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허, 연기 한 번 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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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안은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정돈했다. 박찬영의 바지는 그녀에게 너무 길었다. 바짓단을 여러 번 걷어 올려서야 겨우 발목까지 올라왔다. 임안은 바로 나가지 않고 화장실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으며 거울 속 자신의 발갛게 달아오른 뺨이 서서히 식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축축한 옷과 바지를 품에 안고 문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가지런히 남성용 슬리퍼가 놓여 있었다. 침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임안은 슬리퍼를 신고 침실을 나섰다. 신발이 맞지 않아 발뒤꿈치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박찬영은 거실 창가에 서서 미동도 하지 않고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박찬영..." 임안은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불렀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먼저 더 이상 붉게 달아오르지 않은 그녀의 목에 머물렀다가, 축축하게 젖은 교복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현관으로 걸어가 신발장 위 서랍에서 비닐봉지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옷 여기 넣어." 그의 목소리는 쉰 듯했다. 임안은 옷을 넣으면서 물었다. "요 며칠 계속 열 났어?" "... 응." 임안은 다시 고개를 들어 물었다. "약은 안 먹었어?" 박찬영은 대답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의 옷을 입고 있었고, 옷은 크고 헐렁해서 그녀를 더욱 작아 보이게 했다. 가늘고 긴 두 팔은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희미하고 노란 불빛 아래에서도 여전히 하얬다. 원래의 포니테일은 낮게 묶여 뒤로 대충 묶여 있었다. 그는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 그녀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물었다. "여기 무슨 일이야?" 임안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말했잖아? 아직 아픈 것 같아서 보러 왔지... 죽 끓여주려고 반찬도 가져왔어." 박찬영은 다시 물었다. "내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어?" "내가... 짐작했지!" 임안은 그가 또 무슨 말을 할까 봐 재빨리 부엌으로 달려가 가방에 옷을 쑤셔 넣었다. 부엌의 물건들이 비록 새것이긴 하지만 다행히 없는 게 없었다. 임안은 청경채 묶음을 들고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아직 저녁 안 먹었지? 소고기 야채죽 끓이게 부엌 좀 빌릴게?" 소녀의 얼굴은 밝았고, 박찬영은 그녀의 요 며칠 행동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열정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파로 가서 반쯤 누웠다. 그녀의 행동을 묵인한 셈이었다. 제정신이 아닐 때 꾼 꿈이라고 생각하자. 【띠링! 001 알림: 호감도 +5】 박찬영이 내 부탁을 들어준 건가? 죽을 끓이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임안은 냄비를 전기레인지에 올려놓고 부엌을 나왔다. 그녀는 박찬영이 소파에 누워 눈을 감고 쉬고 있는 것을 보고 조용히 다가가 소파 옆에 있는 담요를 덮어주려고 했다. 마치 누군가 오는 기척을 눈치챈 듯, 박찬영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눈을 떴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고, 임안은 그의 눈에 가득한 핏발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너..." 박찬영은 몸을 일으켜 한 손으로 탁자 아래 서랍을 열고 안에 있던 헤어드라이어를 꺼냈다. 그녀의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머리 말려." 누가 누굴 돌보는 거야... 그녀는 손을 등 뒤로 뻗어 축축한 머리를 만졌다. "고마워." 임안은 전원을 꽂고 가장 낮은 단계의 바람을 켰다. 그녀는 박찬영이 서랍에서 리모컨처럼 생긴 것을 꺼내는 것을 보았다. 그가 손을 들어 누르자 눈앞의 하얀 벽에 파란 불빛이 퍼져 나갔다. 임안은 하얀 벽에 비친 영상을 보며 생각했다. 역시 미래에 첨단 기술을 손에 쥐게 될 거물답게 벌써부터 프로젝터를 갖추고 있잖아! 그녀는 박찬영이 묻는 소리를 들었다. "뭐 보고 싶어?" 임안은 머리를 말리던 손을 천천히 움직이며 말했다. "... 아무거나... 있는 거 보자." 한참 후, 그는 손을 뻗어 버튼을 눌렀다. 음, 공포 영화였다. 다른 영화도 있을 텐데, 너무 고맙네 정말. 누가 알았겠는가, 그녀와 악명 높은 교활한 사업가가 될 이 남자가 1미터 간격을 두고 나란히 앉아 벽에 비친 서양 귀신을 응시하며 거의 한 시간 동안 침묵을 지킬 줄은… 도중에 그녀는 환자인 박찬영이 이런 걸 보는 게 휴식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어 체온을 재보기도 했다. 38.5도. 임안은 다시 한숨을 쉬었다. "그만 보고 방에 가서 쉴래? 죽 다 되면 내가 부를게." 그는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 정말 고집 세고 말 안 듣는 환자라니까! 그녀는 차라리 다른 영화로 바꾸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박찬영의 눈이 스크린에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그의 모습을 따라 바르게 앉아 속으로는 전혀 무섭지 않은 척했다... 부엌에서 "삐삐" 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임안은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후련한 마음으로 냄비를 열기 위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아, 아직 열 수 없었다. 그녀는 고민했다. 계속 소파에 앉아 공포심을 꾹 참고 그와 함께 서양 귀신을 볼 것인가? 아니면 부엌에서 조용히 냄비가 열리기를 기다릴 것인가... 창밖의 빗물이 유리창에 부딪히고, 번개가 번쩍이며 하얀 빛을 발했고, 천둥소리가 하늘을 찢어놓을 듯 울려 퍼졌다. 스읍. 그래도 박찬영 옆에 있는 게 더 안전할 것 같았다. 임안은 시종일관 공포스러운 화면을 애써 무시했다. 박찬영은 그녀의 손가락이 소파를 꽉 움켜쥐고 있지만 얼굴에는 전혀 두려움이 없는 것을 곁눈질로 알아챘다. 허. 연기 한 번 잘하네. 그는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서 스크린 속 악당이 끔찍한 소리를 내려는 순간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영화 속의 섬뜩한 효과음이 순식간에 벽을 뚫고 임안의 고막을 강타했다. "꺄악!" 그녀는 깜짝 놀라 박찬영이 장난치는 줄도 모르고 비명을 질렀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영화에서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낸 줄 알았다... 임안은 재빨리 박찬영 쪽으로 붙어 그의 팔을 꽉 껴안았다. "박찬영!! 차라리 다른 영화 보자 응? 응? 응?..." 임안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박찬영은 아무런 반응 없이 그녀가 안도록 내버려 두었다. 임안은 그의 손에 들린 리모컨을 낚아채 영화를 정지시켰다. 그녀는 그의 옷을 입고 있었고, 그녀의 원래 향기와 그의 옷 냄새가 뒤섞였다. 옷 사이로 박찬영은 다시 한번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느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차가운 표정으로 일어서서 프로젝터를 끄고 부엌으로 향했다. 【띵! 001 알림: 호감도 -1】 ? 내가 또 뭘 잘못했지? 영화를 꺼서? 아니면... 그를 안아서? 박찬영은 스킨십을 싫어하는 건가... 임안은 그를 따라가 그가 찬장에서 그릇 두 개를 꺼내 죽을 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식탁에서 박찬영은 임안이 끓인 죽을 조용히 먹었다. 그는 정말 말이 없었다. 임안은 그릇에 담긴 죽을 떠먹으면서 박찬영의 행동을 주시했다. 그는 시종일관 조용했고, 밥을 먹을 때도 숟가락이 부딪히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요 며칠 동안 지내면서 박찬영이 먼저 말을 건넨 횟수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가 이렇게 조용하자 임안의 목소리도 조심스러워졌다. "박찬영... 이따가 다 먹고 30분 후에 해열제 먹어." 그녀는 일어서서 가져온 해열제를 꺼내 부엌으로 가 컵에 뜨거운 물을 따르고 컵과 약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띠링! 001 알림: 호감도 +5】 흥, 우리 아빠도 나한테 이렇게까지 살뜰하게 보살핌 받아본 적 없을걸! 아빠 생각을 하자마자 임안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임현철에게서 걸려온 전화라는 표시가 떴다. 그녀는 옆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빠." 임현철은 전화 너머로 다소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담임 선생님 말씀이 너 오늘 야자 빼먹었다며? 어디 아프니? 집에 있니? 아빠 일찍 들어가야해?" 그녀는 야간 자율 학습을 빼먹었다는 사실을 거의 잊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학생들이 꾀병을 부리는 것을 우려하여 보통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확인한다. 임안은 전화기를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아무렇지도 않아. 그냥 그날이라 배가 좀 아파서 그래. 아빠는 일에 집중해~" "그래, 그럼 우리 딸 잘 쉬고 있어. 아빠가 최대한 빨리 들어갈게." 전화를 끊고 임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아빠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지난번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우재영이 학교 밖에서 농구 시합을 했는데, 그녀가 수업을 빼먹고 그를 보러 갔었다. 다행히 아빠가 그녀를 믿어 주셔서 들키지 않았다. 임안은 휴대폰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박찬영이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다소 의아했다. '설거지'와 '박찬영'라는 단어가 함께 있으니 어딘가 어색했다. 임안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창밖의 빗줄기를 바라보며 이따가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생각했다. 설거지를 하던 소년의 손이 갑자기 멈추더니 말했다. "너희 아빠 아래층에 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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