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은 그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거리를 헤매고 다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차를 몰아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고, 멀리 가지 못한 그녀의 뒷모습이 보였다.
햄릿은 그녀를 향해 클락슨을 한 번 눌렀다.
그녀는 뒤에서 울리는 클랙슨 소리에 움찔했고, 뒤를 돌아보았다.
꽤 비싸 보이는 차.
선탠이 진하게 되어 있어 운전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꽤 낯이 익은 차였다.
차는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서더니 창문이 내려가고 햄릿의 모습이 보였다.
-"어?"
"버스 없던데?"
-"...네."
"타요."
-"아니에요."
"타요. 태워줄게요."
-"저 지금 무계획인데요."
"어디 갈 지 안 정했다고요?"
그녀는 끄덕였다.
"타서 정해요, 그럼. 춥잖아요. 빨리."
그녀는 우물쭈물했다.
"빨리~"
-"고맙습니다."
햄릿은 미소지었다.
그녀는 햄릿의 차량에 올라탔다.
"향수는 왜 뿌렸어요? 내가 태우러 올 줄 알았나?"
그녀는 살짝 얼굴이 붉어진 것 같았다.
-"그건 아닌데, 기분이 꿀꿀해서."
"버스 놓쳐서?"
-"아니요. 그건 아니고..."
"좋네요. 달달하니."
-"너무 진한가요?"
"아니요."
그녀는 햄릿이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차마 고개를 돌려 볼 수가 없었다.
괜히 몸이 경직되었고,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어디 살아요?“
-"저, 대구요."
"오~ 대구! 저는 서↗울↗ 살아요."
-"풋!"
일부러 오버하며 쓴 어색한 사투리에 두 사람이 웃었다.
"대구까지 태워줄까요?"
-“네? 아니요. 기차역까지만 부탁드려도 돼요?"
"집에 가려고요?"
-"네. 가야죠."
"나랑 좀만 더 놀면 안되나?"
-"뭐하고요?"
"찾아보면 나오지 않을까?"
그녀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등대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참! 뒷좌석에 내 가방 있어요."
-"가방?"
햄릿의 말에 뒤에 놓인 가방을 본 그녀는 그제야 떠올랐다.
-"아!"
"구경해도 돼요."
-"그럼, 실례."
그녀는 해맑은 미소로 뒷좌석의 가방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올렸다.
꽤나 묵직했는지 으앗 소리가 절로 나왔다.
-"뭘 이렇게 무겁게 다녀요?"
"이것 저것 넣다보니까."
그녀는 가방을 조심스레 열었다.
-"실례합니다~"
햄릿은 그녀의 말에 미소지었다.
"네. 실례하십시오~"
그녀는 설렘과 들뜸이 공존하는 미소로 가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치약, 칫솔에 카메라, 파우치, 온갖 약들, 간식, 마스크, 보호대, 속옷까지 있었다.
-"어머... 죄송. 보려고 한 건 아닌데..."
"아, 그건 뺐어야 했는데."
-"진짜 많이 넣고 다니네요."
"투어할 땐 더 많아요."
-"약이 너무 많다."
"다 필요한 약이에요."
-"그렇구나..."
그녀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마도 이런저런 약을 먹어야하는 햄릿이 조금 안쓰러워서졌을 거였다.
"자! 가방구경도 했고, 우리 이제 뭐할래요?"
-"음... 찾아볼게요."
"시간이 늦어서 뭘 먹기도 힘들겠다."
-"여기 대부분 가게가 이 시간에 닫을 거예요. 편의점 말고는... 편의점에서 라면에 삼김먹을까요?"
"콜!"
-"그럼, 편의점이... 흠..."
그녀는 휴대폰으로 근처 편의점을 찾았다.
햄릿은 그녀의 안내로 편의점으로 차를 몰았다.
-"찾았다!"
"진짜 오랜만이다. 편의점에서 서서 먹는 거."
둘은 차에서 내려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온갖 컵라면이 세워진 매대 앞에 나란히 선 두 사람은 고민에 빠졌다.
"라면 취향이 뭐에요?"
-"전 끓여먹는 라면은 삼양인데, 컵라면은 역시 뚜껑이죠!"
그녀는 고민없이 라면을 집었다.
"그럼, 나도."
이번엔 김밥을 골라야했는데, 안타깝게도 삼각김밥이 하나도 없었다.
-"김밥이 없네."
"흠. 아쉽네."
-"뭘 먹지 그럼?"
그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헤! 소시지가 있군."
그녀의 행동에 햄릿은 터지려는 웃음을 애써 참으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혼잣말이 꽤 귀엽기도, 웃기기도 했다.
-"저는 소시지로 대체하겠습니다."
"그럼, 저도!"
계산대로 온 두 사람. 햄릿은 자신이 다 계산할 생각이었는데, 그녀는 점원에게 말했다.
-"각자 거 계산할게요."
점원은 무표정으로 그녀의 라면과 소시지를 찍고는 리더기에 카드를 넣었다가 뺐다.
햄릿이 멈칫하며 쳐다보자, 그녀가 말했다.
-"아, 더치페이... 미안해요. 이것두, 같이 해주세요."
그런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시익 웃어보이고는 뜨거운 물이 있는 급수대로 씩씩하게 걸어갔다.
햄릿은 오묘한 감정과 생각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도 고민되었다.
자신의 라면과 소시지를 들고 물을 받으러 왔는데, 뜨거운 용기에 아뜨뜨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제가 사도되는데, 잘 먹을게요."
그녀는 그 사이 물을 다 붓고 햄릿에게 고개를 돌렸다.
-"물 엄청 뜨거워요."
햄릿은 그제야 자신의 팬이라는 이 여자의 모든 행동이 진심이라는 걸 깨달았다.
편의점에 도착해 내릴 때까지만 해도 햄릿에게 그녀는 조금은 친해진, 내 편인 팬이지만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자신을 유명한 연예인이 아닌 사람으로 대하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었다.
함께 생활하는 멤버들, 가족들, 연예계 친구들, 회사 작곡가 형들이 전부였다.
그녀는 조금 다른 유형의 팬일까?
그런 척 하는 걸까?
소시지도 전자레인지에 함께 데우고 나란히 서서 라면이 익기를 기다렸다.
-"배고파."
그녀는 익고 있는 라면을 내려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배고파."
햄릿은 뚜껑을 열어 라면을 저었다.
-"익었어요?"
"익었는데?"
그녀도 햄릿을 따라 라면 뚜껑을 열었다.
-"잘먹겠습니당.“
"잘먹겠습니당!"
두 사람은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직 입 안에 라면이 가득했다.
-"왜요?“
"몰라요. 그냥 웃겨서."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그냥 이 상황이 웃겼다.
햄릿은 편의점 유리에 비친 둘의 모습이 웃겼다.
오늘 햄릿이 충동적으로 차를 몰고 바다를 보러 온 것이 다행이다 싶을 만큼 이 순간이 너무 웃겼다.
모든 것이, 모든 사람이 자신을 너무 바라보고 있는 무거운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었던 현실이었다.
서서히 준비해야하는 미래가 더 무서워지는 시기였다.
그냥 바다를 보면 조금 나아질 것 같아서 온 바다였는데, 그런 하루에 어쩌다보니 떡볶이를 먹고, 그녀를 만나서 늦은 저녁을 편의점에서 보내고 있는 상황이 웃겼다.
-"웃지 마요~. 못 먹겠잖아."
햄릿은 그럴수록 더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녀는 햄릿이 웃으니 덩달아 웃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기차 안에서 찾은 떡볶이 집 하나만 찾아서 온 여행지였다.
그러다 만난 사람이 자신의 우상.
이게 꿈이라면, 꿈이 여도 나쁘지 않아.
행복하니까.
웃으니까, 됐어.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웃고 먹고를 반복했다.
어느새 과자와 커피를 하나씩 집어 들고는 차에 탔다.
"이제 어디로 갈까?“
-"지금 몇 시지?“
"10시."
-"그냥 바다보고 있고 싶은데."
"그럴까?“
-"괜찮아?"
"그럼."
-"안 피곤해?"
"응. 그럼, 바다로 가 볼까요?"
-"넵!"
두 사람은 밤바다 앞에 멈췄다.
선루프를 연 햄릿은 히터만 켜고 차 시동을 껐다.
암흑이었다.
조용해진 차 안에 흥얼거리는 햄릿의 목소리만 들렸다.
"자도 돼."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왜 우울할 때 바다를 보면 안 되는지 알겠다."
"왜?“
-"마주하는 것 같잖아. 지금 내 상태를."
햄릿도 그녀를 따라 바다를 멍하니 보았다.
자신이 수도 없이 불러왔던 노래와 의미들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왜 몰랐지?"
"뭘?"
-"이거."
그녀는 햄릿이 말하는 것의 의미가 대강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해 떴으면 좋겠다."
"기다리자."
-"해 뜨는 걸 기다리자고?"
"응."
-"그래!"
햄릿은 캄캄한 어둠속에서 이제야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건넸다.
이름은 뭔지, 언제부터 자신의 팬이었는지.
그러다 두 사람이 공유하는 기억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팬과 연예인의 기억은 대부분 겹쳤다.
카메라 앞에서 일어난 대부분의 일들을 팬은 기억하고 있었다.
세세한 것마저도.
대화는 두 사람의 삶으로 이어졌다.
"아니, 그거 있잖아, 안에 꿀 터지는 거."
-"그거 잘못 먹으면 입천장 다 데잖아."
"맞아!"
초등학생 시절 불량식품 이야기부터, 게임, 드라마까지 섭렵한 대화였다.
-"그게 궁금했지. 어떻게 이런 음악을, 이런 뮤지션을 찾아내지?"
음악적인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노하우도 공유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새벽 4시를 넘어갔다.
"간만에 진짜 재밌다."
-"나도. 이런 신선함이 있네."
"졸리지 않아?"
-"내가 원래 올빼미라. 저녁잠이 없어. 새벽에 자. 너는? 운전하고 안 피곤해?"
"솔직히 졸려."
-"그럼, 자. 해 뜨면 깨워줄게."
"누난 그동안 뭐하고?"
-"음... 바다보고, 음악 듣고, 그러지."
"됐어."
-"운전까지 해야 되는 사람이 졸리면 쓰나. 깨워줄게. 잘 자."
"겁나 시크해."
-"잘 자. 아! 너 코곤다며?"
"별 걸 다 알아."
-"그럼, 나 이어폰 좀 껴도 되냐?"
"그래주면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말 잘 들을게."
햄릿은 금방 잠들었고, 코골이를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사람은 완벽하지 않는 법이지."
시간은 흐르고 흘러 서서히 하늘이 옅은 보라색을 띄기 시작했다.
그녀는 햄릿을 깨워야했지만, 너무도 곤히 자는 통에 깨우기 미안했다.
이제 곧 해가 떠오를 것 같았다.
그녀는 햄릿을 깨워야하나 말아야하나를 1초에 수십 번 고민한 끝에, 살짝 손을 내밀어 햄릿을 흔들었다.
-"해 뜨려고 하는데?“
"음..."
-"해 뜨는데?"
"아이..."
그녀는 결국 깨우는 걸 포기했다.
홀로 불그스름하게 떠오르기 시작하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차 안에만 있을 수가 없어서 조심스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새벽의 찬 공기가 온몸을 짜릿하게 했다.
그녀는 이상하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도 어제부터 하루 종일 이걸 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하..."
거세게 부는 바닷바람에 귀가 떨어질 듯 추웠다.
그래도 바다를 바라보는 것을 포기하진 않았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바다를 계속해서 보았다.
햄릿은 어느 순간 눈을 떠야겠다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떴다.
해가 뜨고 있었고, 바다가 보였고, 눈물을 닦으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조그마한 여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눈도 다 뜨지 못했지만,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그 모습을 담았다.
"이상하네."
햄릿은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리만큼 지금의 자신의 마음과 닮은 것 같은 여자.
해가 뜨면 사라져버릴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떡하지?"
그녀는 햄릿이 깨어난 줄도 모르고 하염없이 울었다.
햄릿은 자신의 겉옷을 들고 차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나에게 걸어가서는 새빨개진 그녀의 귀를 손으로 감쌌다.
-"추워."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햄릿의 온기에 놀라 멈칫했다.
그런데 멈춰야 할 눈물이 더 왈칵 쏟아졌다.
햄릿의 손길이 위로같이 느껴졌다.
"괜찮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써 눈물이 고인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햄릿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반쯤 올라온 해를 보자 자신도 눈물이 나왔다.
그녀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렸는데, 눈물을 흘리고 있는 햄릿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햄릿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 바다로 시선을 돌렸고, 슬며시 햄릿의 손을 잡아주었다.
햄릿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햄릿은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제 처음 본 사람 앞에서 이렇게 울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울어도 될 것 같았다고 느꼈는지 감정이 제어가 되지 않았다.
-"일출이 좀 이쁘네."
그녀는 햄릿에게 말했다.
햄릿은 대답을 할 수 없을 만큼 울음이 터져서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햄릿의 손을 더 꼭 잡았다.
햄릿도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둘은 함께 울었다.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단 둘만 보는 일출에, 한참을 울었다.
어느 정도 울고 나니 세상은 환해졌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눈부신 볕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좀 괜찮아?"
그녀는 먼저 햄릿의 안부를 챙겼다.
-"괜찮아?“
"응. 덕분에.“
-"나도."
인기척이 들렸고, 둘은 차에 탔다.
문제는 한바탕 울고 나니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너, 졸리지?“
"응."
-"어쩌지? 어디 차 세워놓고 자야겠는데?"
"그럴까? 누난 안 졸려?"
-"나도 졸려. 눈이 막 감겨."
햄릿은 나무 그늘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웠고, 둘은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햄릿의 휴대폰이 울렸다.
매니저의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