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오르려고 하자 조현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핸드폰 화면에 찍힌 번호를 보고 조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인가?"
"군주, 죄송합니다.제가 그만 참지못하고 연락 드렸습니다. 제발 한번만 기회를 더 주십시오."
주단영은 군주께 전화를 걸기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이미 말했지만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니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다."
조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오늘 그가 파티에서 주단영에게 했었던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군주를 직접 만나 봬서 무릎을 꿇고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제대로 된 사과를 하기 전까지 저는 맘 편히 먹고 잘수도 없습니다."
주단영은 조현에게 사과할 기회를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비록 그는 지금 모두가 우러러보는 진국대장군의 신분이었지만 마음속에는 늘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가 응어리가 되어 남아있었다.
사실 애초에 조현은 주단영에게 사과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그를 현자군에서 쫓아내었다. 그리하여 주단영은 더욱더 군주에게 제대로 된 사과가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조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였다.
"그래. 내가 지금 진 씨 집안사람들은 만나러 갈 건데 거기에서 보자."
조현은 전화를 끊고 진명의 집으로 향했다.
조현이 자신의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어딘가에서 갑자기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나타나서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어디로 도망치려고?"
"도련님께서 네가 도망칠 거라고 미리 예상했다. 우리 서로 힘 빼지 말고 얼른 차에 타." 그들중 한명이 웃으면서 말했다.
조현은 그들을 한번 쳐다보고선 말없이 차에 올라탔다.
조현이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지 전까지 잠시 살려두지.
진명의 별장 지하실에서.
진무가 의자에 앉아 조현을 보며 조롱을 해대며 말했다.
"너 싸움 좀 하잖아. 왜 오늘은 순순히 따라온 거야?"
조현은 아무 표정이 그저 진무를 노려보았다.
"오우희씨, 네가 죽인 거 맞지?" 조현이 물었다,
"어? 알고 있었어?"
진무는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이미 알고 있다면 굳이 숨길 필요가 없겠네. 그래, 맞아. 내가 그 여자를 옥상에서 밀었어. 근데 그게 다 그년이 자초한 일이야. 내가 그년을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감히 지 따위가 나를 거부해?"
"오우희뿐만 아니라 너 그리고 네 마누라까지 내가 모두 죽여죽게."
조현의 눈은 한순간 살기로 가득했다.
바로 그때 진명이 지하실로 내려오면서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조현을 향해 말했다.
"네가 우리 아들을 이렇게 만든 놈이로구나.내가 오늘 너의 몸뚱어리를 갈기갈기 찢어 놓을 테니 기대해도 좋을 거야."
"아빠, 서두를 필요 없어요."
진무가 진명을 말리면서 말했다.
"아직 이 자식에게 보여줄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거든요."
진무는 옆에 서있는 그의 부하에게 눈치를 줘 프로젝터를 전원은 켜도록 하였다.
"제발 도와주세요. 오지마! 오지말라고...아아악!"
화면속 오우희는 옷이 찢겨진 채로 사람들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었다.
진무, 진무의 형 진수, 그리고 진 씨 집안의 사람 몇명이 웃으면서 오우희를 향하여 다가가고 있었다.
"성깔이 좀 있네. 이게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어디 한번 제대로 놀아볼까?'"
진수는 말이 끝나자마자 우희의 머리 잡고 바닥에 눕히자 순식간에 그들은 짐승처럼 우희를 향해 우르르 덮쳤다.
그들의 깔깔 대는 웃음 소리, 옷이 찢겨지는 소리, 우희의 비명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그들은 모두 즐기고 난 뒤, 힘을 합쳐 살려달라는 우희의 외침 소리를 무시한 채 그녀를 건물의 옥상에서 밖으로 던져버렸다.
"어때? 짜릿하지?"
"걱정 마. 너도 곧 그년 따라서 갈 테니. 근데 그전에 먼저 네에게 재밌는 구경을 시켜줄게."
바로 그때, 진명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은 진명은 갑자기 낯색이 밝게 변했다.
"네네네. 알겠습니다!"
"아빠, 무슨일이에요? 누구의 전화인데요?"
"빨리 진 씨 집안사람들을 별장으로 모이라고 전해라. 진국대장군님께서 곧 이곳에 행차하실 것이다."
진명이 흥분한 말투로 진무에게 말했다.
"네? 장군님께서 우리 집을요!"
"이게 꿈이 아니죠? 장군님께서 우리 집에 오시다니. 그래서 오늘 연회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인가? 이런 서프라이즈를 하려고? 하하하하!"
"너희들은 여기서 이놈이 나오지 못하도록 잘 지키고 있어!"
진명은 부하에게 조현을 잘 지키라는 당부를 하고 진무를 데리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진무의 별장 홀 안에서.
진 씨 집안의 사람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진국 대장님의 행차를 기다렸다.
북방 호국의 신, 그 유명한 진국대장군님께서 여기로 행차를 하신다니!
진 씨 집안사람들은 그저 꿈만 같았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깔끔한 슈트차림의 진명이 설레임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들 정신 바짝 차리시고 절대로 실수를 해선 안됩니다. 장군님께서 직접 우리 집으로 행차하신다니, 실로 가문의 영광이 아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장군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면 진 씨 집안은 앞으로 남강시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떵떵거리며 살 수 있을 겁니다."
진명은 따로 진 씨 집안의 여인을 불러다가 신신당부를 하였다."너희들 내 말 잘 들어. 오늘 장군이 원하시는 거 있으면 모두 맞춰드려. 알았지?
"알겠어요!"
화려하게 꾸민 몇몇 진 씨 집안 여인들이 신이 나서 대답을 하였다. 그녀들 중 이미 임자가 있는 유부녀임에도 불구하고 진국대장군과 조금이라도 엮여서 팔자를 고치려고 애를 썼다.
바로 그때 별장 문이 서서히 열렸다.
우람차 체격의 사내가 천천히 홀 가운데로 걸어왔다. 그에게서 풍기는 아우라가 순식간 모두를 긴장하게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