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은 여자의 이마 중앙에 정확히 박혔다. 그녀는 피를 토하더니 바닥에 굴렀다. 넋이 빠지고 기억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음악으로 치면 안단테의 느낌을 주는 슬픔이었다. 총에서 손을 떼지 않고 다가서는 도명은 한시의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서 턱을 휘어잡았다. 다행히도 정수리에 흐르는 피가 바닥으로 흐르는 것을 확인하니 죽은게 확실했다.
죽은 그녀를 도명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차유정, 바로 그녀였다. 여신으로 유명했던 그녀가 같은 동네였던 것을 알았던 것은 20살이었을거다. 도명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유정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겠거니,, 싶었으나 차유정 그녀가 확실했다.
유정 뒤에는 중년 아저씨가 칼을 들고 쫓아오고 있었다. 유정은 입에 거품을 물고 도망가는 것 같았다. 섣불리 상황에 끼어들었다가는 칼부림에 휘말릴게 분명했다.
'무슨 상황인거지?'
"차유정!!! 네 년이 지 엄마를 닮아가지고... 너부터 보내주마."
새벽 4시였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이었다. 막혀버린 길에서 유정은 땅에 돌하나를 주웠다. 저 사람은 아빠가 아니야. 그저 술에 찌든 망나니 새끼다.
"가까이 오지마!!! 오지마라고!!!"
유정은 이미 정신적, 신체적으로 탈진상태였다.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 가난과 고통, 불안감. 그래, 다 끝내버리는거야. 유정은 두 눈이 멀어버린 사람처럼 돌덩이를 번쩍 들더니 그의 뒷통수를 내리쳤다.
풀썩_
말라버린 유정의 머리카락과 충혈된 눈동자 사이로 비춰진건 죽어버린 유정의 아버지, 그의 시체였다. 유정은 숨을 헐떡이다가 곧장 마스크를 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도명은 그 후 동네에서 유정을 볼 수 없었다.
사람 마음 속에 강한 계기라는 것이 존재해야만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도명은 포스트잇에 적어놓은 글귀를 다시 한 번 읽었다. 지금까지도 도명은 굳게 믿고 있는 문장이다.
현재
괴물 모습의 도명은 유정이 갖고 있던 지도를 움켜쥐었다. 펼쳐볼 필요는 없었다. 유정이 가려했던 곳이 어딘지 알 것 같았다. 괴물의 뇌 속에 이미 행선지가 정해져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보라색 뱀이 꽈리를 트는 곳. 동쪽을 향하고 있다.
도명은 잠시 자리에 앉았다. 긴 여행이 될 것이다. 물론 쉬운 여행이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러고보니 주변이 어떤 곳인지, 기후나 주거지 상태파악이 안되어있었다.
습도는 꽤 높았다. 기온도 30도는 훌쩍 넘었다. 인간이 살기에는 집들이 다 무너져 내렸고, 연기가 자욱했다. 마치 전쟁이 휘몰아치고 간 후의 마을처럼 보였다. 도명은 덩치가 커지니 땀도 더 많이 흘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을 구해야겠다. 버티고 버티다 밤이 되었다.
강이나 바다 혹은 시냇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탄내만 진동할 뿐이었다. 도명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탄내는 단순하게 음식이나 장작을 떼는 그런 탄내보다는 누군가를 살해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저 멀리서 비명이 들린다. 도명은 살금 살금 풀숲을 헤치고 지켜보았다. 흡하며 입을 막았다. 깜짝 놀라서 등이 축축해지고 오한이 서렸다. 차유정, 그녀가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분명 죽어있었는데 어떻게 된거지???
그순간, 유정은 인기척을 알아챘는지 고개를 번쩍 처들었다. 도명은 늦어버렸다는 공포감에 식은땀이 났다. 도명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야 했다. 쓰촨성에 오게된 것과 지하세계로 와서 차유정을 만난 것은 죽기 전에 신이 도명에게 내려준 임무가 있을 것임을 믿기 때문이었다.
도명은 재빠른 속도로 풀숲을 달려나갔다. 달리면 달릴 수록 몸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지만 지금 중요한건 살아남는 것이다. 누군가 도명의 발목을 탁 하며 잡았다. 거칠한 손가락의 촉감이 구토를 일으켰다.
"절대 벗어나지 못해."
"끄윽...끅..."
그때였다.
"도명씨 여기 ! 이거 잡아요!!!"
구원자였을까. 도명은 보라색 동앗줄에 손을 뻗었고 점점 더 위로 올라갔다. 얼굴에 차가운 바람이 닿는다. 나를 구해준 사람은 누굴까. 도명은 의식을 잃을 것만 같았다.
"피니스테르로 갈거에요. 프랑스의 한 지역이죠. 제 이름은 베라에요."
대답할 힘조차 없었다. 도명에게는 단 하나가 남아 있었다. 바로, 목걸이었다. 도명은 유정의 비밀 목걸이를 갖고 있었다. 목걸이 안에는 큐빅이 아닌 작은 담배 피규어가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