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화 - 강하다는 약하지만 나에게는 강하다.

3682
루이는 하다의 손에 들려 있는 살생부를 보고는 ‘최악’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줄리아와 앤버든 하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루이의 뒷말을 듣자 아니란 걸 깨달았다. “항상 보면 어딘가 다쳐있군.” 루이는 하다에게 천천히 다가와 다친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어머. 다친 줄도 모르고 말하고 있었네. 왜 말 안 했어. 아팠을 거 같은데.” “저도 놀라서 다친 걸 깜빡하고 있었어요.” 줄리아는 그제서야 하다의 상처가 눈에 들어왔는지 급하게 약통을 꺼내 왔다. 그리곤 루이가 물었다. “이번엔 뭘 하다가 다친거지? 또 넘어진 건가?” 하다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했다.   “아… 나무 막대기로 장난 치다가 조금 다쳤어요.” 루이는 하다 옆 바닥에 부러져 있는 나무 막대기를 보며 물었다. “힘자랑이라도 하려고 한 건가? 나무 막대기는 왜 부러뜨린 거지?” 루이는 하다의 행동을 일일이 다 물어봤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앤버든은 루이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남의 일에 저렇게 상관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왜 저렇게까지 캐묻는 거지?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강하다양에게 특별한 거라도 있는 건가?’ 앤버든은 진지한 표정으로 하다와 루이를 번갈아 보았다. 하다는 루이의 물음에 대답하고 있었다. “아 저건 제가 아니라, 아 저 일수도 있는데... 나무 막대기를 휘두르다가 우편물 아저씨가 단검? 그걸로 막는다고 막았는데 부러진 거에요.” “우편물 아저씨?” 루이는 다시 한번 미간을 좁히고 물었다. “네. 여기도 우편물을 가져다주는 아저씨가 있으시더라구요. 신기했어요.” 하다는 한국과 똑같은 시스템이 좋은 듯 웃으며 말했지만 루이는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여긴 우편물을 배달해주는 아저씨 따위 없어. 전부 우편함에 두고 간다고.” 루이의 말에 하다는 소름이 돋았다. “그…그럼 제가 본 우편물 아저씨는 누구시죠?” 하다는 소름 돋은 팔을 문지르며 루이에게 물었다. “인상착의는 기억이 나나?” 하다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마침 약통을 가지고 온 줄리아가 손을 치료해주기 위해 하다의 손에 약을 발라주고 있었다. “아뇨. 긴 로브를 입고 있어서 전혀 알 수 없었어요. 하지만 단검집을 가지고 있었어요. 마치 마도구 같았어요. 아니면 무기라던가…아야야…” 루이와 대화를 하며 줄리아는 하다의 손에 소독약을 바르고 있었다. 소독약을 바르자 그제서야 아픔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줄리아는 하다의 손을 치료하며 말했다. “마도구라면 우리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란 건데… 굳이 여길 왜 온 거지? 그것도 친히 밖에 꽂혀 있는 우편물을 들고서까지?” 하다의 상처에 밴드를 붙히고 치료를 끝낸 줄리아가 말을 이었다. “마치 하다에게 살생부를 직접 전해주려고 한 것처럼 말이야.” 루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줄리아를 처다 보았다가 하다를 바라보았다. “정말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살인귀를 처리해 본 적 있나?” 루이의 말에 하다는 이때다 싶어 루이를 자리에 앉히고는 말했다. “그래서 저희 셋이서 생각한 게 있어요.” “제발. 허무맹랑한 생각만 아니였으면 좋겠군.” 하다는 줄리아가 설명해 준 귀력과 귀력이 깃든 마도구가 서로 섞이면 심력이 될 쉬 있다는, 마도구가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힘에 대해 설명한 뒤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염치없지만 사장님이 칼을 좀 던져 줬으면 해요.” “정말 염치없는 부탁이군.” 루이는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 “기회가 딱 한 번 뿐이라 제가 던졌다가 빗나가면 정말 큰일 이잖아요. 그때처럼 귀력만 섞이면…” 루이는 손을 들어 하다의 말을 가로 막았다. 굳이 자신이 했던 바보 같은 짓을 상기시키기 싫었기 때문이다.   “알겠어. 알겠으니까 그만.” 루이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신의 방인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어?! 사장님, 시물레이션 안하나요?” “시물? 뭐?” 하다의 말뜻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인상을 썼다. “연습이요.” “그 귀찮은 걸 왜 해.” “하지만 위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루이는 하다의 말을 끊고는 말했다. “실전이 곧 연습이야. 괜한 걱정하지마.” 하다는 집무실로 가버린 루이를 보고는 걱정된다는 듯이 앤버든과 줄리아에게 물었다. “저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한번이라도 해보자.” 그들은 딱 한번의 연습을 끝냈고 하다는 이렇게만 된다면 모든 게 완벽할 거라 생각했다. “아! 하다야 옷 사왔으니까 한 번 봐봐!” 줄리아는 살인귀는 살인귀고 옷은 죄가 없으니 새로 사온 하다의 옷을 가지고 2층 하다의 방으로 향했다. “언니. 이건 제 옷이 아닌 것 같은데요?” “이거 전부 네 옷 맞아.” 하다의 옷은 전부 어깨가 드러나는 옷이거나 가슴부분이 살짝 드러나는 옷 뿐이었다. 줄리아의 취향 저격 옷이었다. ‘이중에 가장 덜 파인 옷을 찾아서 입어야 겠어.’ 하다는 속으로 생각하다가 순간 시급도 못 받는 줄리아가 어떻게 옷을 산 건지 궁금했다. “줄리아 언니. 돈이 있었어요?” “돈? 내 돈 아니라 가게 돈. 우리 주점이잖아. 판매를 하면 그만큼 잔고가 가게 통장에 쌓인다고.” “그걸 맘대로 써도 되나요?” 하다는 놀란 눈으로 줄리아에게 물었다. “루이도 앤버든도 나도 전부 그렇게 생활해 왔어.” 하다는 입을 벌리곤 경악했다. ‘뭐야, 알고보니 우리가게 거지가 아니였잖아.’ 하다는 놀라움도 잠시 곧 귀문시간이라는 말에 줄리아는 준비를 하러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고 하다는 1층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늘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홀을 보고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 하다는 귀문시간 마지막 손님의 응대를 끝맞 췄다. 원래는 홀을 볼 수 없었지만 사장님을 설득하고 설득한 끝에 겨우 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다는 앤버든이 인상을 쓰며 홀을 경계하고 있길래 다가가 말했다. “앤버든씨 인상 좀 펴요. 제가 보기엔 오늘도 안 온 거 같아요.” “그건 끝날 때까지 모를 일입니다.” 살생부가 날아든 뒤 언제 살인귀가 가게에 나타날지 알 수 없었기에 앤버든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앤버든의 잘생긴 얼굴엔 늘 인상이 피질 않았다.   “홀은 좀 어때?” “괜찮아요. 언니도 인상 좀 피세요.” 그건 줄리아도 마찬가지였다.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줄리아의 음식이 더욱 기괴해지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음식의 형태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하다는 둘의 상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접시 깨지는 소리에도 다들 민감하게 반응할 정도니…’ 하다는 이러 다간 살인귀를 잡기도 전에 앤버든과 줄리아가 먼저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다는 오죽하면 살인귀가 차라리 빨리 나타나길 빌었다. “안녕히 가세요.” 하지만 오늘도 역시나 무사히 영업을 끝마칠 수 있었다. 이제야 한시름 놓는 줄리아와 앤버든을 보며 안쓰러웠다. “앤버든씨. 줄리아 언니. 조금만 힘내세요. 긴장 좀 푸시구요.” 줄리아는 힘없이 대답했다. “하다 네가 아직 살인귀를 안 만나봐서 그래. 정말 골치 아픈 녀석이라고.” “차라리 제가 잡는 게 더 맘이 편할 거 같습니다.” 하다는 둘을 얼른 침실에 보내서 쉬게 하고 혼자서 마지막 마무리를 했다. 하다는 뒤 돌아서자 깜짝 놀랐다. “앗! 깜짝이야… 사장님 언제부터 계셨어요?” 루이는 벽에 몸을 기댄 채 팔짱을 끼고 하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 “오셨으면 말씀이라도 해주시지 깜짝 놀랐네요.” “무슨 사고를 치려고 또 혼자 있는 건가?” 루이는 주방 수납공간에서 티 잔을 꺼내며 물었다. “제가 무슨 맨날 사고만 치는 것도 아니고” 하다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제가 대신 타드릴께요. 이래뵈도 카페 경력이 있어서 티를 잘 우려요.” “카페에서 일을 했었나?” “네. 일은 가리지 않고 다 했었죠.” 하다는 뜨거운 물로 티를 우리고 있었고 루이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하다에게 물었다. “검을 배우고 싶은 생각이 있는 건가?” 루이의 말에 하다는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어떻게 알았는지도 궁금했다. “당연하죠. 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또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줄리아 언니나 앤버든씨가 고생을 안 하니까요. 사실 지금 두 분 다 살인귀 보다 먼저 죽게 생겼어요.” 하다는 지금 줄리아와 앤버든의 상태를 루이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루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만약 이번에 네 생각대로 작전이 성공한다면 검술을 가르쳐 주지.” 루이의 말에 하다는 토끼 눈이 되었다. “정말요? 정말 가르쳐 주시는 건가요? 이번에 각서 같은 거 안 써도 가르쳐 주시는 거죠?!” “내가 저번에도 얘기하지 않았나? 난 한 번 뱉은 말에 번복은 없어.” 하다는 기쁜 나머지 루이의 한 쪽 손을 꼬옥 감싸 쥐며 얘기했다. “꼭 이요! 이번에 꼭 성공하게 될 거에요. 아뇨. 성공합니다. 그리고 저 검술 꼭 배워서 제 몸 하나는 지킬 수 있게 만들 거에요.” 하다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루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루이는 한 쪽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끼지 못 했지만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하지만 검을 배우는게 쉽지만은 않을 거야.” “각오하고 있습니다.” 하다는 단단한 표정을 짓고는 루이를 바라보았다. 반면 루이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저번에 내가 느꼈던 귀력은, 처음 느껴본 귀력. 앨린이란 여자도 느꼈다면 분명…’ 옆에서 지켜보고 파악할 명분이 있어야 했다. “저는 검을 배우고 나면 가게 밖을 나가 보는 게 첫 번째 소원이에요!” 하다의 말에 루이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가게 밖을 나가보고 싶나?” “네!” 하다는 환하게 웃으며 루이의 손을 더욱 꽉 쥐어 보였다. “원한다면 언제 한번 밖에 나갈 때 동행하기로 하지.” “정말요?!!” “다시 한번 말해 두지만 난…” “한번 뱉은 말에 번복은 없어… 맞죠?!” 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다는 루이의 손을 놓고 티를 마저 우렸다. 루이는 하다의 온기가 남아있는 손을 한 번 쥐었다 피고는 팔짱을 도로 꼈다. “여기요.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하다는 루이에게 차를 건내며 웃었다. 그리곤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혼자 남겨진 루이는 또 다시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강하다. 약하지만 왠지 나에게는 강하다.’
신규 회원 꿀혜택 드림
스캔하여 APP 다운로드하기
Facebookexpand_more
  • author-avatar
    작가
  • chap_list목록
  • like선호작