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비로 공기가 깨끗해졌고, 길가의 녹나무는 더욱 짙은 녹음을 자랑했다.
아침, 임안은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전날 밤 꿈이 너무나 생생했다. 그녀는 보도블록을 따라 걸으며 세세한 부분까지 너무나도 선명한 꿈의 장면들을 떠올렸다.
사실, 그건 꿈이 아니었다. 과거 그녀는 실제로 그 일을 겪었다.
다만 그때 그 "꺼져"라는 말 때문에 그녀 스스로도 바보 같았던 그 행동을 선택적으로 잊어버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알았다. 그 소년이 바로 박찬영이라는 것을.
001 동무, 이게 동무가 말한 보상인가?
박찬영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최악의 기억으로 떠올리게 하는 게?
【맞습네다, 임안 동무.】
윽, 이런 보상은 공짜로 줘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학교에 거의 다다라 신호등 앞에 섰을 때, 임안은 박찬영과 마주쳤다.
그는 파란색과 흰색의 교복을 입고 인도 가장 안쪽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임안은 가볍게 달려가 그와 나란히 섰다.
"박찬영! 좋은 아침! 몸은 좀 어때?"
소년의 몸이 순간 움찔하더니,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임안은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띠링! 001 알림: 호감도 +2】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교실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최수아가 그녀를 끌어당기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너희 둘이 같이 왔어?"
임안은 가방을 책상 서랍에 넣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됐다, 네 일은 내가 상관할 바 아니지."
최수아는 영어책을 꺼냈다가 다시 덮었다.
"근데, 이번 주 토요일 담안 체육관 농구 경기 아직 갈 거야? 저번 달에 보러 간다고 했잖아."
교외 농구 경기? 전에 반 단톡방에서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녀는 우재영이네 반과 학교 밖 사람들이 시합을 한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과거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녀는 실제로 담안 체육관에 가서 우재영의 경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담안 고등학교 학생들이 상대편과 시비가 붙어서 양측이 거의 싸움까지 갈 뻔했다.
최수아는 고개를 그녀의 책상 쪽으로 가까이하며 말했다.
"나랑 같이 가줄 수 있어?"
임안은 최수아의 진심 어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비록 과거 최수아가 우재영과 결혼했지만, 그 전까지 둘은 줄곧 친한 사이였다.
최수아는 그녀가 위경련으로 힘들어할 때 한밤중에 학교에서 한달음에 달려와 그녀의 곁을 지켜주었다. 매년 생일을 함께 보냈고, 그녀에게 멋진 선물을 사주곤 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함께 거리를 걸으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얼굴을 보니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너 우재영 좋아해?"
최수아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야! 난 그냥 걔랑 자주 등하교 같이 하고, 가끔 양가 부모님끼리 식사도 같이 하는 사이일 뿐이야. 그냥 친한 이웃 사촌 정도...?"
임안은 다소 의외였다.
과서 최수아가 우재영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최수아에게 묻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왜 갑자기 우재영과 결혼을 하냐고. 최수아 본인은 정말 몰랐던 거냐고.
그때 최수아는 그저 연신 그녀에게 사과하며 말했다.
"정말 몰랐어. 내가 걔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지 못했어. 아마 고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은데, 그땐 몰랐어. 정말 미안해... 너한테 일찍 말했어야 했는데, 네가 곤란해할까 봐 그랬어. 네 성격에 분명히 나에게 양보했을 거라는 걸 알잖아... 미안해."
나중에 생각해 보니, 최수아가 사과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어차피 임안 자신은 우재영과 사귄 적이 없었으니까.
최수아는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임안~ 그날 내 생일인데, 나랑 같이 가줘. 내가 걔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친구잖아. 가기로 약속했는데, 걔네 반 여자애들이랑은 별로 안 친해서..."
임안은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
"맞다! 그날 네 생일이었지!"
최수아는 그녀의 팔을 붙잡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응?"
"알았어."
【띵! 001 알림: 호감도 -2】
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박찬영이 책상에 엎드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신고합니다... 여기 누가 자는 척하면서... 엿듣고 있어요...
————
일요일 오후.
임안은 캐주얼한 옷차림으로 버스를 타고 정류장에서 내렸다.
담안 체육관은 신도시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담안군에서 군민들의 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건립한 군립 체육관이었다.
체육관에 들어서자마자 농구공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최수아는 이미 도착해 관중석에 앉아 있다가, 임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최수아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농구 코트에서 갑자기 농구공 하나가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 이런 장면 너무 진부하잖아.
그녀는 몸을 비틀어 공을 피했다.
빗나간 공을 던진 사람이 그녀에게 달려와 사과했다.
"저기요, 죄송합니다!"
그 사람은 임안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갑자기 멈춰 서서 물었다.
"혹시 박찬영 여자 친구분?"
...... 농구공에 맞는 것보다 더 놀라운 말이었다.
임안은 황급히 부인했다.
"아니에요."
"아! 그럼 임 사장님 따님이시구나."
임안이 대답할 틈도 없이, 말을 하던 남자의 뒤통수를 누군가가 툭 쳤다.
노란 머리 오빠가 뒤에서 다가오더니, 임안을 보고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어, 아가씨도 왔어? 담안고 경기 보러 왔나?"
아... 그러고 보니 과거 우재영과 농구를 했던 게 이 사람들이었지... 세상 참 좁다.
임안은 노란 머리 오빠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으로 코트를 둘러보았다...
설마 박찬영도 있는 건 아니겠지?
"찾지 마, 박찬영은 없어. 걔 농구 제일 싫어하잖아."
노란 머리 오빠가 말했다.
"아, 그래?"
임안은 잠시 후 그들이 시비가 붙을 거라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미리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저, 저는 친구한테 가볼게요."
그녀는 서둘러 최수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최수아는 우재영이네 팀이 몸 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생일 축하해!"
임안은 말을 마치고 가방에서 선물을 꺼내 최수아에게 건넸다.
"고마워!"
최수아는 선물을 받아들고는 노란 머리 오빠 일행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 알아? 아까부터 계속 이야기하던데?"
임안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니, 뭐... 잘 아는 건 아니고."
앞선 두 경기는 치열했지만, 다행히 별다른 충돌 없이 끝났다.
하프타임 때 최수아가 우재영에게 물을 건넸다.
임안은 심심해서 다른 선수들에게도 물과 수건을 건네주었다.
그녀는 노란 머리 오빠가 몰래 휴대폰을 들어 그녀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선수 중 한 명이 임안이 건넨 물을 받아들고는 슬쩍 그녀의 손을 만졌다.
순간적으로 소름 끼치는 감촉이 느껴지자, 임안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그 남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전생의 일들이 떠올랐다. 과거도 이 남자에게 손을 만져졌었다. 그때는 그냥 실수로 스친 거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녀에게 물병을 돌려줄 때 또다시 그녀의 가슴을 스쳤다!
당시 임안은 너무나도 소심했기에, 기분은 나빴지만 그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중에 들리는 말로는 그 남자가 밖에서 성매매 관련 문제로 폭행을 당한 후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 일을 떠올린 임안은 재빨리 손을 뒤로 뺐다.
"왜 그래요? 그냥 실수로 스친 건데. 너무 예민하게 구는 거 아니에요?"
그 남자가 툴툴거렸다.
개소리!
임안은 그에게서 조금 떨어져 말했다.
"아니에요, 그냥 손에 있는 각질 때문에 좀 따가워서요."
세 번째 경기가 시작되자, 임안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도 세 번째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측이 충돌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양 팀 선수들을 예의 주시했다.
아까 그녀의 손을 만졌던 남자가 노란 머리 오빠와 부딪힌 것 외에는 경기 내내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게다가 네 번째 경기까지 끝났을 때, 양 팀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다음을 기약하기까지 했다!
물론 좋은 일이긴 하지만... 임안은 다소 의아했다.
...... 어쩌면 다시 한 번 얻게 된 삶은 과거의 삶과 조금 다른 걸까?
————
박찬영은 PC방에서 아르바이트로 게임 대리를 해주고 있었다. 그때 민건우에게서 사진 한 장이 전송되었다.
그는 무심하게 사진을 열었다. 사진 속 소녀는 낮게 묶은 머리에 헐렁한 회색 후드티를 입고 한 남자에게 물을 건네주고 있었고, 두 사람의 손이 닿아 있었다.
민건우: 【보고합니다. 네 여자 친구 농구팀에서 인기 짱인데?】
박찬영은 코웃음을 치며 한 손으로 문자를 입력했다.
─나랑 상관없는 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