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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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어쩔 수 없죠. 괜찮아요.” 난 조금 빼며 대답한다. 하지만 긴장된다. 떨림을 애써 감춘다. 초짜로 보여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긴장되게 하는 듯하다. 서 있던 여자는 퇴짜를 맞지 않아서 다행인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여자가 와서 내 오른쪽 옆에 앉는다. 머리를 감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아, 이 향기는... 무슨 향이더라...... “안녕하세요, 오빠.” 오빠??? 돌아가시겠네. 장난이지? 미처 정신을 수습할 수 없을 때, 똑똑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아까 남직원이 들어와 묻는다. “형님. 일단 한 타임하실 거죠? 맥주로 하실 건가요? 양주로 하실 건가요?” 형님???? 여기, 여성 캐스트들에 여자 손님들만 받는다는 그 노래방 아닌가요? 그런 데도 형님? 내 머리가 아주 짧고, 더구나 안경까지 써서 내가 여자인 줄은 전혀 모르나 보다. 더구나 난 학군단이다. 보통 여자들보다는 크고, 큰 축에 드는 여자들보다는 좀 작다. 그래도 여자로서는 큰 키에 속한다. 그래서 나는 야밤에 남자로 오해받기 십상인 외모를 하고 있기는 하다. 근데 여기가 내가 찾아온 그 노래방이 정말 아닌가? ‘됐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갈래요.’ 그러나 돌아서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무엇 때문일까? 일어서려 엉덩이를 들었을 즈음에야 깨닫는다. 지금 내 옆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 단숨에 꽂혀 버렸기 때문인 듯하다. 설상가상으로 모퉁이 건넛방 어디서인가, 이제 남자 손님 노래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여기 여성전용 노래방이 아니다! 그래서 이 기절할 만한 여인을 두고 가란 말인가? 갈등은 순식간에 끝난다. “양주로 할게요.” “간단한 과일과 기본 안주 되고요, 한 타임 두 시간이고요. 평일이라 십육만 원 해드리는 겁니다. 대신 아가씨 잘 챙겨드리고요.” 카운터남이 수금직원처럼 다가와 말한다. 오, 십육만 원. 내겐 거금이다. 하지만 돌아설 용기가 없다. 이 여인을 두고 갈 수는 없다. 난 마치 막대 인형처럼 멎어서 꽂혀 있다. “여기요.” 나는 지갑에서 서둘러 카드를 건넨다. 이번 달은 열심히 벌어야겠다. “한 시간 사십분 정도 있다 가시면 됩니다. 시간 지켜주시고요. 여기요.” 남직원이 카드를 건네고 나간다. 치이, 두 시간이라고 했으면서. “오빠. 혼자 오셨나요?” 여인이 다소곳이 묻는다. 목소리가 클라리넷을 부는 것처럼 또렷하고 맑다. “으응. 근데 여기 원래 여성 전용 노래방 아니었나요?” 나는 조심스레 물어본다. “그랬다 하더라고요. 하지만 워낙 마이너 시장이라 장사가 안 돼 망했나 봐요. 지금은 주인과 스태프도 다 바뀌고, 걍 일반 노래주점인데?” 여인이 -카드라 식으로 대답한다. 이 여인마저 잘 모르나 봐. “일반 노래주점이라구요?” “따지고 보면 주점도 아니고 노래방에 더 가깝죠. 근데 오빠, 말 내려요.” 자꾸 얘가 오빠라고 해대니, 나마저 목소리가 굵게 나온다. “엉엉... 이름이 뭐야?” “연지요.” 본명은 아니겠지. “오빠는요?” “여, 남주. 아니 남준.” 나도 물론 진짜 이름은 아니다. 성은 ‘여’ 씨이긴 하지만. “호호. 진짜요?” “응, 왜?” “촌스러워서요.” “워 원래는 남석이야.” 여전히 촌스런 이름만 나오네. “본명은 더 고전적이네. 그냥 석이 오빠라 불러도 되죠?” “아 그래.” “호호호.” “하하하.” 우리가 즐겁게 말을 트는 것을 보고, 금세 들어온 남직원이 테이블을 차리며 한 마디 건넨다. “형님. 이 아가씨 괜찮죠?” “아 네.” 내가 대답한다. “특별히 제가 신경 좀 썼거든요?” 이쯤에서는 보통 팁을 주어야 한다. 하지만 난 초짜라 그런 센스를 놓치고 만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형님.” 그 시간부터 나는 ‘형님’ ‘오빠’가 되어 버린다. 내 의지나 의도와는 무관하게. 잘못 찾아온 노래주점 때문에? 그것도 이유 중의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솔직하지 못하다. 내 옆에 앉은 여인, 연지 때문이다. “오빠 한잔해요.” 연지가 양주병을 따고 내 잔에 얼음을 채우고 양주를 채워준다. “나 술 좀 약한데...” “그럼 생수 좀 넣어드릴게요.” 연지가 생수를 따라 준다. “저도 한잔 주세요.” 나는 졸졸 따라준다. “짠!” 그날 밤 우리의 위험한 운명의 시작을 알리는 첫 샷은 이렇게 시작된다. “스물 둘이면 학생이야?” “학생은요. 저희 집 가난해서 대학은 꿈도 못 꾸어봤거든요. 대학 간 친구들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요.” “그렇구나. 어쩌다.” “어머니 병원비에,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려면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하죠.” 연지의 눈빛이 슬프다. 연지가 살짝 훌쩍거리는 듯하다. “흑흑.” ‘소녀 가장 같은 거구나. 에휴. 어린 나이에 이런 일 하는 게 쉽지 않지.’ 나는 지갑을 꺼낸다. 술이 오르면 정에 약하다. 내 손가락은 오 만 원 짜리와 만 원 짜리 사이에서 방황한다. 이 만 원을 꺼내 연지에게 건넨다. “팁.” “오빠.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흐흑.” 훌쩍거림을 뒤로 하고 연지가 돈을 받아 자신의 어딘가에 찔러 넣는다. 이번 달은 사장님에게 알바 시간을 더 늘려 달라고 해야겠다. “자! 오빠 한 잔 더!” “캬아!” 우리는 또 한 잔을 넘긴다. “그럼 아빠는 전혀 안 도와줘?” 내가 왜 이런 질문을 꺼냈을까.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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