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죄 (1)
# 신죄 (**)-1
“소식들 들으셨소?”
비단을 다듬던 월향이라 불리는 궁녀의 입이 움직이자 침소에 있던 궁녀들이 모두 고갤 들었다. 늘 어디선가 소문을 물고 와서는 흥미롭게 떠들어대는 월향의 성정을 알고 있던 궁녀들은 모두 기대에 찬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게 말이오....”
“이보게 월향. 말 돌리지 말고 분명히 말해주지 않겠소?”
기대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궁녀들을 향해 떠드는 월향의 목소리를 누군가 막아섰다.
침소에 있던 궁녀들의 시선이 바삐 움직인다. 그곳에는 은회색 면복 상의에 자수로 만든 그믐달을 바라보는 자이가 있었다.
“자네는 늘 이 모양이지.”
자이가 혀 끝을 차며 말했다.
“늘 어디선가 소문을 물고와서는 이리저리 뜯고 맛보길 즐겨.”
“또 자네야? 어째서 자네는 늘....”
“빙빙 돌리지 말고 확실히 말하라고.”
“크음.... 알겠소...”
매정한 자이의 목소리에 월향은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입을 움직였다.
“월광군(***)이 실종되었다는 소문이오!”
그 말에 궁녀들은 갑자기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곧 그들은 피식 웃으며, 그럴 리가 없다며 옆의 궁녀를 가볍게 쳤다.
"참으로인가?!"
옆의 궁녀가 반박했다.
"실종된다니, 그럴 수 있을까? 월례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는데..."
"하지만, 제 생각에는 실종된 것이 아니라, 도망간 것 같소. 왜냐하면-"
"아!"
바늘에 손가락을 찔린 자이는 월향을 노려보았다.
"야, 그렇게 말씀하시면 집중이 안되오!"
"하....제 말을 들어보시오!"
"하...정말로..."
월향은 고개를 유난히 가깝게 숙이고 마치 금기된 비밀을 전하는 듯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월광군이...인관과 합혼(**)했다는 소문을 들은 바 있소."
"합혼!?" 그것은.....금기로운 일이소이다....진실하옵니까?"
월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올세...어떻게...그런 완전히 무모하고 월광군답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는가?"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였으나, 그런데 소문에 의하면, 혼합이 벌써 2년 전인 것 같소!"
그 말을 던지며, 그녀는 계속해서 월례복을 만들어 나갔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시오. 인간과의 혼합이라면, 그것이 우주를 뒤흔들 수 있는 일이 아니겠소?"
"그렇게 될지도 모르오. 왜냐하면 인간의 영혼은 지구의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신의 영혼은 우주의 기운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우연히 혼합된다면 우주의 균형이 깨져 큰 재앙이 찾아올 수 있겠소."
한 궁녀가 말을 덧붙였다.
"인간과 신의 영혼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누가나 아는 사실이오나, 그런데도 왜 그런 일을 하신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다른 궁녀는 다시 면복에 그듬달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겠소?"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남자와 합혼한 후에, 월광군은 그에게 천계의 모든 비밀을 알려주었다고 하오."
다른 자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참으로인가...잠깐만요!"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복잡한 생각에 잠기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그럼 몇달 만나뵀던 월세자부...신이 아닌 인간이였소!?"
"맞소!"
"와....소름 돋아, 내 팔 좀 보소. 닭살이 돋았소. 어머머머머...."
그들 앞에서 인간이 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워했다.
"그럼 월주(**)폐하는 월세자부가 인간이라는 걸 알고 계셨던 건가? 그런데, 인간이시라면 흙 냄새를 풍겨야 할 터인데, 왜 우리는 그 냄새를 맡지 아니하였는 겐가?"
"나도 모르겠소. 하지만, 우리 모두 다 생각한다더니오."
월주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월실(**)의 붕괴와 월광군, 무골 월자의 운불비천에 던져짐을 의미했을 것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월주실의 붕괴로 인해, 오월국에 거주하는 모든 월민족들이 몰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면복에 큰 그믐달 자수를 마무리하던 궁녀가 잠시 멈추었다.
"게다가, 고천의회(****)까지 그 소문을 알아차렸소. 월광군, 이제 그분도 끝장일지도 모르겠소..."
"그럼, 월례식은 어떻게 될 것이오?"
"아마도, 치를 수 없지 않을까요?"
월례식을 치를 수 없는 것은 오월국 역사상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었다.
500년 전, 한 여신이 인간과 몰래 결혼하여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천지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실이 천대왕에게 드러나면 어떻게 될지 두려워하여 제생원에 맡겼다.
몇년 후 그 사실이 드러났을 때, 천대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 월례식을 치르시 못한다면 굳이 월례복을 만들어야 할까? 그냥 시간 낭비일 뿐이잖아소...."
월향은 면복 상의에 대를 두드리며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사나래님께서 명하셨으니 어쩔 수 없소."
자이는 푹신한 침대 위에 몸을 놓고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아.... 왜 사나래님께서 이런 일을 시키시는 걸까요?"
월향은 그녀를 쳐다보며 비꼬는 듯이 말했다.
"그건 너 알잖소, 사나래는 월주의 가장 가까운 조언자니까 그렇소."
자이는 친구의 비꼬는 말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깊은 한 숨을 내쉬었다.
"아...내 팔자가 정말...."
"니가 무슨 팔자에 불만이 있든지, 월례복을 만드는 일과 별개인 것이오!"
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궁녀들은 감짝 놀랐다.
눈치를 보던 자이, 급히 몸을 일으켰다.
문안으로 들어서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찬란하게 휘날리는 듯한 연보라빛 드레스에 반짝이는 나비장식위로 투명한 베일이 드리워졌다.
월향은 미안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니들 무슨 애기를 하느라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데?"
사나래는 얼굴을 찡그리며 월례복을 살펴보았다.
" 월례복이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구나."
"그건 사나래님 한 말씀대로-"
옆에 서있는 궁녀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눈짓을 보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시킨 대로 했다는 건가?"
월례복의 끝자락을 잡아당겨 보여주며 말하던 사나래.
"여기 뭔가 빠진 거 같지 않아?"
"아, 그,그런가요?"
"정말 모르는 건가?"
사나래는 냉혹하고 무자비한 귀족의 피가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눈은 항상 차가웠고, 그녀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대상이 바로 궁녀들이었다. 궁녀들은 그녀의 앞에서는 항상 불안함을 느꼈다.
"죄,죄송합니다. 마마, 어, 얼른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도록 하겠소옵니다."
"최대한 빨리라니? 그게 무슨 말이지? 이미 시간이 얼마나 많이 지났는지 알고 있느냐?"
사나래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냉엄했고, 목소리는 칼처럼 날카롭게 궁녀들을 찌르고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일인데, 이런 식으로 대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너희들은 내가 월주의 조언자라는 것을 잊었나? 그리고 월광군께서는 이 월례복은 대관식에 입을 예정이라는 것도 말이다."
사나래는 월례복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더 높아져 갔다.
"월례식이라는 건 월주실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야. 그런데 이런 식으로 대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월광군의 명예를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느냐?"
그녀는 월례복을 내려놓고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눈빛은 더욱 더 차가워졌다.
***
끝없는 황량한 땅, 실혼사막(****).
한 포기의 풀도 없이, 먼지와 모래만이 가득한 곳이었다.
마치 불이 붙은 듯 파랗지 않은 하늘이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모래바람이 그 어떤 생명도 찾아볼 수 없게 했다.
신조차 두려워하는 그런 곳에서, 수십백년의 정적이 깨어날 시간이 왔다.
산길을 따라 깊게 패여진 핏줄기가 차차 말라갔다.
아지랑이가 땅 위로 피어오르는 그 모습.
실혼사막을 더욱더 독특하게 만들었다.
그런 황량한 풍경 속에서도,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실혼사막 저편에서 모래바람을 뚫고 걸어오는 두 남자의 모습이 아련하게 보였다.
젊은 신의 모습이 대나무처럼 붉디붉은 하늘을 찌르며 드러났다.
그의 곁에는 그보다 작은 체구의 사내가 묵묵히 따라있었다.
신은 보물을 지키듯 사내의 허리를 왼손으로 꼭 잡고, 오른손에는 감청색의 종이 우산을 흔들며 걸어갔다.
흰 피부는 마치 눈보라가 내린 듯이 깨끗하고 빛나며, 그의 갸름한 얼굴에는 짙은 눈썹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의 눈매는 날카롭지만 우아하게 굴곡을 그리고 있었다.
두툼한 입술은 육감적인 아름다움을 더하며, 그의 조각 같은 턱선과 길게 뻗은 콧대는 완벽한 이목구비를 완성했다.
그의 새까만 생머리는 길게 풀어헤쳐져 모래바람에 휘날렸다.
이마에는 진주로 만든 은색의 그믐달 무늬 머리띠가 반짝였고, 피부와 어울리는 청록색 도포 위에는 은색으로 수놓아진 장식이 빛났다.
검은색의 겉옷은 황금색의 성좌 자수로 밤하늘을 연상케 했다.
그의 화려한 옷차림은 그의 월등한 미모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신의 옆에 따라가던 사내의 얼굴은 피곤과 고통에 찌들어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신의 어깨는 죄책감으로 무겁게 느껴졌다.
"내 잘못이라오... 미안하다."
신의 목소리는 후회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아니오... 나 때문에..."
사내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기침에 헛기침을 했다.
신은 사내를 안심시키려는 듯,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고 그를 마른 땅에 눕혔다.
종이 우산은 사내를 햇볕으로부터 보호하며 그의 그림자를 던졌다.
"잠깐 쉬고 가자." 신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사내를 주시했다.
그의 큰 손이 사내의 턱을 쓸었다. 신의 따뜻한 손길에 사내는 차가운 몸을 떨며 신의 손을 꽉 잡았다.
"월음아..."
동휘는 죽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신의 이름을 부르며 앓는 소리를 냈다.
"동휘야, 말하다 힘들어지면 안 돼."
신은 두려움을 숨기고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무 추워..."
동휘가 말하자 신은 결심한 듯 말했다.
"신생공수(****)에 데려가야겠소. 너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대답 대신, 동휘의 기침 소리는 계속해서 터져 나왔다.
동휘의 답 대신 기침 소리만이 끊임없이 터져나왔다.
월음은 동휘의 몸에서 독이 퍼져가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월음은 동휘를 안기 위해 두 손을 뻗었다.
그의 마비된 몸을 조심스럽게 안았다.
그의 체온은 차가워져만 갔지만, 월음의 마음은 더욱 뜨거워져만 갔다.
"조금만 참아줘."
그는 한 발짝, 또 한 발짝 나아갔다. 그런데...
"월광군!"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한쪽에서는 황금 갑옷을 입은 병사들과 그들을 이끄는 천대왕이 있었다.
"월광군, 인간을 내놓으라!"
천대왕의 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외침은 메아리를 일으키며 실혼사막을 가득 채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월음의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화랑!? 해조?!" 월음 놀란 표정으로 화랑과 해조를 바라보았다.
화랑의 자주색 갑옷은 햇살 아라에서 반짝였고, 그의 머러에는 명주실 망건이 걸려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해조의 긴 흰 생머리는 그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했다.
푸른 눈으로 천대왕을 바라보던 해조는 얼굴을 찡그렸다.
"월음아, 저 놈은 그 놈이지?"
월음은 '응'하며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화랑이 긴장한 표정으로 목덜미를 삼켰다.
"나 좀 긴장되는데?"
"걱정 마, 화랑아... 반드시 이길 수 있소."
해조는 담대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는 월음을 향헤 시선을 돌렸다.
"월음아... 어서 떠나. 이렇게 가다간 동휘가 위험해.."
"아니야, 형. 동휘를 지켜봐. 천대왕이 날 원하신데..."
그의 말에 월음은 도포 주머니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작은 검은 장검이 순식간에 형상을 변화시켰다.
천대왕이 다시 한번 명령을 내렸다.
"월광군, 다시 말하겠다. 인간을 내놓거라!"
그러나 대답 대신, 월음은 천대왕을 노려보며 빠르게 그의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의 목에 칼날을 겨누며 위협했다.
"월자..."
그의 시야에는 갑자기 천대왕 뒤에 나타난 여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복식은 알록달록한 꽃무늬로 가득 차 있었고, 그녀의 어깨에 걸친 망토에는 커다란 봉황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녀의 창백한 피부, 장미빛 볼과 입술, 그리거 머리에 끼운 황금색 머리핀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녀는 관음여신이었다.
천천히 다다가며 미소를 지던 그녀.
"천상전하를 상처 입히는 것은 반역일 뿐이야. 어서 검을 내려놓아."
"싫소."
그의 손이 잠시 떨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의 손목을 부드럽게 닿고는 다시 말했다.
"월자, 검을 내려놓아. 유혈사태를 일으킬 필요는 없어."
그는 관음여신의 충고를 무시했다.
이 상황에서 예의를 지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제 그의 눈 앞에 있는 천대왕은 단지 야박한 존재에 불과했기에.
"월광군, 인간을 내놓을 생각이 없다면, 전쟁이라도 치룰 준비가 되었느냐?"
천대왕의 입술에서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그는 천대왕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신랑을 내놓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이시오..."
천대왕은 월음의 말에 큰 소리로 웃었다.
그는 무시무시한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천대왕의 목을 겨눈 그의 검은 힘에 차여, 눈빛이 더욱 섬뜩해졌다.
그러자 검끝이 천대왕의 목을 살짝 찔렀고, 그의 목에서는 황금색 액체가 새어 나왔다.
그 때, 갑자기 달려온 화랑은 월음의 떨리는 손목을 잡았가. 그리고는 그의 귓가에 부드럽게 말했다.
"월음, 이대로는 안 돼. 우린 포기해야 해."
월음의 몸은 분노에 흔들렸다.
그러나 화랑은 계속 월음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월음....그만. 동회를 보호하러 가야 해."
"싫어. 나는...이렇게 끝내야 해."
월음은 뒤돌아 봤다. 멀리서 기다리는 해조와 동휘.
해조는 동휘를 꽉 껴안고 있었다.
월음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느꼈다.
그는 화조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것은 어서 도망가라는 눈짓이었다.
슈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