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보통 병사

1661 Words
"비행기가 연착되지 않았으니 곧 도착하실 겁니다." 지호가 허리를 굽혀 말했다. 눈앞의 노인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 바로 그 순간, 두 사람이 공항 문을 천천히 빠져나왔다. 하준을 보자 노인은 급히 마중을 갔고 뒤에 있던 사람도 서둘러 따라갔다. "도련님, 집에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하준은 다소 놀랐지만 이내 냉랭함을 찾았다. "…어르신의 임종 전 유일한 소원은 도련님을 찾는 거였습니다. 이제 CY 그룹의 재산을 상속받아주십시오." "CY 그룹이요?" 하준의 눈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가족을 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재산을 상속받으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하지만…." 하준은 성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오늘 어르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왔다면 이렇게 대화할 기회도 없었을 거예요. 예전에 저에게 유일하게 잘해주신 분이니 이렇게 좋게 얘기하는 겁니다." 하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뒤로 돌아섰다. 성호의 뒤에 서 있던 지호는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하지만 성호는 하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이제 그룹을 도련님 손에 넘겨드려도 되겠어. NV 그룹을 넘겨드려 경영 연습 좀 하시도록 해야겠군." 시가총액 수백억의 기업이 노인의 눈에는 연습용 장난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지호는 손을 덜덜 떨었다. "지호 씨." 성호가 조용히 말했다. "앞으로 지호 씨가 도련님의 오른팔이 될 거야."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도련님을 보좌하겠습니다. 공항을 나서며 명호가 조용히 물었다.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집!" 한편, 준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퍽! 퍽! 준우는 경호원을 두 발로 걷어차 넘어뜨렸다. "누군지 알아 와! 내가 죽여버릴 테니까! 감히 날 건드려?!" 돌아가는 길에 창밖 경치를 보며 하준은 추억에 잠겼다. 7년 전, SU 그룹은 그룹의 위상을 지키기 위해 그를 데릴사위로 삼았다. 하준의 내세운 조건은 SU 그룹이 1억을 **해 병에 걸린 어머니를 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돈을 손에 넣기도 전에 그는 감옥에 갇혔다. 당연하게도 그동안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모두 CY 그룹과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하준은 언젠간 반드시 복수하리라 끊임없이 되새겼다. "도착했습니다." 30분 뒤, 명호가 말했다. 하준이 감옥에 간 후 SU 그룹 일가는 수아네 가족을 모두 자택에서 쫓아냈고, 그들은 낡은 아파트에서 살아야 했다. SU 그룹에서 가장 돋보였던 총재가 한순간에 몰락한 것이다. 식탁에서 수아의 어머니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아야, 이번이 LR 그룹에서 보내는 몇 번째 선물인데 왜 또 거절하는 거야?" "그냥요." "언니, 이 가방 몇 천은 될 텐데 한번 만져보기라도 해봐!" 20대 초반의 수아와 닮은 모습을 한 여자가 부러운 얼굴로 말했다. "나 결혼했어. 그만 얘기 해." "결혼?" "결혼한 지 하룻밤 만에 얼굴도 못 보는데 무슨 결혼이야?!" 수아의 여동생 수민도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수아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가득했다. 바로 그때,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을 못 보다니요?" 하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준을 보고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7년 동안 하준의 얼굴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성격은 크게 변한 거 같아 보였다. "넌 무슨 낯으로 여길 온 거야?!" 수아의 어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7년 만에 갑자기 나타난 하준을 보면서 수아는 한동안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화를 내야 하나 아니면 슬퍼해야 하나. 수아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정말 뻔뻔하다. 7년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가 이제 와서 뭐 하자는 거예요?" 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수아가 비꼬며 말을 이어갔다. "그만 하세요!" 명호는 화가 나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하준은 도리어 명호에게 소리를 질렀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나가!" "형님, 저는 그냥…." "이건 내 집안일이야." "…알겠습니다." 명호는 가족들을 한 번 노려보고는 문밖으로 나갔다. "네 부하니? 그래도 예전보다 발전은 했나 보네." "엄마, 딱 봐도 별거 없잖아요. 발전은 무슨." 수민이 입을 삐죽거렸다. "장모님, 감옥에 있다가 군으로 입대해 막 제대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군대?" 수아의 아버지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네가 군대에 갔다고? 계급은 어디까지 올라갔니?" 모두 기대하는 표정으로 하준을 바라봤다. 하지만 하준은 자신의 신분을 솔직히 말하면 집에 폐만 끼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보통 병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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