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천영

3612
"지금 뭐라고 한것이냐? 그 놈이 아직 살아있다고?" 극한의 추위, 천년 빙설로 뒤덮인 이곳, 30만 대군이 그곳에서 한창 훈련을 받는 중이다. 대군 맨 앞쪽에는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노자가 아랫사람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러든 와중 갑자기 그는 자신의 손에 든 찻잔을 바닥으로 내던지면서 찻잔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동강 났다. "그렇습니다. 애초에 그 시신은 조작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자는 죽지 않았습니다." 늘름한 자태를 한 장군이 그 노자께 남자가 죽지 않고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노자는 삽시에 낯색이 변하면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분노를 감추지 못하였다. 그도 그렇듯이 한평생 지고지순한 권리를 누렸던 그인데. 그의 말 한마디에 천지가 뒤집히고 그가 원한다면 세상을 자신의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심기를 건들린 사람이 나타났으니 기가 찰 지경이다. 오직 그사람! 그로 하여금 하룻 아침에 백발노인으로 만든 자! "지금 내명을 받들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그놈을 찾아서 내 눈앞에 데려다 놓아라!" "네,알겠습니다!" 그 시각, 남쪽 어느 마을의 장터. "형씨, 오늘 머리끈을 몇 개나 팔았소? 장사가 잘 되는 것 같던데, 오늘은 집 가서 마누라한테 혼꾸멍 나지 않겠소."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것이요. 우리 형님은 이따위 장사를 안 해도 장모님을 잘 모시고, 마누라 말만 잘 들으면 떵떵 거리면 살수 있다니 까요." "와, 무척이나 부럽소. 나도 형씨 따라서 부잣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갈까 싶소!" 입에 담배를 문 몇몇 장터 상인들이 구석 모퉁이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며 싥실 쪼갰다. 조현은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을 뿐 그들의 비아냥 거림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오늘의 매상뿐이였니까. 오늘 집으로 돌아가면 장모님께 야단을 맞을게 안 봐도 뻔했다. 장 씨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온 지 어언 2년, 조현은 남강성에서 제일 큰 놀린 감이 되었다. 하물며 3살짜리 어린아이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장 씨 가문에서 모질한 놈을 데려다 사위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야야. 저기봐! 선녀다!" 갑자기 어딘가 누군가의 한마디에, 모든 사람의 시선은 단번에 한곳으로 사로잡혔다. 저 멀리서 검은 실루엣이 차츰 가까워질 때쯤 장터 사내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그녀의 미모에 넋을 놓아버렸다. 검은 타이즈를 입은 여인은 미모는 물론, 몸매까지 빼어난 그야말로 경국지색의 미인이다. "야야, 이쪽으로 오는 것 같은데?" 모두이의 시선을 한몸에 받은 그 여인은 조현 앞에서 걸음을 머추었다. "손님, 찾으시는 머리끈이 있으신가요? 이자는 머리가 좀 모자라... 필요한 게 있다면 우리 가게에도 괜찮은 물건이 많은데..." 옆 가게의 사내의 여인에게로 다가가면서 말했다. "지금 뭐라고 했나?" 여인은 마치 엄동설한의 칼바람과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저 자는 이 동네 유명한 칠푼이에요. 그러니 저자에게서 사지 말고 우리 가게에도 좋은 물건이 많으니 마음에 드시는 게 있다면 돈을 받지 않고 그냥 드릴게요..." 펑! 말이 끝나자마자 그 사내는 피를 토하며 멀리 날아갔다. 바닥에 누운 사내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고, 가슴 한가운데는 움푹 파였으며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감히 누굴 보고 모자란다고 한 것이냐? 정녕 네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여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마치 칼날 처럼 날카로웠다. "사람 살려!" 외마디의 비명소리와 함께 장터 사람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사방으로 도망쳤다. 뭐야, 저 미친년은! 조현도 일어서서 도망치려고 하자, 그 여인이 갑자기 그의 어깨를 잡았다. "누님, 저는 방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조현은 겁을 잔뜩 먹을 얼굴로 말했다. 여인은 이마를 살짝 찌푸리더니 다시 말했다. "따라오세요." 조현이 앞에서, 그 여인은 뒤에서, 둘은 이렇게 어딘가로 향했다. 조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 재수가 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 깨진다니... 갑자기 어디서 갑자기 미친년이 나타나서 사람을 죽이더니 설마 나까지 죽이려고 하는 게 않겠지? 둘은 조용한 골목 안으로 들어왔다. 조현이 무릎 꿇으려고 준비할 찰나, 여인이 갑자기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말했다. "현자군천기 수령 천영, 정식으로 군주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조현은 순간 대체 이게 무슨 상황 인지 파악이 안됐다. "사... 사람을 잘못 알아본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신이 말한 군주라는 자를 모릅니다." 여인은 다시 물었다. "군주, 정녕 아무 기억도 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여인은 자신의 앞에 후줄근한 차림에 수염이 가득한 사내를 바라보면서 눈가에 슬픔이 가득했다. 그녀는 차마 한때 전장에서 날아다니고, 이름만으로 적을 벌벌 기어 다니게 했었던 기고만장한 자신의 군주가 이런 몰골로 머리끈 장사나 하고 있다니 사실을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군주,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이 천영이 군주의 옆에서 군주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자칭 천영이라는 이 여인이 눈물이 글썽이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면서 앞으로 자신을 지켜주겠다는 말하는 것이었다.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조현은 더 이상 여인의 헛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곧바로 대꾸했다. "정말 당신이 말한 대로 내가 당신의 군주라면, 지금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마세요." 조현은 차라리 여인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그리고 여인이 아무 반응이 없자,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도망쳤다. "군주, 당신께서 어떤 모습이여도 이 천영과 나머지 여섯 명의 수령 그리고 군주의 십만 현자 군은 언제나 군주를 따를 것입니다!" 뒤에서 간간이 그 여인 구슬픈 울음소리 들려왔다. 아오, 재수없어! 장터에서 발생한 사건 때문에 조사를 받은 조현은 밖으로 나와보니 벌써 해가 다 진 뒤였다. 에효, 또 장모님한테 한소리 듣겠구나. 조현은 쓴웃음을 애써 지으며 문을 열었다. 거실에는 장모님 말고 낯선 젊은 사내가 있었다. 테이블에는 붉은 장미 꽃다발이 놓인 체 둘은 한창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왜 이제 들어오는 것이냐. 누가 하나 굶어 죽일 생각이야?" 이미숙은 조현을 보자마자 자연스레 욕부터 하였다. 그녀는 항상 무능한 사위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으며, 조현을 무시하였다. 장모님의 한마디에 조현은 부리나케 앞치마를 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하하 이모님. 이분이 바로 이모님께서 항시 말씀하셨던 그 무능한 사위인가요?" 젊은 사내가 비웃음이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어차피 곧 이 집에서 나갈 사람이네. 앞으로는 우리 진무가 우리 모녀를 보살펴 줄 거지?" "그럼요. 저만 믿고 따르시면 됩니다. 걱정 안 하셔 돼요." 진무가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이미숙은 오뉴월에 핀 꽃 마냥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믿고말고. 이따가 우리 딸 오면 얼른 결정하자고." "당신이 왜 우리집에 있는 거지?" 흰색 오피스룩을 입은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진무는 장미연이 돌아오자 눈웃음을 지으면서 한달음에 앞으로 나아가서 그녀를 맞이하였다. 진무는 주머니에서 흰색 작은 박스를 꺼내더니,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박스 안은 엄청 큰 다이아 반지가 들어있었다.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장미연이 진무에게 물었다. "얘는 말투가 그게 뭐니." 이미숙은 딸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혹시나 진무가 실망할까 봐 얼른 덧붙여 설명했다. "진무가 너랑 결혼하고 싶다고 해서, 내가 동의했어. 벌써 엄마가 대신 반지와 예물도 받았고. 내일 둘이 가서 혼인신고만 하면 돼!" "엄마, 지금 무슨 말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미연이 분노에 가득찬 목소리로 대꾸하였다. "저는 이미 결혼했다고요!" "저 쓸모없는 자식이랑?" 이미숙은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면 말을 이어갔다. "그럼 지금 당장 그놈이랑 이혼하면 되겠네." "야 얼른 나와봐!" 이미숙은 주방에서 밥을 하고 있는 조현을 불렀다. "어머니, 무슨 일이에요?" 레인지 후드 소리 때문에 세 사람의 대화를 듣지 못한 조현은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머니라고 부르지 말거라. 그리고 당장 우리 딸이랑 이혼해서 이 집에서 나가!" 이미숙은 미리 준비한 이혼서류를 테이블 위에 던졌다. "엄마,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저 이혼 못해요!" 미연이는 고개를 돌려 진무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당신 우리 집에서 나가.쫓아내기 전에." "얘가 오늘 왜 이러지. 어디가 잘 못된 거 아니지?" "이 자식이 우리 집에 사위로 들어와서 해준 게 뭐가 있지? 2년 동안 고생만 시켜놓고. 나는 더 이상 못 참겠다. 당장 이혼서류에 사인하고, 내일 진무랑 혼인신고해!" 당장이라도 딸의 이혼을 바라는 이미숙은 미연에 손을 잡아 이혼서류에다 갖다 놓았다. "엄마,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당장 이 손 놓으세요!" 미연을 이미숙의 손을 벗어나려고 하자 옆에서 쳐다보던 진무가 미연에 어깨를 누르면서 말했다. "이모님 말씀을 들어야지. 미연아, 내가 너 행복하게 해줄게." "두 분 다 내 몸에서 손 떼세요!" 미연은 아무리 벗어나려고 애를 써봐도 진무의 힘에 눌려 꼼짝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그 손 당장 치우시죠!" 조현이 이미숙과 진무를 밀쳐내면서 말했다. "제 와이프 몸에서 손 떼 주세요!" 미연이는 지금 조현의 이런 행동이 매우 낯설었다. 그가 지금 나를 보호하는 것인가? "네가 간땡이가 부었구나? 감히 지금 누구를 밀쳐내?" 이미숙은 조현의 뜻밖의 행동에 화가 억누를 수 없을 만큼 차올라 조현에게로 냅다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의 스텝에 꼬여 대자로 넘어지고 말았다. 진무도 조현의 옷덜미를 잡으면서 말했다. "야 이 자식아 감히 누구 몸에 손을 대? 당장 내 앞에 무릎 꿇고 잘 못했다고 빌어! 아니면 다시는 못 까불게 반쯤 죽여놓을 테니까!" 그리고선 조현을 머리를 벽에다 밀쳤다. 하필 조현의 뒤통수가 벽 모퉁이 찍혀 피가 쏟아지듯이 흘렀다. 그러고는 갑작스러운 통증과 함께 그동안 봉인해두었던 기억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신규 회원 꿀혜택 드림
스캔하여 APP 다운로드하기
Facebookexpand_more
  • author-avatar
    작가
  • chap_list목록
  • like선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