일 없으시면...?"
그녀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놓아주기로 한 그의 마음이 바뀔까 두려웠다. 그러나 그는 옆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밤 여기서 자."
유정은 몹시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지? 그냥 같이 자자는 건가? 단순히 이불을 덮고 이야기만 나누자는 건가? 유현우에게 그런 취미가 있었나?
그는 맑고 순수한 유정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화장을 지운 그녀는 마치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 같았다. 그는 단지 그녀를 집에 보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오늘은 그녀를 안을 수 없었다, 그녀가 아파하기에. 젠장, 내가 여자를 아껴주고 싶다니.
잠시 미간을 찌푸린 현우는 이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유정의 검고 깊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대표님. 빠르게 정리 마무리하고 바로 가겠습니다."
그녀는 거실로 걸어가 그가 갈아입은 양복과 바지를 호텔 전용 세탁 가방에 넣었다. 이어 룸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옷을 가져가도록 하고, 다음 날 아침 방으로 아침 식사를 가져다 달라고 주문했다. 그가 여러 사람과 함께 뷔페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취향은 유정의 이미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있었다. 아메리카노는 반드시 60도, 계란은 한쪽만 익힌 반숙 프라이, 토스트는 몽즐리의 두꺼운 슬라이스, 버터는 프랑스산 보르디에 버터만 고집했다.
현우는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어 유정의 능숙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모든 것을 마친 후, 유정은 침대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추고 그의 옆에 누웠다.
그녀는 그에게 등을 돌리고 옆으로 누웠다. 2미터나 되는 넓은 침대에서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붙어 작은 공간만 차지하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아파서 기절했고, 오늘 밤에는 무서워서 잠이 오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다크서클이 볼까지 내려올 것 같았다.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가운 뒷덜미를 잡아당기는 강한 힘에 의해 그에게로 끌려갔다. 그리곤,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불 꺼."
유현우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