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가족

1930
건물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면 정훈의 사무실이 있다. 사방에 사람이 없자, 정훈은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원전신군 제3부대 참모장, 군신을 뵙습니다!" 맞다. 정훈도 하준의 부하였다. 다만 그는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보다 두뇌 싸움을 더 잘한다. "정훈 씨는 왜 여기에 있는 거예요?" 명호는 궁금증을 감추지 못했다. 정훈은 웃으며 사실 2년 전 하준의 명령에 따라 CY 그룹에 잠입했다가 CY 그룹이 김포에 진출할 때 책임자로 임명됐다고 말했다. "…정말요?" 명호는 놀라서 입을 쩍하고 벌렸다. 하준은 몇 년 전부터 이 일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물건은 내가 찾아와야지." 하준이 담담하게 웃었다. 명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형님이십니다!" 명호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정말 아첨 잘하시네요." 정훈이 입을 삐죽거렸다. "하하." 명호가 정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훈이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여기는 저한테 맡기세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나저나 이 차 좀 드셔보세요. 이번에 새로 산 차예요." 하준은 천천히 한 모금 마시고는 물었다. "그 일은 어떻게 됐어요?" "알아냈습니다." "…차가 맛있네요." 하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10분 후, 하준과 명호는 사무실을 나섰다. "형님,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정훈이 문을 열었다. "괜찮아요. 아직 할 일 많잖아요." 하준이 손을 내저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1층으로 내려갔다. "어?" "수민 씨?" 하준은 여기서 자신의 처제를 만날 줄 몰랐다. 수민 옆에 있던 정하는 아는 사이냐며 의아해했다. 수민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내 형부야…. 짜증나." "뭐라고요?" 명호가 화가 난 듯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하준이 손사래를 쳤다. "여긴 어쩐 일이에요? 여기가 어딘지나 알고 온 거예요?" 수민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떤 곳인데요?" 하준이 웃으며 물었다. "ZM 그룹이잖아요. 배후에는 CY 그룹이 있고요. 김포의 많은 대기업이 ZM 그룹과 계약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죠." 수민의 어깨가 올라갔다. "저, 곧 여기로 출근해요. 빨리 돌아가요. 집안 망신시키지 말고!" 하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가볼게요." 하준의 뒷모습을 보며 수민의 시큰둥하게 입을 삐죽거렸다. "수민아." 정하의 눈빛이 달라졌다. "저 사람들 방금 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거 같아." "뭐? 그럴 리가." 수민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임원 이상만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저 사람이 어떻게 타겠어?" "빨리 가자. 우리도 새로오신 그분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두 소녀는 재잘거리며 기대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정훈이 준 주소에 따라 명호는 하준을 데리고 교외로 나갔다. 그곳에는 낮은 단층집이 많고 굉장히 혼잡했다. 명호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형님이 찾으시는 분이…." "내 가족이야." 하준의 눈이 일순간에 따뜻해졌다. 하준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좁고 음침한 곳에서 말이다. 그리고 그의 옆집이 바로 하준의 제2의 어머니인 최 씨 아주머니네 집이었다. 그때 하준은 늘 끼니를 거르곤 했는데 아주머니는 밥을 하면 꼭 하준에게 한 끼를 가져다주었고, 하준을 찾아온 나쁜 사람들도 아주머니가 다 쫓아내 주기도 했다 하준이 한 집안의 대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고 다만 방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만 어렴풋이 들을 수 있었다. "내가 나가서 술 한잔하는 게 어때서?" "돈이 없잖아!" 하준의 눈에서 어두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저기요!" 잠시 후 문이 열리자 하준은 문을 연 사람이 바로 최 씨 아주머니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억척스럽고 명랑한 모습 대신 피폐함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하준이니?" 하준을 보자 아주머니는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얼마 전에 외지에서 돌아와서 아주머니를 뵈러 왔어요." "많이 컸구나! 못 알아볼 뻔했어!" 아주머니는 웃으며 하준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섰다. "아주머니, 망고 좋아하시죠? 제가 망고 사 왔어요." "뭐 하러 이런 걸 사 왔어!" 그때 하준은 방안에 한 명의 중년 남자가 있는 걸 발견했다. 아주머니 남편이었다. 아주머니가 망고를 내려놓더니 말했다. "예전에 옆집에 살던 하준이 기억하지?" 정웅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마치 하준을 전혀 보지 못한 듯 가볍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는 관공서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스스로 신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궁상맞게 차려입은 하준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정웅의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아주머니를 보거 온 것이지 정웅을 보러 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살이 왜 이렇게 빠졌어! 얼굴은 왜 이렇게 거메졌고!" 아주머니는 하준을 끌고 이리저리 살피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정웅을 콧방귀를 뀌며 다리를 꼬았다. "빨리 내 양복이나 다려 놔. 오늘 시도지사랑 식사 자리가 있다고 했잖아." 정웅은 말하면서 일부러 하준을 쳐다봤다. 눈에는 자랑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하준이가 왔잖아. 일단 밥 부터 먹여야지." "하준아, 저녁 먹고 가. 응? 네가 제일 좋아하는 계란말이 해줄게." 그때, 집 밖에서 20대 소녀가 걸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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