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임서훈, 태어나 처음으로 자격지심을 맛보다

2614 Words
유영은 눈을 깜빡이며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내가 가 볼게." 서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앞에 놓인 아직 손도 대지 않은 감자튀김을 집어 들고 남자아이에게 걸어갔다. 남자아이는 흥미로운 듯 작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누나, 형 여자 친구예요?" "이 감자튀김 개수를 정확히 세면 알려 줄게." 유영은 감자튀김을 남자아이 앞에 내려놓았다. 남자아이는 군침을 삼키며 말했다. "저 조금 먹어도 돼요?" "그건 다른 문제인데." 남자아이는 진지하게 감자튀김을 세기 시작했다. "서른여덟 개." "틀렸어, 서른아홉 개야." 남자아이가 감자튀김을 세는 동안 유영은 옆에서 지켜보며 조용히 함께 세어 보았다. 남자아이는 납득하지 못했다. "누나가 서른아홉 개라고 해서 서른아홉 개예요? 안 믿어요!" "다시 세어 봐도 돼. 서른아홉 개 아니면 내가 패밀리 세트로 사 줄게." 남자아이의 눈이 반짝이며 몇 번이나 세어 보았지만 모두 서른아홉 개였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누나 말이 맞네요." "나는 서훈이의 짝꿍이야." 유영은 아까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형 안 좋아해요? 좀 무섭긴 하지만 잘생겼고, 엄청 멋있고, 못하는 게 없는데!" 남자아이의 목소리에는 존경심이 가득했다. 서훈은 화장실에서 돌아와 마침 그 말을 들었다. 그는 정색하며 말했다. "안준서, 너 정말 문제 풀기 싫으면 아빠 불러다 줄 수도 있어." 준서는 입을 삐죽 내밀고 유영에게 투덜거렸다. "형 너무 무서워요." 유영은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서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화장실 잠깐 다녀온 사이에 둘이 언제 이렇게 한 편이 됐지?' 유영은 감자튀김을 준서 앞으로 밀었다. "감자튀김으로 7 더하기 8이 몇인지 맞히면 이 감자튀김은 네 거야." 준서는 신이 나서 손을 비비며 감자튀김을 세어 7 더하기 8을 계산했다. 아이들은 모두 똑똑해서 동기 부여가 생기면 진지해진다. 곧 그는 큰 소리로 답을 외쳤다. "15!" 유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발하듯 서훈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의 시선을 받으며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겨우 입을 열었다. "너 진짜 대단하다." 그는 오늘 체면이 완전히 구겨졌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새로운 짝꿍 앞에서 체면 차릴 것도 없었다. 사실 그는 첫날 만났을 때만 해도 자신을 좀 무서워했던 유영이 어떻게 단 며칠 만에 자신에게 도전할 정도로 대담해졌는지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떠나기 전, 유영은 준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말 잘했어. 문제 열심히 풀어." 유영은 돌아서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문제 풀이를 계속했다. 준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서훈에게 물었다. "저 누나 진짜 예쁘고 착하기도 한데, 형 진짜 안 좋아해요?" 서훈은 아무런 표정 없이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 시간 뒤면 아빠 오실 거야." 준서은 그 말을 듣고 황급히 문제 풀이에 집중했다. 서훈은 유영이 있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녀는 자세가 아주 바르고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있었고, 칠흑 같은 긴 머리카락은 높게 묶어 올려 길고 예쁜 목선을 드러내고 있었다. 단지 뒷모습만으로도 굉장히 청순하고 매력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시선들은 그녀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고,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문제 풀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는 방금 전 유영의 모습을 떠올렸다. 상태가 아주 좋아 보였고, 어젯밤 서럽게 울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 … 유영은 문제집 두 세트를 다 풀고 창밖을 내다보았을 때야 다시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겨우 다섯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늘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유영은 이따가 비가 더 많이 올까 봐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짐을 챙기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제야 서훈의 옆에서 문제를 풀던 아이가 바뀐 것을 알았다. 여전히 초등학생이었다. 이 초등학생은 안보방보다 가르치기가 수월한 듯 그의 표정이 그렇게 험악해 보이지는 않았다. 유영은 이제 확신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 문제 풀이를 돕는 것은 상묵년의 또 다른 일이라는 것을. 그의 사업 영역은 꽤나 넓었다. 유영은 짐을 다 챙겨 문 앞에 다다랐을 때, 서훈도 초등학생을 데리고 다가왔다. 문 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서고 중년 남성이 우산을 든 채 내려와 초등학생을 데려갔다. 문 앞에는 순식간에 유영과 서훈 둘만 남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예기치 않게 마주쳤다. "너 또 우산 안 가져왔어?" 유영은 시선을 피하며 서훈의 텅 빈 손을 바라보았다. 서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에 나올 때 비 올 줄 몰랐어." 유영은 잠시 침묵하다가 손에 든 우산을 그에게 건넸다. "그럼 같이 가자." 서훈은 가늘고 하얀 그녀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잠시 멍하니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함께 우산을 쓰고 집에 가자고 제안하고 있었다. 그가 한참 동안 우산을 받지 않자 유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싫으면 말고." 막 손을 거두려는 순간, 서훈은 손을 뻗어 우산을 잡아당겼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녀의 손가락까지 함께 움켜쥐고 말았다. 다음 순간, 그는 재빨리 손을 놓았다. "미안." 그는 나지막이 그녀에게 사과하며, 마치 뜨거운 물건에 데인 듯 황급히 손을 놓았다. 유영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훑어보았다. 그의 얼굴이 이상하게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손을 스친 것뿐인데 저럴 필요가 있나?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유영은 그의 손에 우산을 쥐여 주며 말했다. "시간 없어. 가자." 우산이 좀 작아서 서훈은 그녀에게 우산을 씌워 주면서 자신도 모르게 우산을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 유영이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그의 반쪽 몸이 비에 젖어버린 후였다. 유영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뻗어 우산 손잡이를 잡고 우산을 그의 쪽으로 밀었다. 서훈은 감동한 듯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난 괜찮아, 내…" 뒷말은 유영의 손에 묻은 금색 페인트를 보고 모두 사라졌다. 유영은 방금 우산 손잡이를 잠깐 잡았을 뿐인데 손에 페인트가 묻어 버렸다. 이 우산은 품질이 너무 심하게 형편없었다. 서훈은 복잡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색이 바래?" 300만원이나 주고 산 우산이 이렇게 품질이 안 좋다니?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 유영은 그대로 손을 들고 서훈에게 화가 난 투로 물었다. "얼마 주고 샀어?" 그는 사실대로 말했다. "300만원." 유영은 나지막이 말했다. "매장 가면 230만원이면 사는데…" 230만원이면 산다고… … 서훈은 그 말을 곱씹어 보더니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가짜를 산 건가?" 그는 아무리 물건을 몰라도 이 우산이 진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유영의 생활환경이 황각로에서 자란 자신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그는 아르바이트로 바짝 일 한 돈이 230만원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230만원은 고작 우산 하나 값에 불과했다. 그녀는 딱히 자랑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그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일 뿐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분명 이 우산이 진품이 아니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했을 것이다. 서훈은 이렇게 크도록 처음으로 열등감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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