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거 내가 다 막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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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준은 그런 이솜의 시선이 부끄러워 아예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러자 이솜이 손을 뻗어 도준의 두 볼을 잡고 고개를 올렸다. "그렇게 고개 숙이면, 쌤이 혼내는 것 같잖아.“ "……." 도준은 이제 심장이 터지는 것만 같았다. 이러다 고혈압으로 죽으면 어떡하지, 왜 이렇게 손이 부드럽지, 와 싸대기 맞아도 좋으니까 키스 하고 싶다. 별별 생각이 다 든 도준은 애써 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나 이솜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래로 내려다보던 이솜의 시선이 고개를 치켜들어야 도준을 볼 수 있었다. 키에 딱히 콤플렉스가 없었지만 이렇게 올려다보니 괜히 기분이 나쁜 이솜은 인상을 찌푸렸다. "데려다 드릴게요.“ "필요 없어. 네가 무슨 남자친구야? 자꾸 데려다 준대, 왜." 나, 남자친구?! 상상만 했던 이솜의 남자친구 자리가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겨우 가라 앉았던 심장이 다시금 마구 뛰기 시작했다. 미치는 것 같았다. 이솜은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 "괜찮아, 나 혼자 할 수 있거든. 취하지도 않았고, 어둡지도 않아." 이솜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생각만 했던 것이 입으로 바로 출력 해 버리니 이솜은 미칠 지경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정신이 들자 말꼬리를 늘리거나 목소리를 높인 것이 생각이 나 쪽팔려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솜은 멍하니 있는 도준을 지나쳐 집으로 뛰어갔다. 혼자 편의점 앞에 남은 도준은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미치겠다.“ * 기적적으로 3일 만에 문제를 모두 만든 이솜은 눈물을 흘리기 일보 직전인 마음으로 부장 선생님께 결제를 받으러 다가갔다. 부장 선생님은 이솜이 건넨 시험지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진짜 그녀가 해 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해, 다른 학교 윤리 담당 선생에게 연락을 해서 시험 문제 몇 개를 빌려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장하네, 한 선생.“ "감사합니다." "오늘 내로 결제 다 받을 테니까 걱정 말고. 이번엔 확실하게 시험지 관리 할게." "네……." 이솜은 지친 표정을 지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3일 밤낮으로 문제를 뽑아내려니 영혼까지 뽑히는 줄 알았다. 덕분에 컨디션은 완전 바닥을 기고 있었고, 정신은 오락가락 했다. 숨통이 조금 트인 여유 덕분에 이솜은 그대로 자리에 엎드렸다. 옆에서 이솜을 보던 진우가 안쓰러운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이 개고생을 했는데 곱씹어 생각 해 보니 시험지 유출자 낯짝을 보고 싶었다. 이솜의 촉이 범인은 그 사람이라고 말 해주고 있었다. 심증은 완벽했지만 물증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도준이 했던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원하시면 CCTV 열람 가능하게 해 드릴게요.' '교무실에 CCTV 설치 됐을 거예요. 할아버지한테 부탁해서…….' 자신만만한 도준의 말이 머리속을 자꾸 채웠다. 지금이라도 범인을 잡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던 이솜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미워하는 건 혼자면 족했다. 종례시간이 다가오자 이솜은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런 이솜을 바라보는 지은의 시선이 날카로웠다. 시험 문제를 다 만들지 못해 울고불고 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큰 타격을 맞은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조금 더 괴로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다른 방법이 더 없을까 고민하던 지은은 이번에도 시험 문제를 유출할까 했지만 그 날 이후 교무실의 보안이 한층 더 강화되어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의 시험지를 유출해서 이솜에게 뒤집어씌울까 했지만 이솜에게 덮어 씌울만한 핑계도 없었고, 자신이 시험 문제를 다시 내야 하는 고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 다들 퇴근들 하시죠? 오늘 야자 감독 누구야?“ "진우 쌤이랑 민겸 쌤, 지은 쌤이요." "그래 그 셋은 고생 하고. 나머지는 빨리들 가세요." 부장 선생님은 퇴근을 종용하더니 제일 먼저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본 이솜은 복잡한 마음으로 8반으로 향했다. 여전히 복도에서 장난치며 먼지를 폴폴 날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조금 부어주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을 모두 열어 놓아서 커튼이 나풀거리며 바람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청소 할 때만이라도 환기를 꼭 시키라는 이솜의 말을 착실히 듣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귀여워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솜이 교실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을 때, 청소를 마친 아이들이 하나 둘 씩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이솜이 맨 앞자리에 휴대폰 바구니를 올려놓자 빠른 속도로 모든 아이들에게 바구니가 돌아갔다. "다음 주 부터 시험인거 알지? 쌤들이 알려 주신 시험 범위 공부 잘 하고, 무슨 일 있으면 쌤한테 연락 해." "네에-" "음. 또 필요한 거 없지? 그럼 종례 끝! 다들 집에 가라." "와아아아" 깔끔하고 빨리 마무리 된 이솜의 종례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야자를 하는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재빠르게 사라졌다.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시험 문제를 다 내서 그런지 마음이 붕 뜨는 것이 느껴졌다. 집에 가서 따뜻한 물로 목욕을 하고 포근한 이불에 들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자고 싶었다. 상상만 해도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에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이솜은 짐을 모두 덜어 낸 것 같은 기분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무실로 반은 뛰다 싶이 걸어갔다. "아, 이솜 쌤. 미안한데 이 것 좀 봐줄래요? 내가 좀 바빠서." 교무실로 들어가자마자 지은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의 봉사 기록표를 이솜에게 넘겨주며 네일 파일로 손톱을 정리하고 있었다. 거만한 표정으로 손톱에 바람까지 훅 불어주니 재수 없는 것이 한층 더 추가 되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기록표를 받아 든 이솜은 차마 거절 할 수 없어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집에 돌아가서 해야 할 것 리스트를 모두 삭제 한 이솜은 오늘 퇴근은 두 시간 정도 미뤄지겠다 생각이 들었다. 지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기록표를 정리하는 이솜을 보고 조용히 키득거렸다. 그래, 이렇게 작은 골탕도 나쁘지 않지. "그럼 난 석식 좀 먹고 올게요." 지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태연히 급식실로 향했다. 이솜은 그런 지은을 바라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지은이 복도를 걷고 있는데 저 멀리서 도준과 기찬이 보였다. 둘은 지은을 발견하고 가볍게 인사를 한 뒤 그녀를 그냥 지나쳤다. 만약 자신이 이솜이었다면 저 둘이 교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달라붙었겠지,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화가 치솟았다. 왜 모든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지 않는 것인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들자 좌절감이 들다가도 분노가 일었다. 지은은 몸을 돌려 다시 교무실로 들어갔다. 다른 선생님들은 모두 식사를 하러 갔는지, 이솜만 자리에 앉아 그녀가 맡겨 놓은 기록표를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한이솜 선생님.“ "네?" "그거 그만 하세요." "네? 갑자기 무슨……." "하지 말라고요!" 지은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르며 이솜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에서 봉사 기록표를 빼앗았다. 얇은 종이가 이솜의 손에서 빠져나가면서 피부를 베어버렸다. 갈라진 피부 사이로 핏방울들이 송글 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무, 무슨 짓이에요?" "됐으니까 하지 말라고요. 못 알아들어요? 어려서 그런가?" "아니- 선생님이 저한테 시키신 거잖아요."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 하-" 이솜은 미칠 지경이었다. 퇴근하려는 자신을 붙들고 일거리를 쥐어주더니, 돌연 마음을 바꿔 일거리를 빼앗았다. 평소 같이 신경을 거슬리게만 하는 지은의 행동이었다면 이번 행동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었다. 꾹꾹 참아왔던 이솜도 화가 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은 쌤.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럼 말 하지 말던지. 어린 주제에 자꾸 쫑알쫑알 시끄러워서 일을 못해, 내가!" "아니 왜 자꾸 저한테 시비를……." "뭐? 내가, 내가 언제 시비를 걸어!" 지은은 당황 했는지 오히려 이솜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러다가 이솜의 어깨를 툭툭 밀며 이죽거렸다. "이제 사회생활 시작 했으면 그냥 조용히 있어요. 괜히 나대다가 시험 유출이나 당하지 말고." "……꼭 선생님께서 유출 하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하! 내가 유출 했다는 증거 있어요?!" "꺄악!" 지은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솜을 퍽 밀었다. 이솜은 갑자기 밀려 소리를 지르며 뒤로 넘어졌다. 이솜의 자리가 문과 가까운 자리라 닫혀 있는 문에 몸을 쾅 부딪쳤다. 문에 부딪힌 머리와 등이 얼얼했다. 무방비 상태였긴 했지만 얼마나 세게 밀었으면 아플까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교무실 문이 열렸다. "…….“ "……." 4쌍의 눈동자는 할 말을 잃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 도준과 기찬은 빠른 하교를 위해 얼씬도 하지 말라는 교무실 쪽으로 슬슬 걸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지은이 돌연 몸을 돌려 교무실로 우다다 뛰어 들어갔다. 도준과 기찬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모른 척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애들이 주말에 시험공부 형네 집에서 한다는데?" "그 놈의 새끼들은 맨날 우리 집에 오냐. 숙박비 내라고 해." "큭큭-" 도준의 숙박비 드립에 기찬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웃어 넘겼다. 말 해봤자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 뻔했다. 교무실을 막 지나는 시점, "아니- 선생님이 저한테 시키신 거잖아요." "지금 나한테 대드는 거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 하-" 조용한 복도에 교무실에서 흘러나온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목소리로 판단하건대, 방금 교무실로 뛰쳐 들어간 지은과 교무실 안에 있었을 것이 분명한 이솜이었다. 자극적인 대화에 두 사람이 발을 멈췄다. 시선은 서로를 향했다. 뭐지? 위험해 보이면 들어가고 아니면 그냥 지나가자. 멈춰서 대화를 듣기로 작정한 두 사람은 교무실 문 멀찍이 서 있었다. 높고 낮은 목소리가 대화를 하더니 갑자기 문에 무언가가 쾅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도준은 깜짝 놀라, 기찬이 말릴 틈도 주지 않고 교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교무실 바닥엔 손가락에 피를 매달고 넘어져 있는 이솜과, 잔뜩 상기 된 채로 씩씩거리는 지은이 있었다. 뒤 이어 기찬이 도준의 어깨 너머로 교무실 안을 살펴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게 대체 무슨……." 도준이 말을 다 잇지 못했다. 그 때 이솜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었다. 손가락에 달려 있던 피는 이솜의 옷에 흡수됐다. 천에 쓸린 벌어진 피부가 따끔거렸고 문에 부딪힌 머리와 등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그렇게 세게 부딪혔으니 머리에 혹이 나지는 않았을까, 등에 멍이 들지는 않았을까 생각했다. "김도준, 한기찬 집에 가.“ "쌤!“ "빨리 안가?!" 이솜의 윽박지르는 소리에 기찬은 도준을 잡아끌었지만 도준은 그 자리에 꿋꿋하게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지은을 잡아 삼킬 것 같은 표정이었다. 도준의 형형한 눈빛에 정신을 차린 지은은 몸을 살짝 떨었다. 하지만 지금 비굴하게 나온다고 해도 달라질 상황은 하나도 없었다. 이솜은 계속 교무실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도준은 그녀를 막았다. 이솜의 어깨를 감싸 안아 밖으로 끌더니 지은을 쳐다보지도 않고 낮게 읊조렸다. "적당히를 모르시네요, 김지은 선생님은.“ 도준은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이 교무실 문을 쾅 닫아버렸다. 의도치 않게 도준의 품에 안긴 이솜이 쾅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재빠르게 도준의 품에서 벗어났다. 도준은 주먹을 꽉 쥔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도준의 뒤에는 기찬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이사장 손주라고 해도 지킬 선은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었다. "너, 선생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CCTV 보러 가요." 이솜의 훈계에 도준은 뚱딴지같은 소리를 뱉었다. 순간 어이가 없어진 이솜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뭐?“ "씨발, 망할 유포자 좀 잡자고!“ "형!“ "이게 진짜 미쳤나." 도준은 지은을 바라보던 눈으로 이솜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솜은 그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분명 무서운 눈이었지만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기찬은 이솜에게 욕을 내뱉은 도준을 어찌 할 수 없었다. 말리자니 저 큰 주먹과 제 볼이 만날 것 같았고, 말리지 않자니 이솜의 분노가 너무나도 또렷하게 느껴졌다. "김도준, 선 지켜. 너 지금 선생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쌤은 억울하지도 않아요? 이유도 없이 시험지 유출 당하고 고생이란 개고생은 다 했는데, 학교에선 유출자 잡아주지도 않고! 지금도 봐요. 생사람 잡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잖아." 목에 뭔가 탁 걸린 듯이 말하는 도준의 모습이 처연했다. 꼭 자신이 모든 일을 당한 것처럼 말 하는 모습에 이솜의 말문이 막혔다. 도준의 말이 백 번, 천 번 다 맞았다. 만 번 양보해도 지은의 행동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이솜 기준에선 정답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도준이 별안간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할아버지. 나야. CCTV 확인 좀 하려고. 응. 그 때 그 일.“ "김도준, 하지마.“ "형, 쌤 곤란하게 왜 그래!“ "사람 좀 보내줘, 최대한 빨리." 도준은 이솜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꿋꿋하게 말 했다. 도준의 부탁에 이솜은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일부러 가만히 두고 있는 문제를 들쑤시기 시작했다. 기찬은 도준의 단호한 말에 한숨을 푹 쉬었다. 더 이상 말릴 수 없었다. "내가 분명히 그 때 마음만 받는다고 한 것 같은데, 지금 무슨 짓이야?“ "그럼 범인 있는 거 분명한데 버젓이 그냥 둬요?“ "어, 그냥 둬! 일부러 공론화 안 시키는 거 모르겠어? 아무리 막아도 분명히 기사 뜬다고. 그럼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책임이야.“ "……그런 거 내가 다 막을게요." 어린아이 같이 억지를 부리는 도준이 어이가 없어 이솜은 이마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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