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괴상하게 생긴 바다 생물

4530 Words
1.괴상하게 생긴 바다 생물 부둣가 주위로 갈매기들이 맴돌고 있었다. 고깃배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시원은 자전거의 페달을 힘껏 밟았다. 시원은 열이레 동안 바다에 나가 있었던 아빠를 볼 수 있어 기뻤다. 아빠는 고깃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거의 보름 만에 돌아오곤 했다. 초여드레 조금이나 스무사흘 조금(음력으로 매달 8일과 23일. 바닷물의 높이가 가장 낮아지는 때)을 맞춰 돌아왔다. 그러나 요즘에는 예전보다 더 오랫동안 바다에 나가 있었던 적이 많았다. 요즘 들어 부쩍 고기가 잘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커다란 흰색 등대를 지나면 부두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부둣가에 몰려 있었다. 금방 잡은 싱싱한 물고기를 사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일까? 하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부두에 몰려들기는 처음이었다. 부두에는 경찰 아저씨들 차도 보였고 앰뷸런스처럼 생긴 차도 보였다. 주황색 랜드로버도 보였다. 아빠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불안해진 시원은 자전거를 눕혀 놓고 사람들에게 달려갔다. 도시에서 온 듯한 낯선 사람들 틈에 아빠의 뒷모습이 보였다. 시원은 부두 끝에 빙 둘러서 있는 사람들을 헤집고 아빠에게 다가갔다. “아빠!” 시원이 부르자 아빠가 뒤돌아보았다. 시원은 아빠에게 안겼다. 장화를 신고 방수복을 걸친 아빠에게서는 바다 냄새가 났다. 그런데 아빠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아 보였다.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선 틈으로 흠뻑 젖은 채 누워 있는 돌고래만한 물고기가 비쳤다. “아빠가 고래를 잡은 거야?” “그게 아니다. 넌 집에 가 있거라.” 아빠가 말했다. 시원은 무슨 물고기일까 궁금했지만 아빠가 시키는 대로 집으로 향했다. “선장님!” 경찰이 아빠를 불렀다. 아빠는 긴장된 얼굴로 경찰에게 다가갔다. 시원네 집은 부두 옆에 위치한 빨간 벽돌집이다. 아빠, 엄마, 외삼촌, 남동생 시진, 강아지 아롱이, 그리고 시원이가 산다. 시원의 방은 이층 지붕 밑 방이다. 시원은 거실에 가방을 던져 놓고 지붕 밑 방으로 후다닥 올라갔다. 바다로 향한 내리닫이 나무창을 열고 부두를 내려다보았다. 아빠가 잡은 물고기가 어떤 물고기인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다. 흰색 가운에 마스크를 쓴 언니 과학자가 짙은 회색 물고기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빠는 경찰의 물음에 답을 하고 있었다. 파란색 체육복 차림으로 나와 있는 외삼촌도 보였다. 시원은 수수께끼 물고기를 얼른 보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 등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짧게 자른 과학자 언니가 고개를 갸웃하며 일어섰다. 드디어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가 둥글고 몹시 컸다. 그리고 눈꺼풀이 달린 커다란 퉁방울눈을 하고 있었다. 코는 거의 보이지 않고 두 개의 구멍만 나 있는 것 같았다. 코 밑에 아주 작은 입이 붙어 있었다. 머리 아래쪽 양옆으로는 기다란 팔처럼 생긴 지느러미가 돋아나 있었다. 물고기의 꼬리 쪽은 아직도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향유고래의 새끼일까? 하지만 저렇게 지느러미가 길지는 않았어. 색깔도 달라. 그리고 머리도 너무 크고 이상한 모양이야. 거기에다 눈꺼풀이 달린 물고기라니!’ 시원은 고래 박사다. 백과사전에 나온 거의 모든 고래의 모습을 외우고 있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고래의 겉모습만 봐도 무슨 종류 고래인지 금방 안다. “향유고래는 아냐. 상괭이 돌고래일까?” 먼 바다에서 밀물이 밀려올 때면 시원은 해변에 나타난 상괭이 돌고래 떼를 자주 보곤 했다. 참돌고래처럼 수면으로 뛰어오르지도 못하고 수면에 갈색 등만 보이며 코로 숨을 푹푹 내쉬는 우스꽝스럽고 둔한 돌고래이다. 하지만 상괭이 돌고래를 잡아 오는 어부는 없다. 지방이 많고 질겨 아무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아빠가 상괭이 돌고래를 잡았을 리는 없다. “무슨 고래이지? 아무튼 썩 잘생긴 바다 생물은 아냐.” 시원은 이렇게 생각하며 계속 그 커다란 물고기를 내려다보았다. 물고기는 오래 전에 죽었는지 꿈쩍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물고기 한 마리에 난리 법석을 떠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겨우 이름 모를 물고기잖아?” 이렇게 중얼거리며 시원은 창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때 물고기의 꼬리 쪽을 가리고 있던 아저씨가 몸을 움직이자 물고기의 전체 모습이 드러났다. “저건 뭐지?” 문을 닫으려는 것을 멈추고 시원은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펭귄처럼 흰무늬가 박힌 볼록 튀어나온 배 아래쪽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물고기의 꼬리 쪽 몸뚱이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짧고 통통한 두 다리 끝에는 물갈퀴가 달려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진짜 이유는 저 이상한 다리 때문인 것 같았다. 낯설고 이상한 모습을 한 물고기를 보자 시원은 징그럽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런 모습의 물고기는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텔레비전에서도 백과사전에서도 보지 못했다. ‘아빠가 백과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고래를 잡은 게 틀림없어. 이제 아빠의 이름을 딴 고래의 이름이 탄생하겠지. 이 세상에는 처음 발견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붙인 생물들이 많다고 아빠는 말했어.’ 과학자 아저씨들이 흰색 승합차에서 들것을 꺼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물고기를 실은 다음 곧 부두를 떠났다. 경찰 아저씨의 차들도 사이렌을 울리며 급히 부두를 떠났다. 부두에 모여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흩어졌다. 끼욱- 끼욱- 고깃배 주위에서 맴을 돌던 갈매기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함께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이젠 아빠의 이름을 딴 고래가 백과사전에 나오는 거야?” 시원이 아빠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니?” 하루 종일 누워 있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가 되물었다. 시원은 낮에 부두에서 보았던 괴물고기에 대해 엄마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했다. “그게 정말이에요? 도대체 어디서 잡은 거죠?” 엄마가 물고기처럼 동그랗게 두 눈을 뜨고 아빠에게 물었다. “아주 멀고 거친 바다에서겠죠. 그렇게 희귀한 물고기는 너무 빨라 아빠만이 잡을 수 있었을 테니까요.” 시원이 엄마 대신 대답했다. 그리고 그 괴물고기를 잡기 위해 아빠가 멋지게 그물을 던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사실은 전혀 빠르지 않았다. 그 괴물고기는 우리를 보고 달아나지도 않았거든.” 아빠가 대답했다. “왜 달아나지 않았어요? 아빠를 얕잡아 본 거야?” “아니. 그 물고기는 바다 위에 가만히 둥둥 떠 있었단다. 우리가 천천히 다가가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 처음에 우리는 죽은 상괭이 돌고래인줄 알았어. 요즘엔 가끔 버려진 그물에 걸려 죽은 상괭이 돌고래들이 떠오르니까.” “죽은 척하고 있다가 선원들을 잡아먹는다는 바다뱀일까요?” 시원은 이야기 속의 바다뱀을 떠올렸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다가갔어. 네가 말한 그런 바다괴물일지도 몰랐거든. 선원들이 고함을 쳐도 그 괴물고기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단다. 가까이 가 보니 그 물고기는 배를 하늘로 향하고서 입을 뻐끔대고 있었지. 숨을 쉴 때마다 볼록한 배가 들썩였어. 바다뱀이나 돌고래는 분명 아니었어. 가슴지느러미 같은 게 꼭 팔처럼 생긴 것을 알고 누군가 놀라 소리쳤지. ‘듀공이다!‘라고.” “듀공이요?” “홍해에서 오래 전에 사라진 해우목에 속하는 희귀한 척추동물이지.” “그럼 고래처럼 포유류이겠네요?” “정확힌 진수류, 포유강에 속하지. 어쨌든 그 희귀한 짐승은 곧 숨이 넘어갈 것처럼 입을 뻐끔대고 있었단 말이야.” 아빠는 물을 한 컵 마시며 뜸을 들였다. 엄마는 궁금해 죽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엄마도 그런 물고기는 처음일 테니까. “그런데 바다 위에 벌러덩 누워 떠 있는 짐승의 모습이 아무래도 너무 이상했어. 보디아니처럼 움직이는 눈꺼풀을 가진 바다짐승인 것을 알고, 이 아빤 듀공이 아니란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지. 바다 생물이 아니라 꼭 네발 달린 육지 짐승이 바다에 누워 있는 것 같았으니깐.” 아빠가 다시 물을 들이켰다. “그래서요?” 엄마가 아빠를 재촉했다. “그 괴이한 짐승은 고통스럽게 눈꺼풀을 깜박이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 선원들과 나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그 괴물고기에게 바짝 다가갔지.” “당신이 잘못들은 거겠죠. 물고기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말을 하는 물고기는 이 세상에 없다고요. 아빠가 또 이야기를 지어내는 모양이구나. 아빠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니까.” 엄마가 아빠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환상이요?” “꿈같은 거지.” 엄마가 대답했다. “엄마는 늘 꿈을 가지라고 했잖아요?” “내가 말했던 그 꿈은 아빠가 지금 얘기하는 엉터리 같은 얘기와는 다르잖아. 목표를 가지라는 뜻이었어. 난 너만 했을 때 꿈이 많았거든.” 엄마는 늘 시원이 꿈이 없다고 탓한다. 아직 시원에게는 엄마가 말하는 꿈이 없다.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커서 반드시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꼭 무엇이 되어야 해, 엄마? 그냥 난 내 자신이 되면 안 돼? 시원이 이렇게 물으면, 엄마는 핀잔을 주고는 했다. 엄마는 어렸을 때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어. 사람은 높은 꿈을 꾸면 꿀수록 좋은 거야. 대다수 사람들은 그 절반밖에 이룩하지 못하지만. 그런데 넌 꿈마저 없으니까, 빈 유리병이나 마찬가지지. 엄마는 이렇게 나무랐다.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던 엄마는 간호사가 되었다. 생물학자의 절반이 간호사일까? 하지만 시원은 생물학자보다 간호사인 엄마가 더 좋다. “엄마는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을 엉터리라고 여기는구나. 믿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기적은 없지. 너도 내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니?” 아빠가 시원에게 물었다. 정말 물고기가 말을 했다고요? 시원은 아빠에게 되묻고 싶었다. 아무래도 물고기가 말을 했다는 부분은 아빠가 지어낸 얘기 같았다. 하지만 시원은 아빠와 엄마를 번갈아 보다가, 누구 편을 들어야 좋을지 몰라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난 일어나련다.” 아빠가 하던 이야기를 중단하고 일어나려 했다. “아니에요. 과학자들까지 왔다면 분명 중요한 뭔가가 있을 거예요. 계속하세요.” 엄마가 식탁에서 떠나려는 아빠를 붙잡았다. 아빠는 못이기는 척 헛기침을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빠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가 다가가 보았는데, 그 물고기는 죽기 직전의 사람 같았어. 유언을 남기려고 하고 있었거든. 자세히 보니까 미끈하고 둥근 머리는 꼭 사람의 머리를 닮았더라니깐. 어깨의 지느러미도 사람의 팔처럼 길었지. 더구나 통통하고 짧은 다리 끝에 발가락과 물갈퀴까지 달린 하반신은 꼭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지. 그래서 이번엔 누군가 인어라고 소리쳤지. 그러자 옆에 있던 어부가 저렇게 통통하고 못생긴 인어를 봤어? 하고 비웃었지. 그때 괴물고기는 쿠쿠니 쿠쿠, 루루니 누누, 추추니 추추, 푸푸니 푸푸- 하고 내뱉다가 갑자기 말하는 것을 멈추어 버렸어. ‘물고기가 말을 했어.’ 누군가 또 소리쳤어. ‘그냥 고래처럼 물을 내뿜은 것뿐이야.’ 다른 선원이 반박했지. ‘아냐. 알아듣진 못했지만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고.’ 또 다른 선원이 말했지. ‘정말 그런 것 같았어.’ 나머지 선원들이 말했지. 그러자 모두들 쥐 죽은 듯 조용해졌지. ‘외계인일까?’ 누군가 조용히 속삭였지. 그러자 갑판에 있던 선원들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왜요?” 시원이 다시 끼어들었다. “외계인이 하늘에서 떨어진 줄 알았거든.” “바다에 비행접시가 나타났어요?” “누군가는 공중 위에 멈춰 있는 무엇인가를 보았다고 했고, 다른 누군가는 보지 못했다고 했어. 아빠는 날씨가 흐렸기 때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단다. 하지만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몰랐지.” “선원들은 그 이상한 괴물고기 때문에 옳은 판단을 할 수 없었을 거예요. 바다 위의 신기루처럼 헛것을 보고 유에프오가 나타났다고 믿은 거겠죠.” 엄마는 아빠의 말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도 아빠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눈치였다. “우리가 배를 그 짐승에게 아주 가까이 댔어. 바다 위에 떠 있는 그 괴물고기는 더 이상 입을 꿈틀거리지 않았지.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게 분명해. 그러나 죽어 버린 것이지. 우리는 그 이상한 생물체를 거기에 버려 두고 갈 수 없었어. 너무 애처로워 보였거든. 겁을 먹은 누군가는 그것을 버리고 가자고 했어. 외계인의 시체를 보관했다가 외계인에게 잡혀 간 사람이 있다면서 말이야. 하지만 선장인 난 학계에 보고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지.” “학계요?” “과학자 단체 말이야. 그들이 그 생물의 비밀을 밝혀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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