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앤버든이 찻잔을 들고 들어와 루이와 하다 앞에 놓아 두었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앤버든?”
“네. 사장님.”
루이는 앤버든을 부르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원인은 알아냈나?”
루이의 부름에 앤버든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혼을 전부 처리하는 바람에 하다양의 마도구에 왜 관심을 가졌는지 알 방법이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보나마나 줄리아가 앞 뒤 안 보고 전부 처리한 거겠지.”
“뒷골목에서 지내는 혼들에게 정보를 찾아보겠습니다.”
앤버든의 말에 루이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앤버든은 그렇게 말을 끝내고 조용히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하다는 앤버든이 나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루이에게 몸을 돌려 물었다.
“뒷골목 혼들은 정보를 많이 알고 있나요?”
“그건 왜 궁금하지?”
루이는 피곤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다는 이때다 싶어 의지가 가득 담긴 눈을 하고는 루이에게 말했다.
“집으로 가려면 정보가 필요합니다.”
“분명히 말했을 텐데……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다는 루이의 말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물었다.
“염치없지만 부탁드릴께요. 정보만 주세요. 그러면 가게에 피해가 가지 않게 저 혼자라도 알아보겠습니다.”
그 말에 루이는 흥미로운 듯 기댔던 등을 일으켜 세워 하다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넌 나한테 뭘 줄 거지?”
하다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말했다.
“이 한 몸 바쳐 가게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다의 말에 루이의 한 쪽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아니. 그 한 몸 바쳐 다른 일을 해줘야겠어.”
“네?”
하다는 왠지 위험한 거래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필요한 정보가 뭐지?”
루이의 질문에 하다는 고민 하다가 대답했다.
“우선 이 극락세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기본적인?”
“네.”
루이는 귀찮은 듯 소파 등받이에 다시 몸을 기대며 말했다.
“나가봐.”
“네? 정보는요?”
“기본적인 건 줄리아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어. 그러니 이만 나가봐.”
“아…… 네!”
하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루이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집무실을 나왔다.
집무실에서 하다가 나오자 줄리아는 기다렸다는 듯 하다에게 달려가 물었다.
“루이가 심한 말 한 건 아니지?”
줄리아의 말에 걱정이 묻어있었다.
하다는 줄리아가 자신을 걱정해 줬다는 사실에 고마워 밝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전혀 그런 말씀 없으셨어요. 오히려 위로의 말씀을 해주셨는걸요.”
“위로?!”
줄리아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하다에게 말했다.
“루이가 그럴 인간이 아닌데……”
“정말이에요. 덕분에 힘이 좀 났어요. 아! 언니. 저의 마도구를 건드린 혼은 어떤 혼이었나요?”
줄리아는 테이블 의자로 다가가 앉으며 설명해 주었다.
“그냥 일반 혼이야. 질이 나쁜 혼이지.”
“혼들 중에서도 나쁜 혼이 있고 착한 혼이 있나요?”
줄리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응. 구분하자면 그런 샘이지.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혼을 바로 살인귀라고 불러.”
“살인귀요?”
하다는 줄리아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응. 선택받은 자들을 죽이기도 하고 같은 혼들을 죽여 어떻게 해서든 이 극락이란 세계에 더 오래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 혼을 살인귀라고 불러.”
“삶에 대한 미련이 결국 집착이 되어버린 거네요.”
“그렇지. 그래서 염라가 있는 탑에서는 가끔 선택받은 자들에게 살인귀를 처리하라는 살생부가 날라오기도 해.”
하다는 눈이 커지며 물었다.
“살생부요?!”
“응. 살생부를 받은 선택받은 자는 그 살인귀와 운명부에 묶이게 되지. 결국 둘은 어느 한 쪽이 죽을 때까지 묶여 있는 운명이 되는 거야.”
“좋은 운명은 아니네요.”
하다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줄리아는 그런 하다를 보며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이 극락에 온 지 얼마 안 된 사람들한테는 살생부가 날라오지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럼 다행이지만……”
하다는 말끝을 흐리며 자신의 마도구를 바라보았다.
때마침 가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이런 젠장…”
하다는 줄리아의 입에서 나온 한숨을 듣고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안녕! 줄리아! 나의 루이든 토베른님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어. 혹시 안에 계시니?”
‘나의 루이든 토베른?’
하다는 줄리아가 왜 욕을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정말 풍성한 치마의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양산을 손에 쥔 채 밝게 웃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여자를 보며 줄리아는 말했다.
“들어 오지마! 가게 운영 끝난 거 안 보여?!”
“난 가게에 볼 일이 있어서 온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사장님을 만나러 온 거야.”
줄리아는 맘에 안 드는 듯 팔짱을 낀 채 여자를 노려봤다.
방금 가게로 들어온 여자 또한 줄리아를 노려보았다.
하다는 지금 두 여자의 기 싸움 사이에서 난감해하고 있었다.
“앨린! 루이는 또 왜 찾는데?! 그만 좀 괴롭혀!”
“내가 언제 루이든님을 괴롭혔다는 거야?!”
줄리아가 앨린이라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숙박업을 하는 다른 가게 사장님이었다.
“됐고! 루이든님 계셔 안 계셔?!”
앨린은 금발 단발 머리에 붉은 눈동자 색을 가졌다.
고양이 같은 눈을 치켜 뜨자 하다는 매서운 눈빛을 가진 여자라고 생각이 들었다.
‘줄리아 언니만큼 예쁘지만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하다는 속으로 줄리아가 더욱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다는 자신 또한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다는 걸 혼자만 몰랐다.
앨린이란 여자는 하다를 위아래로 흘겨보며 입을 열려는 순간 앤버든이 다가와 중재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힘이 센 앤버든이라도 여자들 기 싸움에 끼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구나…’
하다는 새우등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앤버든이 불쌍하다고 느꼈다.
때마침 싸움의 원인인 루이가 등장하면서 소란스러웠던 가게가 조용해졌다.
기둥에 기댄 루이는 귀찮은 듯 앨린에게 말했다.
“남의 사업장에서 무슨 소란인가요? 앨린.”
앨린이란 여자는 루이를 보자마자 달려가 팔짱을 꼈다.
루이는 귀찮은 표정이였지만 딱히 떼어 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이참. 돌아왔으면 저한테 알려 줬어야지요.”
앨린이란 여자는 루이의 몸에 붙어 자신의 몸을 살랑살랑 흔들며 애교를 피웠다.
하다는 끔찍한 장면이라도 본 듯 속으로 말을 삼켰다.
‘저래서 줄리아 언니가 싫어한 거였구나!’
하다는 속이 미식 거리는 걸 느끼고는 미간을 찡그렸다.
루이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앤버든에게 말했다.
“앤버든. 집무실에 차 좀 넣어줘.”
“네.”
“아. 그리고 줄리아. 강하다에게 방 안내 좀 해주고.”
“그래.”
루이는 앨린이 잡고 있던 팔을 빼며 집무실로 앞장서서 걸어갔고 그 뒤를 앨린이 하얀 양산을 흔들며 따라갔다.
루이와 앨린, 앤버든의 모습이 사라지자 줄리아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맘에 안 들어. 앨린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야.”
줄리아는 하다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가자고 말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앨린이란 분이랑은 원래 사이가 안 좋으셨던 건가요?”
하다의 말에 줄리아는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안 좋은 것뿐만 아니라 그냥 싫어! 항상 루이에게 이상한 정보를 가져다 주잖아!”
“정보요?!”
2층에 도착했을 때 방문이 여러 개가 있는 일자로 쭉 뻗은 복도가 나왔다.
“그래. 앨린은 정보를 파는 여자야.”
줄리아는 앤버든이 사용하는 방과 자신이 사용하는 방을 지난 다음 방문 앞에 섰다.
“그 정보는 믿을 만한 게 못돼.”
“정보가 믿을 만하지 못한데 사장님은 왜 그 여자에게서 정보를 얻으려고 하시죠?”
“그래서 미치겠다는 거야. 이 세계에선 정보를 얻는다는 건 쉽지가 않아. 실 오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은 심정 인거겠지…”
줄리아는 하다가 사용할 방문을 열었다.
원목으로 된 침대와 책상, 장롱, 화장실이 전부였다.
좋은 말로 아주 깔끔했다.
루이의 집무실에 들어갔을 때 봤던 호화스러움과는 정 반대였다.
“방이 깔끔하고… 좋네요.”
“방은 휴식할 때만 쓰니 거의 사용할 일이 없어. 굳이 화려할 필요가 없지.”
줄리아는 하다의 마음을 알았는지 덧붙여 설명해 줬다.
그리곤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하다에게 한마디 했다.
“충고하나 하는데, 정보가 필요하다 해도 앨린은 믿지마. 내가 앨린을 싫어해서 그런게 아니라 언니로서 하는 말이야….”
하다는 줄리아의 표정을 보고는 걱정말라는 듯 웃어보였다.
“걱정마세요. 언니. 정보는 사장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어요!”
“루이가?!”
줄리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정보만 주시면 제가 가게에 피해 안 가게끔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는다고 했더니 알겠다고 하셨어요.”
줄리아는 속으로 생각했다.
‘루이. 무슨생각인거야…’
줄리아는 하다의 양쪽 어깨를 살짝 잡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다야. 그냥 여기서 적응해서 살면 안 될까? 루이가 무슨 생각인지도 모르겠고, 네가 너무 걱정이되서…”
하다는 자신의 어깨 위에 올려진 줄리아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 얹으며 웃었다.
“걱정시켜서 죄송하지만, 전 꼭 돌아가야 해요. 제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하지만 하다야…”
하다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동생들을 지켜야 해요. 부모님과 약속했거든요.”
하다는 줄리아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줄리아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손 위에 포개져 있는 하다의 손은 너무나 고생한 흔적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전부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난 상처들인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