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나의 가장 친한 친구 하늘이

2991 Words
오전 내내 정신없이 바빴던 탓에 그녀에겐 물 한 모금 마실 시간조차 없었다. 과거의 극단적인 다이어트 때문에 좋지 않은 위는 오늘 아침 식사를 거른 탓에 윗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아침, 아성 호텔에서 현우가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유정은 옆에 서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함께 앉아서 먹자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어쨌든 유정은 그의 욕망을 채우는 대상일 뿐, 그와 함께 식사를 할 자격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는지 옆에 있던 수민이 그녀에게 물었다. "유정아, 너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마 배가 고파서 그런가 봐요. 그래서 속이 좀 아픈 것 뿐이니 신경쓰지 마세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며, 손으로는 현우의 이틀 후 출장 일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낮에는 개처럼 일하고, 밤에는 같이 자야 하고, 야근 수당도 없고, 잠도 제대로 못 자는데 산재처리도 안 되고. 내가 바보였지, 왜 그 200만 달러를 그에게 돌려줬을까?! 수민은 슬쩍 테이블 아래로 과자 한 봉지를 유정에게 건넸다. "먹을래? 이거 진짜 맛있는데, 카라멜 맛이야." 유정은 그녀에게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손을 뻗어 과자 하나를 집어 입에 넣으려는 순간. 똑똑똑. 백옥같이 하얗고 가느다란 손이 책상을 두드렸다. "유정쓰, 근무 중에 간식 몰래 먹다가 나한테 딱 걸렸어?" 유정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풍성한 밤색 곱슬머리를 한 아름다운 여자가 책상 앞에 서 있었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는 선글라스 아래로 정교한 화장이 되어 있었고, 선명한 붉은 입술은 마치 피가 뚝뚝 떨어질 듯 했다. 유정은 어이없어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네가 무슨 상관인데?" 여자는 화가 난 듯 선글라스를 벗어 던지며 말했다. "어머, 최유정, 너 담대해졌구나?!" 순간, 옆에 있던 수민은 찾아온 사람을 알아보고는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차하늘?!" 맞다. 찾아온 사람은 바로 요즘 한창 잘나가는 스타, 차하늘이였다. 유정은 웃으며 수민에게 조용히 하라는 듯 손짓했다. "언제 돌아왔어? 우리 회사에는 무슨 일이야?" 하늘은 손에 든 선글라스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비행기 10시간 넘게 타고 방금 도착했어. 내 귀요미 보러 왔지." 유정은 수민에게 그녀를 소개했다. "제 친구, 차하늘이예요." 수민는 놀란 얼굴로 말했다. "네 친구가 그 유명한 연예인이라고? 그럼… 그 사람이 어제 신지윤한테 네가 맞았다는 거 알아? 복수해줄 수도 있겠네!" 하늘은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뭐라고? 신지윤 그 년이 감히 내 귀요미를 때렸다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자, 유정은 황급히 하늘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조용히 좀 해. 유 대표님 무서운 줄 모르니?" "난 그 사람 직원도 아닌데 뭐가 무서워?" 두 사람은 회사 근처에 있는 한 서양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녀는 최근 시청률이 높은 드라마에 출연 중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서 괜한 곤란을 겪게 될까 봐, 레스토랑 구석진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하늘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유정아, 아까 네 동료 말이 사실이야? 신지윤 그 미친년이 널 때렸다고?" 유정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별일 아니야. 그냥 걔가 유 대표님 만나러 왔는데, 내가 회의 중이라고 하니까 내가 일부러 막는 줄 알고 뺨을 한 대 때렸어." "그 나쁜 년! 내가 혼 좀 내줘야지." 하늘은 휴대폰을 꺼내 들며 말했다. "현진 언니한테 전화해야겠다." 현진 언니는 하늘의 매니저로, 몇 년 동안 그녀 곁에서 일하며 헌신적으로 그녀를 보살펴 왔다. 그야말로 그녀가 원하는 것은 뭐든 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유정은 황급히 그녀를 말렸다. "됐어, 나 걔이랑 싸우기 싫어." 하늘은 어떻게 그냥 넘어가냐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눈을 크게 뜨고 노려보았다. 하늘은 어린 시절을 줄곧 해외에서 보냈고, 고등학교 2학년 때 중국으로 돌아와 유정이 다니는 귀족 학교로 전학을 왔다. 당시 도한와 지윤은 이미 졸업한 후였지만, 유정은 그동안 괴롭힘을 당했던 탓에 학교에 친구가 거의 없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외모에 유명한 하진 그룹의 외동딸인 하늘은 존재감 없던 유정과 친구가 되었다. 아마도 히어로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정의감이 강했던 것이거나, 아니면 늘 혼자 구석에서 밥을 먹는 유정을 보고 연민을 느꼈던 것일 수도 있다. 어느 날 점심시간, 그녀는 식당에서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오늘 발렌타인데이인데, 초콜릿 먹을래?" 하늘 덕분에 유정의 삶은 조금씩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그 좋은 친구는 오랜 시간 동안 변치 않는 우정을 이어갔다. 음식이 나오자 하늘은 마치 굶주린 늑대가 먹이를 향해 달려드는 것처럼 허겁지겁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유정은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 우습다는 듯 말했다. "하늘아, 너 대체 며칠 동안 굶었던 거야?" 그녀는 음식으로 가득 차 발음도 채 안되는데, 뭐가 즐거운지 웃으며 답했다. "이번 드라마 때문에 두 달 동안이나 굶었어! 드디어 촬영 끝났는데, 당연히 마음껏 먹어야지!" "너 그러다가 파파라치한테 사진 찍히면 또 실시간 검색어 오르겠다." "찍히라지 뭐, 어차피 우리 아빠가 다 내려줄 수 있는데." 그러다가 하늘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입속에 있던 음식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아, 맞다! 있잖아, 얼마 전에 누가 우리 아빠 만나러 왔는지 알아?" "누군데?" "네 임도한 그 개자식이랑 걔 아버지." 유정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 사람들이 너희 아버지를 왜 만났는데?" "뭘 하러 왔겠어? 돈 빌리러 왔겠지." 유정은 다소 놀랐다. 그들 회사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설마 다른 회사에 돈을 빌려야 할 정도일 줄은 몰랐다. 하늘이 학교로 전학 왔을 때 도한과 지윤이 이미 졸업한 후였지만, 하늘은 그들이 저지른 짓들과 그 집이 유정을 어떻게 대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당장 그들이 파산해서 변방으로 쫓겨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돈 빌려줬어?" "빌려주긴 뭘 빌려줘. 그 집안 원래 쓰레기라 돈 줄 가치가 없다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우리 아빠가 감히 돈 빌려줬다가는 나 시집 안 간다고 할 거야. 그리고 아빠랑 의절할 거야." 하늘은 늘 이렇게 말을 함부로 하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유정은 그런 그녀의 모습마저 좋았다. "있잖아, 하늘아. 얼마 전에 나한테도 찾아왔었어."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설마 네 아빠가 너한테 남겨준 유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유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도한, 걔는 심지어 나랑 자기랑 잘 해보자고 하더라." "그 자식 제정신이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너 혹시 알겠다고 한 거 아니지?" "내가 미쳤어? 그럴 리가 있겠어? 예전에 날 개 취급하던 사람들인데, 이제 와서 내 발로 그 집에 기어들어 가겠냐?" 그녀가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자 하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유정은 머리가 좋고 총명한 아이였다. 절대 사랑에 눈이 먼 아이가 아니었다. "됐어, 됐어. 얼른 먹어. 다 먹고 들어가서 자. 아직 시차 적응 안 됐잖아?" 유정은 말하면서 손을 뻗어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묶었다. 아마도 구석 자리라 너무 더웠던 모양이다. 서늘한 가을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묶지 않았으면 몰랐을 텐데... 머리를 묶자 목 양쪽 턱선 아래로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백옥같이 하얀 유정의 피부 위에서 그 자국들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탁- 하늘의 손에 들려 있던 포크가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유정아, 너 목…" 그녀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머리를 내리고 얼굴을 붉혔다. "너… 누구랑…?" 그녀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정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감한 듯, 하늘의 손에 들린 식기와 음식을 모두 치웠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늘아, 너 절대 놀라지 마. 그리고 소리 지르지도 마." "뭔데 그래?" "나 유 대표님이랑 잤어." "쾅" 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하늘은 식탁 의자에서 굴러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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