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여우비 - 1

 여우를 사랑하던 구름은 여름이면 여우가 더울까 한낮의 햇님을 가려주고 바람을 빌려왔습니다. 밤이 되어 밝은 달빛에 여우가 뒤척이면 슬며시 자리를 옮겨 달님을 가리고 잠들기도 했어요. 겨울이면 여우가 추울까 햇님을 밀어냈고 긴 겨울밤 어둠이 깔리면 여우가 무서울까 달님을 당겨왔습니다. 그리고 봄이 오면 여우가 좋아하는 꽃밭 가득 포근한 햇빛을 내릴 수 있게 늘 숨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우가 시집을 가게 되었어요. 여우가 시집 가던 날. 구름은 햇님 뒤에 숨어 울었습니다. 

 잠깐의 비가 그친 그날 유난히 밝은 햇빛이 여우의 혼례식을 비추었습니다. 그리고 여우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며 웃었습니다.

1-1.

 신부대기실에 앉아 있는 그녀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검은 옷을 입은 두어명의 스텝이 주위에 서 있었고 커다란 사진기를 든 남자가 신부 맞은편에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사람들 틈에 섞여 문가에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그녀는 아직 나를 보지 못했는지 다른 이들과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온전히 신부만의 시간인 결혼식. 오늘 결혼식은 주인공인 그녀의 취향이 잘 반영되어 있었다. 누구든 그녀를 안다면 오늘 결혼식이 어떨지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단정하지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조금은 과감한 꽃장식이 이를 대변하고 있었다.

 초조해진 나는 괜히 구두 코를 부딪히며 사진 찍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만개한 꽃들 사이 앉아있는 그녀와 그녀 옆에 앉아 다정히 팔짱을 끼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자기야, 이리로 와!”

 그녀가 마침내 나를 발견했는지 부케를 쥔 손을 들자, 옆에 대기하던 스텝은 흔들리는 부케를 받아들었다. 스텝이 매듭을 확인 한 뒤, 다시 그녀의 손에 부케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함께 골랐던 리시안셔스로만 만든 부케가 그녀의 고운 손 위로 다시 쥐어졌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 그녀 옆에 앉았고, 그녀는 가만히 앉아 허리를 곧추세운 상태에서 작게 읊조렸다.

“웃어야지, 자기야! 오늘 좋은 날이잖아?”

 오전 내내 억지로 웃느라 얼얼한 턱을 잠시 부여잡고 어정쩡한 웃음을 지으며 사진사를 바라보았다. 사진사 뒤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보였다. 평소보다 더 온화해 보이는 눈빛이... 그리고 그녀는 내 긴장을 풀어주겠다는 듯, 손을 뻗어 허벅지를 어루만졌다.

“뭐해?”

“그냥, 이렇게 차려입으니까 예뻐서.”

 생긋 웃던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다가왔고, 그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나는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을 향해 다가갔다. 웃으며 인사하고, 아주 아무렇지 않게 긴장감을 떨어내려 애썼다. 오늘은 우리 두 사람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날이다.

*****

 잠시 암전되었다 다시 켜진 조명이 버진로드의 끝으로 향했다. 사회자가 뭐라 외치는 소리. 귀로 들어오는 소리는 머리까지 들어 오지 못했다. 긴장했나? 스피커를 통해 새어 나온 웅웅거리는 소음과 사람들의 박수갈채 너머.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명을 받아 한없이 반짝이는 웨딩드레스 위의 비즈들, 그녀 머리 위에 얹힌 티아라. 그 아래에는 화사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맑은 얼굴. 모든 것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 나는 빛나는 그녀 모습에 반했던 거다. 나는 그저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분명 같이 고른 드레스고 처음 보는 모습도 아닌데 목이 타는 기분에 애꿎은 마른침만 삼켰다.

 아름답다는 단어 외에는 표현할 말이 없는 그녀 옆, 그녀의 손을 잡고 서 계신 그녀의 아버지는 긴장하셨는지 떨고 계셨다. 그리고 그 떨림이 내게도 전해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버진로드를 따라 그녀가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길 때마다 내 심장이 쿵쿵 한 계단씩 주저앉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그녀가 내 앞에 멈추자 나는 숨을 참았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 다시 내게 눈을 고정한 그녀는 분명 웃고 있었다. 

 주례 없는 결혼식 덕분에 양가 어르신들의 축사가 이어졌고 그때만 해도 담담하던 마음이 그녀가 마이크를 넘겨받고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하겠습니다.’라고 첫 줄을 읽는 순간 울렁였다. 나는 그 울렁이는 마음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오늘의 주인공은 나의 과거. 

 밥이 맛있다며 고른 결혼식장 앞에서 식권을 구기며 서서 홀로 울었다. 길 한복판에서 흘린 눈물은 방울방울 떨어지며 햇빛에 반짝였다. 어제까지만 해도 온갖 욕심이 나를 잡아끌었지만 지금은 그녀가 지금보다는 더 행복하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 다른 욕심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예고 없이 비가 내렸다.

 맑은 하늘 구석에 작게 드리워진 구름 아래, 반짝이는 비를 맞으며... 나는 그렇게 가만히 서서 울었다.

1-2.

“무슨 축의금을 그렇게 많이 넣었어?”

“많이 줘도 문제야?”

 변함없이 다정한 목소리에 괜히 짜증이 났다. 툭툭 던지듯 대답을 하는데도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신혼여행 다녀오면서 선물 사 왔는데, 언제 줄까?”

“주지 마. 연락하지도 말고.”

 마지막으로 목소리 한 번만 듣고 완전한 이별을 말해야지 다짐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의 옆에서 안정을 찾은 것인지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오늘 올래? 남편 시댁 가서 자고 온다는데.”

“내가 왜?”

“입구에서 호출해.”

 그녀는 자기가 할 말만 마치고 전화를 끊었고 나는 멍하니 깜빡이는 액정 화면을 바라보다 혼자 웃었다. 우습다. 지금 이 상황. 우리 관계는 늘 이랬던 것 같아. 나는 그녀를 밀어낼 수 없는 그런 기울어진 관계. 새삼 깨달은 불편한 사실에 그녀 생각을 하지 않으려 세수를 했고,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웠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잠은 오지 않았다. 모로 누워있다 바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깟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천장 가득 그녀 모습이 가득하고, 귓가에 그녀의 목소리가 맴도는 것은 참 우스운 일이다. 우스워, 비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딱 선물만 가져와야겠다. 

*****

“생각보다 빨리 왔네?”

“줘. 선물만 가져갈게.”

 이 집에 발을 들이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그녀가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이 집에서 지워질 준비를 했었다. 그래서일까? 익숙한 집은 더 없이 낯설게 느껴졌다. 낯선 공기에 운동화 코만 툭툭 바닥에 찧던 나를 그녀가 잡아당겼다.

“들어오지? 세탁실에 넣어 뒀어.”

 내가 그녀의 말을 이길 수 있던가? 신발을 벗자마자 달라붙은 그녀는 약 올리듯 실실 웃으며 옷을 들췄다. 현관을 지나 거실에 서서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소파 위로 밀었다. 소파 위에 앉은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고 눈은 내리깔며 나를 보고 웃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고운 입술에 입을 맞췄다. 성에 차지 않아 몇번이고 입술을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짧은 바지만 입은 그녀의 허벅지 위로 손을 올려 주물거리며, 손끝은 점점 중앙으로 향했다. 그리고 이미 젖어 있는 바지를 한 손으로 당겨 무릎까지 내렸다. 

“속옷은 왜 안 입어?”

“입을 필요가 있나?”

 신혼부부란 이런 거구나. 그녀의 남편이 참을 수 없이 미워져 그 분노를 그녀에게 쏟기로 했다. 그녀를 미워할 수 없으니, 아주 손쉽게 그녀 남편을 미워할 수 있었다.

 애액을 잔뜩 묻힌 손가락이 미끄러지며 움직였다. 이미 수백번은 매만진 그곳이건만 만질 때 마다 긴장되는 곳. 여린 살들이 숨을 쉬듯 끔뻑거리며, 자신 앞에 마주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곳에 입술을 가져갔고, 그녀는 내 뒷덜미를 손으로 잡아 당겼다. 더 가까워진 심부, 코를 간질이는 체모, 익숙한 술 익는 향기. 낯설지 않은 것을 느끼다, 한 손을 위로 올려 이미 꼿꼿해진 젖꼭지를 엄지로 쓸었다. 도도한 그녀를 짓누르기라도 하는 듯 엄지로 누르다 검지를 가져와 살짝 잡아 올리고, 다시 비비기를 반복. 그녀의 신음이 귀를 간질였다. 

“잠깐만. 뭐라도 깔자.”

 이마를 밀어내는 손에 고개를 들었다. 

“왜?”

“알잖아. 소파 비싼 거.”

 바쁜 그를 대신해 같이 가서 산 비싼 소파, 티테이블에 식탁까지 함께 사서 할인 받은 이 소파. 네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가구였지. 나와는 쓸 일도 없을 소파를 정성껏 골라주던 과거의 내가 한심했다. 이런 내 과거를 지우고 싶어 그녀에게 머리를 묻었다. 

 다시 고개를 박고, 중심을 부러 더 자극해 애액이 그녀의 엉덩이 아래를 적시게 했다. 턱 아래로 손을 넣어, 혀와 손으로 동시에 그녀를 탐했다. 그녀의 교성은 점점 커지고 날카로워졌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의 허리가 올라가며 몸이 내 손가락을 밀어내자, 손을 뗐다. 

 손가락을 따라 흘러나오는 애액이 그 비싼 가죽을 적시고 있었다. 그녀는 살짝 떨고 있었고, 긴장한 근육을 풀어주려 그녀의 몸을 살살 보듬었다. 잠시 뒤, 나는 티테이블 아래에서 티슈를 꺼내 손과 입을 닦았다. 신음을 입가에 흘리는 그녀를 이전과 달리 돌아보지 않고, 흔적을 지워주지도 않은 채 화장실로 향했다. 미처 벗지 못해 이미 젖어버린 팬티를 닦았다. 

“아직 네 속옷 있는데 줄까?”

“아니.”

 어느새 쫓아온 그녀가 화장실 문턱에 서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가 뒤를 돌았고 화장실 불빛에 반사되어 번들거리는 허벅지 안쪽이 눈에 들어왔다. 너는 여전하구나. 여전히 엉성해. 그래서 사람을 홀려. 자꾸만 챙겨주고 싶고 신경이 쓰여. 마치 꼬리가 아홉은 달린 여우같아.

1-3.

“짠! 네가 좋아하는 거잖아!”

 부엌 옆 세탁실에서 큰 종이박스를 낑낑거리며 끌어내 한참을 뒤적이던 그녀가 종이 가방 하나를 들고 일어섰다. 나는 그녀의 뒤로 다가갔고, 그녀가 머리를 묶어 올리며 드러난 목덜미의 검붉은 자국에 눈살을 찌푸렸다. 마치 그 자국이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그 자국에 자극 받은 나는 그녀의 뒤에서 허리를 손으로 감아 식탁으로 밀어붙였다.

“유리!”

 그녀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신경 쓰지 않고, 그녀의 짧은 바지를 다시 벗겨냈다. 미처 닦지 못한 자국, 아직 식지 않은 그곳. 손을 움직여 그녀의 다리 사이를 어루만졌다. 힘이 풀렸는지 그녀의 다리가 벌어졌고, 그곳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힘 줘.”

 다리로 그녀의 다리를 가두고, 바로 선 하체 위로 손을 들어 아래를 쓰다듬었다. 그녀가 차가운 식탁 유리 위에 얼굴을 붙이고 쏘아보았지만 눈빛을 외면했다. 닫힌 채 애액만 내뱉는 그곳을 손으로 비볐다. 더운 날 부채질을 하듯 거침없이 흔드는 손길에 그녀는 울먹였다. 그리고 흥건해진 곳을 손가락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몸으로 그녀의 몸을 짓누르고 팔을 움직이는데, 시야에 검붉은 자국이 들어왔다. 화가 치밀어 올라 그 곳에 입술을 가져가, 깊게 숨을 넘기며 빨았다. 얇은 피부 위로 내가 아롱이 자국들을 남기자 그녀가 당황했는지 소리쳤다.

“그만해!”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몸을 일으켰다. 상체를 일으키고 몸을 뒤집은 그녀가 식탁 가에 아슬하게 앉아 목에 손을 얹고, 나를 바라보며 씩씩거렸다.

“미쳤어?”

“어.”

 미쳤으니 여기를 왔지.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채 가라앉지 못한 붉은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당당하네?”

“너만 할까?”

“하... 자국은 남기지 마.”

 그녀가 내 손을 잡고, 도발하듯 손가락을 자신의 입속에 넣었다. 말랑거리는 따듯한 혀가 손가락을 감싸 안았고,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혀의 움직임을 따랐다. 그녀의 속 만큼 뜨거운 입안에서 손을 빼자, 애액 대신 타액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손을 다시 그녀의 아래로 가져갔고, 그녀가 다리를 벌렸다. 거절 없이 나를 맞이하는 그곳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변해버린 우리 관계와 달리, 몸은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또렷하게.

“힘 줘.”

 내 말에 그녀는 바들거리며 다리를 벌렸고 자신의 손으로 내 손목을 고정했다. 한참 뒤 나는 참지 못하고 그녀의 한쪽 다리를 내 어깨 위에 걸친 채, 젖은 소리 가득한 그곳을 들쑤셨다. 맞닿은 가슴이 미칠 듯이 뛰고 있었다.

“살살해.”

 그녀의 부탁과 반대로 힘을 잔뜩 준 채, 거칠게 움직였다. 스르륵 밀리는 식탁 유리. 그 위에 얹힌 그녀의 몸을 쫓느라 나는 재차 그녀를 밀었다. 온몸으로 그녀를 짓누르고 팔을 바삐 움직였다. 우리가 만든 적나라한 소리가 자꾸만 울렸다. 유리가 1/4만큼 밀려나자 그녀가 흐느끼기 시작했고, 1/3이 밀려나며 그녀의 몸이 손가락을 뱉어 냈다. 질척이는 아래쪽만큼 내 마음도 무겁게 젖어 들었다. 

 우리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누구의 문제일까? 버리지 못하는 그녀일까? 놓지 못하는 나일까? 

 등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익숙하게 손을 뻗어 불을 켜고, 내가 직접 고른 거울 속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흥분에 붉어진 눈시울이 볼썽 사나워 애꿎은 거울에 연신 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닦은 뒤, 곧바로 속옷 안쪽을 닦았다. 이 와중에 흥분해버린 내 몸이 얄궂다, 얄궂어.

 다시 나온 거실에서 바라본 그녀는 다리만 늘어뜨린 채, 식탁 위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전처럼 다가가 다정하게 입을 맞추지 못하고, 멍하니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팔을 들어 눈가를 가리고 있던 그녀가 내 그림자를 피하듯 고개를 돌려 이쪽을 향했다.

 나는 차키를 찾아 들고 현관에서 신발을 신었다. 그녀는 여전히 움직임이 없었고 나는 잠시 망설이다 현관문을 열었다. 그녀의 시선이 자꾸만 따라붙는 느낌이 나서 연신 어깨를 떨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도 나는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그녀의 눈빛을 잊으려 핸들에 머리만 박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급히 운전해 집까지 돌아왔다. 그녀가 없는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매일 반복할 때마다 깨지 못하는 악몽을 꾸는 기분이 든다. 돌아온 집은 낯설었고, 끔찍한 외로움이 묻어났다.

 너른 창을 통해 이미 어둑해진 하늘이 눈에 담겼다. 그리고 현관 바닥에는 빗방울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