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어떤 기억의 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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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안의 손에 들린 전화가 끊어지자마자, 박찬영은 그녀의 아버지가 아래층에 있다고 말했다. 박찬영의 시선을 따라 부엌 창문 아래를 내다보았다. 임현철은 PC방 입구에 서서 우산을 펼치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딸의 시선을 느낀 듯, 그는 갑자기 고개를 들어 창문 위를 올려다보았다. 놀란 임안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어떡해! 아빠가 내가 거짓말한 걸 알면, 분명히 여기까지 쫓아올 거야!" 임현철은 평소에는 온화했지만, 임안이 어떤 남자아이와 가까이 지내는 걸 보면, 지금처럼 남자아이 집에 직접 찾아올 건 말할 것도 없고… 분명히 그녀를 크게 꾸짖을 것이다. 박찬영은 그릇을 찬장에 다시 넣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지금 내려가서 자수하면 아직 늦지 않았어." "응?" 임안은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쟤도 농담을 할 줄 아네?' 그녀는 그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의 당황스러운 감정은 완전히 잊은 채, 그녀 역시 장난스럽게 말했다. "박찬영 학생, 난 너 때문에 여기 온 건데, 무슨 소리야. 너도 내 아빠의 불호령을 막아줘야지." 그러나 박찬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임현철이 너를 때리기라도 해?" 임안은 웃음을 참으며 불쌍한 척 말했다. "그럼, 모든 집에는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법이잖아! 우리 아빠가 평소에는 사람 좋게 웃고 다녀도, 내가 남자아이와 같은 집에 있는 걸 보면 분명히 불같이 화를 낼 거야." 말을 마친 임안은 슬쩍 박찬영을 곁눈질했다. 소년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마지막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그리고 그녀는 그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올라오지 않을 거야." 임안은 천천히 고개를 창문 쪽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임현철은 정말 우산을 펼치고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빠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상하다… 어떻게 아빠가 안 올라올 거라는 걸 알았어?" 박찬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부엌으로 걸어가 임안이 바닥에 놓아둔 아이보리색 책가방을 집어 들고 바깥 의자에 올려놓았다. 임안은 다시 그가 테이블 위의 약을 뜯어 입에 넣는 것을 지켜보았다. 고개를 뒤로 살짝 젖히고 목젖을 움직였다. "아빠가 좀 멀어지면 나도 돌아갈게. 옷은… 다음에 깨끗이 빨아서 학교에서 줄게." 임안이 말했다. "네 마음대로." 비는 임안이 왔을 때처럼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현관으로 가서 신발을 갈아 신고 문을 열어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때 박찬영이 그녀를 불렀다. "조심히 가." ————— 임안이 집에 도착했을 때, 임현철은 식탁 의자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이기현이 심상치 않았다. 그녀는 아빠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아빠…" 그녀는 조용히 그를 불렀다. 임현철은 그녀를 보지 않고 말했다. "배 아프다고 하지 않았니? 왜 잘 쉬지 않고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밖에 나갔니?" 임안은 젖은 책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임현철의 팔에 매달려 애교를 부렸다. "미안해 아빠, 일부러 거짓말한 거 아니야. 아빠 걱정할까 봐 그랬어~" 과거, 그녀가 애교를 부릴 때마다 임현철은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그녀의 애교를 들은 아빠는 마침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임현철은 그녀를 본 후 더 화를 냈다. "너 옷은 이게 뭐냐? 남자 옷이잖아! 설마 진짜 연애하는 거냐? 수업 빠지고 데이트 하러 나간 거야?!" "아니야, 아니야…" "솔직하게 말해!" 임안은 당황하며 말했다. "사실은 내 짝이 아파서, 걱정돼서 집에 보러 갔는데, 가는 길에 비가 너무 많이 오잖아. 그래서 옷이 다 젖었는데, 걔가 오빠 옷을 빌려준 거야." 임현철은 믿지 않았다. "정말 그런 거냐?" "당연하지!" 임현철은 진지하게 말했다. "안안, 아빠는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아. 그냥… 너 클럽이나 술집 같은 곳에는 가지 마. 그리고 남자 집에 혼자 가는 것도 안 돼. 위험한 곳이니까 알겠지?" 임안은 그가 자신이 그런 곳에 갈까 봐 걱정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 온구름이 바로 그런 곳에서 임현철을 만났기 때문이다. 임현철은 젊었을 때 삼류 양아치였고, 항상 그런 곳을 다녔다. 반면 온구름은 당시 학생이었다. 임현철은 온구름을 보고 반해 그녀를 임신시켰다. 온구름은 임신 후 조산했고,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그는 자신을 너무나도 증오했고, 그 후로 임안이 자신과 같은 남자를 만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맹세했다. 임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아빠를 껴안았다. "걱정 마 아빠, 나 자신은 내가 잘 지킬게." 그녀는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오늘 너무 지쳐서 침대에 눕자마자 깜빡 잠이 들었다. 【띠링! 001 알림: 임무 완료! 포인트 +5】 【띠링! 001 알림: 기억 조각 보상 획득!】 【띠링! 001 알림: 기억 조각을 자동으로 열었습니다!】 혹독한 겨울이었다. 임안이 상현 아파트로 이사 온 첫해 설날이었다. 고모네 가족이 이사를 축하하기 위해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우리 집에서 함께 새해를 보냈다. 문밖에서는 폭죽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불꽃놀이가 쉴 새 없이 터졌다. 집 안은 화목하고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가장 북적이고 행복한 설날이었다. 그녀는 아빠가 사준 새 옷을 입고 사촌 동생과 함께 눈밭에서 불꽃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웃집 아이들도 뛰어와 함께 어울렸다. 임안은 손에 든 불꽃놀이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불꽃놀이를 들고 그녀 주위를 뛰어다녔다. 몇몇 장난기 많은 아이들은 복도 안으로 뛰어 들어가 위아래로 뛰어다녔다. 임안은 아이들이 주민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계단을 올라가 아이들을 불렀다. 분명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그녀는 위층 집에서 들려오는 그릇 깨지는 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곧이어 말다툼 소리가 들려왔다. "당장 나가! 돈 필요하면 나가서 알아서 해! 나가서 살아! 밖에서 죽든 말든 상관 안 해! 이제부터 넌 내 아들 아니야!" 임안이 가장 또렷하게 들은 말이었다. 그 집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본 그녀는 황급히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임안은 못 본 척 눈밭에 서서 손에 든 불꽃놀이를 바라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부잣집에서 산 여러 상자의 불꽃놀이가 하늘을 향해 연이어 날아올랐다. 불꽃놀이는 공중에서 순식간에 터져 화려한 색으로 물들었다. 눈밭은 불꽃놀이의 반사광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아이들은 여전히 서로 쫓고 쫓기며 놀고 있었고, 임안은 그들의 웃음을 보며 함께 웃었다. 아이들이 너무 빨리 뛰어오는 바람에 임안은 길을 비켜주려다 실수로 뒤에 있던 사람과 부딪혔다. 그녀는 불꽃놀이를 든 채 뒤돌아보았다. 얼굴에는 아직 미소가 가득했다. 그 사람은 검은 옷을 입고 모자를 쓰고 있어서 임안은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핏기 없는 얇은 입술만 보였다. 하지만 체형과 윤곽을 보아하니 소년이었다. 그녀보다 키가 한 뼘 정도 컸고, 나이도 그녀보다 조금 많아 보였다. 그녀는 방금 전에 싸우던 집 사람일 거라고 추측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쫓겨난 "아들"일 것이다. 아마도 그의 주변에 감도는 우울한 분위기를 느꼈거나, 아니면 임안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행복한 감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쩌다 보니 그 사람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불꽃놀이 막대를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불꽃놀이 줄게. 새해 복 많이 받아!" 소년은 손에 들린, 거의 다 타 들어간 불꽃놀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딱 한마디를 내뱉었다. "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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