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적은 인간

2084 Words
도착한 곳은 피니스테르의 한 성당이었다. 하얀 아치형 지붕이 높다랗게 있었고, 금장을 두른 하얀 기둥은 견고하게 성당을 둘러싸고 있었다. 입체적으로 굴곡진 마리아 상이 빛나기보다는 조금 어두웠다. 흰 제단(?)처럼 보이는 곳이 성당 중앙에 위치해 있다. 도명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서 멍하니 서있기만 했다. 일단 모르면 가만히 있는게 순리라고 생각하는 습관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베라는 눈치가 빠른 여자였다. 도명이 말을 하기도 전에 양쪽에서 건장한 남자 두명이 도명을 팔로 잡았다. 벗어나지 못하게 납치함이 분명했다. 도명은 괴물적인 힘을 동원했다. 성공적이게도 두 남자는 도명의 강한 힘에 짖눌렸다. 튕겨져 나가버린 남자는 성당의 유리창을 뚫고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나한테 원하는게 뭐야? 베라라고 했지?" "이도명, 20살 때 넌 차유정의 목숨을 훔쳤어. 그 것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지금이라도 목걸이를 내놓으면 순순히 돌려보내주지. 본래 사람의 모습으로." "싫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넌 괴물이니까. 하지만 완벽한 괴물이 될 수 없는 미개한 존재니까." 도대체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가. 도명은 혼란에 빠졌다. 도명은 왠지 한심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센척을 하려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위협했지만 베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긴장을 풀지 않고 도명의 주위를 분산시킬 도구를 찾는 듯했다. "내가 차유정의 목숨을 훔쳤다고? 난 그런적이 없어." "그럼 그 목걸이를 왜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 보시지." 목걸이... 이야기는 20살, 유정의 아버지가 죽은날로 다시 되돌아간다. 새벽 6시가 되어서야 경찰들이 찾아왔다. 동네는 시끌벅적한 분위기였다. 마치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는 듯 사람들은 수다 떨기에 바빴다. "글쎄~ 유정이 아버지라는 이야기가 있다니까~?" "누가 죽인거래?? 미쳤구만 세상이 미쳐 돌아가나봐." 수군거리는 아주머니들 이야기가 듣기 싫어서 도명은 길을 돌아서 학교를 갔다. 기말고사 기간이라서 한창 학생들도 예민해진 시기였다. 무엇보다도 도명에게는 더 민감한 시기였다. 3일 뒤면 입대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친한 동기가 뒷뜰로 불렀다. "이도명, 너 담배 펴본적 있냐? 내가 한대 줄게. 자 펴봐." 달콤했다. 세상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안식처, 낙원같았다. 그렇게 입대일이 가까워졌다. 입대 전날, 밤이었을 거다. 도명은 처음에는 나무가 쓰러져 있는가 싶었다. 길쭉하기도 하고,,, 형체가 불분명해서였다. 서서히 다가서서 보니, 검은 큰 봉지에 사람이 있었다. 도명은 얼른 일으켜 세우고 입을 막은 테이프를 찢었다. 유정이었다. 차유정... 네가 어떻게 여기...? "물어보지마, 나 찾지도 마. 대신 이거." 목걸이었다. 담배 피규어가 들어간 동그란 목걸이. 도명은 의아한 표정으로 유정을 바라보았다. "난...곧 죽을 목숨이야. 이도명 네가 대신 갖고 있어줘. 대신 전역 후에... 이 사람을 찾아가봐. 너에게 큰 도움이 될거야." 인기척이 들렸다. 피해야했다. 도명은 얼른 몸을 숨겼고, 유정이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종이에 적힌 사람은 도명이 어릴 적부터 존경해왔던 사람의 집주소였다. 안동근. 피니스테르 000번지. 안동근, 대한민국의 유명 화가.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려 종적을 감춘지 20년이 넘은 사람이었다. 유정은 어떻게 그의 주소를 알고 있을까. 그리고 베라라는 작자는 정체가 무엇일까. 도명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베라에게 일단 감추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베라는 노려보다가 도명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탐탁치 않아 하는 눈빛이었다. 도명은 한숨을 쉬었지만 섣부른 말은 화를 불러일으킨다. 시간이 필요했다. "지하로 내려가면, 작업실 같은 공간이 있어. 일단 쉬어. 이거 마시고." "독극물은 아니지?" "내가 널 죽였을 거면 이미 넌 여기에 없어." 도명은 잠자코 기다리다가, 베라를 따라갔다. 베라의 걸음걸이는 느린 듯 하면서도 빨랐다.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복잡 미묘한 생각이 뒤덮여 보인게 누가봐도 확실했다. 쇠문이 닫혀있었다. 누군가 가두려고 해둔 것 같진 않았다. 비밀번호를 알려주었고, 안에서도 여는 방법을 베라는 나름 친절하게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베라는 입을 달싹거렸다.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참는 느낌이었다. "편하게 말해도 돼. 내가 아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선에선 말할 수 있으니까." "아냐,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나도 푹 쉬어야 할 참이었거든. 아참, 양송이 스프 좋아해?" "좋아하지. 그것도 엄청." "아침에 가져다 줄게. 잘자 도명." 베라의 뒷모습은 쓸쓸해보였다. 어깨가 축 처져서 걸어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도명은 일단 걱정을 접어두고 자신의 방을 둘러보았다. 작업실...? 다양한 미술도구가 가득한 작업실이었다. 아로마향이 약간 들어간 라벤더향이 공기를 감싸고 있었다. 도명은 자신의 오랜 꿈, 아주 어릴 적 꿈이 생각났다. 차유정, 네가 날 데려온 이유가 뭐니? 그리고 넌 살아있니? 도명이 목에 걸고있던 목걸이가 미친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도명의 목을 깊숙하게 조여왔다. 마치 살벌하게 죽여버릴 것 같았다. 도명의 목숨을 누군가 노리고 있다. 20살 때 유정의 한마디가 바로 목걸이의 의미였다. "난 몬스터야. 사람의 모습을 가장한 몬스터. 그리고...몬스터의 적이 누군지 아니? 바로 인간이야. 만약 목걸이가 널 죽이려 할 때, 다수의 인간들이 널 노린다는 것만 기억해. 이유는 너의 특별한 재능 때문이지." 죽은 줄 알았던 유정은 감옥에서 몇년을 살았다. 형을 살고 나오니 26살이었다. 도명의 퇴근길을 지켜보았고, 지하철에서 도명의 어깨죽지를 친건 바로 유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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