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쳐!”
마침내 참을 수 없는 듯 그녀 옆에 있던 남학생이 휠체어를 발로 걷어찼다.
휠체어는 몇 미터나 밀려났고, 중년 여성은 겁을 먹어 반쯤 죽은 듯 더 이상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안, 너 이러면 아주머니가 놀라시잖아.” 익숙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소희는 고개를 돌렸고, 마침 눈웃음을 지으며 부드럽게 말하는 서준을 보았다.환자를 보러 온 모양이었다.
중년 여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가에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마치 엄청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형.” 이안은 옆에서 얌전히 서 있었고, 서준이 오해할까 봐 일부러 그에게 설명했다.
“우리 엄마 요 며칠 말 잘 듣고 사고 안 쳤어요.” 서준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고, 얼굴 표정은 매우 부드러웠다.
“네가 잘 돌봐주고 있구나.”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우연히 알게 된 소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선배.” 소희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시선으로 보니 서준은 지나치게 다정했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은 큰 잘못을 저지른 듯 온몸이 뼈만 남아 있었고, 그를 바라볼 때는 얼굴 가득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
서준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짜증 내는 기색 없이 차분했다.
“후배도 여기 환자 보러 왔니?” 서준의 눈은 매우 부드럽고 애정이 넘쳤다. 소희는 문득 하늘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서준처럼 완벽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이런 어려움이 있었다니.
중병에 걸린 아주머니와 말 잘 듣는 남동생.
그는 아마 그녀처럼 평범한 가정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아니요, 저는 볼일이 있어서 왔어요.”
소희는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왠지 모르게 그녀는 그가 자신이 귀가 안 들린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행히 서준은 자세히 묻지 않았고, 소희는 간단히 인사를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형...”
공기는 완전히 고요해졌고, 이안은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떨었다.
“저는...”
“뭐가 그렇게 무서워?”
서준의 얼굴에는 변함없이 부드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금은 네 엄마가 휠체어에 앉아 계시지만, 아직 네 차례가 오지 않았을 뿐이야.”
이안은 고개를 숙이고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이 남자의 성격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그의 엄마가 재영에게 버림받고 반신불구가 되었을 때도 서준은 그녀를 가장 좋은 사립병원에 모셔왔다.
그녀의 엄마가 이씨 집안에 처음 왔을 때 어린 서준을 지하실에 가두고 사흘 동안 밥도 주지 않아 거의 죽일 뻔했다는 사실을 알면 다들 놀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일을 잊고 용서했다.
“꺼져!”
한참 후, 서준은 폭소를 터뜨렸고, 그 눈빛은 마치 광대를 보는 듯했다.
이안은 겁에 질려 허둥지둥 휠체어를 돌려 병실로 돌아갔다.
서준은 천천히 일어섰고, 그 잘생긴 얼굴은 그저 그곳에 서 있기만 해도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 듯했다.
그는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소희가 온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비인후과였다.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몇 번 쓸어내리자 청명에게 전화가 걸렸다.
“이소희, 귀에 문제가 있나?”
*****
원래 조용했던 병원 복도는 이제 더욱 조용해졌고, 한참 후에 이비인후과 진료실 문이 열렸다.
서준은 문에 기대어 나른하게 서 있었고, 그의 눈은 장난기로 가득했다.
“정말 연기를 잘하는군!”
이안 그 녀석은 십 년을 더 밥을 먹어도 서준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천천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잠깐만요.”
소희는 1층에 도착하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내비게이션을 찾으며 집에 갈 차편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진이었다.
그는 방금 온 듯했고, 흰 가운은 그를 더욱 온순하고 우아하게 보이게 했다. 특히 그의 얼굴은 너무나 잘생겨서 사람들이 자꾸만 쳐다보게 만들었다.
소희는 조금 의외였다.
“도재진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당신 귀는 방법이 없는 게 아니에요.”
재진은 나른하게 말했고, 그의 눈은 너무나 날카로워서 숨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눈앞의 여자아이는 열여덟, 열아홉 살 정도로 어려 보였고, 얼굴은 뽀얗고 예뻤으며, 그 눈동자는 맑고 투명했다.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재진은 어릴 때부터 여자들 사이에서 굴러다녔지만, 소희는 그가 본 여자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보청기를 끼지 않았고, 작고 하얀 귀는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였다.
“무슨 조건인가요?”
소희는 경계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조금 전에 그녀가 진료실에 갔을 때 재진은 그녀의 귀는 방법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불과 몇 분 만에 그는 말을 바꿨다.
소희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처럼 잘생기고 부유한 남자는 돈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인스타 맞팔하는 조건?”
재진은 나른하게 눈썹을 치켜올렸고, 그의 눈동자는 충분히 맑고 진실했다.
소희는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도재진이라는 남자, 그녀는 그를 잘 알 수 없었다.
“현재 국내에서 저보다 더 나은 의사는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재진은 계속 말했다.
“아니면, 다른 의사에게 진찰을 받아볼래요?”
“하지만, 기회는 한 번뿐이라는 걸 알려두죠.”
재진은 시계를 한 번 봤다.
“그럼 선생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소희는 결국 휴대폰을 꺼내 그의 인스타 팔로우를 받아줬다.
“검사를 해야 하니까, 미리 연락할게요.”
재진은 돌아가기 전에 그녀에게 말했다.
소희는 별생각이 없었다. 단지 팔로우를 받아줄 뿐이었다.
만약 그녀가 하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 다른 방법으로 그녀에게 접근하려 할 것이다.
게다가 그녀의 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재진은 그녀의 인스타 피드를 보았고,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귀엽고 어딘가 바보 같아 보이는 작은 강아지였다.
주인을 닮은 건가?
*****
소희는 휴가를 냈고, 오후에도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며칠 동안 고강도 훈련을 받는 동안 보청기를 착용하지 않아 귀가 윙윙거리고 아팠다. 기숙사로 돌아와 한숨 자고 나서야 안색이 조금 나아졌다.
휴대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는데, 또 큰엄마의 독촉 문자였다.
소희는 한 번 보고는 바로 휴대폰을 껐다.
잠에서 깨어나 운동장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운동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익숙한 사람들을 보았다.
“너는 왜 내가 그놈에게 복수하는 걸 말리는 거야? 그때 나를 때린 게 바로 그놈이라는 걸 알기나 해?”
남학생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평소 잘 들리지 않던 소성의 귀에도 그들의 대화가 또렷하게 들렸다.
“오빠, 증거도 없는 일을 가지고 그 사람을 찾아가 봤자 아무 소용없어.”
다른 한 명은 문진이었고, 그녀는 이 시간에 기둥 뒤에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은 다투고 있는 것 같았다.
“오빠, 사실 오빠가 그때 응급실에 실려 간 게 그놈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
이진은 잔뜩 화가 난 목소리였다.
“내가 응급실에 한 번 가는 데 얼마나 드는지 알아? 일주일 동안 500만원이나 썼다고!”
그의 아버지가 뼈 빠지게 두세 달 일해서 번 돈을 그가 일주일 만에 다 써버린 것이다!
“그건 오빠가 자초한 일이잖아.”
이진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오빠가 그 사람을 찾아가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거야.”
문진은 여동생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그놈을 찾아간 게 누구 때문인데! 다 너 때문에 그런 거잖아! 그 잘난 놈 때문에 죽겠다고 난리 치는 꼴이 보기 싫어서 그랬다고!”
“그놈은 부잣집 아들에 머리도 잘 돌아간다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내는 누가 알아? 어휴!”
“나를 응급실에 보낸 것만 봐도 그놈이 좋은 놈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잖아! 너랑 그놈은 애초에 가망이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