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코코아빛의 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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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코코아빛의 성으로 루미는 침대에 몸을 뉘인 윌리에게 붕대를 감아 주고 있었고 북친은 땔감을 찾기 위해 분주했다. 비앙키는 여전히 모포를 뒤집어쓴 채 까르끄르치가 보내오는 영상을 확인하고 있었다. 까르끄르치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성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비앙키는 홀로그램 입체 영상 대신에 평면 보조 화면들을 차례로 띄워놓았다. “까르끄르치가 특별한 것이라도 발견했어?” 루미가 비앙키에게 물었다. “이젠 더 이상 접근할 수 없음. 잡혀간 열두 명의 사제도 찾지 못하고 있음. 중앙수직관으로 통하는 통로는 완전 봉쇄돼 있음.” “아빠와 잡혀간 나머지 열한 명의 사제는 중앙수직관의 어딘가에 갇혀 있는 게 분명해.” 보조 화면에 사나운 바다용 메르곤의 머리 모양을 한 커다란 입구가 나타났다. 하지만 입구는 거꾸로 비쳤다. 까르끄르치가 복도의 천장에 달라붙어 입구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복도를 지나 중앙수직관 입구로 다가갔다. 그러나 몸통의 절반만 화면에 나타났다. 금실과 비단으로 짠 옷자락과 발이 보였다. 루미는 샌들 앞으로 튀어나온 발가락을 유심히 살폈다. 발가락이 다섯 달리고 발톱엔 기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꿈꿈족이네. 하지만 얼굴을 볼 수 없잖아.” “까르끄르치! 조금만 뒤로 물러나기 바람!” 까르끄르치가 뒤로 물러나자 입구 앞에 선 꿈꾸니의 목 부분까지 화면에 잡혔다. 하지만 머리 부분까지 보이려면 까르끄르치가 한참 더 뒤쪽으로 물러나야 할 것 같았다. 꿈꾸니가 잠금 장치의 버튼을 막 누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가 멀어 입력판은 희미하게 비쳤다. “지금 입력하는 암호를 알아내는 게 급해!” “까르끄르치! 다시 앞으로 가길 바람!” 까르끄르치가 앞으로 다가가자 입력판이 점점 확대됐다. “геувямьзз379ячсбдЭ…….” 루미는 손가락이 입력하는 키를 소리 내어 외웠다. 하지만 꿈꾸니의 손등에 가려 마지막에 입력한 키 몇 개를 놓쳐 버렸다. “이런 제길임! 마지막 키 세 개를 놓치고 말았음!” 비앙키가 화면을 향해 내뱉었다. 바다용 메르곤이 아가리를 벌린 것처럼 입구가 위아래로 열렸다. 꿈꾸니가 바다용의 목구멍처럼 생긴 긴 통로 안으로 화려한 옷자락을 끌며 사라졌다. 바다용이 꿈꾸니를 삼킨 것처럼 다시 입구가 굳게 닫혔다. 우우웅, 거대한 기계 엔진이 돌아가는 소리가 통로 안쪽에서 들려왔다. “저 자가 또 무슨 실험을 하나 봐! 엔진이 가동되고 있어! 그리고 기온이 다시 떨어지고 있어!” 루앙에 남아 있는 열에너지가 모두 중앙수직관으로 집중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리에 켜져 있던 멜론 가로등조차 희미해지고, 불기가 남아 있던 모닥불마저 꺼져 버렸다. 다시 루앙의 천장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도시의 대기로 하얀 서릿발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또다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어!” 북친이 벽난로에 땔감을 부려놓고 후닥닥 달려왔다. “중앙수직관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음. 그렇지 않고는 막을 수 없음.” “그 전에 코코아빛 성 안으로 잠입할 수 있는 길은 있기나 한 거야? 까르끄르치가 발견했냐고?” “통로는 배수구 밖에 없음. 배수구는 성의 남쪽, 수면 아래서 해자를 거쳐 중앙수직관 바로 밑까지 뚫려 있음. 하지만 성 여기저기를 거치며 미로처럼 얽혀 있음! 해자 속의 거대한 바다괴물들과 절벽처럼 미끄러운 수직벽, 역겨운 냄새…… 아는 위험 모르는 위험.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 아무도 접근할 수 없음!” “…….” 비앙키의 말에 루미와 북친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내가 가겠어.” 결국 루미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북친은 자신이 없다는 듯 잠자코 있었다. 비앙키는 말없이 루미의 목에 송수신기를 걸어 주었다. “이것으로 네 위치를 알 수 있음.” 비앙키는 까르끄르치가 보내온 영상 정보를 바탕으로 중앙수직관을 제외한 성의 내부 구조를 작성한 입체 지도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루미는 결심한 듯, 창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창턱을 박차고 하늘로 날았다. “루미! 같이 가! 기사의 명예를 걸고 나도 돕겠어!” 북친이 따라왔다. “네겐 따로 할 일이 있을 거야! 네가 필요하면 부를게!” 루미가 말했지만 북친은 막무가내였다. 루미와 북친은 달콤꿈판매주식회사 공장 뒤편 바닷가에 내렸다. 성의 곳곳에 켜진 밝은 불빛들이 수면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었다. 코코아빛 성 쪽에서 도개교를 올려 버렸으므로 물을 통해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물 위로 날아갔다가는 코코아빛 성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에게 들킬 게 뻔했다. “잠수를 해서 다가가자고.” 북친은 저 건너 등불들이 환하게 켜진 성을 바라보며 속삭였다. “자 간다!” 루미는 크게 숨을 들이 쉬고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무거운 갑옷에 방패와 검, 석궁으로 무장한 북친도 루미를 따라 뛰어들었다. 둘은 소리를 죽이며 물속을 헤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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