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얏… 아아 살살 좀 해주세요.”
“최대한 살살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누가 넘어 지래?”
하다는 방 안내를 받고 계단을 내려오는 도중에 발이 미끌려 넘어졌다.
그대로 넘어져 머리를 찧었지만 다행이 큰 상처는 나지 않았다.
“다행이 흉은 안 질거야.”
줄리아는 연고를 다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주며 이야기했다.
그 옆에 서있던 앤버든은 한 마디 거들었다.
“부주의해서 넘어진 겁니다.”
‘앤버든 저 빌어먹을…’
하다는 화를 속으로 삼켰다.
앤버든은 옆에서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앤버든씨. 앨린이란 분은 가셨나요?”
하다는 앨린이 루이에게 이번에 어떤 정보를 줬는지 궁금해서 앤버든에게 물었다.
“아직 사장님과 이야기 중이십니다.”
하지만 아직 가지 않았다는 말에 이야기가 길어지나 싶었다.
하다는 이번에 앨린에게서 얻은 정보를 자신과 공유하지 않을까 기대에 차 있었다.
“이번에 앨린이란 분이 사장님에게 아주 좋은 정보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하다의 말에 팔짱을 끼고 있던 앤버든은 미간을 살짝 구기며 물었다.
“그게 하다양과는 무슨 상관이죠?”
“크게 상관있죠. 사장님과 저는 정보를 공유하기로 한 사이니까요.”
하다의 말에 앤버든은 말도 안된다는 듯 팔짱을 풀어 한쪽 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놨다.
“사장님은 그 누구와도 정보를 공유하실 분이 아닙니다.”
앤버든은 자신 있게 하다에게 쏘아붙였다.
“뭘 모르시나 본데. 저랑 그렇게 이미 얘기를 했다구요.”
앤버든은 움찔했다.
“사장님을 곁에서 더 오래 보아 온 건 접니다. 설령 그렇게 말씀 하셨어도 진심이 아니셨을 거에요.”
이번엔 앤버든의 말에 하다가 움찔하며 말을 더듬었다.
“나…남자가 한 입 가지고 두 말 하는 법은 없어요.”
앤버든은 다시 팔짱을 끼며 어깨를 폈고 한 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하다에게 말했다.
“저희 나라에선 그런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강경한 그의 말에 하다는 자신이 속은 건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다는 속으로 부정했다.
‘설마… 아닐 거야.’
하지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까지 말하는 앤버든의 마지막 말에 하다는 결정타를 입고 말았다.
“그리고 사장님은 이득 없는 일에는 손도 안대시는 분이십니다.”
하다는 테이블을 두 손으로 내리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럴 일 없어요! 저랑 정말 약속 하셨다구요!”
하다는 앤버든에게 소리치며 말했지만 앤버든에게서 돌아온 질문 중 그 무엇에도 ‘네’라고 답할 수 없었다.
“서류를 쓰셨나요? 도장이라도 찍으셨어요? 계약은 제대로 하셨구요?”
“직접 확인 해봐야겠어요.”
하다가 빠르게 발걸음을 집무실로 옮겼다.
앤버든이 ‘아차’ 하는 순간 하다를 놓쳤고 하다는 달려가 집무실 문을 노크도 없이 벌컥 열었다.
“사장니!!…임…”
하다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목격하고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눈을 둘 곳을 찾으려 했지만 이미 루이와 눈을 마주친 뒤라 그대로 멈춰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앨린은 소파에 앉아있는 루이의 한쪽 팔을 끌어안고는 다른 한 손은 루이의 가슴팍에 손을 얹어 두었다.
그리곤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는 듯 루이의 귀에 입을 가져다대고 무언가 속삭이고 있었다.
루이가 고개만 돌리면 바로 키스 할 정도로 둘은 가까이 붙어 있었다.
갑자기 들이닥친 하다 덕분에 앨린은 고개를 돌려 문쪽을 바라보았다.
루이는 또한 미간을 찌푸리며 하다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지?”
뒤이어 온 앤버든이 당황해하며 허리를 숙였다.
“죄…죄송합니다. 사장님. 하다양이 갑자기 뛰어가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습니다.”
앨린은 루이에게 붙어있던 몸을 떨어트렸다.
덕분에 자유로워진 루이는 상체를 일으키며 하다에게 다시 물었다.
“급하게 할 말이라도 있었나?”
앤버든은 하다를 툭툭 치며 죄송하다고 말하라고 했다.
하다는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죄…죄송합니다! 조…좋은 시간 보내세요!”
하다는 앤버든을 밀치곤 재빨리 다시 뛰어 가버렸다.
루이는 앨린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앨린양. 오늘은 이만 가시는게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저희 가게에 새로 온 아르바이트생에게 일이 생긴 것 같네요.”
앨린은 좋은 시간을 방해 받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툴툴 털고는 루이에게 짧게 고개를 숙이고는 앤버든을 지나쳐 나갔다.
“사…사장님”
앤버든은 둘만 남겨진 상황이 너무나 두려웠다.
어떤 히스테리가 날라올지 무서웠다.
“잡아와”
루이의 입에서 나온 건 뜬금없는 말이었다.
“못 알아들었나? 방금 뛰어간 강하다, 잡아와.”
“아…! 네!”
멍하게 서 있던 앤버든은 빠르게 집무실 문을 닫고 나왔다. 다행이었다.
이제 앤버든이 할 일은 도망친 강하다를 잡아오는 일 뿐이었다.
앤버든이 하다를 잡는 건 아주 쉬었다.
다행이 줄리아 옆에 다시 앉아 있었기에 앤버든은 하다를 붙잡고 집무실로 구겨 넣듯 넣고는 문을 ‘쾅’하고 닫아버렸다.
하다는 속으로 후회했다.
‘그래, 내가 뛰어 봤자 가게 안인데… 어차피 이럴 거 왜 도망쳤을까…’
하다는 앤버든에게 금새 붙잡혀 루이 앞에 끌려오게 되었다.
하다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왜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는 거지?”
루이가 물었다. 하지만 하다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까 일이 자꾸 생각 나는 걸 어떡하냐고!’
하다는 안절부절하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고개를 계속해서 숙이고 있었다.
순간이었다. 루이의 손이 하다의 턱을 잡아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제야 좀 눈을 마주치는군. 이마는 왜 다친 거지?”
루이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하다의 커다래진 눈에 루이의 짙은 회색빛 눈동자가 보였다.
“아… 이건 계단에서 내려 오다가…넘어져가지고”
하다는 창피해서 눈을 옆으로 피했다.
“할 말 있어서 그렇게 노크도 없이 급하게 들어온 거 아니였나?”
루이는 하다의 대답에 그저 반응 없이 넘기고는 방금 전 상황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마…맞아요.”
하다는 아직도 턱이 잡혀 있는 상태라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하다는 루이의 물음에 다시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정보는 하다에게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저한테 정보를 주신다고 하셨던 말, 전부 거짓말이신 건가요?”
하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루이에게 말했다.
“거짓말을 왜 하지?”
하다의 턱을 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루이는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한번 뱉은 말에 번복은 안해.”
루이의 말을 들은 하다는 속으로 앤버든을 욕했다.
‘앤버든, 저 빌어먹을…’
하다는 고개를 돌려 문 밖에 서있을 앤버든을 향해 힘껏 째려봐 주었다.
“그거 때문에 그렇게 급히 들어온 건가?”
“아… 네…죄송합니다. 제가 안 좋은 얘기를 들어서요. 괜히 좋은 시간을 방해드렸네요.”
“좋은 시간?”
하다는 또 다시 고개를 숙이며 쑥스러운 듯 이야기했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앨린이라는 분과 그… 다정한 분위기를…”
“잠깐…!”
루이는 다급하게 하다의 설명을 막았다.
“뭔가 큰 오해가 있었던 거 같은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다정한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어.”
하다는 루이의 재밌는 반응에 장난 칠 생각으로 의심의 눈초리로 루이를 쳐다보았다.
“진짜야.”
그러자 루이는 답답한 듯 진짜라고 덧붙였다.
“푸웁…!”
하다는 루이의 반응에 실소를 터트렸다.
“왜 웃는 거지?”
“아니, 장난친 건데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길래 사장님도 당황하는 모습을 보니까 새롭게 보여서요.”
하다의 말에 루이는 또 다시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이 애한테는 끌려 다니는 기분이 들어…’
그리고 루이는 그 이상한 기분을 지우려 하다에게 정보를 하나 주기로 마음먹었다.
“진짜 방해 받는 게 뭔 지 알려줄까?”
“네?”
루이의 말에 하다는 놀란 듯 쳐다보았다.
루이는 천천히 일어서 하다에게 다가갔다.
하다는 뒤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쇼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는 거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사장님? 헙!...”
루이는 하다를 한쪽 팔로 가두었다.
하다는 자신의 얼굴 옆에 있는 손을 따라 루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뭔가 화가 난 듯한 표정이었다.
“사장님. 제가 말씀 안 드린 게 있는데 원래 사장님과 알바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 하거든… 헙!”
루이는 다른 한 손으로는 하다의 허리춤으로 가져다 댔다.
혹시라도 자신의 몸 안에 손이 들어오게 되면 소리를 질러야 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야.’
하다는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루이가 하다의 마도구 인 앞치마 끈을 풀러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루이 또한 자신의 검을 허리에서 풀렀다.
둘이 귀력이 방출되어 섞이는 순간이었다.
“이게 무슨!...”
“쉿.”
루이는 손가락으로 하다의 붉은 입술을 눌러 막았다.
잠시 뒤 앤버든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루이는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선 앤버든에게 말했다.
“아주 괜찮아. 그러니 방해하지 말고 나가봐.”
“네? 네!”
앤버든이 다시 문을 닫고 나갔다.
“방해하지 말라니… 무슨 소리에요. 앤버든씨가 오해하시잖아요.”
하다는 미간을 찌푸리며 루이에게 말했지만 루이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앤버든이 나가고 몇 초가 지나지 않아 바로 줄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이!!! 뭐하는 거야? 하다야! 괜찮아?”
하다는 분명히 앤버든이 막고 있어서 줄리아가 못 들어오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루이가 상체를 세우곤 검을 다시 허리에 채웠다.
그 모습을 본 하다도 얼른 앞치마를 집어 들고는 허리에 묶었다.
하다는 화가 났다.
“사장님! 장난이 지나치시네요. 제가 듣기론 마도구는 자신의 몸에서 떨어뜨리면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하다는 단호한 표정으로 루이를 쳐다보았다.
“장난? 난 장난치는 걸 좋아하지 않아.”
반면 루이는 방금 벌인 일이 아무런 일도 아니라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방금 벌인 일은 어떻게 설명해 주실 건가요?”
“방해받는 다는 게 어떤 건지 알려 주려는 거였지. 아 그리고…”
루이는 소파에 다시 앉으며 말했다.
“너에게 주는 첫번째 정보야.”
하다는 한 쪽 눈을 찌푸렸다.
정보를 이렇게 주는 경우도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보요?”
“그래. 나가봐. 줄리아가 잘 설명 해 줄 거야.”
하다는 화를 참고 꾸벅 인사를 하곤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루이는 미간을 문지르며 방금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서 정보를 알려줄 필요는 없었는데…’
하다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루이는 쇼파에 앉아 몸을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